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 26. 12:35ㆍ나의 문학작품
우리 님들 고란초의 문학작품 중 외로운 사냥꾼 제2편입니다.
1편에서는 잘만 하면 사냥에 성공할 것 같았는데, 어찌되었을까요?
사냥 결과는 2편에 나와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제2편을 즐겁게 감상해보세요.
외로운 사냥꾼
(제2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나는 일과처럼 그 집을 들락거렸다.
1주 정도가 지난 날 저녁 무렵이었다. 그 동안 거의 매일같이 나에게 차를 대접하던 그녀와 작별해야 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서로가 말은 거의 나누지 못했지만 그녀 눈으로부터 풍겨오는 온정이 있어 나를 잠시 그 곳에 머뭇거리도록 만들었다. 다행히도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좋아져 거의 완치에 가깝게 치료되었다.
“애가 좋아지니 저도 기분이 좋군요.”
“정말 고맙네. 자네가 개업하면 우리 애를 맡아주게나.”
아저씨는 나의 치료에 고마움을 표시하며 기뻐하시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간 잘 대해주었던 그녀에게도 고마왔다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그러나 왜 이렇게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걸까? 그냥 헤어지기가 너무나도 서운한 것 같았다. 그래서 아저씨에게 잠시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하지만 이 말을 입 밖에 내기가 어찌 이다지도 어려운걸까? 그러나 난 용기를 내어 말했다.
“저… 한 가지 부탁 말씀을 드려도 될까요?”
방안에는 아저씨와 그녀만 있었고, 아주머니는 가게에 있는 듯 보이지 않았다.
“무슨 부탁인데 그러나? 어려워 말고 말해 보게나.”
“저… 저… 드릴 말씀은 다름이 아니옵고 옥순이와 같이 가까운 곳에 가서 바람이나 좀 쐬고 왔으면 하는 데 … ”
난 이마에 진땀이 났지만 겨우 더듬거리며 말을 마쳤다. 그 분은 의아스러운 표정을 짓는 듯했고, 그녀는 당황해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아저씨께선 잠시 머뭇거리더니 흔쾌히 허락을 하시는 것이었다.
“자네라면 괜찮네. 걱정 말고 다녀오게.”
그 분이 나를 믿었는지 어떤지 잘 모르지만 당연히 해도 될 것으로 여기는 듯했다. 나는 다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녀와 같이 집밖으로 나섰는데, 나를 따라오리라고 생각도 못 했지만 흔쾌히 따라나서는 그녀에게 순간 무한한 고마움을 느꼈다. 낮도 아닌 밤중에, 그것도 다 큰 처녀와 총각이 함께 밖으로 나갔다면 필시 뭔가가 벌어질 것만 같기도 하겠지만 서로에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이 말만은 믿어도 되리라. 그녀는 허름한 평상시의 옷차림에 운동화를 신었지만 나와 키가 엇비슷했다.
“옥순이, 키가 꽤나 크군 그래.”
내 말에 그녀는 억지로 키를 낮춰 보이려는 듯 무릎을 구부리고 걸었다.
“내 말에 너무 신경 쓸 것 없어. 난 그냥 같이 걸어 보고만 싶었을 뿐이니까.”
서로는 2~3m 정도 간격을 두고 남남처럼 말없이 광주천변에 길게 나 있는 제방을 따라 한없이 걸었다.
이따금씩 검은 하늘에는 유성이 긴 꼬리를 반짝이며 지평선을 향해 떨어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얼마나 걸었을까? 그녀도 말없이 나를 따라왔는데 너무도 수줍음이 많은 듯 고개를 푹 숙인 체 걸었다.
어느덧 커다란 수양 버드나무가 줄줄이 늘어서 있는 낯선 곳에 도착했다. 나는 잠시 버드나무 아래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나무에 기대어 선 체 먼 하늘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는 나의 행동이 이상하게 보였으리라. 남들처럼 재미있는 대화라도 나누며 즐거운 데이트가 되었어야 할 텐데, 풀이 죽어있는 듯 쓸쓸한 산보가 되고 말았으니 이건 또 무슨 이해 못할 짓인지 아무도 모르리라. 나 역시 왜 그녀와 같이 야간에 인적도 없는 이런 곳에 왔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다만 가 버린 나의 사랑 때문에 너무도 마음이 울적하고 허전했을 뿐…
“옥순이, 내 꼴이 우습지?”
그녀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도 몰라했고, 내 말이 이상한 듯 동그란 두 눈을 놀랜 토끼처럼 크게 치껴뜨고는 멀뚱멀뚱 날 쳐다보고 있었다.
“옥순이, 올해 몇 살이지?”
“저 말예요. 이제 몇 달만 있으면 스무 살이 되어요.”
“그래? 그럼 누군가를 사귀어 본 적이 있었을까?”
“아니에요. 전 남자라면 옆에도 잘 못 가거든요.”
“그럼 남자를 싫어하는 것은 아닌지… ?”
“…… ”
그녀는 수줍은 듯 고개를 떨구었고 말을 잇지를 못했다.
“나에겐 슬픈 추억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미 잊혀져 버린 일이 되고 말았어. 굳이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나의 마음속엔 떠나 버린 여자에 대한 증오감이 서서히 이는 것을 느꼈지만 애써 참아가며 하고 싶지 않은 이런 말들을 늘어놓았다. 그녀가 내 말을 듣고 있는지 어떤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그녀에게 뭔가를 바라는 듯한 나의 애절한 소망이 표출될 듯 말듯 하면서 입가만을 맴돌았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이렇게도 어려운 것인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어. 옥순이도 사람을 사귀게 되면 아마 느껴 볼 수 있을 거야.”
나는 독백하듯 비탄에 싸인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향해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옥순이도 남자를 한번 사귀어 보고 싶지 않아? 어떤 남자가 좋을까?”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는 듯 잠시 빈 하늘만을 주시하는 것 같더니 날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속삭이듯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전 선생님을 잘 몰랐어요. 하지만 제 집에 오셨을 때 제가 느꼈던 것은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 참 좋으신 분 같았어요. 선생님같이 자상하고 친절하신 분 같은 남자라면…… ”
얼굴을 붉히며 말하는 그녀의 말속엔 은근히 날 바라는 듯한 염원이 깃들인 것만 같았다.
“그래? 내가 그런 남자로 느껴진다고…? 그렇지만 난 그렇지는 못한 것 같은데… ”
나는 솔직히 말해 그녀에게 마음의 부담을 안겨주고 싶지가 않았다. 단지 청순한 그녀의 갖피어나고 있는 꽃봉오리 같은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꼈다. 이곳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을 수는 없어 난 다시 집을 향해 무거운 발길을 돌렸다.
가까운 곳에서는 이따금씩 애절하게 임을 찾고 있는 듯한 풀벌레 우는 소리만이 내 귀를 울리고 있었다.
‘옥순이! 나의 찢어질 듯 아픈 가슴을 너의 따뜻한 손으로 어루만져 줄 수만 있다면… 아니, 넌 분명히 그렇게 해줄 수도 있으리라.’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제방을 따라 되돌아오고 있었다. 그녀에게 하고픈 말이 많았지만 지금은 할 수가 없었고, 그걸 참아야만 하는 나의 가슴은 더욱 찢어질 듯 아파왔다. 그냥 아무 말 없이 그녀 옆에서 걷고만 싶었고, 한없이 이 세상 어디까지라도 가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녀의 집 근처까지 어깨가 축 늘어져 걸어왔을 때였다. 갑자기 나의 앞에는 가겟집 아주머니가 버티고 서서 날 노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매가 쥐를 낚아채듯 그녀의 팔을 잡아당기며 나에게 들으라는 듯이 한 소리 내뱉었다.
“옥순아! 너 어디 갔다 이제 오는 거야? 도대체 너, 정말 정신이 있어, 없어! 나한테 말도 않고 어딜 그렇게 싸돌아 다녀! 그리고 자네! 이 앤 자네한텐 안 어울리네. 이 앤 아무 것도 모르는 쑥맥이라고… ”
씩씩거리며 꾸중하시는 그 분께 나와 그녀는 찍소리 한번 못하고 죽을 죄를 지은 사람 모양 고개를 직각으로 숙여야만 했다.
“알고계신 줄 알았는데… 정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쥐구멍 속이라도 파고 들어갈 정도로 수치감을 느꼈고 무색하기도 하고 무안스럽기도 하여 얼굴이 화끈거렸으나 컴컴한 밤중이어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녀에게 품었던 모든 생각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질 판이었다. 그러나 나의 마음 한 구석에는 나의 죽음과도 같은 삶에 한 오라기의 실낱같은 희망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로부터 이틀 후 난 더욱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고서 미용실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당연히 그 곳에 있어야 할 그녀의 모습은 어느 순간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남에게 물어 볼 수도 없고 속으로만 끙끙 앓으며 그녀의 행방을 나 나름대로 추측해 봐야만 했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그녀의 모습은 내 눈에 띄지 않는 것이었다.
‘무슨 일일까? 그녀가 어디로 떠난 것일까? 혹시 내가 싫어서 가버린 것일까?’
아니었다. 나와 만난 이후 그녀는 가게 아주머니에게 호된 꾸지람을 듣고서 장성에 있는 그녀의 집으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아! 후회스럽다.'
그녀를 만나지 말았어야만 했는데 모든 것은 나 때문에 그르쳐 버린 것만 같다. 그냥 놔두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그런데 나중에 안 것이지만 나보다 내 집 식당에서 일하는 주방장이 그녀를 그 전부터 더 좋아했던 것 같았다. 그들 서로 간에는 직접 만나지는 않았지만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이는 장소에서 상당 기간 동안 일하고 있었으므로 서로 자주 눈길을 주고받았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도 역시 그녀에게 용기를 내어 좋아한다는 말을 해보지 못했다고 했다.
결국 나나 주방장 두 사람 모두 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지금 나는 외롭기 만한 사냥꾼. 그러나 언젠가는 멋진 사냥감이 기다리고 있으리니. 이젠 희망을 저버리지 말고 살자. 웃으면서 살아야지. 그래 웃자. 눈물이 나오도록 웃자, 으하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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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님들 잘 감상하셨나요?
결론은 사냥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사냥꾼이 거의 사냥감을 잡을 뻔했는데 워낙 소심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사냥감이 재빨리 몸을 숨겨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이 여잔 그 후로 다른 사냥꾼에게 잡혀서 지금껏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럼, 우리 님들도 저보다 더 열심히 사냥을 하셔서 꼭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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