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 5. 18:41ㆍ나의 의학소고
우리 님들 이번엔 죽음을 앞둔 환자에서 볼 수 있는 부정 심리의 사례를 들어보고 좀 더 부정 심리에 대해서 언급해보겠습니다. 환자에 따라 죽음을 미리 알려주어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고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님들, 관심이 있으신 분께선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죽음을 앞둔 환자 이야기
제4편
죽음을 앞둔 환자의 부정 심리 사례(1)
사례 1
급성 백혈병을 앓는 환자가 곧 죽게 될 것인지 가르쳐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는 아주 침착하고 조리있게 물었습니다. 그는 어른이고, 교육도 받을 만큼 받았고, 또 종교인이기 때문에 죽음을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자기의 병을 확실히 알아야 가족과도 서로 숨기는 것이 없어 좋고, 또 죽기 전에 해야 할 일도 많다고 했지요. 한동안 망설이던 의사는 이 환자야말로 죽음에 초연한 사람이니 사실을 알아야 하고, 또 그렇게 해야 환자가 짧으나마 보람된 날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 판단되어 결국 사실대로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 환자는 고맙다는 말을 하며 상황을 잘 받아들이는 듯했습니다.
그는 남은 시간을 친구도 만나고, 여러 사람과 이야기도 하고, 회고담도 나누는 등 유용하게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태도는 마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았고, 그 자신은 관찰자나 기록자인 것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러다 며칠 후 갑자기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되자 그의 불안은 극에 다달았고,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게 되었죠. 그는 마침내 정신착란으로 죽는 날까지 그 상태가 계속되었습니다. 그는 차라리 죽는다는 사실을 몰랐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뉘우쳤습니다.
사례 2
심장병으로 거의 사경을 헤매는 환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매우 불안해하며 의사나 간호사에게 병세가 어떠냐고 거듭 물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그 환자에게 그 병은 회복되기 어려우니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제 언제 죽느냐고 묻기 시작했지요. 그 환자는 불안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너무도 지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주치의는 병실의 모든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그의 증세는 많이 호전되었으며 완전히 회복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효과는 즉각적이었지요. 환자는 곧 진정되었고 미소도 되찾았으며, 가족과 담소를 즐기며 잠도 잘 자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편안한 상태가 나흘 동안 계속되었고, 그는 편안히 숨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위 사례에서 보듯 죽는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심리는 환자에 따라 그 이유가 각양각색입니다. 물론 죽음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현실로 다가올 육체적 고통과 죽음과 연관된 개인적인 치욕감을 생각하면 두려워집니다. 더구나 사후를 생각하면 그 두려움은 극에 달합니다.
죽음을 앞둔 환자가 겪게 될 두려움을 생각해 보면, 이를 외면하고 싶어하는 그들의 심정도 이해가 갑니다. 앞서 말한 부정의 심리도 그런 두려움을 피하려는 노력의 하나입니다. 환자들은 부정 심리를 통해 자신이 그와 같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감출 수도 있습니다.
분노, 후회, 욕구불만, 질투, 실의 등의 감정도 죽음과 함께 부정하는 흔한 것들입니다. 이러한 감정들은 죽어가는 환자들에게서 그리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환자 자신도 그런 감정을 갖고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어가는 사람이 분노를 느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런 환자들이 분노를 표현한다고 놀랄 이유는 없고,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는 것입니다.
특히 환자가 젊거나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어찌 화가 나지 않겠는가 말입니다. 기만당한 것 같고, 무엇인가를 억지로 빼앗긴 듯하고, 누구에게 따돌림을 당한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과 지금껏 희생해 온 것에 대해 허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건강하게 살아갈 사람들에 대해서 질투도 나고, 밉고 화가 나지 않겠는가? 등등입니다. 가족들이나 의사도 그러한 기분을 환자에게서 느낄 수 있었을는지 모릅니다. 다만 환자나 가족이 애써 피하려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서로가 이러한 감정을 숨기기 위해 죽음 그 자체를 부정하는 강력한 동기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을 부정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정말 죽고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자살이나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기 때문에 죽음 자체를 부정할 필요가 생깁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며, 여러 가지 이유에서 비롯됩니다.
오랜 세월 죽음을 생각해 온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위험한 운동이나 직업을 고의로 택하기도 하고, 건강을 돌보지 않고 사고나 병도 자주 나는 등 자해행위가 잦아 한 마디로 위험하고 자기 파괴적인 인생을 삽니다. 이들에게는 어떤 이유로든 죽음의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 오히려 환영할 일입니다.
또 죄책감으로 고민하는 환자라면 죽음이란 당연히 받아야 할 벌이므로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이 너무나 견디기 어렵고, 오랜 기간 계속되면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이런 환자들은 무슨 이유에서든 죽음을 소망하고, 또 다가오는 죽음을 환영하면서도, 이것이 곧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용납될 일이 아닌 줄 알기 때문에 죽음을 부정해야 합니다. 즉, 죽고 싶은 생각을 숨기기 위해서 죽음이 다가오면 오히려 이를 부정하게 됩니다.
죽음을 부정하는 또 다른 이유는 죽음이란 곧 창피한 것이요, 남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이들은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이 창피하고 당혹스러워서 남이 알까 두려워하고, 자기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런 부끄러움과 거부감은 흔히 특정한 질병과 관계가 있습니다. 암이나 심장병과 같은 위협적인 질병으로 죽을 때는 더욱 그런 경향이 높아집니다. 이런 인간적인 차원에서의 부끄러움은 병 때문이든. 혹은 죽음 자체 때문이든, 환자의 남은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남이 자기를 버리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들은 창피나 부끄러움 때문에 다른 사람이 찾아오면 마음이 편치 못해서 불안하기 때문에 방문객을 멀리 하거나 아예 찾아오지 말라고 직선적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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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님들, 즐겁게 감상하셨나요?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의 심리변화는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으며, 죽음을 부정하는 이유도 여러가지입니다.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글이나 사례를 보시면 좀 더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우리 님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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