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월산의 추억 제1편

2011. 2. 26. 13:09나의 문학작품

 우리 님들, 고란초가 지난 날 단체 미팅을 하여
만난 사람들과 추월산 산행을 하면서 한 여자를 알게 되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나 혼자만의 사랑으로 끝나버리게 됩니다만...
제목을 '추월산의 추억'이라고 해봤는데, 추월산은 전남 담양에 있는 아름다운 산입니다.
사실상 이 글은 오래 전에 써두었는데, 너무나 길고 버리긴 아까와 총 7편에 걸쳐서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우리 님들 즐겁게 감상하도록 하세요.



                        

 

                         -  고란초의 컴퓨터 마우스 그림집에 있는 '추억의 추월산'입니다.-






 

                       추월산의 추억


                                  (제1편)
        



                              첫 미팅


                                  1


 내가 처음으로 진실로 난생 처음 여성을 사귀어보려고 시도했던 때가 의과대학 본과 2학년 때였었고, 간호대를 다니는 한 여성을 만나긴 했었지만 이루어질 듯 하면서도 이루어지지 않는 여성과의 인연은 나로 하여금 견디기 힘든 고독 속을 헤매게 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래서 그것을 탈피하기 위한 나만의 몸부림이 시작된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미팅(meeting)이라는 남녀 대학생들 간의 자유로운 만남 덕분에 다시금 다른 여성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약간 알게 된 여자가 신 정숙이라는 여자였다.   

 첫 미팅에서 그녀들과 처음으로 만나던 날, 난 나도 모를 걷잡을 수 없는 흥분과 기대와 희망에 들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최초로 시도해 보는 이성과의 미팅, 이건 나에게 있어 미지의 이성에 대한 탐구의 첫발이 되었고 나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내가 만난 여자들은 서로의 마음과 마음으로 뭉쳐진 여고 동창생인 5총사, 그들의 표현에 의하면 한 마디로 말해 일심오체(一心五體)라고 했다.

  HS 다방.

 그녀들과 만날 약속을 했던 그 다방에 정시에 도착하여 보니 이미 우리 쪽 일행들이 일부 나와 서로 담소를 즐기고 있었다. 잠시 후 여성들이 단체로 입장하여 서로 마주보며 자리에 앉게 되었다.

 다방 한 귀퉁이를 차지한 체 서로는 처음 보는 미지의 얼굴들을 번갈아가면서 쳐다보며, 각자가 자기 나름대로 비장의 무기들을 드러내 보일 것만 같은 진지한 표정들을 하고 있는 듯했다.

 '첫 인상이 중요한데 어떻게 대해야만 잘한다는 말을 듣지? 이거 참, 여자들과 깊게 사귀어본 경험이 지금까지 모조리 합쳐도 단한 번도 없으니 죽을 맛이군 그래.'

 그녀들에게 나의 첫 인상을 어떻게 심어주어야 할지 나도 잘 모르겠다.

 '점수를 왕창 따서 날 졸졸 따라 다니도록 해야 할 텐데… 누가 이 소리 들으면 주제 파악 좀 해라든가, 냉수 마시고 속 좀 차리라고 안 할는지 모르지만 말씀이야.'

 이것저것 생각하며 속으로 중얼거리는 사이에 그녀들의 소개가 시작되었다. 맨 우측에 앉아있던 팀의 리더 격인 듯한 예쁘장한 여자가 자리에서 불쑥 일어나더니, 입가에 이상야릇한 미소를 머금은 체 자기소개를 했다.

 “한 경희라고 해요.”

 그녀는 나의 바로 앞쪽에 앉아 있었는데, 퍽이나 상냥해 보이기도 하고 똑똑해 보였다.

 “전 서 보미에요.”

 그녀에겐 마땅한 파트너가 없는 듯 했으나 차분히 가라앉은 어투로 말했다. 사실상 오늘 모든 인원이 짝을 맞춰야했지만 우리 측이 난데없이 두 사람씩이나 불참하는 바람에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까짓것 골라잡아 파트너를 하면 되지. 그것도 뭐하면 두 여자를 끼고 미팅을 할 수 있다면 더욱 좋고.’

 난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다소 흐뭇함을 느꼈으나 아직은 단정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김 덕순이라고 합니다. 만나 뵈어 반갑습니다.”

 그녀는 내 친구의 앞좌석에 다소곳이 앉아서 자기소개를 했다. 그러자 그 옆에 앉아있던 다른 여자가 날 힐끔 쳐다보는 듯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 정숙이에요. C대 문리대에 재학 중입니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또 다른 여자도 곧이어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저는 이 봉자라고 해요.”

 이젠 우리 측의 소개를 해야 할 차례인데 인원 부족이니 우선 구구한 변명부터 늘어놔야만 했다.

 “저런 속없는 친구들 봤나? 이런 중요한 순간에 약속들을 안 지키다니… 아무튼 죄송하게 됐습니다.”

 오늘의 미팅을 주선했던 친구 김 대우가 남자 측을 대신해 사과드린 후 우리들을 단체로 소개했다. 그녀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불만스러운지 입들이 합동으로 병마개 모양 뾰쪽뾰쪽 내밀고 앉아 있었다.

 ‘이런 젠장맞을! 이게 내 탓인가? 속없는 친구들 때문에 우리 스타일을 완전히 구겨버렸구먼. 오늘도 텄네, 터부렀다고.’

 결국 멤버가 맞지 않아 파트너 결정을 하지도 못한 체 앉아서 이것저것 쓸데없는 질문들만 해대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들에게 품었던 나의 부푼 기대가 일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속이 텅 빈 놈이지. 첫 숟갈에 배부를 수 없다는 걸 모르다니.’

 난 속으로 중얼거리며 내 앞에 앉아있는 여자를 향해 한 마디 내던졌다.

 “미팅이 처음이신가요?”

 “네? 미팅이요? 그런 것 같아요.”

 ‘그런 것 같다니? 그럼 혹시 밥 먹듯이 미팅을 즐기는 것은 아냐, 이거?’

 난 다소 의아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또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럼 모두가 같은 학교에 계신가요?”

 “학교는 같은데 과가 달라요. 전 지금 C대 문리대 생물과에 있고, 덕순이와 정숙인 사학과, 봉자는 화학과, 보미는 영문과에 있어요. 우린요, 모두 K여고 동창에다 절친하기로 소문난 친구들이에요.”

 ‘쳇! 자기들만 소문난 친군가? 우리로 말할 것 같으면 지금은 한 번쯤 꼬셔보려고 아가씨들만을 노리고 앉아있는 소문난 건달들 같지만, 그래도 국제 신사에 속한다고 자타가 공인해주며 우리들도 자부하고 있는 의대생들이란 말씀이야. 그렇게 안보여?’

 난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우리의 소개를 추가했다.

 “우리는 모두 C의대 본과 2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그런데 전 거의 여자들과 이야기 해본 적이 없어 실수를 많이 하더라도 이해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다소 말이 통한 것 같은데 나의 마음먹은 대로 뭔가가 이뤄졌어야 했건만 도대체가 엉뚱한 이야기들만 오갔지, 제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는 듯했다.

 빨간 조명등 아래 내비치는 진지하고도 정열적인 얼굴과 얼굴들. 그들의 눈초리는 뭔가를 바라는 듯 번득거렸지만 그들의 소망이 물거품처럼 되고 만 듯 실망의 빛이 역력했다. 나 역시 심중에 감춰 둔 하고픈 이야기가 오히려 꺼내기도 쑥스럽게 여겨질 판이었으니 오늘 분위기는 한 말로 말해 망쳤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결국 그녀들과 한번 만나 봤다는데 만족을 해야 했다. 아쉬움을 간직한 채 서로 헤어졌는데 왜 이리 내 마음이 허전하고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건 처음 만난 이성에 대해 너무나도 기대감이 컸던 데다 희망사항이 물거품이 되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대우로부터 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어이, 나네. 대우네. 오늘 시간 있지? 오후 3시까지 카프리 제과점으로 나오게. 좋은 일이 있을 거니까. 알았는가?”

 그러더니 그는 뭐가 그리도 바쁜지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를 뚝 끊어 버렸다.

 ‘도대체가 뭐가 좋다는 건지 이거 궁금해서 미치겠구먼. 실없는 친구는 아니니깐 한 번 속는 셈치고 나가 볼까?’

 나는 정시에 그 제과점으로 나갔는데 그만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아니 이게 뭐야? 이런 일을 벌이려면 미리 귀띔을 좀 해주지 않고서…’

 난데없는 두 번째 미팅을 그녀들과 하게 된 것이다. 졸지에 이런 행운을, 정말이지 꿈도 안 꾼 미팅을 또 하게 될 줄이야.

 ‘이얏호! 이번엔 꼭 뭔가를 보여줘야지. 아니, 틀림없이 뭔가가 이뤄질 거니까 두고 보라고.’

 난 다소 마음이 설레기도 하고 기분이 째지게 좋았지만 그런 내색을 참느라고 무진 애를 써야만 했다. 그리고 침착하게 언행을 해야만 되리라고 굳게 다짐해보기도 했었다. 그 친구가 개별적으로 연락들을 했는지 이번엔 우리 측에 지난번 약속을 어긴 친구들을 빼고 다른 두 사람을 추가해 5명이나 나왔다.

 ‘그런데 여자들은 몇 사람 보이지 않는데 이게 어찌된 거야? 지난번과는 정반대가 되는 거 아냐, 이거? 만약 그렇게 된다면 또 낭패가 아닌가?’

 이것저것 걱정하며 혼자 중얼거리는 사이에 그녀들이 재잘거리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경희란 여자가 나서서 한마디 했다.

 “약간 늦을 것 같아요. 모두 온다고 했으니까 아무 걱정 마시고 우리 앉아서 이야기나 좀 하고 있죠.”

 “그러십시다. 모처럼 만났는데 그냥 갈 수는 없죠.”

 우리 일행 중 한 친구가 불쑥 나서더니 맞장구를 쳤다. 그리하여 남성 쪽은 일렬로 주욱 늘어앉았고, 여성 측은 이 빠지듯이 한 자리씩 건너뛰어 앉았다. 그런데 나의 앞에는 봉자라는 여자가 앉았는데 차라리 그 옆에 있는 경희라는 여자가 더 내 눈을 끌었다.

 ‘지난번에는 내 앞에 앉더니만 왜 자리바꿈을 했는지 잘 모르겠구먼. 저 여자가 매력이 더 있어 보이는데 하필이면 제일 말없고 인물도 별로인 여자가 내 앞에 앉을 게 뭐야? 오늘도 재수 옴 붙는 것은 아니겠지?’

 이렇게 속으로 투덜거리는 사이에 두 여자가 바쁘게 달려왔는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빈 좌석으로 가서 앉는 것이었다.

 ‘오메, 이거 진짜 앉은 대로 파트너 결정을 해버리는 것은 아니겠지?’

 난 다소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새로 파트너를 결정해주길 고대하고 있었다. 친구 대우는 우리 측의 새로운 멤버를 소개하고 나더니 그 자리에 앉아 앞에 앉은 여자와 말을 주고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난 기분이 별로여서 그에게 귓속말로 나지막이 물었다.

 “어이! 대우, 제비뽑기 안할 건가?”

 그는 나의 물음에 별 관심이 없는 듯 그냥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나 하다가 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는 것이었다.

 ‘내 이럴 줄 알았다고. 에이! 김 빠져! 앙꼬도 없는 찐빵하고 무슨 낙으로 이야길 나누라는 건지, 원…’

 난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내 앞에 앉아있는 여자에게 실례가 될까하여 애써 웃는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하지만 내 속은 남이 실례한 우량한 대변덩이를 두 발로 콱 밟아버린 것만 같았고, 나의 표정은 맛있는 과일 속에 든 벌레를 모르고 씹었다가 나중에 안 것만 같았다.

......................
 우리 님들 잘 감상하셨나요?
 계속해서 제 2편을 올려드리겠습니다.
 끝까지 읽어보시면 한 편의 연애소설 느낌이 들 겁니다.
 그럼, 우리 님들 오늘 하루도 즐겁게 지내세요.

 

 

...............................

 

 (이 글을 읽으신 야후 벗님과의 대화)

 

 

 고락산성 2008.10.29  18:16
 
어린시절 이야기를 잘 꾸며가고 있군요.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냅니다.
두번째 미팅도 물거품이 되나 봅니다.
 고란초 2008.10.30  13:30
 
산성님, 오래 전에 써두었던 글이라서 썩 재미있지는 않을 것인데도
즐겁게 감상하고 계시군요.
제가 문학가가 아니어서 잘 못 썼더라도 이해해주십시오.
산성님, 다른 블로그들 모두 방문하려면 시간이 없으실텐데,
여기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시다니 정말이지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산성님, 저는 님께서 즐거워 할 수만 있다면 하는 바램 뿐입니다.
그럼, 오늘도 편안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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