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1. 11. 15:02ㆍ화석·청천리님 방
이 시대에 꼭 알아 두어야 할 진실입니다... 노인들에 대한 오해!
2010.03.31 03:21 | 님들의 휴게실 | 화석
불행하며 성적으로 무기력한 존재일 따름이다. 노인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은 동서양의 거의 모든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 매화동산... 꽃송이님>
인간은 마지막 숟가락을 내려놓는 순간까지 본능에 충실한 동물인 것이다.
2.우리나라 최초E.M.I.학원 설립자, 영어실력기초저자... 안현필 그리고 '삼위일체건강법' 창시! 말년의 안현필님...
'영어 삼위일체' 도 있었구요... 그땐 물론 저자에 대해선 잘 몰랐었지요. 그러다 1980년대 후반일 겁니다. 우연히 책방을 들렀다가 이 분의 '삼위일체 건강장수법'을 발견하였습니다. 이 분은 초기에 큰 성공을 했기에 자만에 빠져 건강을 등한시 했나 봅니다. (학원, 책의 성공으로 친구에게 맡기고 수원에서 매일 갈비로 즐기다 건강악화, 부도 등) 거의 죽기 직전인 60세 근처에서 건강을 7여년간 연구하여 저 책을 집필하고 본인의 건강도 물론 회복하여 등산 다니며 건강하게 지내시다 87세인 1999년 교통사고 후유중으로 별세 하셨지만 노인으로서 늦깎이에 성공한 분입니다. 130세까지 살수 있다고 큰소리 친...
해외건설맨… 家長… 그의 발자국이 찍힌 아파트단지는 다 기억하기 힘들 정도다. 서울 강남의 유명 종합병원도 그의 손을 거쳤다. 대기업 건설사 현장감독으로 집보다 공사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간간이 해외 공사 현장에도 나가 외화를 벌어 오는 ‘공’을 세우기도 했다. 이모 씨(70)는 자부심도 크고 자존심도 강하다. < 1박2일에 소개된 강화도의 교동... 옛 것이 그대로 보존된... 강화도님>
1998년 그는 해외 빌딩 건설 현장을 지휘하기 위해 2년 주재 계획으로 싱가포르행 비행기를 탔다. “계획대로 2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다면 그런 일은 전혀 없었을 겁니다. 다 내 잘못이지, 누굴 원망하겠어요.” 2년을 채워갈 무렵 찾아온 회사 간부는 일단 술부터 권했다. 목구멍을 싸하게 태우는 독주를 정신이 오락가락할 때까지 마셨을 때쯤 회사 간부가 ‘본론’을 꺼냈다. “2년만 더 있어 주시죠.” 버석한 모래 씹히는 식사가 싫어 집에 갈 날을 손꼽고 있던 이 씨였다. 완공은 보고 싶었지만 아내와 딸, 아들은 더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남아있으면 서울보다 돈을 더 벌 수 있었다. 머릿속은 술이 깬 뒤에도 어지러웠다. 그해 그는 서울 가는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 서울엔 2001년 들어왔다. 공항으로 마중 나오겠다던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버지를 맞은 딸의 얼굴이 모든 걸 설명했다. 10억 원이 넘는 돈이 있던 통장부터 집문서 까지 남은 게 없단다.
식구들 중 아무도 목사인 처남이 도박에 빠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식구들의 ‘발등’ 을 찍었다. 도박장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결론은 뻔했다. 가진 재산을 탕진하고도 진 빚이 40억 원이 넘는다고 했다. 패가망신하고도 도박을 끊지 못한 처남은 여기저기 손을 벌리기 시작했다. 평생 모았던 이 씨의 전 재산 역시 처남의 손끝에서 허망하게 사라졌다. 집에서 가장 믿었던 아들에게 통장을 맡긴 것이 화근이었다. 처남은 아들을 꾀어 모든 걸 가져 갔다. 처음엔 의심했던 아들도 처남이 날짜를 정한 각서까지 쓰자 의심을 거뒀다. 돈을 모두 날린 처남은 유럽으로 도망갔다.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집문서를 넘겨준 아들은 죄책감에 시달리다 신경쇠약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다. 친정 일 때문에 싸움이 잦아진 딸 내외는 이혼 직전까지 갔다. 남편 얼굴을 차마 볼 자신이 없었던 아내는 집을 나갔다.
이 씨는 생업을 내려놓고 아내를 찾아 나섰다. 한 달 만에 찾아낸 아내는 전남 진도에 있는 동서 댁에 얹혀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아내를 데려올 수 없었다. 갈 곳도, 할 수 있는 것도 없 었다. 혼자 서울로 돌아왔다. 가장에게 가족은 삶의 전부였다. 생(生)의 의미가 사라진 자리엔 우울증이 파고들었다. 모래 밥을 씹으며 해외 건설 현장을 뛰었던 이 씨는 어느새 집 없는 부랑자 신세가 돼 있었다. 2005년 11월 17일. 절벽. 3년째 삶에 끌려가던 어느 날 아내의 소식이 다시 들려왔다. 위태위태하던 이 씨의 마음이 무너 졌다. 허겁지겁 진도로 내려갔을 땐 이미 화장이 끝나 있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아내의 소식 을 이 씨는 그동안 한 번도 듣지 못했다. “그게 다 내 탓이지. 내가 누굴 원망하겠어. 다 내 탓인 걸….” 담담히 인터뷰하던 이 씨의 눈이 빨개졌다.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눈물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2005년 11월 17일. 희한하게 날짜가 정확히 기억이 난다. 정신을 차려보니 산에 올라와 있었 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힘이 빠질 때까지 서럽게 울었다. 몸과 마음이 지친 순간 가장 절망적 인 생각이 파고들었다. 죽자. 이 씨는 절벽을 찾아 몸을 던졌다. 이 씨는 죽지 못했다. 정신이 들어보니 웬 차에 누워 있었다. 운전하는 청년이 병원에 간다고 했다. 청년은 우연히 그곳을 지나다 이 씨를 발견했다. 그 와중에도 원수 같은 돈 생각이 먼저 났다. “병원은 안 된다”고 청년을 졸랐다. 청년은 이 씨를 가까운 구청으로 데려갔다. 보건소 생각이 난 모양이다.
이 씨의 상태를 확인한 성북구 측은 일단 심하게 부러진 다리부터 치료했다. 성북구 정신보건 센터에서는 이 씨를 자살위험자로 등록했다. 복지정책과에서는 노숙인 생활 때문에 말소된 이 씨의 주민등록을 성북구 관내로 옮기고 작은 방을 잡아줬다. 월세와 식비로 쓸 최저생활비 가 지급됐다. 죽음의 충동은 그래도 계속됐다. 부러진 다리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좁은 방 안에서는 ‘현재’를 더 절망적으로 만드는 ‘화려한 과거’가 더 자주 떠올랐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쉬웠다. 다음 해인 2006년 이 씨는 방에서 두 번째 ‘시도’를 했다. 스스로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이번엔 생필품을 전해주러 온 공익근무요원이 바닥에 흥건한 선혈을 보고 구에 신고했다. 이 씨는 또 살아남았다. 중략!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관리도 계속되고 있다. 이 씨는 지금도 자원봉사자가 일주일에 한 번씩 걸어오는 전화를 받고 상담을 한다. 얼굴 한번 본 적이 없지만 혼자 사는 이 씨에겐 너무나 반가운 전화다. ‘텔레체크’라고 부르는 이 서비스는 노인 자살 예방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 이탈리아 등 일부 선진국에서 활성화되어 있는 정책이다.
인근 경찰서와 소방서 등에서도 이 씨의 정보를 공유하고 필요할 경우 현장 순찰 등 도움을 줄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다. 이 씨는 지금도 가끔 죽음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 씨에겐 지금 서로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서야 할 무대가 있다. 해야 할 일이 있다. 건강도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죽어야 할 이유보다 살아야 할 이유가 훨씬 많다. 그래서 이 씨는 살아있다. “조금 있으면 구청에서 연극도 한다”고 자랑하는 이 씨에게 그때 꼭 뵙겠다고 약속했다. “신문사랑 인터뷰한다”며 멋지게 양복을 차려입은 뒷모습이 아름답다.
김용호 작사, 김동진 작곡 / 메조소 김학남
※ 故 김동진선생님께서 지난 2008년 10월 '한복사랑 페스티벌' 피날레에서 합창단을 지휘하시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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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답글이 너무 늦어져 죄송합니다.
노인들에 관한 자료를 올려주셨군요.
이제 우리나라도 노년사회로 접어드니 노인문제도 조금 심각해질 것만 같습니다.
노인에 대한 오해가 있으시다구요?
그건 사람의 생리를 몰라서 생기는 오해입니다.ㅎㅎ
사람의 성욕은 동물 중에서는 가장 으뜸일 것만 같네요.
많이 자제를 해서 그렇지, 그렇지 않으면 사회가 엉망이 됩니다.
화석님, 항상 건강하시고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