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괄량이 아가씨 제1편

2011. 2. 26. 13:21나의 문학작품

 우리 님들, 지난 날 젊은 시절에 고란초가 만났던 아가씨 중에 좀 특이했던 여자가 있어 이를 '말괄량이'라고 했는데, 차라리 요즘 말로 '날라리'라는 표현이 더 맞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과연 어떤 아가씨였는지 한 번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 글도 제법 길어 2편으로 나눠서 올려드리겠습니다.


                                         

                                           - 고란초의 컴퓨터 마우스 그림집에 있는 '유혹'입니다.-



 

                     말괄량이 아가씨

                            (제1편)



 


“헤이! 이보세요, 나 좀 봐요.”

 어느 뜨거운 여름밤이었다. 그녀는 바로 옆집에 살고 있었는데, 오늘도 담 너머로 날 내려다보더니 이렇게 소리치며 오라고 손짓하는 것이었다. 동그란 눈을 치켜뜨고 잘하지도 못하는 윙크까지 하면서 말이다.

 바로 이 여자. 그녀는 퍽이나 쾌활했지만 우스꽝스러운 짓을 잘하는 방년 18세, 말괄량이 같은 아가씨였다. 이제 막 피어오르려는 꽃봉오리처럼 청순하고 예뻐 보이기도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독한 가시를 감추고 있는 화사한 장미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녀가 나와 처음으로 시선을 마주쳤던 것은 약 1년 전쯤이었다. 그녀도 음악을 좋아했는지는 모르지만 밤마다 내가 연습하고 있는 바이올린 소리가 나면 방문을 열고 나와 귀를 쫑긋 세우고 음악 감상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고, 특히나 달 밝은 밤이면 잠 못 이루고 살며시 밖으로 나와 담벼락에 몸을 기댄 체 뜰 앞을 무심하게 거닐고 있는 나의 모습만을 말없이 주시하는 것 같았다. 어쩌다 나도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면 그녀와 시선이 마주치게 되었고, 그녀는 다소 부끄러운 듯 담벼락 아래로 몸을 황급히 숨기는 것이었다.

 어느덧 나도 자연스럽게 그녀를 의식한 체 그녀를 위한 바이올린의 아름다운 선율을 적막한 뜰 안에 흐르게 하면 어김없이 그녀의 모습이 담 위로 나타났으며, 그동안 서로 간에 주고받는 말 한 마디 없었지만 은근히 그녀도 날 만나길 원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 동안 그녀에 대해 죽 지켜봤던 것들은 나에게 실망만을 안겨주었다. 난 독백하듯 그녀를 보면서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머금은 체 한없이 나만을 바라보고 있던 너. 그때 너의 모습은 진정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었지. 하지만 너의 행동은 날 실망시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 그간 수차례에 걸쳐 여성으로써 지켜야 할 본분을 잃고 말괄량이처럼 행동을 해댔으니, 솔직히 말하여 그건 내가 싫어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지. 네가 나 몰래 숨어서 해댄 이상한 행동이란 두 말할 것도 없이 너와 같은 또래의 놈팽이 같은 사내들과 어울려 어디 가서 무얼 하는지 알 수 없는 이상야릇한 행위, 품행이 단정치 못했던 바로 그런 행위를 두고 하는 말이다. 너는 너의 젊음을 불태우기 위했던 것이라고 하겠지만 난 네가 그렇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던 거야. 지금에 와서 네가 아무리 부인을 하더라도 난 이미 알고 있거든.’

 나 또한 이러는 그녀를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녀와 눈이 마주친 이후부터 그녀에게 점차 관심을 나타내고 있었으니, 이게 잘 하는 짓인지 잘 못되고 있는 건지 나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그녀와는 단순한 대화 한 마디 주고받은 일도 없었고, 서로 간엔 그저 얼굴만 알고 지낼 정도였으며, 설사 서로가 만난다고 하더라도 서먹서먹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결국 오늘에서야 그녀가 참지 못하고서 나에게 먼저 한 마디 던지는 것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이끌려 담벼락 밑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저… 아가씨, 지금 날 보자고 했나요?”

“그래요. 혹시 시간 있으면 오늘 밤 나랑 영화 보러 안 가실 거예요? 싫으면 관두고.”

 그녀는 첫 마디부터 당돌한 제안을 해왔는데, 나도 전혀 예상할 수가 없었던 엉뚱한 제의였다.

 ‘이 여자가 지금 날 꼬실려고 이런 건 아닐까?’

 나도 이렇게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녀는 그 동안 내가 주욱 지켜본 결과에 의하면 영화라면 거의 다 줄줄 외우다시피 할 정도로 자주 영화관에 가는 것이 목격되었고, 나 또한 틈틈이 영화 감상을 즐기고 있었던 때라 자연스럽게 서로의 마음이 일치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요? 마침 심심하던 참인데 잘 됐군요. 곧바로 준비하고 나가죠.”

 “호호 … ! 빨리 나오세요. 그럼 제 집 대문 밖에서 기다릴게요.”

 그녀의 입이 쫙 찢어지는 듯싶더니 모습이 순식간에 담 너머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거 참! 약속했으니 안 나갈 수도 없고 … 애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어라.’

 난 괜스레 약속했다고 후회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나갈 준비를 서두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집 앞,

 그녀는 한동안 기다려도 나올 생각을 않고 있었다. 나는 다소 마음이 다급해지기도 했다.

 ‘요런 썩을 계집이 왜 이리 내 속을 태우고 있는 거야. 얼마나 예쁘게 차려 입고 나오려고 이렇게 안 나오지?’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그녀가 모습을 나타났다.

 ‘어쭈! 제법인데.’

 그녀는 붉고 푸른 줄이 수놓아진 얇은 T셔츠를 입고 나왔는데, 이제 제법 숙녀 티를 보이는 그녀의 볼록한 젖가슴이 옷자락에 찰싹 달라붙은 체 둥그런 윤곽이 선명히 드러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 곁에 서서 같이 길을 걸었다. 그렇지만 서로가 서먹서먹했던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극장까지 걸어가는 20여분동안 모두 할 말을 잃어버린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체 남남처럼 걸었다. 동네에서 말괄량이로 소문이 나있는 그녀였건만, 오늘따라 웬일인지 평소의 그녀답지가 않았고 수줍음이 많은 아가씨처럼 보였다.

 문화 극장 앞.

 나는 잽싸게 매표소로 다가가 준비해둔 돈을 꺼냈다.

 “저 … 입장권 2장만 … ”

 “아네요, 내가 낼 거예요. 오늘은 제가 초대했잖아요.”

 그런데 그녀가 난데없이 달려와 내 앞에 서더니 나의 손을 뿌리치면서 한 마디 하는 것이었다.

 “무슨 그런 서운한 말씀을 … 처음 만나서 여자가 돈 내는 법은 없어.”

 난 그녀의 돈을 다시 쥐어 주고는 입장권 하나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도 쑥스러운 듯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날 따라왔다.

 극장 안.

 상영 프로가 이미 시작되었는지 너무도 어두컴컴하여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를 이끌고 자리 잡기에 열중이었고, 손으로 어둠 속을 더듬더듬하면서 계단을 내려가는 중이었다.

 “아니 … ! 이봐요! 왜 이래요?”

 어둠 속에서 웬 여자가 갑자기 소리를 빽 지르는 것이었다. 하필이면 더듬거리던 나의 손이 어둠 속에 앉아 있던 어떤 젊은 여자의 젖가슴에 닿아 버릴 줄이야.

 ‘이크! 뜨거워라.’

 나도 몰래 속으로 중얼거리며 미안하고도 죄송하다는 말을 수차례 한 연후에 계단을 내려갔는데, 내 뒤에서 따라오던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이봐! 어디 있어? 어서 내려와!”

 나는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여기 앉아 있어요.”

 그녀가 어느새 뒷좌석에 앉아 소리치는 것이었다.

 ‘이런 제길 할, 눈도 밝다. 아니 벌써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니.’

 나는 뒤쪽으로 다시 돌아가 그녀와는 딱 붙어있기가 뭐 해서 한 좌석 건너뛰어 앉았다. 여름밤의 시원스레한 바람이 열어 젖혀진 창문을 통해 들어온다. 그녀는 영화의 화면에만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듯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으나, 난 영화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에게만 온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다.

 한참 후 그녀가 못 견디겠다는 듯이 나를 향해 소리쳤다.

 “이 봐요! 이리 좀 더 바짝 다가와서 앉아요. 창피스럽게 그게 뭐예요?”

 그녀는 한 좌석 건너편에 앉아 있는 나의 모습이 별로라고 생각되었는지 한 마디 내던지는 것이었다. 이젠 나도 어느 정도 어둠에 눈이 적응되었는지 그녀 모습을 어둠 속에서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날 바라보며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나도 용기를 내어 그녀 곁으로 다가가서 살그머니 바로 옆 좌석에 앉았다.

 그녀는 오늘처럼 무더운 여름 날씨에도 퍽이나 차가운 체온을 가진 듯했다. 그녀의 어깨와 팔 부위가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의 어깨부위와 맞닿게 되었는데, 짜릿하도록 차가움을 느꼈기에 하는 말이다.

 영화 내용은 통속적인 것이라 별로 흥미가 없어 나는 그녀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어때요? 재미있어요? 영화는 종종 보나요?”

 “그럼요. 전 영화를 너무나도 좋아하거든요. 시간만 있으면 … 아니!”

 바로 그 때였다. 그녀가 대답을 체 끝맺기도 전에 그녀의 언니가 극장 1층 좌측 비상구의 문을 열고 갑자기 나타났다. 나는 안절부절못하며 몸 둘 바를 몰라 했지만, 나보다는 그녀가 더 당황한 듯 했다.

 사실상 지난 날 그녀가 별 볼일 없는 사내들과 이 극장을 무대로 어울려 다니면서 엉뚱한 짓을 자주 헸었다고 하는데, 극장 안에서 그녀의 언니에게 들키는 날이면 그 때마다 집으로 끌려와 무자비하게 얻어맞는 모습을 간간이 목격했었고, 그 당시 어떤 놈이든 가만두지 않겠다는 그녀 언니의 말이 섬광처럼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언니에게 발각되기 전에 어서 빨리 이곳을 피해야만 했다.

 “죄송해요. 저 이만 가볼게요.”

 그녀는 곧바로 일어났다.  

 ‘이런 젠장 할! 나도 그 놈들과 같이 여기고 있는 것은 아냐?’

 난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아무튼 걸려 봉변을 당하는 것보다는 조용히 삼십육계를 놓는 게 좋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도 살그머니 일어나 꽁무니를 뺐고, 그녀는 언제 사라졌는지 모를 정도로 잽싸게 달아났다. 그런 걸 알 길이 없는 그녀의 언니는 어두운 극장 안에서 그녀만을 찾아 헤매고 있는 듯 했다.

 내가 막 2층 출입문을 열고 나가 2층 계단을 내려 갈려는 찰라 또다시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1층 우측에 있는 비상구로 빠져나갔던 그녀는 이런 험한 상황에서도 그 곳에서 우연히 만났는지 모르지만, 다른 제비족 같은 사내와 같이 서로 껴안고서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저런 지독한 계집애 같으니라고 … 내가 너와 같이 이곳에 온 게 잘못이지.’

 그녀가 이 극장 무대 뒤에서 다른 놈팽이나 건달 같은 사내들과 어울려 간간이 불나비사랑을 했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이와 같은 대담한 행동에 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날 나는 재수 없는 날이라고 여기고 그곳을 피하여 집으로 쓸쓸히 되돌아오고 말았다.

.......................
우리 님들, 잘 감상하셨나요?
이런 여자라도 잘만 길들이면 좋은 여자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만 과연 어떤 여자로 뒤바뀔까요?
 그럼 제2편을 기대하세요.
  우리 님들, 오늘 하루도 즐겁게 지내시길 빕니다.

 

 

.....................................

       (이 글을 읽으신 야후 벗님과의 대화)

 

 

 고락산성 2008.11.12  09:39
 
ㅎㅎㅎ 그런여자는 예전에 우리 클때 간간히 보았지요.
지금도 새벽녘에 나가보면 그런 아가씨들 많습니다.
술이 취해서 비틀거리고..ㅎㅎㅎ 호기심 많을 때이지요.
 고란초 2008.11.12  11:42
 
산성님, 이 글도 읽으셨군요.
저의 옛이야기를 한 번 올려본 것이었는데...
그런대로 읽으실만 하셨나요?
산성님, 님의 블로그가 계속 인기 폭발인 것 같습니다.
님께서 그만큼 블로그 운영을 잘 하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만...
지난번 물어보셨던 것은 추월산의 추억 끝편에다 답변했습니다만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산성님, 항상 건강하시고 오늘 하루도 즐겁게 지내시길 빕니다.

 

 


'나의 문학작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떤 모델 제1편  (0) 2011.02.26
말괄량이 아가씨 제2편  (0) 2011.02.26
추월산의 추억 제7편  (0) 2011.02.26
추월산의 추억 제6편  (0) 2011.02.26
추월산의 추억 제5편  (0) 2011.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