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사냥꾼 제1편

2011. 2. 26. 12:34나의 문학작품

 우리 님들도 내 단짝을 찾아서 사냥하러 다니신 적이 있으세요?
고무신도 짝이 있고 젓가락도 짝이 있는데, 사람에게 짝이 없다면 말이 안 되겠죠.
그래서 바로 그 짝이란 사냥감을 찾아 다니는 사냥꾼이 되는 것입니다.
 고란초가 단짝을 잃어버려 외로운 사냥꾼이 되었던 젊은 시절로 돌아가 
그 당시에 썼던 글 하나를 여기에 소개합니다.
 글이 제법 길어서 읽기 힘드실 것 같아 1편과 2편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럼, 우리 님들 즐겁게 감상해보세요.



                                      


                                           - 고란초의 컴퓨터 마우스 그림집에 있는 '이별'입니다. -



                              

                                               외로운 사냥꾼

                                                       
                                                        (제1편)


                     





 너무도 사랑했던 여인과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헤어져 버린 지금, 나의 생활이란 자포자기 상태였고 세상 모든 여자들은 혐오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이제부턴 어찌해야만 하는가? 하루하루를 마지못해 사는 듯했고 나의 얼굴에선 웃음이란 글자를 찾을 길이 없었으니 말이다. 차라리 죽음과 함께 영원히 벗하고 싶을 뿐 ……

 이런 비참한 생활이 지속되고 있던 때는 내가 의과대학 졸업반이었을 무렵이었다. 비련에 잠겨
두문불출하면서 홀로 골방에 처박혀 하염없이 탄식만을 토해 대며, 방안 자욱이 담배 연기로 채워대고 있던 나는 뜻밖의 왕진을 부탁 받았다.

 나의 집 앞길 건너편에는 내 집안과 친분이 두터운 정씨 아저씨가 살고 있었다. 그 분은 내 집에 세 들어 산적도 있었지만, 그간 푼푼이 모은 돈으로 집을 한 채 장만하더니 잡화 가게를 열었다. 그 가게도 그런 대로 잘 되어 두어 칸 더 가게를 늘리더니 미용실까지 만들어 전세를 내주고  있었다. 그 아저씨에겐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 아이가 자주 병치레를 하였다. 그간 그 집엔 간병 차 간혹 들렀던 일이 있었고, 나와는 허물없는 사이로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엔 심상치 않은 듯 내 집에 아저씨 내외가 같이 와서 나에게 그분 아들의 치료를  부탁했다. 나 역시 갈 만한 처지가 못 되었지만 어찌나 간곡히 애걸해대는 통에 몇 가지 진찰 도구와 주사기, 주사약 등을 싸 들고 할 수없이 그분 뒤를 따라가야만 했다.

 가서보니 역시 큰 애가 아파서 드러누워 있었고, 고열 때문인지 헛소리까지 하고 있었다. 진찰 결과는 폐렴 같아 보였다. 우선 해열제와 항생제 주사제 등을 비롯해 몇 가지 약을 처방하여 약국에서 사오도록 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병원에 가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조언해주었다. 그렇지만 지난번 몇 번인가 나의 처치를 받아 효험봤던 것을 들먹거리며 가능하면 나더러 치료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것이었다.

 결국 난 그 분 아들의 주치의가 되고 말았다. 병세를 설명하고 치료가 끝나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갑자기 그 분은 방문을 열고 나갈려는 나의 바지 자락을 붙잡으며 못 가게 하는 것이 아닌가? 

 “어이! 그냥 가면 서운해서 어떻게 해? 가볍게 술 한 잔만 하고 가게. 맨 날 자네한테 신세만 지니 너무 염치가 없구먼.”

 “이게 무슨 신세입니까? 당연히 제가 해 드려야 할 것이고, 이런 일은 제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인데요, 뭘.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그러는 사이 아저씨는 가게 쪽을 향해 냅다 소리쳤다.

 “여보! 여기 맥주 시원한 걸로 몇 병 가져와! 안주 될 만한 것 몇 가지 하고…  빨리!”

 “전 술을 많이는 못 마시니 정 그러시다면 딱 한 잔만 하겠습니다.”

 졸지에 공술 한 잔 얻어먹게 생겼는데, 사실 난 이러고 싶진 않았다. 잠시 후 아주머니께서 맥주 3병과 안주 등을 가지고 들어오셨는데, 그 분 옆에는 아리따운 아가씨가 같이 서 있었다. 나의 시선은 그녀에게 잠시 머무르다 술상 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전혀 나의 안중에 없었고 그 아저씨 댁에 기거하고 있는 것조차 몰랐다. 아저씬 맥주를 따서 나에게 잔이 넘치게 부어 주었다.

 “어이! 들세. 우리 애가 빨리 낫도록… 부라보!”

 그 분은 나에게 술맛이 나도록 기분을 내고 계신 것 같았다. 서로 간에 두어 잔이 오고가며 지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는데, 그녀는 다소곳이 앉아 우리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듯했다. 갑자기 아저씨가 그녀를 향해 한 마디 하셨다.

 “옥순아! 너 이 분한테 인사드려라. 의과대학에 다니신단다. 내가 맨 날 신세를 지지.”

 그러자 그녀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꾸벅하며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인사를 했으면 네가 이 분한테 술 한 잔 따라줘야지. 그래야 술 한 잔 더 먹을 게 아니냐? 장래 의사가 될 분이니 잘해드려라.”

 이거 정말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남의 집에 와서 술 얻어먹는 것도 뭐 한데, 생판 모르는 여자에게 술까지 따르게 해서 마시게 되었으니 이렇게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잠시 내가 보기엔 그녀는 별로 세련되지 못 한 것만 같았고, 촌티가 물씬 풍기는 순진한 처녀 같았다.

 술병을 두 손으로 붙들고 나의 잔에 맥주를 따르는데 어찌나 그녀 두 손이 떨려대는지 맥주는  거의 안 나오고 거품만 따르는 것 같았고, 어찌나 조심해서 따라대는지 거의 한두 방울이 잔에  떨어질 정도였다. 술 한 잔 따르는 데 거짓말 약간 보태 10분 이상이 걸릴 지경이었다.

 나는 이때 그녀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또한 낯선 여자와 처음 만나서 만나자말자 술 따르게 한 것은 결코 본의가 아니었음을 명시해둔다. 결국 화제가 그녀에 관한 것으로 옮겨가 난 그녀의 신상에 대해 하나씩 하나씩 캐묻게 되었다.

 그녀는 장성군에 살고 있는 어느 빈농의 둘째 딸인데,가게 아주머니와 가까운 친척뻘이었다. 집안이 워낙 가난했던 터라 중학도 체 졸업하지 못하고 가사 일을 돌보다가, 뜻한 바 있어 아저씨네 미용실에서 미용 기술을 배우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또한 여기 온 지는 한 달 여가 됐다고 한다. 그녀는 키가 퍽 커보였는데 나보다 더 큰 것 같았고, 몸맵시도 그런 대로 멋있어 보였으며 얼굴도 남자깨나 따르게 생겼었다.

 어느덧 취기가 감돌자 난 내일 다시 올 것을 약속하고 그 집 방문을 나서야 했다. 아저씨 내외분과 그녀는 집밖으로까지 따라 나오며 나를 배웅해 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거울을 가져다 놓고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거기 비치는 건 수척하고 피로에 지친 듯한 나의 모습. 그러나 마신 술 때문인지, 그녀를 만난 덕분인지 모를 상기된 얼굴과 입가에 흐르는 남모를 미소가 내비치고 있었다.

 ‘이제는 나에게도 삶의 희망이 깃들기 시작하겠지.’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오늘의 일들을 되새겨 보았다.

 다음날도 치료차 그 집을 방문하였다. 아이의 병세는 크게 호전된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 애에게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의 말들을 해주며 몇 가지 처치를 하고 이번에는 그냥 나오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엔 옥순이라는 여자가 나의 앞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솜씨는 없지만 제가 끓인 차예요. 한 잔 들고 가세요.”

 생긋 웃는 그녀의 얼굴을 잠시 넋 나간 듯 바라보던 나는 찻잔을 두 손으로 건네받고는 정신없이 후루룩 마셔댔다.

 “아이쿠! 뜨거워라.”

 나도 모르게 입가에서 비명이 새어나왔다. 그녀에게 정신이 팔려 뜨거운 차를 단번에 마셨으니  입안이 건강치 못할 수밖에. 당황해하는 나의 모습이 우스운지 그녀는 입을 가리고 눈웃음을 지었다. 양 볼에 생긴 보조개가 더욱 그녀를 귀엽고 예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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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까지가 1편입니다. 조만간 2편을 올려드리겠습니다.
우리 님들, 사람 사냥에 성공할 것 같나요?
그럼 각자의 상상에 맡기기로 하고 2편에서 뵙겠습니다.
  우리 님들 오늘 하루도 즐겁게 지내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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