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괄량이 아가씨 제2편

2011. 2. 26. 13:23나의 문학작품

 우리 님들, 말괄량이 아가씨 1편을 잘 읽어 보셨나요?
이 여자는 차라리 날라리 아가씨라고 해야 맞겠죠? 이제 제2편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이 여자가 어떻게 변하는 지 보시겠습니다.
  우리 님들, 즐겁게 감상하세요.



 

                    말괄량이 아가씨

                  
                  
     (제2편)



 그로부터 한 달 여가 지난 9월 어느날.

 난 저녁 식사 후 가슴 속이 답답해져 옴을 풀어버리기 위해 서늘한 밤바람이나 좀 쐴까하여 집밖으로 뛰쳐나왔다.

 공설 운동장 앞.

 광천교 쪽에 이르러 다리 난간에 몸을 기댄 체 상큼하고도 시원하게 불어오는 밤바람을 마음껏 들이마시며 기분을 전환하고 있는데, 내 눈엔 못 볼 것만 보이는지 갑자기 마음 한 귀퉁이가 허전해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제법 많은 젊은 쌍쌍들이 한가로이 그 곳을 거닐며 각기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고, 어떤 쌍은 아예 서로 얼싸안고 엉뚱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 듯했다.

 ‘저런 옴 붙을 연놈들 같으니라고. 이거 질투가 나서 살겠는가? 이럴 때 나랑 같이 따끈한 대화라도 나눌 여자는 없을까? 허! 이거 참! 모래알같이 많은 여자들 중 왜 하필이면 나에게 만은 한 사람도 접근하지 않는단 말인가? 그래, 난 아직도 사랑이 무언 지도 모르잖아. 하지만 나도 한 번쯤 느끼고만 싶은디.’

 난 긴 한숨을 내쉬며 입가에 씁쓸한 미소만을 지을 뿐이었다.

 ‘이제 언젠가는 나에게도 사랑을 안겨 줄 여자가 나타날 거야.’

 이렇게 자위하며 그냥 그저 시원스레 불어오는 바람에 온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가슴 속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그 청량함에 취해 나도 모르게 점차 기분이 좋아지고, 콱 막힌 듯한 가슴속이 확 뚫려 오는 기분이었다.

 나는 무심코 주위를 주욱 휘둘러보았다. 순간 나의 시선이 어느 한 곳에 집중되는 듯싶더니 그곳에 멈추었다. 도로가 공터, 그 곳에는 서너 명 가량의 부인들과 애들이 모여 돗자리를 깔고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는데, 말괄량이 그녀의 모습도 거기에 섞여 있는 것 같았다.

 반가운 마음에 그녀를 향해 달려가고픈 생각이 그지없었지만 내 발은 왠지 모르게 천 근 만 근처럼 무겁게만 여겨졌고, 발바닥이 땅에 달라붙은 듯 좀처럼 그녀 곁으로 가주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도 모르게 발걸음은 그녀를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씩 서서히 다가가고 있었고, 결국은 그녀 곁에 도달하고 말았다.

 그 곳에 앉아 있던 몇몇 여자들은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 같은 날 요상스러운 눈초리로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 같았지만, 나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뒤쪽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곧바로 날 알아보는 것 같았다. 그녀가 생긋 미소를 띠자 그 옆에 앉아 있던 다른 사람들은 눈치를 챘는지, 하나 둘씩 자리를 뜨더니 결국엔 나와 그녀 둘만이 그 곳에 남아 있게 되었다.

 자리에 앉기도 뭐하고 서 있기도 그런 것 같아 엉거주춤한 상태로 그녀의 옆에 있었는데, 사실은 그녀의 입에서 앉아 달라는 말이 나왔으면 하고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눈치만 보고 있는지 좀채로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바로 그때 그녀가 당돌하게 나무라듯 한 소리 하는 것이었다.

 “오늘 밤 내내 그렇게 서계실 거예요? 여기 앉으시면 어디 덧나요?”

 ‘젠장 할, 이거 한 방 멋지게 얻어맞았잖아. 내가 먼저 앉으면 안 되겠느냐고 했어야 하는 건데.’ 

 난 다소 김빠진 맥주를 마시는 기분이었으나, 잘됐다 싶어 시치미를 뚝 떼고 그녀 곁으로 최대한 가까이 앉았다.

 “좋아요. 그럼 어디 한 번 앉아 이야기 좀 나눠 볼까요?”

 난 지난번 그녀에게 당한(?)수모를 갚아줘야만 하리라 여겨졌고, 어떻게 혼짝을 내야 좋을까를 궁리했다.

 “정말 오랜만에 뵙게 되었네요. 지난 번엔 죄송했어요.”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안면 가득히 싱그러운 미소를 띠며 그녀가 선수를 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바로 전까지만 해도 그녀에게 품은 미운 감정이 그녀의 이 말 한 마디와 미소로 눈 녹듯 사라져 버리고, 그녀가 한없이 예뻐보이고 그녀와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끼게 됨은 무슨 까닭인지 나도 모르겠다.

 ‘어디 그럴 수 있어요?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난 이렇게 대들고 싶었지만 이 말은 입 안에만 머물고 있었고, 오히려 엉뚱하게 다른 말이 입가로 새어 나왔다.

 “웬 천만에 말씀을 … 죄송하다뇨? 전 아무렇지도 않아요. 다시 만나 뵈어 반갑습니다.”

 “그런데 이 밤에 웬일이세요?”

 “집에만 처박혀 있으니 답답해서 바람이나 좀 쐴려구요.”

 “그러세요. 저도 역시 그래요.”

 일단 그녀와 대화의 포문을 여는데 까진 성공하였다. 그러나 난 이 여자가 누구인지 무얼 하는 여자인지 전혀 알 수가 없어, 서로 소개부터 해야만 하는 순서라고 생각되었다. 난 대충 나의 소개를 했고, 그녀도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그녀의 소개를 해주었다. 그녀의 이름은 춘자라고 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나인 만으로 방년 18세였다.

 ‘춘자? 그럼 영자의 동생인가? 먹자든 놀자든 이름이 무슨 상관이야. 마음씨만 고우면 띵호와지, 안 그래?’

 난 그녀에게서 풍기는 순수하고 아름답고 청순하기만 한 모습에 또다시 마음을 온통 빼앗기고 있는 듯 했다. 표리부동이라고 실제는 그렇지 않더라도 그때 내가 느낀 솔직한 심정은 그랬다. 어느덧 주변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서로 간에 화기가 애애해지자 난 다른 화제로 말을 바꾸었다. 

 “춘자도 공부하고 싶지 않아? 사람이란 많이 배워야만 하거든 … ”

 “집이 가난하여 중학교만 겨우 졸업했어요. 배우고 싶지만 뜻대로 잘 안 돼요. 솔직히 댁이 너무 부러워요.”

 그녀는 땅이 꺼질 듯한 긴 한숨을 내쉬며 겨우 말을 마쳤다. 난 그녀가 다소 가련스럽게 보이기도 했고, 그녀의 처지에 동정이 가기도 했다.

 ‘그 놈의 가난이 원수지. 어찌 해 이런 여자가 배우지 못하고 타락해야만 하는가?’

 그러나 나의 눈엔 이러는 그녀의 모습이 천사보다도 더 예쁘게 보이고, 그녀의 음성은 감미로운 음악 소리처럼 들려오고 있으니 내가 잘못 뿅 간 게 아닌가 하고 여겨질 뿐이었다. 나는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와 마음가짐 등에 관해 몇 가지 알려주었다. 그렇지만 그녀에게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나의 입가만을 맴돌 뿐 할 수가 없었다.

 ‘나와 좀 더 자주 만나보고 싶지 않아?’

 이 말을 하기가 어찌 이다지도 어려운 걸까? 그녀도 사실상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오길 원할 것이다. 또한 그녀가 알고 지내는 못된 놈팡이나 건달 같은 사내들 보단 백번 더 나을 것만 같은 나를 왜 가까이하려고 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그대가 내 곁에 있어 주면 내 마음도 든든해. …… 』

 어디선가 이런 노랫소리가 아련히 내 귓가에 들려오고 있는 것 같다. 그녀와 모처럼 장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는데 결국은 알맹이 없는 빈말들만 했던 것 같다.

 ‘정말 가까이 할 수도 멀리 할 수도 없는 너. 내 마음속으로만 널 좋아해야 된다는 말인가? 넌 정말로 나의 마음을 모를 거야. 아니 느껴보지도 못할 거야.’

 오직 순간적인 쾌락과 만족을 위한 불나비 같은 사랑만을 해 온 그녀였기에 나의 진심을 알지도 못한 체 아쉬운 작별을 고해야만 했다.

 그로부터 수개월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그녀가 내 곁을 떠나버리고 서로는 영원히 헤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녀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으로 이사를 해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나에게 그 곳을 알려주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사한다는 말도 없이 홀연히 떠나버렸기에 나도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이런 속없는 여자가 다 있어? 난 어떡하라구. 최소한 나에게만은 자기의 행선지를 알려줬어야 하는 것 아냐? 이제야 고백하지만 정말이지, 난 네가 정말 좋았었는데 … ’

 그녀는 결국 나로부터 점차 멀어져 갔고, 나의 기억에서마저 희미해지고 말았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어느 가을날.

 난 학교 수업을 끝내고 귀가하기 위해 시내버스 맨 뒷좌석에 가서 앉았다. 버스가 시내 한 복판 어느 정류장에 잠시 정차하고 있을 때였다. 난 우연히 출입문에 눈길을 주었는데 순간 나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아니! 저 여자는 바로 그 춘자다. 지난번 날 서운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여자가 틀림없어.’

 나도 모르게 눈동자가 커지는 듯싶더니 가슴속이 울렁거려 왔다. 그 동안 너무나도 달라져 버린 그녀. 이젠 그녀의 몸에서는 소녀의 티란 전혀 찾을 수가 없었고, 완전히 숙성한 처녀로 변해 있었다.

 그녀는 차 위로 오르더니 바로 내 곁에 서 있었다. 난 그녀를 보자마자 너무나도 반갑고 목이 메어 할 말을 잃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나도 옛날의 내가 아니지 않는가? 난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말했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다 큰 처녀라서 함부로 말을 내릴 수도 없어 존대말을 쓰고 말았다. 

 “저, 혹시 춘자씨 아니세요?”

 그녀도 다소 놀라운 듯 날 보더니 나를 이내 알아보는 모양인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정말 오랜만이네요. 이제 저를 아시겠어요?”

 나의 물음에 그녀는 지난 날 나를 사로잡았던 바로 그 미소를 띠는 것이었다. 난 그녀가 힘겹게 서 있는 것이 안쓰러워 불쑥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녀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말했다.

 “저 … 좀 앉으세요.”

 나의 권유에 그녀는 한참 동안 날 뚫어지게 바라보는 듯 하더니 자리에 앉았다. 난 다소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저 … 무거우실 텐데 … 제가 책 좀 받아 드릴까요?”

 내가 한 팔로 끼고 있는 댓 권의 두꺼운 의학 책을 보았는지 그녀가 오히려 더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고맙습니다. …… ”

 난 더 이상 말이 막혀 나오지 않았다. 궁금스러운 것도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은 데 왜 이리 말문이 꽉 막힌단 말인가? 하지만 난 그저 그녀의 모습만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의 의학 책을 가슴에 꼭 품고 있던 그녀. 잠시 후 그녀는 제일 위에 놓여있는 책장을 넘겨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고는 날 주시하는 것이었다.

 ‘난 내가 의대생이라는 것을 그녀에게 왜 숨겼을까? 진작 말해 주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녀가 싫어할 것만 같아서 그랬을 뿐인데.’

 하지만 그녀는 날 멀리 하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모처럼 만났는데도 몇 개의 정류장도 못 지나쳐 그녀가 갑자기 일어섰다.

 “고마왔어요. 전 여기서 내려야 해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그녀는 버스가 멈추자마자 내 곁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아니! 잠깐만! 혹시 시간이 있으시면 어디 가서 …”

 나는 그녀를 불러 세웠으나 그녀는 그녀 특유의 생긋 웃는 미소만을 남긴 체 차에서 내려가고 말았다. 생각 같아서는 그녀를 따라 달려가 붙잡고도 싶었지만 나에겐 선뜻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단지 인파에 휩쓸려 사라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만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버스는 두 사람의 속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정하게도 즉시 출발하고 말았다. 그녀도 인파에 묻혀 뒤를 한번 힐끔 쳐다보는 듯하더니만 이내 그녀의 길을 따라 가버리고 말았다. 그 후로는 영영 그녀를 만나보지 못했다.

 ‘그래, 내가 널 너무나도 무정하게 대했지? 그리고 너도 나완 어울리지 않는 사람으로 여겼겠지? 하지만 내 마음은 그게 아니었어. 잘 가거라, 여자여! 너의 길을 따라 … ’

 결국 그녀는 나의 마음속에 아쉬움만 가득 안겨주고 훌훌히 떠나버린 여자였었다. 하지만 그녀에게선 처음 만났을 때 보았던 말괄량이 같은 모습은 더 이상 찾아 볼 수가 없었다. 


.....................
우리 님들, 잘 감상하셨나요?
세상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모두가 자신에 맞는 짝은 아닙니다.
다소 아쉽게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고, 좀 더 알고 지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고 후회되는 사람들도 있고...
그래도 말괄량이 아가씨가 조금은 온순한 양처럼 변해서 다행입니다.
  우리 님들 모두가 오늘 하루도 즐겁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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