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양(兎孃) 성혼식(成婚式)

2011. 10. 22. 13:18은사님의 글

 우리 님들 토끼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 들어보셨는지요?
 사람이 권태기가 오면 정말 살 맛이 안 납니다. 그냥 무료하게 지내는 것보다는 뭔가를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게 사람들이 아닐까요?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암토끼 결혼식입니다. 이 글은 저의 은사님께서 쓰신 것이라서 그대로 올려드립니다.
  우리 님들 즐겁게 감상만 하시기 바랍니다. 

  


 

                         토양(兎孃) 성혼식(成婚式)



 
- 집토끼입니다. 혼자 놀고있는 것이 다소 쓸쓸해보이네요. 단 이 사진은 이 글과는 무관합니다. -

 0815란 영화를 보면 독일 병사들이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놀고 박차고 하다가 나중에는 사나이들끼리 엉덩이를 까재끼고 서로 비벼대며 시시덕거리는 장면이 있다. 또 이상(李箱)의 글에는 어린 아이들이 한길에서 노리개 하나 없이 흙만 만지며 무료(無聊)에 지쳐있을 무렵, 한 놈이 똥을 싸니까 그게 신기해서 소리를 지르고 손뼉을 치며 법석거리는 웃지 못 할 대목이 있다.

 어른이고 아이고 권태(倦怠)를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이 정신병의 시초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독일 병사나 이상(李箱)의 아이들이 지극히 건전한 사람들이었다는 게 분명하다.

 군인 시절 전방 부대병원에서 일보고 있을 때 얘기다. 간호장교인 한 처녀가 토끼새끼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는데, 이놈이 어느 정도 자라고 나서는 흰 몸뚱이가 누렇게 물들도록 돌아다니며 황토 흙을 파헤치고 구덩이를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누가 알아냈는지 암토끼가 발정(發情)을 하면 그러는 거라고 듣고 나서는, 사람 처녀도 발정을 하면 그러느냐고 간호장교를 구슬려가며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토끼 시집을 보내자는데 완전 합의를 보았다.

 첩첩산중에서 남녀를 불문하고 혈기왕성한 생사람들마저 딸딸 굶고 있는 것만도 억울한데 토끼 소원쯤 못 풀어 줄쏘냐. 기왕이면 식도 근사하게 올리고 잔치도 벌리자는 것이었다. 몇 사람 안 되는 장교들 호주머니를 털어서 이백리길에 가까운 서울까지 나아가 신랑감을 골라들고 밤늦게야 부대에 돌아왔다.

 아까운 청춘을 하룻밤이라도 헛되이 보낼까보냐. 한 밤중에 텐트 속 맨흙바닥에서 선을 뵈주었더니, 그 한 쌍의 토끼들이 위아래로 얽히고설키어 괴성을 울리며 사랑을 주고받는 꼴이란 어찌 말이나 글로 다하랴. 밤중에 억지로 끌려왔던 간호장교들은 보다 못해 얼굴을 붉히며 도망가 버렸다. 또 소주 몇 잔에 얼큰해진 생홀아비 총각들 못할 소리가 뭣이겠는가? 개중에도 유독 모두를 웃긴 소리가 있었다.

 “야! 서울 건달 신랑 토끼 놈아, 넌 복도 많지 뭐냐? 여기도 처녀들이 있다지만 사람 처녀 속이야 못 봤으니 그 누가 알겠는가? 그렇지만 오늘 밤 토끼 새댁만은 눈을 씻고 봐도 진짜 아다라시다. 진짜 아다라시라구 … ”

 권태(倦怠)란 실로 못할 짓, 못할 소리가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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