中國旅順감옥
도마안중근
본관 순흥(順興)이며, 아명 안응칠(安應七)이다. 황해도 해주(海州)에서 출생했다.
1895년 아버지를 따라 가톨릭교에 입교하여 신식 학문에 접하고 가톨릭 신부에게 프랑스어를 배웠다.
1907년 연해주(沿海州)로 망명하여 의병운동에 참가하였다
1909년 동지 11명과 죽음으로써 구국투쟁을 벌일 것을 손가락을 끊어 맹세,
1909년 10월 26일 일본인으로 가장,
하얼빈역에 잠입하여 역전에서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는 이토를 사살하고 현장에서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바로 일본 관헌에게 넘겨져 뤼순[旅順]의 일본 감옥에 수감되었고 이듬해 2월, 재판에서 사형이 선고 되었으며, 3월 26일 형이 집행되었다.
1879년 9월 2일에 태어나 1910년 3월 26일에 가셨으니
안중근의 그때 나이 32살이었다..
3년동안 700명 이상을 처형 시킨 교형장 앞 괴목 역사의 굴레 만큼이나 아픈 고목의 형태 뒤틀린 가슴 아~ 고문대 가죽 벨트며 ~~당시 처참한 장면들이.. 기구만 보아도 가슴이 아프다 형장에서 사라진 그들은 무엇을 외쳤을까 ? 그들의 염원은 무엇일까... 그가 살아 있다..우린 그를 찾아야 한다. 시체가 이 속으로 ~~ 땅속에 묻혀 있는 현장 ~~그대로 남아 있다 국제지사들의 거룩한 이름앞에 놓여진 꽃 역사를 뒤로 하고 슬픔에 찬 여순 감옥의 뒷뜰에는 해가 지고 ~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옳은 것을 짓 밟는 것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을 보거든 구해 줄 마음을 가져라.
그리고 나라가 위태로울 지경에 빠졌을 때에는
목숨을 던져 나라를 바로 잡는데 힘 쓰는 사람이 되라. -安重根-
출처: http://kr.blog.yahoo.com/my9166/udamb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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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란초 2010.02.10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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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담바라님, 님께서 하얼빈에 가시더니 이 자료를 준비하셨군요.
역시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역사의 현장을 직접 보고 체험하시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지요.
특히 구국선열들의 옛자취. 안중근의사의 처형장을 직접 보셨으니 감회가 새롭겠습니다.
사실 이런 현장을 보면 피가 거꾸로 흐르지요.
일제 만행이 너무나도 극에 달했기에 결코 그들은 인간이라고 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아울러 결코 용서받지 못할 사람들이구요. 인간이기를 거부한 자들은 지구 상에서 사라져야만 하는데...
우담바라님, 항상 건강하시고... 이런 귀한 글을 올려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