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환(五圜)과 사백 환(四百圜)

2011. 10. 22. 13:19은사님의 글

 우리 님들, 아주 오래 전에 저의 은사님께서 쓰셨던 글이 있어 여기에 소개하겠습니다. 지금과는 많은 차이가 있고 우리 주변도 많이 변했지만 그 당시의 글이 옛이야기처럼 구수하게만 느껴집니다.
  우리 님들, 이건 은사님의 좋은 글이오니 즐겁게 감상만하시기 바랍니다. 



 

          오환(五)과 사백 환(四百)



 타고 내리는 대목이 알맞아서 아침저녁으로 버스 신세를 지게 된다. 날이면 날마다 오가는 길이면 한번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오는 부아를 막을 길이 없다.

 나는 내 키가 배달족치고는 중질이지 큰 편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우리 국산버스라는 건 하필 난장이나 꼽추, 그렇지 않으면 유치원 아동들만을 상대로 만든 것인지 꼿꼿이 서자면 머리가 천정에 닿아 허리나 무릎을 굽히지 않을 수 없다. 가뜩이나 사람이 콩나물처럼 차있는 버스 안에서 발도 제대로 딛지 못하는 판국에다 이건 숫제 고역이다. 항차 자리에 앉아볼 생각이란 엄두도 못 낼 나 같은 처신엔 제발 버스 칸이나 좀 높았으면 싶다.

 둘째로는 십오 환이란 야릇한 찻삯이 또 그지없는 꿍꿍이 속인 것이다. 요즈음 거지도 돌보지 않는다는 오환이나, 돈 단위가 일으키는 말썽이란 게 이만저만이 아니다. 으레 20환을 내야 타게 되며 거스름이란 처음부터 받아본 일이 없다. 그러면서도 어쩌다 손님이 10환만을 내놓고 타려들다간 흡사 무전취식이나 하려는 사람 대하듯 고약스런 말투의 꼬락서니다. 옆에서 듣다못해 이놈아 내 오환 거스름돈 그분께 돌려라고 고함을 치고 만다.

 또 잔돈이 없어 백 환짜리를 내주면 내릴 때 주겠다 말해놓고 이쪽이 잊으면 그것도 그만이다. 나처럼 건망증이 심한 놈은 한 달에 한번은 백 환짜리 시내버스를 탄다. 왜 버스표제도를 만들지 않는지? 그다지도 아니꼽고 싫으면 안타면 될 일이지 무슨 생트집이냐 할 지 모르나 이왕 다니는 버스이겠다, 걷는 것보다도 빨라서 올라타는 바이요, 또 탄 이상엔 고객이 아니겠는가? 합리적이란 술어가 여기만큼 필요한 세태도 더는 없을 것 같다.

 내 집 근처가 바로 호랑이집(虎窟) 아가씨들이 우글거리는 곳이다. 저녁녘에 내 집 앞을 거닐라치면 꼬마들의 하숙집 유인이 굉장하다.

 하루아침 보건데 호랑이아가씨임에 어김없는 아낙이 내 병원을 찾아와 다짜고짜 펜비 주사약을 놔달라는 명령조였다. 나는 또 짓궂게 어째서 맞으려는 거냐, 전문의사의 진찰을 받아야 한다, 못 놓겠다, 등등 한참을 옥신각신거리다가 놔주고는 사백 환을 받았다.

 그날 저녁에도 수없는 꼬마들이 여전히 명색이 하숙으로 이끄는데 그중 한 놈을 붙들어놓고,

 “얼마냐?”

 “칠백 환여라우.”

 “그럼 그 돈을 색시가 다 먹느냐?”

 “아니라우. 내가 백 환 묵고 집쥔이 이백 환 떼어 내고 … ”

 “색시에게는 사백 환 밖에 가지 않는단 말이지.”

 “…… ”

 나는 아침생각이 났다. 그 호랑이아가씨는 주사 한 방을 맞으면서도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이었다. 나는 불현듯 픽 웃음이 터졌다. 아무래도 그 호랑이아가씨가 주사를 맞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지미, X 한번 팔고 주사 한방 맞응께 그만이네.”





............................................
 우리 님들 즐겁게 감상하셨나요?
 옛날 이야기를 읽어보시니 느낌이 새롭지요? 그래도 많은 걸 느낄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은사님께서 쓰신 글이라 감히 후기를 달 수가 없네요.
  우리 님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은사님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사가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0) 2011.10.22
암탉의 수난  (0) 2011.10.22
토양(兎孃) 성혼식(成婚式)  (0) 2011.10.22
췌언불요(贅言不要)  (0) 2011.10.22
불허복제(不許複製)  (0) 2011.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