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 26. 13:16ㆍ나의 문학작품
우리 님들, 추월산 등반이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혼자서 올라가는 것도 아니어서 더더욱 그런 것 같기도 하구요.
이제 곧 정상을 밟게 됩니다. 그리고나서 이어지는 하산길에서....
우리 님들, 즐겁게 감상하세요.
추월산의 추억
(제5편)
추월산 등반
3
보리암, 오후 2시 30분.
중도 없는 듯한 초라한 절간이었지만 다행히 약수터가 있어 등산객들에게 식수를 제공해주는 고마운 곳이었다. 깊은 산속 바위틈 사이로 약간씩 새어나오는 물을 받아 물탱크에다 저장해 그 물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었다.
물을 보자 일행이고 뭐고 보이는 것이 없어져 일단 물을 향해 정신없이 달려갔다. 그동안 흘린 땀이 거짓말 약간 보태면 한 말은 흘렸을 것 같았고, 그녀의 물통엔 이미 물이 바닥난 지 오래라 어찌나 갈증이 심했는지 거의 탈진된 상태였었다. 물탱크에 놓인 바가지로 한 바가지의 물을 떠서 그녀에게 먼저 주었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다 마셔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거의 두 바가지 정도 마시고는 트림까지 해대며 한 마디 내뱉었다.
“아이고! 하마터면 죽을 뻔했네. 어! 참, 시원하다.”
겨우 한 숨을 돌린 나는 서서히 일행들을 찾아갔다. 그녀를 더욱 꼬옥 껴안다시피 하면서 부축해가며 말이다. 그들은 우릴 발견하더니 모조리 입들이 변하는 것이었다.
“야! 임마! 왜 이제야 나타나는 거야? 우릴 굶겨 죽일 거야?”
“어떻게 된 거야?”
너도나도 한 마디씩 하는데 고생했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눈 씻고 봐도 없었다. 어떤 친구는 날 부러운 듯 이상야릇한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미안하네. 저 여자가 다치는 바람에 같이 오다보니 약간 늦었어. 좌우지간 안 죽고 살아온 것만 해도 다행이야.”
나는 그들에게 사과하고 나서 그녀가 걱정되어 눈을 돌렸다. 여자들 속에 둘러싸여 정숙이란 여자가 누워있었는데, 다른 여자들도 한결같이 걱정과 근심이 가득어린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기들끼리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거리가 멀어 잘 들리지는 않았다. 단지 정숙이 그녀가 나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는 듯 날 빙긋이 웃으며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잠시 후 여자들은 다소 평온을 되찾은 듯 근처에 터를 잡더니 식사 준비를 서둘렀다. 사실 남자들은 음식 준비라고는 한 사람도 안 했기로 입만 달고 앉아 만들어주는 음식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냉큼냉큼 받아먹고 앉았으니 정말로 국제적인 얌체들에 속하지 않을까 하고 여겨지기도 했다.
“어이! 고기 좀 구워 오소! 안주도 없이 술 먹으려니 입 속이 타서 안 되것구만.”
“식사는 상추쌈에 풋고추를 된장 찍어 아작아작 씹어야 제격인데… 그건 준비 안 했는가?”
입 다물고 먹기나 하지 거기다가 한 술 더 떠 속까지 보이는 소리들을 하고 앉았으니 정말이지 저 녀석들은 남자들 얼굴에다 먹칠하고 자빠지는 꼴이 아닌가 모르겠다.
‘여기를 자기 집 안방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냐? 저 친구들 저걸 말이라고 하는지. 이거 원! 낯께나 두꺼운 친구들 이구만, 그래.’
나는 그러는 그들에게 들으라는 듯 한 소리 질러댔다.
“에끼! 속없는 친구야, 여자들 음식 만드는데 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그걸 말이라고 해! 가서 마실 물이나 좀 떠오게.”
그들도 한 방 얻어맞고는 입을 다물더니 그 후로는 찍소리도 안했다. 산 속에서 먹는 음식 맛은 정말로 꿀맛 이상이었고, 잔뜩 시장 끼를 느끼고 있던 때라 숟가락까지 쪽쪽 빠는 소리가 났다. 가져온 음식 또한 푸짐했는데 순식간에 다 해치워버렸던 것이다. 흰 쌀밥에다 쇠고깃국, 집에서 손수 만든 듯한 김치며 밑반찬 등 거기다가 후식으로 과일과 커피까지 거의 완벽하게 준비한 것 같았다.
“이걸 준비하느라고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음식 맛도 기가 막히구요. 저희가 좀 도와드렸어야 하는데 염치가 없습니다, 이거.”
식사 후 커피를 마시며 나와 친구들은 그녀들의 음식 솜씨를 치하했다.
“사실 어제 밤새 우리가 직접 만든 것이에요. 맛이 있었다니 저희도 기뻐요.”
그녀들도 다소 겸손해했는데, 속으로는 우릴 욕하진 않았을까하고 은근히 걱정되기도 했다.
추월산 정상, 오후 3시 30분.
해는 중천을 기울어가고 있었다. 식사 후에 우리 일행들은 서로 담소를 즐기다 이왕지사 모처럼 이곳까지 왔으니 노래라도 한 곡씩 뽑고 나서 하산하자고하여, 때는 이 때다 여기고 여기까지 고생하며 들고 온 기타를 집속에서 꺼내었다.
‘아이쿠! 이게 뭐야? 집에서 가져올 때는 건강하고도 말짱했는데. 약간 늙은 것 외엔 흠잡을 데 없는 나의 애인 같은 악기가 어찌된 거야?’
아까 넘어질 때 치명상을 입었는지 꾀꼬리 같은 소리가 그만 돼지 목 따는 소리로 바뀌어 버렸다. 기타의 울림통이 쪼개진 것이다.
“이런 젠장할 것. 반주는 틀렸구만. 어이! 태수, 자네가 육성으로 한 곡 뽑아보소.”
나는 기타를 다시 집속에 집어넣고 노래라면 레퍼토리가 다양한 그에게 소리쳤다.
“자네, 아까 저 여자 앞에서 악기 연주 운운하더니 그런 고물딱지 같은 걸 가지고 올 줄 알았다고. 그럼, 으흠! 잘 못 부르지만 18번이라고 할 수 있는 노래 한 곡 해볼까?”
그는 술을 한 잔 걸쳤는지 얼굴이 볼그스레해진 체 그 특유의 목청으로 노랠 부르기 시작했다.
“돈나 돈나 돈나돈…/ 마차 위에 끌려가는 철모르는 송아지 / 하늘 높이 제비들은 …”
여기저기서 손뼉으로 반주를 해주자 그는 신이 난 듯 눈까지 지그시 감고 감정을 풍부하게 넣어 노래를 했다. 노래가 끝나자 앙코르가 쏟아졌고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한 곡을 더 불렀다. 그 다음으로 내가 걸렸는데 난 솔직히 노래라면 천부적인 음치에 속해 뒤로 꽁무니를 뺐는데, 어찌나 간곡히(?) 부탁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불러야만 했다.
“그대는 차디찬 의지의 날개로 / 끝없는 고독의 위를 나르는 애달픈 여-인…”
나는 ‘수선화’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가사가 잘 생각 않나 멋대로 지어서 부르듯 하여 겨우 마쳤다. 돼지가 웃을 정도로 형편없었던지 박수도 안 쳐주는 것이었다.
‘에이! 옴이나 꽉 붙어라. 하기야 못 부른 사람 벌세우는 것보단 낮지.’
그녀들도 제법 꾀꼬리처럼 불러대 남자들의 박수갈채를 집중적으로 받았다.
‘교회에서 합창단 운운하더니 정말 그런 모양인데. 언제 저렇게들 연습했지?’
모두 돌아가며 노래를 다 했는데도 친구 태수 그 녀석은 계속 혼자서 흥얼거리고 있었다. 흥겨운 시간도 지나고 이제부턴 하산을 서둘러야 했다. 난 정숙이란 여자가 걱정되어 그녀에게 가까이 가보았다. 그리고는 혼자서 하산할 수 있는지 의향을 물었다.
“괜찮으시겠어요? 힘드실 것 같으면 제가 다시 부축해드릴게요.”
그녀는 다친 부위와 나를 번갈아가며 보더니 날 안심시키는 것이었다.
“이젠 혼자서 걸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공연히 저 때문에 힘드셨죠? 정말 죄송해요.”
다른 여자 친구들도 그녀를 걱정하는 눈으로 쳐다보더니 자기들이 부축해 내려가겠다고 했다. 난 할 수없이 남자들과 합류하여 하산 길에 올랐다.
산 정상 부위, 오후 4시.
산허리를 도는 지점에 깎아서 세운 듯한 낭떠러지 사이로 비좁은 산길이 나무뿌리와 엉킨 체 엉성하게 나있었다. 그곳을 통과하기가 힘들게 보였는데 발 한번 삐끗하면 황천행일 것 같아 그녀가 제일 걱정되었다. 나는 다른 친구들을 불러 모아 서로 부축해 통과를 시키자고 제안했다. 그들도 그게 좋겠다고 하여 여자들을 한 사람씩 붙잡아 옮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 봉자라는 여자가 어찌나 겁을 내는지 쭈그리고 앉아 손을 잡으려고 생각도 않는 것이었다.
“빨리 빨리 내려가지 않으면 산 속에서 잠을 자야 할 거예요. 여기, 손을 잡으세요! 손 좀 잡는다고 달아 지는 것은 아니니깐. 자! 빨리요.”
우리의 권유에 그녀도 어쩔 수 없이 손을 내밀었는데 어찌나 다리를 후들거리는지 하마터면 미끄러지면서 낭떠러지로 떨어져 이 좋은 세상과 하직할 뻔했다. 그런데도 오히려 다리를 다친 여자는 겁 없이 거뜬하게 그 곳을 통과하는 것이었다. 난 그녀가 그런대로 안심이 되었다.
약간 경사진 하산 길, 이름 모를 산새들의 울음소리와 발길에 밟히고 채어 굴러가는 돌멩이 소리가 한데 어울려 교향곡처럼 들려온다. 시원스레 산들바람까지 불어와 제법 상쾌한 기분이 되었다.
하산 길이 오히려 오르는 길 보다 더 힘들 것이라고 하더니 막상 내려가 보니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조그만 동굴을 통과하니 절벽이 나왔고, 그 곳에 내려가는 철제 계단이 약 10여m쯤 뻗어 있었다. 남자들은 먼저 내려갔고 그 아래서 소리쳤다.
“무서워하지 말고 내려와요! 천천히 내려오시면 될 거예요.”
그녀들은 절벽 위에 서서 내려다보더니 두려움에 휩싸인 듯 꼼짝하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이런 젠장! 등산이 취미라며 어떻게 주말마다 등산을 다녔다는 건지 모르겠어. 저렇게 겁들이 많아서야 무슨 놈의 산을 탄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저 여자들이 지난번 자랑삼아 말했던 것은 말짱 거짓말 같은데.’
난 속으로 중얼거리며 그녀들이 자진해서 내려오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곳은 비좁은데다가 거의 80도 정도 급경사를 이루고 있었으므로 자기 스스로 내려오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무서워서 도저히 못 내려가겠어요.”
봉자라는 여자가 겁먹은 얼굴로 우릴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바로 그때 다른 등산객인 듯한 웬 중년 여인이 다가오더니 마치 자기의 노련한 등산 기술을 발휘라도 하는 것처럼 한 마디하며 겁도 없이 성큼성큼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것이었다.
“이까짓 게 뭐가 무서워! 이렇게 내려오면 간단한데…”
‘야! 대단한 여자야. 마치 숙달된 조교의 시범을 보는 것 같구먼.’
그 분의 그와 같은 행동을 보자 난 입을 떡 벌리며 이렇게 중얼거렸고, 그녀들도 다소 용기를 얻었는지 한 사람씩 눈을 찔끔 감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다리를 다친 그녀도 별다른 도움을 받지 않고 느릿느릿 내려왔다. 봉자라는 여자가 결국 맨 꼴찌로 남아 애를 태우더니 어쩔 수없이 내려오는 모양인데, 밑에서 올려다보니 제법 큰 히프가 어찌나 떨려대는지 계단이 떨어져나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이히히…! 봉자 씨, 혹시 아래쪽 속옷은 말짱하신가요?”
친구 중에 짓궂은 짓을 잘하는 명구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더니 한 소리 했다. 그러자 옆에 섰던 다른 일행들의 입이 일제히 좌우로 찢어지는 듯싶더니 손을 입 쪽으로 가져가는 것이었다.
‘그걸 말이라고 하나. 아마도 저렸겠지? 말짱할 리가 있어? 저 친구는 여자가 남자들과 다 똑같은 줄로 아나보지. 해부학 시간만 되면 열심히 기도하고 앉았더니 내 모를 줄 알았다고.’
“제 걱정일랑은 안 하셔도 돼요. 알겠어요?”
“난 혹시나 해서요. 별 일 없으시면 다행이네요.”
그는 본전도 찾지 못할 쓸데없는 말을 했다고 투덜거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귓속말로 남자들에게 당부하는 것이었다.
“어이, 혹시 요상한 냄새 같은 거 안 나는가 잘들 맡아보라고. 알았는가?”
‘저 친구 별 거 다 신경 쓰네. 제일 못 생긴 여자에게 관심이 많은 걸 보니 아마도 여자의 아랫동네밖에 쓸 만한 게 없다고 여겼던 모양이지.’
이것저것 생각하며 혹시나 하고 그 여자의 뒤를 졸졸 따라갔으나 이상야릇한 냄새 같은 것은 나지 않은 것 같았다. 어떤 친구는 코까지 벌름거리며 열심히 맡아봤지만 결론은 서로 동일했다.
“어이! 진짜 말짱한가 보구만.”
우리는 그녀가 눈치 채지 못하게 행동하며 서로 킥킥대며 웃어젖혔다. 남이 보면 되게 속없는 짓거리만 하고 다닌다고 손가락질 깨나 받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지만 이게 다 사람 사는 재미가 아닌가 하고 여겨지기도 했다.
.............................
우리 님들, 잘 읽어보셨나요?
이제 좀 더 본격적으로 여자와 뭔가가 이루어질 겁니다.
그럼 6편을 기대하세요.
그럼 우리 님들, 항상 좋은 일만 일어나길 바랍니다.
.......................................
'나의 문학작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월산의 추억 제7편 (0) | 2011.02.26 |
---|---|
추월산의 추억 제6편 (0) | 2011.02.26 |
추월산의 추억 제4편 (0) | 2011.02.26 |
추월산의 추억 제3편 (0) | 2011.02.26 |
추월산의 추억 제2편 (0) | 2011.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