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홍등가에서

2011. 2. 25. 22:10나의 문학작품

       1970년대 초반까지 야간 통행금지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밤 12시 싸이렌이 울리면서부터 새벽 4시까지는 통행금지 시간이므로,
     그 동안 길거리에 나와서 돌아다니면 낭패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있어도 밤 12시까지는 귀가를 해야만 합니다.
     그러다보니 그 동안 별 일이 다 벌어집니다.

      고란초가 그 당시 통행금지에 안 걸리기 위해 당했던
      일화를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반 고호의 그림 중 'Sorrow'를 고란초가 컴퓨터에 있는 
                           그림판으로 한 번 그려본 것입니다.
                           홍등가에서 아무도 찾아주지 않아 슬픔에 젖어 있는
                           늙은 여자(매춘부)입니다.
                           배를 자세히 보시면 만삭 임신인 여자 같습니다.





 


        어느 홍등가에서 


      

  1970년대 초반 1월 어느 날이었다.

 K동에 살고 있는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시계를 보니 이미 11시가 넘어 있었고, 조금만 더 있으면 재수 옴 붙게 통행금지에 걸려 파출소 신세를 져야하므로 서둘러 집으로 달려가야만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나의 수중에 돈이 거의 다 떨어져 택시도 탈 수 없었고, 시내버스도 이미 끊어진지 오래라 종종걸음으로 K동쪽에서 구역을 향해서 바삐 나오는 중이었다.

 K동은 그간 나도 별로 와본 적이 없었고 도로도 낯설었으며, 구역 쪽으로 가는 길마저 어두컴컴하여 순간 깜빡 길을 잘못 들었는지 당연히 나와야 할 구역은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한참을 가다보니 엉뚱하게도 많은 홍등가와 여인숙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있고, 삐끼(호객꾼의 속어임)들이나 창녀가 우글대는 W동 뒷골목 쪽으로 지나가게 된 것이다. 내가 하필이면 이 길로 나왔는지 나도 모를 일이나, 그 놈의 통행금지 시간 때문에 마음마저 급한데다가 낯선 길을 정신없이 가다보니 결국 이 길로 접어들게 된 셈이다.

 갑자기 도로 옆 어두컴컴한 골목 속에서 웬 낯선 여자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나의 팔을 붙잡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같이 가자고 한다. 그 당시 나는 여성과는 가까이 해본 적이 거의 없는 풋내기 총각이었음에 틀림없었는데, 어둠 속에서 그 여자의 얼굴을 보아하니 예쁘장하게 생긴 지라, 가는 길도 좀 물어볼 겸 왠지 나도 모르게 말이라도 한 번쯤 걸어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 여자가 먼저 나에게 던진 한 마디 말은 완전히 나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말았다.

 “이봐요! 총각, 따스한 방이 있으니 몸 좀 녹이고 가요.”

 그러자 그 곳에서 약간 떨어진 도로 가에 서 있던 삐끼처럼 보이는 애도 다가오더니 역시 비슷한 말을 하는 것이었다.

 “이쁘고 끝내주는 아가씨 많이 있어요.”  

 ‘허! 이런. 필경 이들은 비참한 현실 속에서 살고 싶어 몸부림치는 자들일 것이다. 아니, 날 몸을 파는 여자들에게 데리고 갈 것이 틀림없어.’

 이렇게 여긴 나는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고, 그곳을 일단 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그들에게 동정이 가기도 했다. 그들도 사람인지라 살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지 서슴치 않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가련스럽게 보였기 때문이다.

 “난 갈 길이 바쁩니다. 여기서 가까운 곳에 제 집이 있거든요.”

 이렇게 소리치며 난 내 팔을 콱 붙들고 늘어지는 그녀를 떼어버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렇지만 그 여자는 찰거머리처럼 나에게 더욱 찰싹 달라붙어 기어이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이 여잔 오늘 밤에 손님이 한 명도 없었나보다. 그러니 낚시꾼이 모처럼만에 걸린 대어를 놓치려 하겠는가? 그 여자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총각, 조금만 더 있으면 통행금지인 거 몰라요? 재수 없으면 경찰한테 걸릴텐디.”

 나는 엉겁결에 시계를 봤다. 시각은 11시 반 정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거, 집에까지는 1시간 가까이 걸어가야 할 판인데 내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통행금지 위반으로 걸릴 것만 같다. 그렇다고 나에겐 이런 여자들을 따라가 여인숙에서 묵고 갈만한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 싸게 해드릴께. 오늘은 저기 가서 몸 좀 녹이고 내일 통행금지 끝날 시간에 가면 안 되겠어?”

 그러더니 그 여자는 내 팔을 더욱 힘주어 붙잡고선 무조건 끌고 가려는 것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팔을 위로 들어 올려 힘껏 잡은 손을 뿌리쳐버렸다. 왠지 가슴속이 떨려오고 무섭기까지 하다.

 그러는 동안 약간 떨어진 골목 앞에서는 소녀티가 물씬 풍기는 새파란 계집들이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손가락 끝으로 오라는 신호를 보내며 희쭉희쭉 웃어댄다.

 ‘저런 미친 것들. 너희들이 모두 다 창녀라는 걸 내 모를 줄 알고? 이거 잘못 걸렸다간 큰일난다고.’

 언젠가 이런데 간 일이 있었다는 중학교 동창 놈이 그 당시 의대생인 나에게 와서는 거시기에 옴 붙었다고 하면서 치료 좀 해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들은 이야기로는 이들에게 잘못 걸려 하룻밤 재미 본 댓가로 돈도 몽땅 날리고, 재수 없는 병(아랫도리에 연성하감이라는 진단이 붙었음)까지 옮았다는 말이 생각나 어떻게 해서라도 이곳을 빠져나오기로 결심했다.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는 그 여자 곁을 잽싸게 빠져 나오는데 까지는 성공했는데, 이번엔 웬 사오십 대 정도 되는 아주머니가 잽싸게 다가오더니 나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립스틱까지 짙게 바르고 온 몸에다 값 싼 향수를 들이부었는지 향기가 물씬 풍겨 오는데,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그 중년여자에게 가로막히는 사이에 아까 나에게 수작을 걸었던 젊은 여자가 쏜살같이 달려오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난 돈도 없는 처지였으므로 두 여자에게 말싸움이나 좀 붙여 볼까 작정하고서 그 여자에게 물었다.

 “아니, 이것 보세요. 왜 내 갈 길을 막는 거요? 난 지금 갈 길이 바쁜 사람이요.”

 “이런, 젊은 총각이구만. 날씨도 춥고 밤도 늦었으니께 나만 따라 와. 노곤노곤, 뜨뜻허게 해 줄텡게.”

 이 여자도 자길 따라 오라고 한다. 이러는 사이에 아까 만났던 젊은 여자가 언제 달려왔는지 내 옆에 서서는 나와 그 중년여자를 씩씩거리며 번갈아 가면서 훑어보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이맛살까지 찌뿌려대며 한 마디 날렸다.

 “아니, 이런 미친 여자 좀 봐. 왜 내 손님을 가로 채!”

 그러자 중년여자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

 “이 손님이 니꺼라고 얼굴에 써졌냐?”

 나는 나도 모르게 흥미를 느껴 그들에게 한 소리 했다.

 “이보세요! 내 얼굴에 뭐라고 쓰여 있어요?”

 그러자 젊은 여자가 내 말이 끝나기가 바쁘게 불쑥 나섰다.

 “그 … 그럼. 넌 내 거라고 얼굴에 써졌잖아. 아줌마 안 그래?”

 ‘얼씨구, 이런 계집애 말하는 것 좀 봐. 못하는 소리가 없네.’

 빙긋 웃으며 다가서는 그 젊은 여자를 보며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요런! 저놈의 가시내 말하는 것 좀 봐. 너 지금 죽을라고 환장했어.”

 중년여자가 그 옆에서 젊은 계집을 노려보며 소리를 빽 질렀다.

 “뭐, 뭣이라고? 당신이 뭔데 남의 일에 촉새같이 끼어들어 참견이에요? 이 총각은 내가 먼저 잡았잖아요. 오늘 재수 없을려니깐 별 꼴을 다보겠네.”

 “저 … 저런 우라질 년 좀 봐라이! 내 참!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파란 것이 뭐이라고?”

 ‘오냐, 잘 한다 잘해. 더 실컷 싸워봐라.’

 나는 그들에게 싸움을 벌리도록 해놓고는 그 곳을 살며시 빠져나가기로 했다. 그들은 그들의 밥줄인 밤손님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죽어라고 싸워댔다. 그 통에 그 일대의 창녀 같은 계집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싸움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들 사이로 난 살며시 빠져 나올 수 있었는데, 몇 걸음 못 가서 또다시 그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그럼 서로 타협적으로 하지요.”

 젊은 계집이 결론을 내린 듯이 한 수 뒤로 물러나는 것 같았다.

 “야! 넌 얼마 받을래?”

 중년여자가 다그쳤다.

 “이만 원만 받을 건데 사실 이건 봉사료도 안돼요.”

 젊은 여자가 볼 멘 소리로 말했다.

 “좋아! 그럼 난 만 오천 원만 받을께. 까짓 거 좀 손해 보지, 뭐.”

 그들은 나의 의사도 들어보지 않고 죽어라고 돈 이야기만 꺼내고 있었다.

 ‘아니, 내가 물건인가? 사주고 팔고 하게. 이거 원, 재수가 없으려니 별 일을 다 당하는구먼.’ 

 잠시 후 나는 그들에게 들으라는 듯 한마디 내뱉고 돌아섰다.

 “미안하지만 나에겐 땡전 한 푼도 없어요. 저리들 비켜요.”

 그들은 넋 나간 사람들 마냥 멀어져 가는 날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그 후 나는 손 기정씨 같은 마라톤 선수가 되어 내 집을 향하여 혼심을 다해 달려가야만 했다.

 ‘별스런 여자들 때문에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네, 정말.’

 통행금지 1분전에 겨우 집에 도착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고 있었다.


                             ...........
   
     우리 님들 잘 감상하셨나요?
         문학 작품으로 써본 것들이라서 너무 원색적인 표현이 많아 죄송...
      다음 글에는 조금 더 조심스럽게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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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은 야후 벗님과의 대화 

 고락산성 2008.10.02  18:04 

글 솜씨가 대단합니다.
읽다가 웃다가 갑니다.
어제는 새벽에 낚시를 출발하여
밤늦게 귀가해서 인사방문도 못 드렸습니다.
완연한 가을 날씨입니다.
오곡이 무르익은 이 계절에 산 정상에 올라보세요.
가슴이 트이고 건강이 몸을 지배 할 것입니다.
오늘도 편안한 밤 맞으시기 바랍니다.

 고란초 2008.10.02  20:46 

산성님, 저도 자주 찾아뵈었었는데,
항상 바쁘시더라구요.
저같이 미천한 블로그를 이렇게 찾아주셔서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울러 저의 졸작을 칭찬해주시는 분은
산성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산성님, 저도 간간이 등산을 하곤 합니다만,
아주 높은 산에는 많이 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럼 산성님,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 항상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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