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 26. 13:14ㆍ나의 문학작품
우리 님들, 이제야 드디어 추월산에 오릅니다.
그 당시 등산엔 왕초보였던 고란초가 어떻게 등산을 하는지 잘 보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여기서 이 글의 여주인공이 본격적으로 등장할 겁니다.
그럼 우리 님들 즐겁게 감상하세요.
추월산의 추억
(제4편)
추월산 등반
2
차가 어느 샌가 담양읍에 도착했다. 그런데 완행버스라서 그런지 시골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더니 너도나도 올라선 통에 차가 콩나물시루같이 대만원이 되어버렸다. 오늘따라 시골 장날인지 이 사람 저 사람 거기다가 온갖 동물들도 같이 끼어들어 잡탕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왔을까? 아직도 목적지는 나타나려고 생각지도 않고 요놈의 차가 가다가 서고 또 가다가 서면서 내리는 사람보다는 타는 사람이 더 많으니 이제부턴 괴로운 여행이 되고 말았다.
코를 찌르는 쾌쾌한 냄새하며, 어느 유식한 시골 사람이 실례를 했는지 모를 메탄가스 냄새에다가 어떤 여자의 웩하는 소리와 동시에 풍겨오는 역겨운 냄새까지 모조리 콧속으로 몰려드니 정신마저 아찔해지는 것만 같았다.
이런 와중에서도 자리에 앉은 한 친구 녀석이 코까지 뜩뜩 골며 자빠져 자고 있는 게 아닌가? 어서 빨리 목적지가 나타나주었으면 하고 나도 모르게 기도까지 해댈 정도였다.
어느덧 나의 눈앞에 우람하게 전개되는 산이 나타났다.
저곳이 바로 추월산. 나는 목적지에 하차하자마자 심호흡부터 해댔다. 그동안 차에서 시달린 걸 생각하면 다시 기절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여자들은 전혀 그런 기색이 없으니 나만 혼자서 과민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나 의심받기 안성맞춤이었다.
‘저 여자들은 콧속이 썩어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그 냄새를 향수 냄새로 느꼈는지도 모르지. 하기야 샤넬 No5같은 향수도 분변 냄새가 들어있다니깐 적응이 잘 되어서 그럴 거야.’
이것저것 생각하며 좁은 도로를 따라 산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산 아래 개울가에 이르러 다른 여대생들을 만났다. 그런데 그녀들과 우리 일행의 여자들이 서로 아는 체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들도 같은 여고 동창생들로써 같은 교회에 다니는데, 오늘 야유회겸 안식 기도를 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했다.
그들과 헤어진 후 우리 일행 8명은 등산로 입구에 다다랐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등산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여자들에게 짐을 지게 할 수는 없어 남자들이 각자 배낭에 먹고 마실 것을 나누어 담아 챙긴 후, 각자 조를 짜 산 정상에서 일단 만나기로 약속했다.
추월산, 오전 11시.
산 정상 부위에 깎아내린 듯한 바위들이 층암절벽을 이루고 있었고, 울긋불긋 물들기 시작하는 단풍들이 산에다 색동저고리를 입혀놓은 듯 곱게 단장하고 있었다. 10년 먹은 체증이 싹 내려갈 것만 같은 맑은 공기, 교향악을 방불케 하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산속 나뭇가지 사이를 한가로이 넘노는 다람쥐들, 계곡을 찰랑거리며 흘러가는 수정 같은 물 등등 이 모든 것이 산 속에서만 느껴볼 수 있는 정취일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산을 멀리한 것은 사실이나 이런 정취를 맛볼 수 있다는 것쯤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실제 산에 와보니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고 그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나는 신 정숙이란 여자와 한 조가 되었는데, 두 사람 모두가 등산을 잘 못하는 데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았다. 울퉁불퉁한 돌멩이가 주욱 깔려있는 가파른 산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50m도 채 못 올라가 숨이 차오르니 큰일났다싶었다.
다른 조들은 마치 등산가들처럼 잘도 올라가는데 도무지 그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맨 뒤에 처져 허우적거리다간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는 먼저 간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어이! 좀 쉬었다 가세! 이거 원, 숨이 차서 나 죽겠어.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토끼처럼 올라갈 필요가 뭐있어!”
그러나 그들은 나의 말은 듣는 시늉도 하지 않고, 씩씩하고도 건강한 체력을 여자들에게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서지도 않고 계속 오르면서 들으라는 듯 소리쳤다.
“이 친구야! 벌써부터 그렇게 빌빌 싸려면 왜 산에 왔어? 발 씻고 가서 잠이나 자!”
그러자 그 옆에 가던 한 친구가 입가에 헬쭉 미소를 짓는 것 같더니 냅다 한 소리를 질러댔다.
“자넨 체력이 그래 가지곤 밤에 여자한테 안 쫓겨날는지 모르겄어.”
그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키득키득 거리는 소리가 나더니만 단체로 손을 입으로 가져가는 것이었다.
‘저런 썩을 친구 말하는 것 좀 봐! 그럼, 어디 한번 나하고 겨뤄볼 거야? 누가 먼저 쫓겨나는지 실험을 해보자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옛날부터 말뚝 박기 선수라고. 땅에다 제일 깊이 말뚝을 박았으니까 말씀이야. 지금도 거시기라면 아직 경험이 없긴 하지만, 여자를 아찔하게 만들 자신이 있으니끼니 거기에 대해선 일체 언급을 피해줬으면 좋겠어, 알겠어?’
난 속으로 조소를 머금은 체 그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러나저러나 이거 큰일났다싶은 것은 나의 짝마저 나보다 더 빌빌거리는 것에 있었다.
‘저런 여자를 어떻게 산 정상까지 모시고 갈 수 있단 말인가? 아이고! 나도 죽을상인데 엎친 데 덮치고 있으니…’
“자! 그만 쉬고 우리도 올라가 봐야죠.”
난 그녀에게 올라갈 것을 권유했다. 그런데 그녀는 일어나려고 생각지도 않았다.
“뭐, 빨리 올라간다고 상주는 것도 아닌데 우리 조금만 더 쉬었다 가요.”
그녀는 오히려 나보다 한 술 더 뜨는 것이었다.
‘얼씨구! 지화자! 그 다음이 뭐지? 하지만 안 돼! 이러다가 미아로 신고가 될지도 모른다고.’
나는 가기 싫어하는 그녀를 위해 모든 짐을 혼자 짊어지는 기사도 정신을 발휘해야만 했다. 결국 그녀의 짐이라곤 등산용 스틱과 물통 하나뿐이었다. 그러자 마지못해 나를 따라 나섰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땀은 비 오듯 하고 산길마저 왜 이다지도 험한지 나도 죽을 맛이었다.
‘대우, 그 놈이 우릴 버리고 떠날 때 나도 집으로 줄행랑을 쳤더라면 이런 고생은 면할 수도 있었는데. 으이구! 죽겠다, 죽겠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다 나왔고 차라리 그녀를 업고 가는 것이 더 나을 것만 같았다. 그녀의 얼굴 표정은 피로와 고역으로 다소 일그러진 것 같았고, 혼자 올라가는 모습이 너무나도 가련스러워 보였다. 그런대도 나의 부축을 받으려고 하기는커녕 옆에 오는 것마저도 싫어하는 듯했다.
‘어디 손 좀 잡아달라고 안 하는가 두고 보자. 몸끼리 서로 닿으면 달아지나?’
난 속으로 투덜거리며 그녀를 앞세우고 한 발짝씩 힘겹게 올라가고 있었다. 앞에 간 친구들은 이미 어느 곳으로 날아갔는지 어떤지 모습을 감춘 지 오래되었다. 산 위로 올라갈수록 자갈과 돌부리들이 즐비했고 급경사가 많아 나 같은 초보자가 등산하기엔 너무나도 힘겨운 산이었다.
온 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된 체 한참을 힘겹게 올라가고 있는데, 나보다 서너 발 앞서 가던 그녀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거꾸러지더니 가파른 산길 아래로 미끄러지며 굴러 내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한눈을 팔며 가다가 뾰쪽 튀어나온 돌부리에 발이 걸렸던 모양이다.
“앗! 정숙 씨! 조심해요!”
한 마디 외치며 나는 순간 그녀를 붙잡았는데, 미끄러져 내려오는 속도가 너무 빨라 나도 동시에 넘어지면서 산길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나는 굵은 나뭇가지를 움켜잡아 겨우 정지했는데, 그녀는 별로 육중해 보이지도 않았건만 드럼통 굴러가듯 잘도 미끄러져 내려가 나보다 4~5m쯤 더 아래쪽에서 멈춘 것 같았다. 난 그녀가 걱정되어 순식간에 그녀에게 달려 내려갔다.
“조심하시지 않고. 어디 다치지 않으셨어요?”
“괜찮은 것 같아요. 제 걱정은 마세요.”
그녀는 애써 입가에 미소를 지으려고 했으나, 일어나 한 발짝 내딛더니 아픔의 비명을 지르며 다리를 절뚝거렸다.
“저런, 많이 다치셨군요.”
난 그녀가 이젠 정말로 걱정되었다.
‘이제부턴 어떡해야 하나? 난감하구만, 이거. 이럴 때 저 녀석들이 있어야 하는데 놔두고 갈 수도 없고, 그런다고 업고 그 먼 거리를 평지도 아닌 가파른 산을 어떻게 올라간단 말인가? 으휴! 지지리도 여복과는 담을 쌓은 놈이 바로 나 아닌가 모르겠어.’
어느 곳에 있는지도 모르는 친구들에게 무작정 이 여자를 놔둔 체 연락을 하기위해 간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한 마디로 진퇴양란이었다. 그러나 올라가긴 가야 할 텐데 정말로 난감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그녀에게 의향을 떠보았다.
“저… 제가 부축해드릴게요. 다시 내려갈 순 없잖아요?”
“공연히 저 때문에… 너무 죄송해요. 저 혼자서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 제 걱정은 하지마세요.”
그녀는 한사코 부축받길 거절하며 혼자서 몇 걸음 걸어 올라가는 듯싶더니 다시 쭈그리고 앉아 버렸다.
“아얏! 으으, 아퍼! …”
그녀의 절규에 가까운 비명 소리가 자연스럽게 입가로 새어나오는 듯싶더니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다릴 삐어도 단단히 삔 것 같았다.
“그것 보세요. 혼자선 안 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자! 제가 부축할 테니 제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
나는 그녀 가까이 다가가 한 팔로 그녀의 몸통을 휘어잡고 그녀로 하여금 한 팔로 나의 어깨와 목을 감싸도록 했다. 그리고는 그녀의 몸을 들다시피 하며 다시 산길을 따라 산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도 부끄러운 듯 얼굴이 붉어졌으나 점차 나에게 스스로 몸을 기대어왔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건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힘이 팔려 나 혼자 몸도 가누기 힘들었는데,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나는지 그녀를 부축하며 올라가는 데도 전혀 힘이 들지 않았다. 여자를 보호하려는 나도 모를 본능 때문이었으리라.
난생 처음 여성을 이렇게 껴안고 있으니 기분마저 흐뭇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의 부드럽고 향긋한 피부가 자연스럽게 나와 접촉되었고, 특히나 그녀의 풍만스럽고 탐스럽기도 하며 솜털보다도 더 보드라운 젖가슴이 나의 몸에 와 닿으니 짜릿한 느낌마저 드는 것이었다.
‘어휴! 나 오늘 미칠 것 같애. 이런 기분은 정말이지 처음 느껴보는 거라구. 히히! 과연 좋구나. 그러니까 여자가 남자에겐 꼭 필요한 거로구나. 이제야 그걸 깨닫게 되다니, 나도 어지간히 숙맥 같은 놈이었던 것 같애.’
그녀로부터 풍겨오는 모든 것에 취하여 있는 것도 잠시였고, 하늘을 날을 것 같은 느낌도 점점 사라지더니 둘만의 괴로운 여행이 다시 시작되었다. 얼마 가지 못해 내 입에서 쉬자는 말이 술술 나왔다. 오히려 그녀가 조금만 더 올라가고 나서 쉬자고 할 판이었다.
거의 기어가다시피 하며 한 발자국씩 산 위로 올라가야 했는데, 이게 등산의 묘미인지 생고생을 사서하려고 왔는지 감별이 안 되었다. 어찌나 자주 쉬면서 올라갔던지 이러다간 산 속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겁이 날 정도였다.
‘이런 젠장할! 그 누구 날 도와주는 사람도 없나? 이 친구들은 도대체가 어느 곳에 자빠져 있는 거야? 그래도 이 여자 몸이 가벼워서 다행이지, 백 금녀 같은 여자라면… 어휴! 생각하기도 싫어. 좌우지간 이 놈의 짐은 왜 이리 무거운 거야? 짐이라도 없으면 차라리 업고 올라가는 게 더 나을 텐데. 으이구! 내 팔자야!’
그녀가 결국 나에게 짐이 되는 꼴이어서 나도 모르게 투정이 다 나왔다.
“힘드시죠? 저 때문에 고생시켜드려 죄송해요.”
흙먼지와 땀으로 얼룩져 고운 얼굴이 야생마처럼 되어버린 그녀,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비단결보다도 더 고운 것 같았다.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나에게 힘을 북돋아주는 원동력이 되었고, 날 끔찍이도 생각해주는 것만 같은 그녀가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어느덧 제일 꼴찌에다가 제일 늦게 산 정상 부근까지 오르는데 성공했다. 가까운 곳에 우리 일행들이 모여 있는 것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녀도 약간 나아졌는지 제법 발을 잘 놀려대 행군에 보조를 잘 맞춰주었다.
바위산의 계단을 오르고, 온 몸이 오싹해지며 현기증 나는 낭떠러지 가를 지나 산허리를 돌아가니 조그마한 절간이 나타났다. 바로 그 곳에 일행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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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님들 잘 감상하셨나요?
서서히 뭔가가 이뤄지고 있는 것 같죠?
그럼 제5편을 기대하세요.
우리 님들, 새로운 주일의 시작입니다. 항상 즐겁고 알차게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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