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으로 향하는 길 제1편

2011. 2. 26. 18:05나의 문학작품

 우리 님들, 사람은 언젠가 한 번은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러나 죽음을 의연하게 맞아드리고, 웃으면서 죽어가는 사람은 죽은 후에 맞이하게 될 내세(천국일 수도 있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저의 경험적인 글을 우리 님들께 문학작품 형태로 올려드리겠습니다. 제목이 다소 거창합니다만 과연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우리 님들 한번 즐겁게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제 글들이 제법 길어서 이 글은 2편으로 나누어 연재해드리겠습니다.


                         



 

             천국으로 향하는 길

 

 


                                                            (제1편)


 사람이 태어나 그가 하고 싶어하는 일을 다 해보고 건강하게 죽는다면 그 사람은 행운아일까, 아니면 신의 축복을 받은 자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내 생각엔 후자일 것만 같은데, 사람에 따라 판단 기준이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인생, 각양각색의 인생들.

 험난한 세상살이를 살아가며 그 속에서 뭔가를 꿈꾸고, 희망을 저버리지 않으며 내세를 그리워하는 인간들의 삶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바라는 내세란 무엇일까? 생존해 있는 동안 겪어 보지 못한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그들은 내세에서 얻고자 할텐데, 그런 곳이 어느 곳에 있단 말인가?

 종교를 통해서 그 길을 찾으려고도 할 것이고, 어떤 믿음을 통해서 그 길을 갈구하려고도 할 것이다. 또한 인생을 후회 없이 자기의 고귀한 생명까지 바쳐 가며 세상을 살다가 죽음 직전에 그 길을 찾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길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천국에 이르는 길이다. 이 길은 누구나 한 번쯤은 꿈을 꾸며 선택받길 원하고 있지만 말처럼 쉽지만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어떤 경우엔 순간적으로 이뤄지기도 한다.

 성경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처형을 받을 당시 그의 옆에는 두 사람의 강도가 같은 형을 받고 있었다. 이 강도들도 그 동안 나쁜 짓을 많이 했을 것이고,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아 왔을 것이다. 그렇지만 마지막 죽는 순간 천국에 들어가는 강도가 한 사람 탄생하지 않았던가?

 “네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더냐? 넌 누구든지 구원할 수 있다고 했지? 그럼 어디 나를 구원해 봐라.”

 예수 옆에서 고통 때문에 얼굴이 일그러지며 한 강도가 예수를 조롱하듯 소리쳤다.

 “너는 하늘이 두렵지도 않느냐? 강도 짓을 하고도 어찌 구원받길 원하느냐? 이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네가 모르느냐? 주여! 저의 죄를 용서하시고 당신의 나라가 임하실 때 저를 부디 기억해주소서.”

 그는 이 말 한 마디로 참회와 용서가 이루어져 결국 천국으로 들어가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나는 종교인도 아니요, 그렇다고 종교를 부인한 적도 없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요즘 목사나 신부들이 장담하는 구원을 종교인만이 할 수 있는 것인양 여기는 것은 너무 성급한 판단이라고 생각된다. 즉 종교인만이 다른 사람을 모두 다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여겨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제 소개할 나의 이야기가 그걸 뒷받침해 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내가 소아과 의사가 되어 목포에 있는 종합병원인 C병원으로 홀홀단신 내려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25년전 일이었다. 그 당시의 나의 의사 생활이란 명색이 소아과 과장이란 직함만을 가졌을 뿐, 내근의(인턴)보다도 더 극심한 고생을 사서하게 되었다. 그 때 소아과에 근무하고 있는 의사라곤 나 혼자 뿐이었으니까 말이다.

 난 이 병원에 오자마자 24시간 병원 내 대기 생활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밤이면 응급 환자 때문에 응급실에서 대기하며 계속해서 몰려드는 환자를 가료하느라 잠 한숨 자지 못했고, 아침이면 병실 회진에다 입 퇴원 환자에 대한 처방, 그리고 이어지는 온 종일 외래 환자의 진료, 오후 회진 그리고 또다시 응급실 근무가 계속해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간 하루 세끼 식사도 정시에 해본 적이 없고, 휴식이며 잠도 제대로 자본 적이 없는 분주한 생활의 연속, 또 연속이었다. 그래도 1주간은 체력전으로 이빨을 악물며 버티다 급기야는 침대에 쓰러져 코피를 쏟아내야 했던 정말이지, 의사로서는 해도 너무 한다는 고된 근무 일정을 그래도 오기로 버티며, 내가 아니면 누가 이런 환자들을 돌보랴 여기고 끝까지 참아 가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런 나를 아주 죽여 놓듯 환자들마저 인산인해였고, 종합병원이 아니랄까봐 어찌해 중환자들만 골라서 밀려드는지 정말로 감당하기 힘들 뿐이었다.

 1983년, 그 해 봄철엔 난데없이 홍역이 유행하더니만 각종 합병증들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소아과 교과서에 나오는 온갖 홍역 합병증 환자는 모조리 경험하였고, 합병증들이 어찌나 극심한지 입원 수속을 하러 내려가던 환자가 중도에 호흡 정지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여름엔 일본 뇌염이 모조리 휩쓸고 지나가, 목포와 인근 도서 및 주변 지역에서 60 ∼ 70명에 가까운 사경을 헤매는 환자들이 몰려와, 입원병실이 없어 일부는 복도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입원시키면서, 시내에 있는 얼음 공장의 얼음은 모조리 박살내가며 한 아이라도 더 살려내려고 발버둥을 쳤던 그 때가 지금도 내 눈에 선하게 보이는 것만 같다.

 그 당시 나에게 보이지 않는 희생이 강요되었을망정 나는 의사이기 때문에 아무리 고되더라도 웃으며 그 일을 수행해야만 했고, 그로 인해 나도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되었으니 정말 보람된 생활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의 한 몸이 희생되더라도 날 찾고 나만을 의지하는 환자들에게 내 자신이 뭔가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가슴 뿌듯함을 느끼며, 피곤마저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당시 ‘나만 편하면 된다. 너는 죽든지 살든지 알아서 해라.’는 인심 고약한 의사도 있었던 것 같다.

 나 홀로 이 병원에서 죽을상을 치고 있는 것을 강 건너 남의 집 불구경하듯 약까지 올려가며 이곳에 오겠다던 한 의사가 난데없이 돈에 현혹되어, 그 놈의 돈이 무언지 모르지만 돈에 팔려 가는 의사도 다 있었으니 말이다. 이건 의사의 허물이니 그만 덮어두기로 하자.

 그 무렵 나에게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환자가 한 명 있었다. 그 아이의 집안은 상당히 빈곤하여 애들을 학교에 보낼 만한 처지가 못 된 듯했지만, 그는 초등학교 2학년에 재학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앨 처음 보았을 때 나의 눈엔 유별나게도 창백하고 허약하다고만 느꼈을 뿐 별다른 신체상의 결함은 발견치 못했다. 그 아인 남아였고 그 아래에 3살쯤 어린 여동생이 있었는데 그 애도 같은 증상을 보였다.

 큰 아이는 9세, 이름은 장 인성이었고, 작은아이는 6세, 장 현옥이었다(이 글에서는 이들 환자의 가명을 사용하였음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를 입원시켜 놓고 나서 빈혈의 원인 조사에 들어갔다. 그러잖아도 백짓장처럼 허연 그 아이의 가냘픈 팔목에서 상당량의 피를 뽑아내야 했고, 급기야는 골반뼈를 골수 천자용 침으로 깊숙이 찔러 골수를 빼내어 검사를 시행했다. 이와 같은 조치는 모두 다 그를 살려내기 위한 서곡에 불과한 것이었다.

 검사 결과는 병원 검사실과 대학 병원 병리 검사실에서 동시에 나왔는데 재생불량성 빈혈이었다. 작은아이도 거의 같은 시기에 입원하여 진단 역시 똑같이 나왔다.

 “아이고! 하나님, 우리 애들이 어찌하여 이런 병에 걸렸단 말인가요? 정말 믿을 수 없어요. 우리 애들이 모두 천벌을 받아서일까요?”

 아이의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없는 상태였는데, 애들의 어머니가 나의 진단 결과를 듣고 나더니 넋이 빠진 듯 허탈하게 한숨만을 내쉬며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때부터 아이들의 투병 생활은 시작된 것이다.

 선천성 재생불량성 빈혈이란 골수 자체가 여러 가지 조혈 성분이 부족하여 정상적인 숫자의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등을 만들어 내지 못함으로써 결국 패혈증 같은 세균 감염을 초래하게 되어 사망에 이르게 된다. 또한 여러 부위의 출혈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뇌출혈이나 장출혈로 사망하기도 한다. 치료라곤 스테로이드요법 등 몇 가지가 있으나 그 효과는 확실치 않고 골수 이식도 성공률이 매우 낮다.

 이런 병에 걸린 그 아인 결국 천운이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이런 환자는 거의 15세를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 말이다. 이제부턴 이 아이를 어떻게 하면 오랫동안 살 수 있게 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결국은 대증요법으로 부족한 피를 수혈하였고, 남성 호르몬제인 안드로젠과 스테로이드의 병용 요법을 시행해 보기로 했다. 이 아인 다소 강건했던지 치료에 반응을 보여 약간 호전되는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고, 입원한지 1주 만에 퇴원하여 다시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이 아이의 보호자는 다소 흡족한 표정을 지었지만 다시 재발될 것이란 말에 실망 어린 눈으로 날 바라보는 것이었다. 결국 이 아이는 거의 1∼ 2개월 간격으로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이러한 병은 거의 불치에 가까울 것이다. 따라서 그 아이의 앞날이 문제였다.

 지금쯤 부풀은 희망과 꿈을 안고 살아가야 할 이 아이에게 어떻게 대처해야만 할 것인가? 비록 시한부 삶을 살망정 이 아이에게도 꿈을 심어 줘야만 했다.

 ‘결코 절망을 가져선 안 된다. 너도 너의 하얀 꿈을 펼쳐야만 해. 비록 내일 너의 생명이 다 한다 할지라도…’

 난 그를 위한 모든 나의 결심을 굳히며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난 그가 입원되어 있는 병실을 찾아가 간단한 진찰을 마친 후 그와 가벼운 말들을 나누었다.

 “인성이, 너 기분이 좀 어떠냐? 좀 나아진 것 같지 않아?”

 “선생님, 이제 훨씬 더 좋아진 것 같아요.”

 그 앤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 이제부턴 너도 네 병이 나아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내 말을 잘 들어야만 한다. 알겠지? 사실 네가 가진 병은 아주 나쁜 병이라곤 할 수 없거든. 앞을 못 보는 장님보다는, 소리도 못 듣는 귀머거리보다는, 아니면 바보 같은 정박아 보단 훨씬 가벼운 거니까 말이야. 어때, 넌 그렇게 생각되지 않니?”

 “제 생각도 그런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니 다행이구나. 그럼, 인성인 이제 커서 뭘 하고 싶어? 사람이란 앞날에 뭔가를 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어야만 하거든.”

 “아직 생각 안 해봤어요.”

 “그럼 이제부터라도 곰곰이 생각해 보렴. 그래야만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니까 말야.”

 이 아이가 얼마 안 있으면 죽게 될 것이란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가 살아서 숨 쉬고 있는 동안만큼은 희망을 저버리지 않도록 나의 온갖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만 했다.

......................................
우리 님들, 잘 감상하셨나요?
이제 이 아인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제2편을 기대하세요.
  우리 님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시길 빕니다.
 

'나의 문학작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삶은 옥수수 두 개  (0) 2011.02.26
천국으로 향하는 길 제2편  (0) 2011.02.26
난인유감  (0) 2011.02.26
어떤 모델 제2편  (0) 2011.02.26
어떤 모델 제1편  (0) 2011.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