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겉으로 보이는 게 나의 참모습은 아니란다.
겉모습은 다만 걸친 옷에 지나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의심하거나 업신여기지 못하도록 조심스레 입은 것이란다.
그리고 친구야.내안의 '나'는 언제나
침묵의 집에 머물러 있어
끝끝내 알아볼 수도, 다가갈 수도 없단다.
굳이 내 말이나 행동을 네가 믿어주길 바라진 않겠어
나의 말은 너의 생각을 소리내어 표현한 것일 뿐이고
나의 행동은 바로 너의 바람을 실행에 옮긴 것 뿐이니까
네가 "서풍이 부는구나"하고 애기하면
나 또한 "맞아.서풍이야"
하고 말한단다.
그것은 내 마음이 '바람'이 아니라
'바다'에 가있다는 것을 네게 굳이 알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지
바다에서 떠도는 내 마음을 너는 이해할 수 없고
나 또한 네가 이해하기를
바라지 않아.
바다에 나 홀로 있고 싶으니까
친구야.네게는 낮일지라도 내게는 밤이란다.
그럴 때에도 나는
언덕 위를 춤추는 한낮의 햇살과 계곡을 감도는
자주빛 그림자에 대해 이야기하지
너는 나의 어둠이 부르는 노래를
듣지 못하고 별을 향해 퍼덕이는
내 날개짓을 볼 수 없기 때문이야.
그리고 네가 그런 걸 모르는 게 나도 좋아
밤과 단둘이 있고 싶으니까.
네가 천국으로 올라갈 때 나는 지옥으로 내려간단다.
그런 때에도 넌 건널 수 없는 골짜기 저편에서 나를 부르지
"나의 벗.나의 동지여!"
그러면 나도 "나의 동지.나의 벗이여!"하고 대답하지
그것은 나의 지옥을 네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란다.
지옥의 불길에 네 눈이 멀 것이고
네 코가 지옥의 연기로 가득 찰테니까.
그리고 나는 내 지옥을 너무 사랑하기에
네가 지옥에 들르는 것을 바라지 않아.
지옥에 혼자 있고 싶으니까.
너는 진리와 아름다움과 의로움을 사랑하고
그래서 나는 너를 위해
그런 것을 사랑하는 일이 바람직하고 어울린다고 말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