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 26. 13:13ㆍ나의 문학작품
우리 님들, 전남 담양에 있는 추월산을 가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이 산은 전남에 있는 명산 중의 하나로 가을 단풍이 곱기로 유명하며,
산세가 가파르고 기암괴석이 많아 등산객의 발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3편은 광주를 출발하여 이 산을 등반하기까지의 과정입니다.
그럼 우리 님들 즐겁게 감상하세요.
추월산의 추억
(제3편)
추월산 등반
1
1972년 10월 어느 날 토요일.
오늘은 그간의 결실을 맺는 중요한 날이다. 그동안 불철주야 뛰어다니며 계획했던 바로 추월산 등반이 있는 날인 것이다.
제법 쾌청한 날씨다. 이따금씩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나의 얼굴을 간질이며 지나간다. 저절로 휘파람이 나오고 발걸음도 구름 위를 걷는 듯 가볍게만 느껴진다. 나는 낚시 복으로 즐겨 입던 옷을 주워 입고, 등산화에다 스타킹까지 신고서 어깨 너머로 기타까지 들춰 맨 체 집을 나섰다.
‘오늘 정말 멋진 추억을 남겨야지. 이런 기회가 두 번 다신 오지 않을 것이니까 말씀이야.’
난 속으로 중얼거리며 이른 새벽부터 문을 박차고 뛰어 나가니 집안 모든 사람들이 놀란 토끼처럼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날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저 놈이 학교에 가라면 맨 날 늦잠 자 지각을 밥 먹듯이 하더니만 오늘은 무슨 날인가? 아무래도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은 아냐?’
부모님께선 이렇게 생각되었는지 다소 걱정되는 표정을 지으시며 묻는 것이었다.
“너 어디 가는 거야, 아침부터…?”
“산에 갑니다. 친구들하고 같이 갈 거예요.”
‘산? 저 놈이 산하고는 담을 쌓은 것 같은데, 웬일로 산을 다 가지? 혹시 낚시나 간다면 몰라도.’
사실은 오늘 형님들과 부친께서 같이 낚시를 가기로 했던 것 같은데, 그 좋아하는 낚시를 헌 신짝 내팽개치듯 하고는 전혀 취미와 적성이 맞지 않는 산으로 줄행랑을 놓고 있는 나도 역시 한심하기 짝이 없는 놈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 느낌도 잠시였고, 다소 서운해 하시는 부친께 잘 다녀오겠다는 말만을 남긴 체 훌쩍 집을 떠났다.
‘기분이 왜 이리 띵호와냐? 이런 기분은 난생 처음 느껴보는 것 같은데 … 히히!’
난 마치 개선장군이나 되는 것처럼 보무도 당당히 약속장소를 향하여 전진해갔다.
시민관 앞, 오전 8시.
그녀들과의 약속장소에 약속시간 1분도 어기지 않고 정확히 도착했다. 그 곳엔 이미 친구 대우와 성우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손을 흔들며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이 친구들 좀 봐. 나보다도 더 빠르잖아. 되게 여자들한테 점수 따려고 노력하네.’
“어이! 대운가? 자네가 웬일로 이렇게 빨리 왔는가?”
나는 그에게 다가가며 의아스러운 눈초리를 보내면서 소리쳤다.
“자넨 어떻고? 오늘 아침 해가 어느 쪽에서 뜨던가? 사돈이 남 말께나 하고 앉아있네. 그러나저러나 이놈의 여자들은 도대체 한 사람도 눈에 띄지 않으니 우리 단체로 바람맞는 것은 아닌지 모르겄어.”
그에게 오히려 한 방 얻어맞은 꼴이 되어 난 쥐구멍을 찾아야만 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파트너가 되어 줄 오늘의 주인공들이 단체로 안 보이니 다소 걱정되기도 했다.
“자네 혹시 장소나 시간 약속을 잘못한 것은 아닌가?”
그는 나에게 추궁하듯 한 마디 하는 것이었다.
“이 사람이! 날 뭐로 아는 거야? 내가 그리 어수룩한 사람으로 보이는가?”
“그래, 그렇다면 내 할 말이 없고… 그런데 자네 폼이 그럴싸하네.”
그는 나의 위아래를 죽 훑어보더니 한 마디 내던졌다.
“자넨 그렇게 정장을 하고 산에 올라갈 수 있을는지 심히 걱정되네.”
난 친구 대우의 옷차림에 신경이 쓰였으나 그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만 같았다.
친구들과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웬 택시 하나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더니 멈추었다. 차에 탄 손님들의 차림새로 봐서 등산 가는 여자들 같았고, 우리 일행인 것처럼 보였다. 난 제일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며 손까지 흔들어댔다.
‘아뿔싸! 이게 어찌된 거야? 이건 다른 여자들이잖아. 어쩐지 아는 체도 않더라니.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차에서 내린 그 여자들은 날 아니꼬운 눈초리로 흘기듯 쏘아보더니 내 옆으로 휭하니 지나가는 것이었다. 순간 난 여우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었고, 속이 떨떠름해지는 것이었다.
“허허허! 아무나 아는 체 하다간 봉변당하네. 너무 설치지 말고 죽치고 앉아있는 것이 더 나을 거야.”
남의 속도 모르고 친구 녀석이 들으라는 듯 한 마디 해댔다.
‘오늘따라 무슨 놈의 일이 이렇게도 꼬인다냐? 이거 또 잘못되는 것은 아니겠지?’
바로 그 때였다. 길 맞은편에서 덕순이라는 여자가 우릴 부르며 이쪽으로 건너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표정 또한 초조한 빛이 감돌고 있는 것 같았다.
“안녕하셨어요? 빨리 나오셨군요.”
그녀는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꾸벅 인사를 했다.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 그런데 왜 혼자만 오십니까? 다른 분들은 아직 못 뵌 것 같은데…”
“음!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제가 한번 찾아볼게요.”
그녀는 또다시 종종걸음으로 어디론지 사라져버렸다.
‘지금 남 걱정할 땐가? 우리도 아직 다 안 왔잖아. 서로 피장파장이지만.’
나는 우리 멤버 중 아직 안 나타난 친구들에게 연락하기에 바빴다.
“어이! 태수 못 봤는가? 그 친구가 안 올 리가 없을 텐데…”
그런데 또 이건 어찌된 일인가? 친구 대우가 날 조용히 부르더니 할 말이 있다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가?”
나는 다소 의아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내 정말 자네한테 미안한 일이 생겼네. 오늘 난 등산을 갈 수가 없어. 중요한 일이 생겨서 말이네. 실은 오늘 다른 여자와 꼭 만나야 할 약속이 있거든.”
‘아니! 이런 속이 텅 빈 친구 좀 보소. 오늘 계획을 망치려고 작정했나? 전쟁터엔 쫄따구들만 내보내고 자기는 상관이라고 뒤에 앉아 계집질이나 하겠다, 이거지?’
난 뱃속이 또다시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를 노려보며 한 마디 내뱉었다.
“자네 그거 말이라고 하는가? 우린 어떡하라고 자네만 쏙 빠지고 앉았는가? 그렇게 해버리면 우린 어미닭 잃은 병아리 같은 신세들 아닌가? 자네가 우리 팀의 리더니 리더답게 우리 입장도 좀 생각해줘야지, 이거 원.”
‘어째 아까부터 자네 폼이 수상쩍다고 했어. 전쟁터에 총도 안 가지고 가는 녀석 같더라고. 산에 올라갈 사람이 구두에 가다마이까지 걸치고 나올 때부터 알아봤다고.’
난 그에게 이렇게 대들고 싶었지만 참아야만 했다.
“내 대신에 명구한테 연락해뒀고 같이 가도록했으니 너무 서운해 하지 말소.”
“에끼, 이 사람! 내 정말 자네한테 실망했어. 자네가 오늘 리더를 잘해야 좋은 결과를 기대할 것 같았는데 우린 이제 오합지졸이 될 수밖에 없을 것만 같네. 자네 혼자 잘 먹고 잘 살게.”
그와 난 서로 잡아먹을 듯이 다투었지만 결국 그는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다행히도 명구가 곧바로 달려왔고, 태수도 9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나타났다. 그녀들도 서로 연락들을 부산나게 하는 것 같았는데, 막상 다 모이니 보미란 여자가 빠진 4명이었다.
‘차라리 잘 되었어. 짝이 안 맞았다면 서로 곤란할 텐데 말씀이야.’
난 이렇게 중얼거리며 친구들과 같이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광주 시외버스터미널, 오전 9시 30분.
여자들은 이미 시외버스에 몸을 싣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차표를 끊어 하나씩 친구들에게 나눠주고서 맨 꼴찌로 차에 올라탔다. 그 덕분에 맨 뒷좌석에 겨우 몸을 비집고 들어가 꼽사리 끼어 앉아 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이런 버르장머리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친구들 같으니라고. 도대체가 양보정신이라곤 찾아볼 수 없으니, 저런 녀석들도 내 친구라고 원…’
난 투덜거리며 죽치고 앉아 그들을 보니 나도 모르게 배가 뒤틀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순간에 여자 옆에 한 사람씩 사이좋게 붙어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 한 여자만 다른 사람과 앉았는데, 옆에 앉은 사람이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여서 다행스러웠다.
‘아니? 할아버지라고 안심을 할 수는 없지. 모 재벌의 모 회장은 일흔도 넘었는데 아직도 아침이면 거시기가 너무나 팔팔해 주체를 못 한다고 하지 않던가? 저 노인은 그렇진 않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한참을 가는데 벌써 차창 밖으로 시골 풍경이 나타나고 있었다. 난 눈을 돌려 밖에 펼쳐진 정경에 시선을 모았다.
포플러 나무가 주욱 늘어선 가로수를 건너면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는 논들이 보이고 들녘에 나와 벼를 탈곡하는 농부들의 모습도 보인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화면이 밀려나고 새로운 정경이 다가오는 것이다.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초가집, 탱자나무 울타리,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들, 멀리 빨갛게 익어가는 감나무 열매들도 나타났다 사라져 간다. 이것들을 시간 가는 줄도 모른 체 한동안 지켜보고 있다간 다시금 정신을 가다듬었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남들은 저렇게 재미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나만 미운 오리 새끼가 될 수는 없는 거 아냐?’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그들이 앉아있는 좌석 쪽으로 옮겨갔다. 나의 한 손엔 기타를 들고 한 손으로는 고정된 손잡이를 붙잡은 체 여자들 근처까지 갔을 때였다.
“어떠세요? 여행이 즐거우신가요?”
남의 즐거운 여행을 방해할 생각은 없었지만 자기들만 재미 보게 할 수는 없었고, 나도 한축 끼고 싶어 이렇게 물었다. 그랬더니 이게 웬일이야?
‘즐겁다니? 이 남잔 재미라곤 하나도 없는데 남의 불난 집 부채질하듯 무슨 그런 소릴 하고 있는 거야? 진작 좀 와주지, 그랬어?’
그녀가 이처럼 여겼는지 모르지만 쌍수를 들고 날 환영하는 것이었다.
“그간 어디 계셨어요? 같이 이야기라도 하면서 가고 싶었는데…”
‘날 무시하면 다 이렇게 되는 거야. 으흠! 오늘 이 날을 위해 그간 나 혼자 생고생한 걸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구만, 그래. 네 녀석들이 여자들을 다 차지하려고. 웃기는 소리 하덜덜 말어. 털도 안 뜯고 닭 먹는 놈은 채 한다는 것도 알아야지, 안 그래?’
난 목에다 뻣뻣할 정도로 힘을 주며 친구들에게 눈웃음을 던졌다.
“저… 혹시 기타는 누구 거에요?”
정숙이란 여자가 내가 쥐고 있는 기타를 보더니 빙긋이 웃으며 말을 걸었다.
“아! 예, 누굴까요? 한번 맞춰보세요.”
그녀는 그러잖아도 큰 눈을 더욱 크게 치켜뜨면서 날 멀뚱멀뚱 쳐다보더니 대답을 했다.
“그럼, 바로 댁이세요?”
“와! 어떻게 이렇게 단번에 맞춰버릴 수가… ? 놀랐는데요.”
그녀도 기분이 좋은지 빙그레 웃으며 계속 질문을 해대는 것이었다.
“기탄 얼마나 치셨나요?”
“한 5~6년쯤 되었지만 아직은 서툴러요. 지금도 뽕짝 같은 것밖에 잘 못해요. 클래식은 너무나 어려운 것 같던데요. 혹시 음악 좋아하세요?”
“저요? 전 음악 없인 못 살 정도라면 좀 지나친 표현이겠죠?”
“그러세요? 어쩌면 이렇게 나와 비슷한지. 저는 감상은 하도 많이 들어 별로이고, 직접 연주하는 걸 더 좋아하는데…”
그녀는 그 옆에 앉아있는 나의 친구에겐 관심이 없는 듯 계속 나에게만 질문했다.
“와! 대단하시네요. 무슨 악기를 연주하시는데요?”
“으흠! 기타 같은 것은 축에도 못 끼는 건데… 바로 바이올린이란 겁니다.”
나의 대답에 그녀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그러더니 자연스럽게 탄성이 입가로 새어나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햐! 그 어려운 악기를… 정말 못하시는 게 없나 봐요. 지난번에 글도 쓴다고 했고, 그림도 그린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맞죠?”
“뭐, 대단할 것까진 없고 그냥 제가 좋아서 해보고 있는 것들일 뿐이에요.”
그녀와 나의 대화를 아까부터 마지못해 듣고 있던 친구 태수 녀석이 속이 뒤틀렸는지 날 아니꼬운 눈초리로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저 놈이 웃기는 놈이네. 어디까지 쪼르르 기어와서는 남의 여잘 가로채 즐기고 있는 거야? 기분 나쁘게.’
그 친구가 이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지만 나를 향해 들으라는 듯 한 소리 내뱉었다.
“어이! 자네, 그 기타 지난번에 고장 났다고 했던 것 아닌가? 자넨 소리도 잘 안 나는 기타를 폼으로 갖고 다닌가? 그리고 또 뭣이냐? 바이올린도 목이 부러졌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난 즉석에서 그 친구의 입을 막아야만 했다. 사실인즉 기타도 고물이었고, 바이올린도 고장이 나서 방 한 귀퉁이에다 처박아둔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간 나의 온갖 비밀스러운 것들이 모조리 들통 날 것만 같았다.
“에끼! 이 사람아! 자넨 맨 날 여자들 꽁무니만 따라다니면서… 이제 우리 다른 이야기나 좀 하세. 나 혼자 죽치고 앉아 있으려니까 너무나도 심심해서 잠시 놀러왔을 뿐인데 … ”
난 대충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공연히 여자 앞에서 추태를 부리는 꼴이 되어서는 피차 좋을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
우리 님들 잘 감상하셨나요?
제4편부터는 추월산 등반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며, 조금 더 흥미진진할 겁니다.
그럼 제4편을 기대하세요.
우리 님들 즐거운 주말 되시길 빕니다.
......................................
(이 글을 읽으신 야후 벗님과의 대화)
난 여자들앞에서 말도 붙이지 못했는대.... 마음에 들면 무조건 들쳐메고 갔지요ㅎㅎㅎㅎ
싫다면 그만두고... 보통 여자들이 날 따라 다녔는대..ㅎㅎㅎ 믿거나 말거나...
오늘은 3편까지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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