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일본 사찰에 모셔진 사진입니다. 작년말부터 100주년을 기리며 전국적으로 챙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작년에 있던 '지바 도시치'관련 사진들이 전부 인터넷에서 삭제 되었습니다. 모든 자료에... 겨우 구글에 있는 아래 사진(위폐) 한장만 달랑...
안중근 의사가 감옥에 갇혔을 때, 일본군 헌병이었던 지바 도시치라는 분이 그곳에 근무 했다고 합니다. 그도 처음에는 일본의 유명한 정치가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에 대하여 분노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점차 안중근 의사가 동양 평화를 갈구하는 굳은 의지와 높은 인품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되어 두 분은, 한국 독립군과 일본군, 사형수와 감옥 간수, 가톨릭 신자와 불교도라는 장벽을 넘어 서로 존경하며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됩니다.
안중근 의사는 결국 교수형으로 짧은 생애를 마칩니다. 이때 안중근 의사는 마지막으로 지바 도시치 씨에게 "爲國獻身軍人本分" (나라 위해서 몸을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 라고 쓴 필묵을 선물합니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1341943550B0CCCE07)
▲오른쪽에 모셔진 분은 안중근 의사, 왼쪽에 모셔진 분은 지바 도시치(千葉十七)씨 부부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에서 일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분입니다. 그런데 그런 안중근 의사의 위패가 왜 일본의 절에 모셔진 것일까요?
안중근 의사는 사람 죽이기를 즐기는 테러리스트가 아니었습니다. 독립군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우면서도, 항상 포로들은 인도적으로 살려보내곤 했습니다. 그 때문에 때로는 일본군으로부터 불의의 일격을 받아 피해를 당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비록 나라의 독립을 위해 맞서 싸운다 하더라도, 무고한 목숨을 마구 해칠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겠지요.
그런 그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게 됩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의 근대화를 앞당긴 정치가일 수도 있겠으나, 이웃나라에게는 침략자나 다름없었고, 동양의 평화를 해치는 그를 부득이 사살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1169183650B0CCF439)
눈물로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 지바 도시치 씨는 군대에서 제대한 뒤, 고향 센다이에서 철도원으로 일하면서도, 평생 안중근 의사의 위패를 모시며 그의 명복을 빌어 주었다고 합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민요 "아리랑"이 걸려 있습니다. 절 마당에는 안중근 의사의 유필을 새긴 소박한 추모비가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매년 안중근 의사의 추도식이 열린다고...
진입로에 표지판이 있는데 삭제되어... 절 바로 옆에는 도호쿠 신칸센이 놓여 있습니다. 낭만적인 기차길 옆 오막살이 같은 것은 아닙니다. 굉음과 함께 질주하는 신칸센 고속 열차가 시간마저 멈춘듯한 조용한 시골 마을의 정적을 깨뜨립니다
이 사진을 찍은 분이 괜히 폐를 끼친 것 같아 사양하려 했으나 "멀리 한국에서 왔으니 식사라도 하고 가라"는, 절에 계시는 아주머니의 상냥한 권유를 차마 뿌리칠 수는 없었 다고 합니다. 내 오신 맛있는 냉중화비빔면(冷やし中華, 히야시추카). 시골 절의 푸근한 인심을 느끼며...
언제고 센다이에 있는 이 추모관을 다녀 갈 것을 기약하며...
| 조국을 위해 바친 한몸... 박정희 대통령
![](https://t1.daumcdn.net/cfile/blog/18371C3C50B0CD140D)
박정희의 헤진 혁대, 도금이 벗겨진 넥타이 핀
1979년10월26일 저녁 경복궁 앞 국군병원에서는 이미 시체가 된 박정희를 놓고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필자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에서 인용한다.
<두 정보부 경비원 유성옥과 서영준은 허리에 권총을 차고 있었다. 그 권총을 일부러 보이면서 둘러선 군의관과 위생병들에게 "꼭 살려야 해요" 라고 위협조로 말했다.
정규형 대위는 이우철 일병에게 심장 마사지를 하라고 지시했다. 이일병은 환자의 가슴 위로 올라가서 두 손을 포갠 뒤에 왼쪽 가슴을 몇 차례 강하게 눌렀다. 동시에 정 대위는 수동식 인공호흡기 '암부'를 환자의 입과 코에 덮어씌워 놓고 공기주머니를 눌러 공기를 허파로 밀어보냈다.
정 대위는 심장을 자극하여 박동하게 하는 강심제 에피네프린 20cc를 가슴에 주사했다. 심장마사지도 다시 했다. 한 20분간 응급소생법을 실시했으나 결과는 회생불능이었다.
정 대위는 "도저히 안되겠습니다"라고 했다. 송계용 소령이 "돌아가셨습니다"라고 곁에 버티고 있는 두 감시자에게 이야기했다.
"이 사람이 누구십니까.".
송 소령의 물음에 두 감시자는 대답이 없었다. 며칠 뒤 군의관 정규형 대위는 합수부에서 조사를 받을 때 "얼굴을 보고도 왜 각하인줄 몰랐는가"란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답했다.
"병원에 들어왔을 때는 얼굴에 피가 묻어 있었고 감시자들이 응급처지 중에도 자꾸 수건 으로 얼굴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시계가 평범한 세이코였고 넥타이 핀의 멕기가 벗겨져 있었으며 혁대도 헤져 있었습니다. 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약간 있어 50여세로 보았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사실로 미루어 각하라고는 상상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 잊혀져 가는 월남전... 참고로 이 동영상은 우리나라 경제 부흥을 위해 목숨을 달러로 바꾸다시피한 월남전입니다. 월남전서 희생한 선열들께도 명복을 빕니다. >
초등학교때 부산항에서 태극기 흔들었던... 박대통령이 직접 배웅하던 그 부산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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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목... 가곡의 유래!
1964년, 강원도 화천군 백암산 계곡,비무장지대 (평화의댐 북방 14km 휴전선 부근)를 순찰하던 한 청년 장교가(한명희,당시 25세. 소위, 전 서울시립대 교수)잡초가 우거진 곳 에서 이끼 낀 무명 용사의 돌무덤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6.25때 숨진 어느 무명 용사의 무덤인 듯 옆에는 녹슨 철모가 딩굴고 있었고, 무덤 머리의 십자가 비목(碑木) 은 썩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보였습니다. 녹슨 철모, 이끼 덮인 돌무덤, 그 옆을 지키고 있는 새 하얀 산목련, 화약 냄새가 쓸고 간 깊은 계곡을 붉게 물들이는 석양.
그는 돌무덤의 주인이 자신과 같은 젊은이였을 거라는 깊은 애상에 잠깁니다. 4년 뒤 당시 동양방송(TBC) 에서 일하던 한명희 PD에게 평소 알고 지내던 장일남 작곡가는 (한양대 음대 명예교수, 2006년9월 별세) 가곡에 쓸 가사 하나를 지어 달라 부탁했습니다.
돌무덤과 비목의 잔상이 가슴 속에 맺혀 있던 한명희 PD는 즉시 펜을 들고 가사를 써 내려갔습니다. 조국을 위해 산화한 젊은 넋을 기리는 "비목"의 가사는 이렇게 탄생 되었습니다.
이 노래는 70년대 중반부터 "가고파", "그리운 금강산"과 더불어 한국인의 3대 애창곡 으로 널리 불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초연(硝煙)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비목이여---."
가곡 "비목" 의 고향인 강원도 화천군에는 전쟁과 분단의 흔적들이 아직도 이곳저곳에 서려 있습니다. 6.25 당시 화천댐을 놓고 벌인 치열한 공방전으로 붉게 물들었던 파로호는 지금 신록 속에 푸르기 그지 없고, 군사 정권 시절 댐 건설의 필요성을 놓고 논란이 일었던 평화의 댐은 민통선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댐 옆에는 가곡 "비목" 의 탄생을 기념하는 '비목공원'이 들어섰습니다. 파로호는 호수 모양이 전설의 새 대붕(大鵬) 을 닮았다고 해서 원 이름은 대붕호(大鵬湖)였답니다.
그러던 것이 1951년 화천댐 공방전에서 국군이 중국군 3개사단을 물리치고 대승을 거두자 훗날 이곳을 방문했던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적을 격파하고 포로를 많이 잡았다" 는 뜻으로"파로호(破虜湖)" 라는 새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파로호는 1944년, 화천댐 건설로 생긴 인공호수로 산 속의 바다라고도 불립니다. 호수에는 쏘가리, 잉어 등 70여종의 민물고기가 서식하고 있습니다.
![](http://blog.yonhapnews.co.kr/_File/0/41/2006/06/04/20060604180635.JPG)
파로호 경치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는 화천읍에서 평화의 댐으로 가는 460번 지방도 오른쪽에 있습니다. 파로호 휴게소에 차를 대고 5분 정도 걸어올라가야 합니다. 비목공원은 1998년, 가곡 '비목' 을 기념해서 만들었습니다. 산비탈에 돌로 한반도 모양의 단을 쌓았고 곳곳에 돌무덤과 비목을 세웠습니다.
주차장 입구에 "비목" 노래비가 서 있어 방문자들은 누구나 한번씩 그 앞에 서서 가사를 되새겨 본다고 합니다. 화천군에서는 매년 6월 3일부터 6일까지 이곳 비목공원과 화천읍 내 강변에 들어서있는 붕어섬 등에서 "비목 문화제"를 개최합니다.
진중가요, 시낭송 등으로 짜여진 추모제, 비목깎기 대회, 주먹밥 먹기대회, 병영체험, 군악 퍼레이드 등이 나흘간 펼쳐진다고 합니다. 거기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산자락이 마치 톱니 바퀴처럼 맞물렸고 그 사이로 북한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근래 호랑이 발자국이 발견됐다고 해서 주목을 끌었습니다. 조국을 위해 희생한 비목의 주인공과 많은 선열들의 숭고한 넋을 생각하며 "비목"의 가사를 다시 되새겨 봅니다. 작년(2009년)...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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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저려오는 이 비목 노래를 1977년 3월 대학 신입생 환영회
가곡의 마당에서 한곡불렀다가 가사를 잊어머려 고생한 적이 있습니다. ㅎ
과거에 무명용사의 비목에 대해서 소개하는 TV를 본 적이 있었지요.
아직도 발견 안 된 비목들이 제법 있다고 들었습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되신 분들이 아직도 이렇게 방치되고 있다니 너무나도 슬픈 현실이었지요.
최소한 남북 비무장지대라도 공동조사하여 이런 분들의 영혼을 달래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화석님, 항상 건강하시고 새로운 주일도 늘 행복하시길 빕니다.
→1968년 북한의 각종 도발(김신조, 푸에블로 납치, 울진삼척 공비)로
공조키로 했던 미국 의지약화로 독자노선... 중화학공업을 추진한
故박정희 대통령의 뛰어났던 치세가 더욱... 현충일에 생각나!
과학적 진실 외면하는 '부인주의자'들 수법... 본인들 생각과 다르면 상대 안함!
→9.11... 온난화, 나치 유태인 학살, 진화론, 흡연 폐암과 무관계... 등
주식 세계 4대 최고수들 공통점... 꼬리와 머리를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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