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앞둔 환자 이야기 제3편: 죽음을 앞둔 환자의 부정 심리

2011. 3. 5. 18:39나의 의학소고

 우리 님들 죽음을 앞둔 환자 이야기 세번째는 부정 심리에 대한 것입니다. 죽음을 초연하는 것, 기꺼이 받아드리는 것을 부정 심리라고 하는데 이에 관해서 피력해보겠습니다.
다소 전문적인 용어가 많고 이해하기 힘들지만 끝까지 읽어보시면 많은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이 글도 '환자와의 대화'를 많이 참조하였습니다. 이런 내용은 정신의학 분야이므로 저로써는 정신과 의사의 자문을 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님들, 관심있으신 분께선 즐겁게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죽음을 앞둔 환자 이야기

                       제3편 





 

                                   죽음을 앞둔 환자의 부정 심리





 환자가 죽는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 죽음을 편하게 맞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환자가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더 나아지는 것도 거의 없습니다. 대화 중에 환자가 그런 사실을 알고 싶어 하는 눈치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그 이상 말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러나 어떤 환자는 꼭 그 사실을 알고 싶어 합니다. 언젠가는 죽을 몸인데 죽는 것쯤 두려울 것 없다거나, 또는 확실히 죽는다는 것을 알면 오히려 나을 것 같다는 환자를 만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럴 때 명심해야 할 것은 그 환자가 하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속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의사는 항상 환자가 용기 있고 자신이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환자가 언제나 자기 생각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대로 가르쳐 달라고 애원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내심 그는 죽는다는 사실을 전혀 알고 싶어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환자와의 대화에서는 조금만 세심하게 관찰을 하면, 그가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환자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감정을 노출시키기 마련입니다. 의사는 그의 눈에서, 표정에서, 목소리에서, 아니면 사용하는 어휘 어딘가에서 말과는 다른 숨겨진 의미를 읽을 수 있습니다.

 비록 의사가 그 불안을 미처 읽어내지 못했다 할지라도 죽어가는 환자의 마음속엔 언제나 불안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한다면 틀림없습니다. 이런 환자일수록 의사의 일거일동에 신경을 쓰고 작은 일에나마 희망적인 징조가 있으면 거기에 매달립니다. 사실대로 이야기해달라고 계속 조르긴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형식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는 그렇게 묻는 것뿐이지 대답을 기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마음은 때로는 기적을 낳습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느끼고, 죽음이 눈앞에 닥쳐와도 아무렇지 않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심리를 부정(否定)이라고 합니다. 이는 마치 진통제와도 같아서 모든 아픔이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줍니다. 진통제는 고통과 괴로움이 존재하는 것을 부정하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진통제도 일종의 부정의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통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닙니다. 고통을 주는 근원적인 병소 부위 자체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부정 심리는 어떤 괴로움이나 아픔이라는 현실을 완전히 부정함으로써 일시적 편안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음의 힘이란 정말 강력하고 효력이 미치는 범위가 광범위하므로 이것을 잘만 이용하면 어떤 약보다 효과적일 것입니다. 체중도 자꾸 감소하고 숟가락조차 들기 힘들 정도인 암환자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서도 장래를 계획하고, 또 퇴원 후 할 일을 걱정하는 것은 곧 죽음을 부정하는 무서운 마음의 효과 때문입니다.

 이런 역할을 하는 부정은 환자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진행됩니다. 그리고 그 형태는 환자마다 다르게 나타납니다. 의사나 가족들이 하는 말은 환자의 부정심리를 부추기기도 하고 억제시키기도 합니다. 물론 환자의 고통이 너무 심하면 부정심리도 큰 역할은 하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부정의 심리가 진행되는 것을 보면, 어떤 의사들은 이를 저지하고 환자가 현실을 직시하게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심지어 짜증을 내기도 합니다. 그렇게 똑똑하던 환자가 어쩌면 이렇게 바보스러울 수 있을까 하고 어이없어 하기도 합니다. 또 이런 의사일수록 환자에게 적절한 처방을 못 해주고, 진통제를 주는데 매우 인색합니다.

 환자는 곧 죽어가는 데도 습관성이나 중독을 염려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환자가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한다고 조급해하거나 언짢아하지 말고, 환자의 자연스럽고 내재적인 방어노력을 관대하게 이해하고, 죽음을 부정하는 환자에게 죽는다는 사실을 인식시키고 싶은 충동을 억제해야만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환자를 위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건강한 사람이나 치유 가능한 질병을 앓는 환자가 이런 부정의 심리상태를 보이면 의사는 환자가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 정도야 괜찮겠지’하고 설탕을 마음대로 먹어대는 당뇨병 환자라면야 의사로서 즉시 그 병의 심각성을 이야기해주고 병을 부정하는 태도를 고쳐야 함이 마땅하나, 임종을 앞둔 환자를 대할 때는 이와는 생각을 달리해야 합니다. 죽음을 완전히 부정하는 환자에게 죽는다는 사실을 굳이 인식시키려 드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환자에게 불안감만 가중시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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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님들 즐겁게 감상하셨나요?
내용이 이해하기 어렵진 않으셨는지요? 의학적인 내용이라 좀 딱딱하고 재미있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다음 편부터는 사례를 들어가면서 쉬운 내용으로 올려보겠습니다.
 우리 님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