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0. 31. 11:52ㆍ님들의 좋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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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꽃 당신
접시꽃 당신 시 / 도종환 낭송 / 김종성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 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악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남은 하루하루 하늘은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육까지도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마지막 성한 몸 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그것조차 끼워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