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 26. 18:10ㆍ나의 문학작품
우리 님들, 물건을 사면 응당 돈을 지불해야만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환자를 진료한 의사는 환자에게 당연히 진료비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무일푼인 경우는 어떻게 해야만 할까요?
지난 이야기 중에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글을 하나 소개해드리겠습니다.그럼, 우리 님들, 즐겁게 감상해보세요.
삶은 옥수수 두 개
의사는 치료한 환자에게 정당하게 치료비를 받아야만 하리라는 생각만 했었지 의사로써 할 일을 제대로 못했던 적도 있었다. 그건 의사가 이래서는 안 되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었던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시절 무의지역인 보건지소에 6개월간 의무적으로 파견근무를 하고 있을 때였다.
보건지소의 비좁은 진찰실로 칠순이 넘은 듯한 할머니 한 분이 어린애를 겨우 손으로 안고 나타났다. 아이를 보니 콧구멍이 벌렁거리고, 숨소리마저 그르렁거리면서 고열에다 기침, 호흡까지 헐떡거리는 것으로 봐서 한눈에 폐렴이었다. 사실 진료비를 비싸게 받으려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 당시 무의지역이라 항생제는 구하기도 어려웠고, 금덩이가 아깝지 않을 만큼 귀하기도 했다.
여기저기 다 떨어져 누더기가 된 옷을 걸친 그 노인, 돈 한 푼 있을 리 없는 그분은 코를 쑥 빠뜨린 체 어린애를 안고서 말없이 한동안 앉아있더니만 갑자기 나의 팔에 매달리며 간청하는 것이었다.
“의사 양반, 내 하나 밖에 없는 손주 새끼, 병 좀 고쳐주구려. 당장엔 돈 한 푼 없지만 돈이란 없다가도 벌 수 있는 것, 생기는 즉시 달란 대로 다 줄 테니 제발 내 새끼 좀 살려주오.”
그러면서 하염없는 눈물과 하소연이 뒤범벅이 되어 굽실거렸다.
보아하니 땡전 한 푼 없어보이고, 애마저 위중하여 잘못하면 진료비는 고사하고라도 치료해주고 뺨 맞지 않을까 우려되어 한참 망서리다가, 아이가 너무도 불쌍하여 일단 치료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그 아이는 거의 1주 정도 보건지소에 있는 조그만 단칸방에다 입원시켜놓고, 힘들게 항생제 등을 구해와 밤낮으로 치료한 결과 다행히 완쾌되었다.
“의사 양반, 정말 고맙소. 이 은혜 평생 잊지 않으리다.”
그런데 이 한 마디를 마지막으로 그 노인은 한동안 볼 수가 없었다.
한 열흘쯤 지났을까, 갑자기 그 할머니가 진료실로 찾아왔다. 나는 그때 다른 환자를 진료하고 있었는데, 할머니는 무언가를 허리춤에서 꺼내더니 진료실 앞에다 살그머니 내려놓고는 부끄러운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환자 진료가 끝난 후 밖으로 나가보니 무언가를 신문지로 곱게 싸서 내려놓았는데, 그걸 펴보니 손때가 까맣게 묻어있는 삶은 옥수수 두 개였다. 사실상 이건 개도 먹지 않을 것만 같은 옥수수였고, 이걸 먹었다간 배탈이라도 날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난 그걸 차마 버릴 수가 없었고, 그분의 정성이 담긴 옥수수로 생각하고 한 알씩 떼어 입으로 씹으며 그 노인을 떠올렸다.
그날 저녁 나는 그 노인에게 고마웠다는 말이라도 전해주고 싶어 그 집을 수소문하여 찾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가서보니 정말이지 여기도 사람이 사는 집인가 싶었고, 쓰러져가는 오두막집 방 한 켠에는 할머니가 굶주린 배를 움켜쥐며 조용히 누워있었는데, 그 곁에서 속도 모르는 어린애가 밥을 달라고 울고 있는 것이었다. 툇마루에 있는 쌀독을 들여다보니 거기엔 쌀 한 톨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옥수수는 적어도 이분에겐 억만금과 같은 것이었으리라. 이분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면서도 차마 아껴두고 먹지 못했던 그 옥수수를 치료에 대한 답례로 삶아서 나에게 가져왔던 것 아니었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 정도였고, 이런 노인에게 그간의 치료비를 받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니 내가 해도 너무 했다는 후회마저 이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한 채 진료실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고, 쏟아져 내리려는 눈물을 참으며 그 노인을 도와주기로 결심했다.
그날 밤 내가 머물고 있었던 하숙집 주인에게 부탁하여 쌀 한 말 값을 지불하고 쌀부대에다 담았다. 그리고는 한 말이 든 쌀부대를 들고 다시 그 노인 집으로 달려가, 툇마루에다 조용히 그걸 내려놓고는 살그머니 빠져나왔다.
그때서야 내 마음에 맺힌 응어리가 풀리는 것만 같았고, 미안했던 감정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재차 진료실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얼마나 가벼웠는지 모른다.
바로 그 할머니는 내가 무의촌 근무를 마치고 서울로 다시 올라가던 날 동구 밖까지 맨발로 걸어 나오며 나를 배웅해주셨던 유일한 분이셨다.
.................................
우리 님들, 잘 감상하셨나요?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돈까지 받으려 했으니...
우리 주위에는 이렇게 어렵게 살아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모두가 관심을 가진다면 좀 더 나은 사회가 될 수도 있을 것만 같습니다. 우리 님들, 모두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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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고난 후에 쓰신 야후 벗님들과의 대화)
가엾은 할머니 때문도 있지만,
고란초님의.. 가엾은 할머니,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그 마음에 감동했습니다.
저도 올해가 가기전에
구세군 자선냄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게 채워볼까 합니다..
- Catalina 2008.12.27 02:34
- 고란초님. 흐~
이글을 다 읽기도 전에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네요"~_~.
지금은 그 할머님이 세상에 안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님께서 쌓으신 선업은 님의 후손들의 복으로 돌아갈거예요"
그것은 보상의 순리이기도 하겠지요"
너무도 가난한 우리 나라였는데.
그래도 그때는 인각적인 순수함이 많았습니다.
저도 님의 감동글을 늘 보고 듣겠습니다.
울 고란초님께 늘 건강의 축복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그래도 카타리나는 다행히 일이 바빠서 만족합니다만.
이곳에서도 구세군남비에 조금의 성금을 넣었고.
교회에서 헌금으로 내었습니다.
조우커님께서도 그러하시리라 믿습니다.
한국에서도 늘 그랬지만...요"
두 분께 더 많은 축복이 있으시길 기원합니다.
별로 좋은 글이 아니라서 스크랩을 금지시켜 놨거든요.
님께서 원하신다면 스크랩이 되도록 바꿔놓겠습니다.
화석연료절감님, 항상 찾아주시고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드리고
즐거운 주말 맞이하시길 빕니다.
그래서 지금도 고란초님은 행복하게 사실 거구요.
축복 그 자체입니다.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금년 마지막 주말, 휴일을 행복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저는 의사들도 이런 마음으로 환자를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써본 것이었는데...
사실 이 할머니가 제 인생의 길을 많이 바꿔놓아 고맙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왜 좀 더 많이 도와주지 못했을까 하고 후회되기도 했구요.
전 지금도 옥수수만 보면 그 할머니 생각이 나곤 합니다. 지금은 저 세상에서 내려다보고 있겠지만...
카타리나님, 님께서도 많은 자선을 하고 계셔서 보기에 좋습니다. 항상 행복하셔야만 합니다. 카타리나님.
- 산성님, 바쁘실 텐데 오셨군요. 저도 정말 반갑습니다.
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자선은 스스로 우러나서 베풀었을 때 베푼 사람이 더 기쁨을 느낍니다.
좀 더 많이 베풀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남에게 거저 주고도 기분 좋은 것이 바로 이거 아닐까요?
이 글도 저의 어리석었던 생각만 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만..
산성님, 저의 시덥지 않은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즐겁고 행복한 주말 맞이하시길 빕니다. - Catalina 2008.12.27 14:17
- 지금 다시 읽으면서 또 웁니다.흐~
고란초님"님께서도 지난 시절에 대한 회한으로
좀더 잘 해주시지 못했을까~하신점이 가슴을 울리네요"
지금 두 분의 이야기는 역사속으로 사라지지만
천사 할머님과 천사 의사이십니다. - Catalina 2008.12.27 14:20
- 그리고
어제 새벽3시에 잠들었다가
아침 7시경에 일어나서
이 글을 읽으면서 울었습니다.
아침먹고 이웃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서
또 울었습니다.눈물이 나와서 훌쩍거리면서요"
그 아주머니도 또 울면서 자기가 알고 잇는
또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울고~ㅎㅎㅎ
아침 댓바람에 아름다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주머님의 말씀이 정말 복 받으실 의사님이시라 합니다.
이런 작은 일을 너무 크게 평가하시는 것만 같아서요.
'쉰들러 리스트'에 나오는 독일 사람 쉰들러는 그 많은 유태인들을 자기 돈을 모두 다 털어 구해주고도 마지막에 자기 반지와 차를 팔았더라면 몇 명 더 구했을 텐데 그렇게 못 했노라 후회했었지요.
하지만 전 그렇게 하지도 못했고, 오히려 돈까지 받으려고 마음 먹었던 어찌 보면 죄인입니다.
오히려 님께 용서를 구해야만 할 것입니다.
같은 공감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고란초님."
할머님의 일이 "어쩌면 저의 일 일수도 있구여"
또 그 시절엔 의사로서도 그 값을 당연히 받으셔야 하는데.흐~
그 다음은 ~생각하기도 싫습니다.가난이 죄였지요?"
하나님.어찌 그리 할머님께 모진 가난을 주셨나요!? 묻고 싶습니다.
이것은 님의 문학작품이 아니라~삶의 처절한 시대를 보는 듯합니다.
다시는 그런 세상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고란초님."
또 다시 눈물이 흐르네요" ~_~.
하두 눈물을 흘러셔서 태평양이 넘칠것 같습니다 고란초님."ㅎㅎㅎ
이젠 안 울어야지.....흐~ㅎㅎㅎ
고산님도 우셨다더라구요.
이젠 웃으면서 사세요. 카타리나님, 제가 좀 슬픈 글들을 몇 개 더 올려놨었거든요. 또 우실려나?
어느 아기의 외침, 천국에 이르는 길, 내사랑 수미야, 토씨 이야기 등등..
전 그냥 문학작품으로 한번 써보았을 뿐인데...
카타리나님, 방문에 너무 감사드리구요,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시길 빕니다.
지금은 제발 그런 사람 없기를 바라며 .
아름다우신 영혼을 가진 고란초님 존경합니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라 지금은 기억이 희미해졌네요.
거의 30년 전이니 이 글에 나오는 할머닌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 같습니다.
애고~ 이거 저를 부끄럽게 만드시네요.
아직도 그렇게 되려면 멀었는데...
바람꽃님,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날만 있으시길 간절히 비옵니다.
참 고운 마음을 가진 선생님이십니다
짧은 인생 여행 빈손으로 떠날테지만
잔득 가지고도 베고픈 자들 밥그릇까지 뺐으며 사는 졸부들은
이런 글을 읽어 보았을까요 ?
이런 고운 영혼들이 있음을 알까요 ?
제가 참가해 있는 단체에 봉사자는 자신집 때거리도 없는데
아끼지않고 남돕는데 앞장서드군요
대만사람들 착한 심성 저는 자주 감동 합니다
더불어에 아름다움 나눔에 고운 마음
같은 시대 같이 왔다가는 나보다 더 아픈 자들에 연민
좀더 많은 사람들이 어두움 곳에 생명에 불을 조금 비추어
춥고배고푼 이웃에게 말로하는게 아닌 실질적 사랑을 나누며 살앗으면 합니다
저도 따로 올려드리겠습니다.
님께서 보신 눈이 정확하십니다.
갈수록 있는 자가 더 가지려는 세상이니 다소 불공평하지요.
서로 돕고 서로 즐겁게 살 수만 있다면 정말 좋은 나라가 될 수도 있는데... 애효~
전 사실 이 글을 안 쓰고 싶었거든요.
별스런 일도 아닌 걸 내놓은 것만 같아서 심히 부끄러울 뿐입니다.
그래도 우리 이웃을 살피는데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시길 바라는 마음이지요.
바람꽃님, 항상 건강하시길 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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