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 26. 13:17ㆍ나의 문학작품
우리 님들 이제 추월산 등반이 끝나고 하산길에 접어들었습니다.
하산길에서는 뭔가가 이뤄질 것만 같은데 일단 읽어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그럼 우리 님들 즐겁게 감상하세요.
추월산의 추억
(제6편)
추월산 등반
4
어려운 코스들은 거의 다 통과한 듯 제법 완만한 경사가 진 산길로 접어들었다. 시원스레한 바람이 콧잔등을 감싸며 지나간다. 땀으로 얼룩져진 옷도 거의 다 말라붙은 듯하다. 가을의 시원하고 맑은 공기를 가슴속 깊이 들이쉬니 세속에서 쌓인 답답한 찌꺼기가 일시에 사라져버리는 것만 같다.
다소 상쾌한 기분이 되어 일행들이 하산하고 있었는데 다시금 조별로 붙어가기 시작했다. 친구 성우는 경희라는 여자와 꼭 붙어 다니는 통에 어울리는 바퀴벌레 한 쌍처럼 보였다. 하기야 지금에 와서 내 것 네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내가 가까이 해보고 싶은 여자를 뺏긴 것만 같아 속이 다소 불편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겐 내가 돌봐주어야 할 여자가 있지 않는가? 이 여자를 편히 모시고 무사히 하산하는 것만이 내가 해야 할 바라고 여겨지는 것이었다.
“기분이 좀 어떠세요?”
나는 아직도 약간 절뚝거리며 걷고 있는 그녀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런대로 좋아요. 좀 힘들기는 하지만요.”
그녀도 날 보더니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흙먼지로 얼룩진 그녀의 옷엔 아직도 다친 자국이 남아있는 듯 붉은 핏자국이 배어 있다. 아마도 찰과상에서 흘러나온 피였으리라. 그녀의 고운 살결, 우윳빛의 뽀얀 피부가 오늘 등산으로 이렇게 망가져버렸으니 다소 원망도 하겠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고 있는 듯했다.
“저도 등산이라면 오늘까지 합쳐 처음이지만 다소 힘들다고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한번쯤 가져 볼만한 취미라고 여겨지기도 해요.”
“저희들도 가끔 등산을 했는데 오늘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다쳐보긴 정말 처음이에요.”
그녀는 나와 가까이 붙어 서서히 하산하며 서로의 생각들을 주고받았다.
“앞으로 기회가 생긴다면 저와 낚시라도 한번 갔으면 어떨까하는데 사실 낚시는 이처럼 힘들지는 않거든요.”
“전 낚시의 낚짜도 잘 몰라요. 저도 좀 배우게 해주시겠어요?”
“좋지요. 함께 가주시기만 한다면 더없는 영광입니다. 모든 것은 제게 맡기고 몸만 오시면 되니까요. 어때요? 그러실 수 있어요?”
“글쎄요? 한번 생각해볼게요.”
나는 내 말을 쉽게 들어주는 것만 같은 그녀가 너무도 대견스러워보였고, 내 마음도 흐뭇해지는 것이었다.
또다시 우리 조는 다른 조들과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빨리 내려간 조는 거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나의 앞엔 거의 20여 m쯤 떨어져 친구 태수와 그의 파트너가 나란히 내려가고 있는 것이 보였는데 그들도 정답게 뭐라 말을 주고받으며 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모두가 발에다 스키를 달았는지 잘도 내려가는 것이었다.
내리막길엔 산모래와 자갈이 섞인 미끄러운 길들이 많았는데 미끄럼을 타듯 주르르 미끄러져 내려가야만 쉽게 내려갈 수가 있었다. 산 위쪽에서 그들이 사이좋게 내려가는 것을 부러운 듯 바라보며 조심스레 내려오는 도중이었다.
“아이고! 미끄러워라!”
멀리서 외마디 소리가 들리는 듯싶더니 그들도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르르 미끄러지면서 넘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러더니 곧바로 일어나 그 친구가 여자를 붙잡고 옷까지 털어주고 있었다. 아마도 크게 다치지는 않은 모양이다. 덕순이라는 여자 같은데 제비처럼 날씬해선지 전혀 이상이 없어보였다. 그렇지만 난 곁에 서 있는 그녀에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저 친구들은 안 다쳤을까요? 우리처럼 미끄러져 되게 넘어진 것 같은데.”
“제가 보기엔 괜찮은 것 같은데요.”
나는 그들이 걱정되었지만 먼지 몇 번 털더니 깔깔 웃으며 오히려 더 재미있어 하는 것이었다.
‘이런! 깜짝 놀랐잖아. 그런데 이게 뭐야? 난 이 여잘 사정없이 다치게 했고 저 친군 오히려 더 즐기는 것 같으니 뒤로 넘어져도 코 깨지는 것은 우릴 두고 하는 말 아닌가?’
나는 속으로 투덜거렸으나 이렇게 미끄러운 길에서 또다시 넘어진다면 이번엔 뼈가 부러지지 않을까 두려워 더욱 그녀를 가까이 붙잡다시피 하며 서서히 내려갔다. 한참 내려가다가 보니 산길 옆에 펑퍼짐한 큰 바윗돌이 가로놓여져있어 그곳에서 쉬고 싶었다.
“우리 저기서 조금만 쉬었다 가요. 아직 해가 질려면 한 시간 이상 남은 것 같으니 괜찮을 거예요.”
나는 그녀와 그곳으로 가 마주앉았다. 그리고는 먼 산에 시선을 던지며 한숨을 돌렸다. 해가 서산 쪽으로 상당히 기울어진 것 같았다. 다른 등산객의 모습들은 간간이 눈에 띄나 거의 다 하산한 듯했다.
하늘에는 흰 구름 몇 점만이 한가로이 떠서 노닐고 있었다. 나는 근처에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하얀 들국화 꽃이 멋지게 피어 나를 유혹하고 있는 듯했다.
“혹시 들국화 좋아하세요?”
나는 쭈그리고 앉아있는 그녀를 향해 말을 건넸다.
“들국화라고 하셨나요? 제가 제일 좋아해요.”
“그러세요? 그럼 잠시만 기다리세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는 한 달음에 달려가 그 꽃을 몇 송이 꺾어 그녀에게 가지고 왔다.
“자! 가지세요.”
그녀는 그 꽃을 가슴에 안고 향내를 맡으며 즐거워하는 것이었다.
‘그대가 좋아한다면 난 저기 저 절벽 위에 피어있는 어여쁜 꽃도 따다 드릴 수 있어요. 옛날 어느 공주를 사모하는 자가 했던 것보다도 더한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고, 내 마음을 나도 잘 모르지만 말예요.’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그녀의 즐거워하는 모습만을 한없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저기… 저,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나는 그녀의 마음을 떠보고 싶어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그러자 그녀도 별다른 거부감 없이 날 보는 것이었다.
“뭔데요? 말씀하세요.”
“그럼, 말하죠. 혹시 저를… 저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 말하시기가 그렇게도 어려우세요? 사실 전 지난번 몇 번인가 만났을 때도 솔직하고 좋으신 분으로 생각했어요.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구요.”
나는 그만 감격스러워지고 말았다. 이 여자도 날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니 왜 그걸 진작 눈치 채지 못했단 말인가?
“절 그렇게 보아주시니 너무나도 송구스럽습니다. 그간 잘 해드리지도 못했고, 특히나 여성분들께 어떻게 해드려야 하는지도 경험이 없다보니 잘 모르고 있는데, 절 그렇게 평가해주시다니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나는 정말이지 그녀가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그녀를 꼭 안아주고 싶을 뿐이었다.
“제게 오늘도 너무 잘해주셨잖아요? 오히려 제가 너무 폐만 끼쳐 얼굴을 들지 못하겠어요. 지금까지 이렇게 잘해주신 분은 처음이에요, 정말이에요.”
‘그녀도 날 그렇게 느꼈나 보다. 그렇다면 이런 여자는 한번 깊이 사귀어보고 싶다. 사랑이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서로를 생각하며 위하는 마음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생겨날 때 이뤄질 수가 있는 것 아닐까?’
나는 마치 구름을 타고 나르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부터 모든 것은 이 여자를 위해서 해야만 한다고 스스로 다짐해보기도 했다.
“우리 다시 내려가야겠죠? 너무 오래 쉰 것 같아요.”
나는 언제까지나 그곳에 머물러있고 싶었지만 다른 일행들이 걱정할 것 같아 다시 하산할 것을 종용했다. 그녀도 아쉬운 듯 서서히 그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더욱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몸을 기댄 체 천천히 하산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서로 몸을 의지한 체 마치 연인들처럼 꼭 붙어 장장 1시간 반 동안을 내려왔다. 나의 눈에는 산 아래쪽에 죽 펼쳐진 비포장도로가 들어왔다. 그곳 한 쪽에 있는 정류장에는 같은 일행들이 모여 우리가 내려오기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하산에서도 제일 늦게 제일 꼴찌로 도착하고 말았다.
담양 삼거리, 오후 6시.
담양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차가 이미 떠나버려 어쩔 수 없이 그 곳까지 걸어가기로 했는데 별로 멀지 않다고 하더니 상당히 먼 거리였다. 이곳에서 일행 8명이 같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금 도보 여행이 시작되었다.
“어때요? 오늘의 산행이 즐거웠던가요?”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또다시 물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나를 더 부러운 듯이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앞서가던 한 친구가 맥이 풀린 것 같은 기죽은 소리로 한 마디 내뱉었다.
“별로 재미 못 봤네. 자네만큼은…”
그러자 또 다른 친구도 같이 거들었다.
“자네가 하도 안 내려와 또 사고가 났나 했어. 아니면 둘이서 아무도 모르게 재미 보느라고 안 오나 보다하고…”
나는 그 친구의 입을 또 막아야만 했다. 이러다간 별 희한한 소리들이 안 나올까 두렵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저런… 저 실없는 친구 말하는 것 좀 보소. 재미라니? 이 사람아! 오늘 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그러니 쓸데없는 소릴랑은 아예 하지를 말어! 알겠어?”
‘똥 뀐 놈이 성낸다고, 여자하고 진짜 재미 보고 오리발 내미는 거 아닌가?’
그도 이처럼 여겼는지 모르지만 지지 않고 계속 날 추궁해댔으나 증거도 없었고, 본 일도 없었기에 결국 나에게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무슨 남자가 조불조불하게 별 걸 다 의심하고 계세요?”
나와 같이 있었던 여자가 한 마디 거들자마자 그들이 품었던 의심은 씻은 듯이 사라져버렸다.
“우리 이러지들 말고 서로 사이좋게 노래라도 부르며 걸어가자고. 그래야 모양새가 좋아 보일 게 아닌가?”
친구 태수 녀석이 또다시 흥얼거리기 시작하더니 우리에게 제안을 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다시 좋아졌는데 그는 오늘 레퍼토리를 전부 드러내 보이려는지 계속해서 들으라는 듯이 노래를 불러대기 시작했다.
『찻집의 고독』,『봄이 올 때까지』,『돈나 돈나』등등 너무 많은 곡들을 목청까지 돋워가며 불러댔다.
우리가 담양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거의 7시가 다 되어서였고, 이미 해가 지고 주위가 어두컴컴하게 변해있었다. 성우와 나는 서둘러 광주행 직행버스의 차표를 끊어 나누어주고 차에 올라탔는데, 또다시 만원 버스가 되어 고생문이 열리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 어찌나 고생들을 했는지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 손잡이를 잡은 체 졸고 있었다.
담양으로 갈 때와는 달리 직행이라서 잠시 졸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광주 광일여객 종점에 도착해 있었다. 차에서 내려선 일행들은 서로 헤어지기가 너무도 섭섭했던지 가까운 식당에 가서 저녁 식사나 하고 헤어지자고하여 근처에 있는 메밀하우스를 찾았다.
그런데 식당 앞에서 경희라는 여자가 자기의 짐을 챙기더니 먼저 가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집에 바쁜 일이 있어서 지금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제 아버님께서 학회에 가시거든요. 오늘 정말 고마왔어요. 그럼…”
“정 그러시다면… 정말 즐거웠어요. 잘 가세요. 다음에 또 만나요.”
친구 성우가 아쉬운 듯 작별을 고했고 우리 일행도 같이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런 연후에 값싼 메밀국수를 시켜먹고는 오늘 하루 재미있게 지낸 소감과 차후의 계획 등을 서로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로써 추월산 등반이 모두 막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나에게 정말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간직하도록 해준 정숙이라는 여성을 알게 해줬고, 그녀와는 뜻 깊은 하루였다고 여겨진다.
아쉬움 속에서 헤어질 때 그녀는 나에게 정말로 호감 있는 말 한 마디를 남겨주었다.
“제게 너무나도 잘해주셔서 정말 잊지 못할 거예요. 그리고 이처럼 절 따뜻이 대해준 분은 지금까지 한 사람도 없었어요.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나도 마찬가지야. 지금까지 내가 이성에게 이끌려 사랑을 느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어. 그대는 나로 하여금 나도 모르게 사랑을 느끼도록 해준 첫 번째 이성일거야. 그대만 받아준다면 그대만을 위하고 생각하며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나의 입가에서만 맴도는 이 말을 결국 하지도 못한 체 뒤돌아서야했고, 그녀 곁을 떠나가는 나의 발걸음은 천 근 만 근 무겁게만 느껴졌다. 추월산의 하루는 나의 잊지 못할 추억이 되고 말았고, 그녀도 그 이후로는 만나보지 못했으며, 서로 간에 별다른 소식도 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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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님들, 잘 감상하셨나요?
이제는 좀 아시겠죠? 바로 이 여자가 저의 첫사랑이긴 했었지만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럼 마지막 7편을 조만간에 올려드리겠습니다.
우리 님들, 오늘 하루도 즐겁고 보람차게 보내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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