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무감(毒感無感)

2011. 10. 22. 13:14은사님의 글

 우리 님들 요즘은 독감이 상당히 위험한 병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은 암이나 에이즈처럼 위중한 병은 아닌 데도 말입니다. 과거엔 더 많은 사람이 독감에 걸리고 사망했었지만 이처럼 법석대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당시엔 마땅한 치료제가 없었기에 그랬는 지도 모릅니다.
 원로의사이셨던 은사님께서는 독감엔 특별한 치료제가 없다면서 아무 약도 안 먹고 물만 마시고 방에 드러누워 쉬면서 그 모든 경과를 이겨내시기도 했었지요. 손수 독감에 걸려 이겨내시는 과정을 글로 몇 편 남기셨는데 이 글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 님들 저의 은사님께서 생각하시는 독감은 과연 어떤 것인지 즐겁게 감상만 하시기 바랍니다.




 

                                         독감무감(毒感無感)



 내가 언제 독감에 안 걸려봤나 싶게 올해도 빠질세라 선두로 걸렸다. 5년 전에 유행했을 땐 남들이 거의 다 앓고 난 다음에 독감 찌꺼기가 붙었던지 정말이지 진탕으로 걸렸는데 이번엔 비교적 수월한 편이었다.

 딱 잘라서 말하라 치면 통 털어 예순 시간 남짓 그저 무중력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난 셈쳐버리니 오히려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흡사 졸업시험이나 학사고시를 치루고 난 다음 기분만큼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였다. 더구나 오래 전부터 중이염을 앓다 못해 페니실린을 엄청나게 먹고 있던 도중이라서, 독감의 원인이 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만 빼놓고 다른 잡균들이 아예 얼씬도 못 할 탓이었든지 남들에 비하면 쉽게 겪고 난 편이었다. 달갑지 않은 일에는 노상 남에게 뒤떨어지는 일이 드문 내 주제일망정 이번의 매는 재빨리 맞은 것이 오히려 잘 된 셈이 된 것이다.

 사실상 독감은 뒤로 쳐질수록 증세가 차츰 심해진다고들 말한다. 원래 의사란 직업상 죽지만 않을 정도라면 될 수 있는 대로 자신이 숱한 병들을 앓아보는 것 이상으로 좋은 공부 방법은 없다. 내 친구 한 사람도 학생 때 결핵이라는 폐병을 앓고 나더니만 지금은 자타가 공인하는 결핵병의 대가가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문둥병의 대가라서 그가 문둥병을 앓고 난 사람이겠거니 생각했다간 큰 코 다친다.

 독감이란 말로 따져 봐도 보통 감기 보다는 독하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마련이고, 그 무서운 유행성을 나타내고 있지 않아 유감이나, 그렇다고 해서 다른 적당한 말이 없을 바에야 독감이란 유행성 인플루엔자를 의역한 것으로 쳐두기로 할 수 밖에 없으리라. 어쨌든 난 선수 쳐 실험을 해보고 나서 새삼스럽게 교과서를 뒤적거려 보았다.

 이 병은 주로 호흡기 계통을 침범하는 급성 전염성 질환이며 여과성 병원체에 인한 것이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수십 년 만에 한 번씩 세계적으로 넓게 큰 유행을 하며, 그 사이사이로 2 ~ 4년 만에 작은 유행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독감이야말로 아직도 효과적인 치료법이 없는 채 남아있는 유일한 질환이라고 특기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독감의 유행이란 요즘 한창인 튀이스트 춤 따위는 문제가 아닌 상 싶다. 여하튼 이렇게 본격적인 대유행을 했던 독감은 최근에 것이 바로 5년 전 1957년에 있었고, 그 전엔 1918년 그러니까 일차대전이 끝날 무렵에 있었다고 한다. 그 때는 세계인구 중에 약 5억 명 가량이 독감을 치렀고 자그마치 2천만 명 이상이 죽었다고 한다. 우리 배달민족 전 인구만큼 이 시원찮은 독감에 쓰러진 셈이니 엄청나기도 하다. 스페인 독감에 걸리면 죽는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 건지도 모른다.

 또한 이러한 독감은 한번 돌기 시작하면 전인구의 30 ~ 35%가 걸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어린애와 노인은 덜 걸린다고 했으니 잘났건 못났건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하려면 어차피 한번쯤 걸려두는 게 무난하지 않을까도 싶다. 그러니까 요즘 인사 투로 독감 앓았느냐는 말은 그대로 너 사람 구실 했느냐로 알아듣고 무턱대고 '예'하고 해놓는 것이 되레 후환이 없을 것만 같다.

 요즘에 이르러선 독감은 그래도 생명엔 지장이 없대서 분명 소홀히 여기고 있는 듯싶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 녀석에게 일단 사로잡히면 최소한 사흘은 꼼짝 못하고 누워있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따지면 우리 인구를 2천 만 치고 6백만 명이 앓아야 할 것이니 날수로 천 팔백만 일, 자그마치 5만 년이란 긴 세월이 공휴일인 꼴이 된다. 이런 엄청난 시간을 하다못해 괭이를 들고 땅을 파는 노동력으로 환산해보면 얼마나 엄청난 손실을 우리 겨레와 나라에 가져올까 생각되어 지레 한숨을 내쉬는 애국을 주먹구구 해본다.

 이 땅에는 콜레라 그렇지 않으면 뇌염이라도 생겨야 눈들이 벌게져 가지고 놀라 자빠져, 그제서야 주사 놔라 약 달라며 병원 문을 두드리게 될 것인지 답답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의사들 밥 빌어먹을 소린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리 명의라 친들 감기 고치는 특별한 기술이나 약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그러기에 독감에는 보온, 안정, 영양 이 세 가지를 지키라고 했으니 춥지 않게 가만히 누워서 하다못해 냉수라도 자주 마시는 게 상책인 것이다. 열이 있으니 기껏해야 해열제나 먹는 재주요, 다른 균에 대한 저항력이 낮아진다니 페니실린이나 다이아진 정도로 조금씩 먹는 건 이런 2차 감염을 방지하자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무슨 뾰쪽한 수나 있는 것처럼 한방이란 한자는 눈곱만 하게 쓰고 의원이란 한글은 대문짝만하게 써 붙인 간판을 사진까지 찍어 신문에 내며, 기천 명 분 독감 특효약을 무료로 나누어준다는 광고를 낸 봉사정신의 그 의젓하고 갸륵한 슬기에 나는 야릇해질 수밖에 없다.

 또 요즘 여기저기 하얀 가제 마스크로 코와 입을 싸맨 친구들이 많아졌다. 독감이 무서워 미리 막는답시고 멀쩡한 사람이 하고 있는 것인지 숫제 앓고 있는 사람인지 분간할 도리는 없으나, 전자의 경우라면 별 의미가 없겠고 마스크는 앓고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첫째는 자기를 광고해서 다른 건강한 사람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 경종을 울리기 위한다는 뜻이 있고, 둘째는 어느 정도 효과적일 진 모르나 그 악착스럽고 전염력이 강한 바이러스를 여기서 뱉어 퍼뜨리지 않게 하자는 뜻이 있다. 이를테면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올바른 인간의 어진 생활태도와도 통하는 것이다.

 독감 때문에 오르는 열도 그렇다. 한번 부쩍 열이 올랐다 일단 내리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그러니 다시 한 번 치솟을 열이 남아있는 데도 다 나았거니 생각하고 일어나 나다니다간 호되게 혼나는 사람이 많다. 적과 싸우려면 먼저 그 적을 알아야 한다는 손자병법은 그대로 독감이라서 예외일 수 없다.

 공기가 건조해 있으면 독감이 더 퍼지기 쉽대서 비나 한바탕 내렸으면 했더니만 춘삼월이란 데 때 아닌 눈이 펄펄 내리고만 있다.

 며칠 전 독감이 걸렸던 얘길 털어놨더니 짓궂은 친구 녀석이 한다는 말이 아니 의사들도 그런 병에 다 걸리느냐고 빈정이었다. 나는 대뜸 이렇게 쏘아주었다.

 “이 사람아, 의사 놈들은 사람의 새끼가 아니고 개나 돼진 줄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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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님들 즐겁게 감상하셨나요?
 이 글은 저의 은사님께서 쓰신 글을 대부분 그대로 옮긴 것이라서 감히 후기를 쓸 수가 없습니다. 
  우리 님들 모두 오늘도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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