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 26. 13:26ㆍ나의 문학작품
우리 님들 이제 고란초가 K선생님의 제자가 되어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인물화의 모델에 얽힌 글을 올려드리겠습니다.
그럼, 우리 님들 즐겁게 감상해보세요.
어느 모델
(제2편)
- 고란초가 그림 배울 때 몰래 숨어서 그렸던 것으로 미완성의 인물화인데,지금도 미완성 상태인 이것을 컴퓨터 그림판으로 다시 그려본 것입니다.그런데 그림이 왜 이 모양이냐구요? 이것도 역시 미완성으로 놔둘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3개월 정도가 지나자 어느덧 내 그림도 제법 티를 낼 정도가 되었고, 하루하루 달라지게 발전되어가는 나의 그림에 그들도 충고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나 역시 자연스럽게 그들과 어울리며 서로의 그림을 놓고 지적도 해보고, 칭찬도 늘어 놓으며 서로의 발전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어느덧 그림의 크기도 점점 커져 켄버스 30호나 50호짜리 그림을 그려대기 시작했다. 한 번은 내가 생고생하면서 1주 이상 작업하여 제법 쓸만한 풍경 그림이 되어가고 있었는데, 스승님께서 밤늦게 들어오시더니만 애쓰게 그려놓은 그림을 나이프로 쫙쫙 긁어버리는 것이었다. 나도 은근히 화가 났지만 왜 그러시는지 그 이유를 몰랐다.
“그림을 이 따위로 그리는 게 아니네. 잘 보게.”
그 분께선 멍하니 서있는 나에게 한 마디 하시더니 유화 물감을 팔레트에다 듬뿍 짜서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양 손에 붓과 나이프를 쥐고서 날렵한 솜씨로 그림을 그려나가셨다. 한참 후에 그 그림을 벽에다 걸더니 내가 그 전에 그렸던 그림과 비교해보라고 하셨다. 과연 그림에 힘이 있고 색감마저 완전히 달라져 그림이 살아 숨 쉬는 것만 같았다. 그 분께선 마지막 충고를 아끼지 않으셨다.
“물감을 아끼지 말고 대담하게 그리도록 하게.”
그 이후로 내 그림에는 일체 손을 대시지 않았다. 만일에 손을 대게 되면 그 분의 그림이지 내 그림이 아니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밤 12시, 모든 작업이 끝난 후 화실 앞 길거리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소주도 딱 한 잔만 하도록 하고, 국수 한 그릇씩 시켜먹으면서 스승과 제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예술의 세계를 논하던 때도 바로 그 무렵이었다.
그 후 몇 달이 지나 인물화를 그렸는데 서로는 그림의 모델을 찾기 시작했고,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서로가 서로의 모델이 되어주는 것이었다. 제자들 중엔 남자도 있고 여자들도 3명이나 있었으므로 인물 크로키나 뎃상 연습은 많이 해볼 수 있었다. 간혹 제자들끼리 돈을 걷어 모델까지 구해서 시간제 수당을 주고 누드 그림을 그려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석고 뎃상을 주로 가르치고 있는 아래층의 화실을 들러보게 되었다. 그 곳에서 우연히 나의 눈에 확 띄는 한 여자를 발견하였다. 화실의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앉아 석고 뎃상에 열중하고 있는 아리따운 아가씨를 본 순간 그녀를 그려봤으면 하는 충동이 불같이 솟구쳐 오름을 느꼈다.
그렇지만 쉽사리 그녀가 나의 요구에 응해줄 것 같지가 않아 그녀 몰래 창문 뒤에 숨어 훔쳐보면서 스케치를 해야만 했다. 그녀의 양해를 구하고 떳떳하게 그렸어야 했건만 남의 모습을 도둑질하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러한 작업은 며칠간이나 계속되었고, 그 장소 그 시간이면 어김없이 그녀가 그 곳에 앉아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는 날 그녀 또한 전혀 눈치 채지 못했고 다른 사람들 역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차츰 차츰 그녀의 모습이 화선지를 가득 채워갈 무렵, 나의 마음속에 와 닿는 것만 같은 그녀의 따스하게만 느껴지는 정감이 나로 하여금 더욱 그림 속에 빠져들어 가게 만들었고, 어느 때라도 그녀의 모습이 보고프면 그림을 펼쳐들고 그림 속의 그녀와 무언의 대화를 나누며 그림을 점차 완성시켜 가고 있었다.
그녀를 그리고 있는 순간만큼은 나도 모를 행복감에 도취되는 듯했고, 마음 또한 설레기도 했다. 그녀를 그리는 그 자체가 내 생활의 일부이자, 내 삶 자체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었다.
그녀를 만나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말해주고 서로 정겨운 대화라도 나눠봤으면 했지만 웬일인지 썩 마음이 내키지가 않았다. 오히려 그녀 모르게 이러한 작업을 하는 것이 더 편할 것만 같았던 것이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나의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그 날도 그녀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과 설렘을 안고 화실 안을 들여다봤는데, 갑자기 그녀의 모습이 화실에서 자취를 감추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이게 어찌된 건가? 웬일일까? 지금 이 그림은 미완성인데 이건 어찌해야 하는가? 아! 야속한 여자여.’
그녀 몰래 나도 모르게 시작한 작업인지라 그녀가 누구인지, 어디서 살고 있는지, 무얼 하는 사람인지 신상에 관해서는 전무 상태였었다. 그렇지만 이미 시작한 작업을 중도에 포기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나는 안절부절못하며 몇 날 밤을 엎치락뒤치락 하였다. 뭔가를 이뤄보고자 하는 소망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듯 한 느낌을 지닌 체 말이다.
차라리 그녀의 양해를 구하고 나의 그림 모델이 되어달라고 부탁을 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하고 후회되기도 했다. 이러한 나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결국 그녀 모습은 영영 내 눈앞에서 사라져버려 결국 그 그림은 미완성 작품으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혹시나 하고 며칠 동안 화실을 기웃거렸지만 그녀가 떠나버린 화실을 바라보는 것은 나를 더욱 초라하고 비참하게만 만들고 있는 듯했다.
이때부터 난 본격적으로 내 그림의 모델을 구해보기로 결심했고, 그로 인해 지금까지 꽤 많은 여자들이 나의 그림 속을 가득 채워주는 모델로써의 역할을 다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그 당시 그렸던 미완성 그림을 바라볼 때마다 그녀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은 그녀가 나로 하여금 예술의 세계로 인도하고, 안내하는 선구자와 같은 역할을 해줬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제 다시 한 번만이라도 그녀를 만나 그녀의 모습을 그려볼 수만 있다면, 나의 모든 열과 성을 다하여 혼신의 힘을 아끼지 않고 그려낼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희망 사항에 불과할 뿐이다.
오늘 밤, 어찌 너의 그 아리따운 모습이 내 머릿속에 아련히 떠오르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지금쯤 너도 어느 이름 모를 남편의 아내가 되어 사랑을 듬뿍 받고 있겠지만, 그때 그 모습은 정말 나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었지. 그때 그 그림이 완성되었더라면 너에게 그냥 선물로라도 줄려고 했었는데 … 무명의 화가가 그린 그림일망정 너의 티 없이 맑고 고운 모습을 담고 있는 것만 같았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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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님들 잘 감상하셨나요?
이런 이야긴 제가 겪은 그림 작업에 관한 일화의 극히 일부입니다.
이 글로 저의 누드 그림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 뿐입니다. 우리 님들, 오늘 하루도 보람있게 보내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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