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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가 없는 대표적인 과일인 바나나는 번식 능력 없이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과일이 됐다.
장미의 꺾꽂이처럼 뿌리(알줄기)를 잘라 옮겨 심는 방법으로 번식한다. 전 세계의 바나나는 모두 복제 바나나인 셈이다.
바나나의 생물학적 특성은 이제 인간의 역사와 맞물린다. '태초에 신과 에덴동산이 있듯, 태초에 바나나가 있었다'는 것. 에덴동산의 선악과로 사람들은 으레 사과를 떠올리지만, 사실 성경 원본 어디에도 선악과가 사과라는 언급은 없다.
선악과는 바나나(?)다. 똑같은 에덴동산 이야기를 다룬 코란에서 그것이 바나나였음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고, 아담의 갈비뼈에서 이브가 태어나듯, 바나나도 무성생식으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열대과일을 오늘날처럼 싼 값에 먹게 된 것은 모두 바나나 회사들 덕분이다. 글로벌 기업인 '치키타'와 '돌'의 전신인 '유나이티드 프루트'와 '스탠더드 프루트'라는 회사로 인해 20세기, 플랜테이션 농장과 철도와 항구도시들이 건설됐다.
바나나 기업의 역사는 곧 제국주의와 노동착취, 세계화란 명목 아래 이뤄지는 자본과 노동이동의 부작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들 기업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며 중남미 부패 정권과 유착해 농지와 과세, 노동 환경에서 온갖 특혜를 누린다.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을 등에 업은 바나나 회사들은 라틴아메리카의 바나나 노동자들을 탄압한다. 이 영화 같은 얘기는 사실이다.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의 고독>의 클라이맥스, 노동자들의 파업과 계엄군의 무차별 총격으로 진압되는 대목은 1929년 실제로 일어났던 '콜롬비아 바나나 대학살'을 토대로 쓴 것이라고 한다.
1928년 10월 콜롬비아 바나나 노동자 3만 2000명이 파업을 시작했고 곧이어 12월 계엄령이 선포됐으며, 이튿날 시에네 광장에 모인 바나나노동자 3000명이 학살당했다.
라틴아메리카 독재는 바나나 회사들과 유착하며 공고해진다. 그러나 파나마병과 같은 돌림병이 돌자, '글로벌' 바나나 회사들은 기존의 농장을 갈아엎은 뒤, 새로운 농장을 찾아 떠나버렸다.
세계화 시대 바나나 산업은 민중의 피를 먹고 성장했고, 이제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 될 먹을 거리가 됐다. 이제 바나나는 아프리카 주민들에게 밀이나 쌀보다 중요한 식량이 됐다.
이 책을 대하면서 그 하찮게 생각하는 먹을 거리 하나에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착취당하고, 환경이 파괴되었는가를 알게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어 새로운 도전이 된다.
바나나가 병에 걸린들, 멸종한들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일까?
왜 우리에게 바나나가 그토록 중요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는 단지 하나의 과일에 지나지 않는 바나나가 전 세계의 식량안보에서 중요한 먹거리이며 아프리카의 수백만 명에게는 생사가 달린 식량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아프리카의 많은 사람들이 기아로 고통 받고 있다. 하지만 우간다에는 굶주리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다. 이는 모두 바나나 덕분이다.
미국의 연간 1인당 바나나 소비량이 100개가 넘지만, 아프리카 플랜테인의 원산지인 우간다의 연간 1인당 소비량은 그 20배나 된다.
그곳에서는 바나나가 밀이나 쌀보다 더 중요한 주식인 것이다. 스와힐리어에서 ‘음식’을 가리키는 단어와 ‘바나나’를 가리키는 단어는 한 단어이다. 글자 그대로 집집마다 텃밭에 심은 바나나 몇 그루가 할아버지에서부터 손자까지 온 가족을 먹여 살린다.
“바나나를 이야기할 때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나나 때문에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점이 아니라, 바나나로 또한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바나나를 원하는 ‘우리’가 있고, 바나나를 필요로 하는 ‘그들’이 있다.
바나나에 대한 우리의 애정이 아무리 클지라도, 후자의 세계가 훨씬 더 중요하며 우리가 내리는 선택이 두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명심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우리는 이제까지 오직 한 가지 바나나, 우리가 먹는 바나나만을 생각해왔다. 그것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착취당하고, 얼마나 많은 환경이 파괴 되는 지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우리는 또한 바나나가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우리가 바나나 재배국가와 의존국가가 겪고 있는 고통을 계속 외면한다면, 그들과 짐을 나누어 짊어지기를 거부한다면, 맨 처음 범선에 그로 미셸(멸종된 바나나 종)을 실어오면서 시작된 경시와 착취의 한 세기를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소비자로서 우리가 환경 파괴를 줄일 수 있는 유기농 바나나를 선택한다면,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되돌려줄 수 있는 공정무역 바나나를 고집한다면, 안전하고 모든 병에 끄떡없으며 농약 없이도 키울 수 있는 바나나를 만들기 위한 과학자들의 노력에 힘을 실어준다면 세상을 보다 좋게 바꾸는 올바른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바나나는 굶주림에 죽어가는 아프리카를 구원할 생명의 양식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