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탉의 수난

2011. 10. 22. 13:21은사님의 글



 

                   암탉의 수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이 있지요. 지난 구정 새벽 무렵이었습니다. 갑자기 집에 있던 암탉이 ‘꼬끼오’하며 연거푸 두 번씩이나 울더군요. 집에 계신 할머니께서 깜짝 놀라 일어나셨습니다.

 “요놈의 암탉 봐라. 정월 초하루부터 암탉이 울면 어쩐다냐?”

 이렇게 한 마디 내지르시며 닭장으로 달려가셨습니다. 하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암탉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닭장 안에서 졸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에 화가 나신 할머니께선 막대기를 들고 와 매질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들어오셔서 잠을 청하려는데 또 ‘꼬끼오’하는 닭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나신 할머니께선 다시 닭장 쪽으로 후닥닥 달려가시더군요. 이번에도 닭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할머니한테 맞아서인지 할머니가 닭장 문을 열자 깜짝 놀란 닭이 할머니에게 달려드는 것이었어요.

 “이노무 닭이 인자 미쳤구먼.”

 하시며 할머니는 더 큰 막대기로 닭을 내리쳤고 그 순간 닭이 픽 쓰러졌습니다. 당황한 할머니가,

 “에이! 잘 돼부렀다. 안 그려도 닭 잡아서 막내딸 줄려고 했는디.”

 하시며 가까운 곳에 사시는 막내이모에게 전화를 걸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닭 잡아 놨응께 얼른 와서 가져가라잉.”

 잠시 후에 식구들이 모두 일어났고, 할머니께선 새벽에 일어났던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구정 명절을 지내려고 오셨던 외숙모께서 배를 잡고 깔깔 웃으시며 한 마디 하시는 거예요.

 “어머니, 그거 애기 아빠 휴대전화에서 나오는 알람 소리예요.”

 그러니 곤히 잠자던 암탉은 ‘꼬끼오’하고 울리는 엉뚱한 휴대전화 알람 소리 때문에 할머니에게 졸지에 봉변을 당한 셈이지요. 그것도 모른 채 멀쩡한 닭을 죽였으니 할머닌 얼마나 후회하셨겠어요? 매일 달걀도 꼬박꼬박 잘 낳고, 그 무서운 조류독감도 이겨낸 기특한 녀석인데…

 그런데 잠시 뒤 막내이모의 외침이 뒷마당에 있는 닭장 쪽에서 들려왔습니다.

 “엄마! 닭 안 죽었어.”

 다 같이 우루루 뒷마당으로 나가보았더니 새벽녘에 죽었던 암탉이 다시 살아서 모이를 쪼고 있지 않겠어요. 아마도 암탉이 잠시 기절했었나 봅니다. 뒷마당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할머니는 그 닭을 더 예뻐하시기로 했답니다.


                        -좋은 생각, 은사님의 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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