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0. 22. 13:17ㆍ은사님의 글
우리 님들 혹시 잘못 알고 있는 지식을 잘 아는 것처럼 떠들다가 된통 당해보신 적은 없으세요?
저의 은사님께서 이런 일을 당하고 쓰신 글입니다. 특히 한자어는 잘못 읽는 경우가 많지요. 그럼 어떤 일을 당하셨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님들 즐겁게 감상만 하시기 바랍니다.
贅言不要(췌언불요)
얼마 전에 구루병(佝僂病)은 ‘후루병’이라는 나와 구루병으로 읽어야 한다는 젊은 의사들과의 실랑이 끝에 사전까지 들고 나서야 내가 이겼다. 옳다고 믿으면서도 고집부리지 못하고 사전이 판가름 나도록 기다리게 된 데는 수삼 년 동안에 일어난 사연 때문이었다.
한번은 논문심사를 하면서 활이라 불러야할 할(割)을 왜 할 할 하는지 모르겠다며 투덜대는 나를 옆의 동료교수가 쿡 찌르며 자신도 그리 생각했기에 옥편을 뒤적거렸더니만 할이 옳더란 귀띔이었다. ‘옥편이 요즘 거라서 오식이 아니겠는가?’하고 뇌까린 다음 나중에야 할임을 확인은 했지만 지금도 활이라 읽는 버릇은 채 안 가시고 있다.
또 몇 해 전 驚蟄(경칩)을 보고 경첩이라 거니 경칩이라 거니 시집가기 전 내 딸과 시비가 벌어져, 50년 가까이 경첩이라고 읽어 온 애비의 어김없는 지식을 네 따위 풋내기가 꺾으려 드는 가며 호통 끝에 못내는 내기가 되어, 옥편이건 국어사전이건 있는 대로 펼쳐들고 대드는 그녀의 서슬에 풀이 죽고 나서 꽤 비싼 값을 치렀다.
바로 며칠 전 아직은 서먹서먹한 사이인 아가씨들과 마주앉아 갖가지 얘기를 주고받던 자리에서였다. 오랜만에 딱딱한 전문분야 논문을 하나 쓰면서 영어, 한문 나부랭이들이 더덕거리지 않는 글을 써보려니 마음먹었으나 막상 췌언불요(贅言不要)란 뜻으로 ‘군말 할 턱이 없다.’하기가 쑥스러워 한글로 ‘시언을 요치 않는다.’라고 썼더니만 모르면 그냥 놔둘 일이지 시를 실로 바꿔놓고 게다가 실(失)로 주(註)까지 넣어놨으니 남의 글에 먹칠을 해도 너무 하더라는 내 도도한 연설조를 듣고만 있던 아가씨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잇달아 그런 뜻이라면 시가 아니라 췌라야 옳을 거라고 눈을 깜박거리며 조심스레 일러주는 것을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고 나서 사전 찾기를 점잖게 동의하였다. 그러면서도 이번만은 ‘구’의 경우처럼 나를 믿었으나 할(割)만이 맴돌아 다시 확인해 보고픈 심사였다.
아뿔싸! 전에 누군가가 잘 못 대줬든, 그릇 배웠든 문제가 아니고 내 뇌세포에 변성이 온 탓이라면 탈은 크다고 생각하였다. 모른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몰골과 새것은 차치하고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부터 하나하나 되살펴야겠다는 각심이 뒤범벅인 데다, 이 세상에서 뇌세포가 어긋나기 시작한 것은 나뿐이기 만을 비는 마음 그지없다는 데도 '시언불요'가 아니고 ‘췌언불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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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님들 즐겁게 감상하셨나요?
우리 일상 중에 간혹 있을 수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한자 사전까지 찾아가며 확인하시니 그래도 이젠 확실히 아실 것만 같습니다. 차라리 모른 것은 모른다고 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었을 것 같네요만...ㅎ
저의 은사님께서 쓰신 글이라 더 이상 후기를 쓰기는 어렵습니다.
우리 님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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