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실에 대한 소박한 이야기

2011. 11. 11. 21:34화석·청천리님 방

 

매실에 대한 소박한 이야기...

2010.06.22 07:24 | 님들의 휴게실 | 화석

http://kr.blog.yahoo.com/goran5006/2127 

 


   어제 조선일보에서 파부침주(破釜沈舟)란 제목의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제가 배수의진(背水之陣)이란 비슷한 용어로 의견을 트위터로 날린
   일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정말 조심하여야 합니다.

   작년초 제가 올려 드린 글... 왕중추의 100 - 1 = 0
   정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이순신장군은 23전 23승을 기록했지만
   어제 북한 - 포르투갈처럼 조금의 실수가 치욕으로 떨어지는 전법입니다. 

   특히 가정의 일은 더욱 더 중요하여 잘못 배수의 진을 치면 감당이 불감당이라고
   사료 됩니다. 어제 북한처럼 7:0 나는 수모를 겪게 되지요.

    < 진정 조국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 개인의 기량은 리더십 부재에선 아무런 의미가... >
    



   일본도 덴마크를 비기면 16강... 좀 어려울 겁니다.
   진정한 프로들은 이제 손발이 맞기 시작하여... 하지만 우린 16강 갈 겁니다.

   對아르헨에서 마라도나와 허감독의 전술에서 크게 져 4:1 참패를 했지만
   나이지리아전에서는 허감독이 진정한 리더쉽을 보일테니...
   이순신장군처럼 진정한 리더십의 문제입니다. 그래야 기량을 두배 세배로...

   ★참고로 전 북한을 응원하지 않습니다. 가슴 아프지만 크게 진 것이 오히려...
      북한이 잘하고 16강에 나간다면 모두 저 김정일의 어깨만 으쓱할 따름입니다.
      미친 개에게 더이상 헛된 자부심을 주어서는 안된다 사료됩니다.

   비록 공은 둥글지만 감히 예상해 보았습니다.


매실, 차애도...생선조림·갈비찜에도... 용도가 무궁무진!


   매화 필 적에 가슴이 아프고 속상하더니, 매실의 계절에 또 속이 상한다.
   올봄에 이천 시골집을 팔고 서울로 이사를 온 후 몇 달 동안 잘 적응을 한다
   싶다가도, 텔레비전과 시장에서 이런 것들을 볼 때 갑자기 그 시골집 생각이 나는 것.

   우리, 아니 이제 남의 것이 된 매화나무에도 매실이 주렁주렁 달렸을 터인데.

   지난주까지 시장에 매실이 한창이더니 약간 주춤한 듯. 몇 주 전 시장에 많이 출하
   되는 매실은 남부지방의 매실이니, 이제야 서울과 경기 지방의 매화나무에는 진한
   연둣빛 매실이 주렁주렁 달려 있을 게다.
                                                                                     < 청매실... 강화도님
 >

 

 

 

 


   그것을 나무에서 똑 딸 때의 그 상쾌함이란! 시장에 나와 약간 마른 듯한 느낌이
   전혀 없이, 나무에 달려 물기를 한껏 먹은 탱탱한 육질이 너무도 싱그럽다.

   시장에 진연둣빛 매실이 나와 있는 것을 보고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 색깔에 혹하여 시장에서 매실을 또 살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습관이란 건 무서운 일이더군’이라고 시작하는, 롤러코스터의 ‘습관’이란 노래의
   가사가 딱 맞다.

   해마다 이런 걸 담그고 사니 올해도 이걸 안 하면 뭔지 허전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 지난해에 담근 매실청이 남아있는데 또 담가 무엇 하겠는가.
   괜히 욕심이고 습관일 뿐이다.

   노래 가사에서는 헤어진 애인 사진을 보며 ‘사랑해’라고 습관적으로 말하는 자신의
   습관을 노래하는데, 시장에서 싱싱한 매실을 보니 헤어진 애인을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듯하다. 

   불과 십수 년 전만 하더라도 이 계절에 매실을 사는 사람의 대부분은 매실주를
   담그기 위해서였다. 매실이나 모과 같은 과일은, 과육에 물이 많지 않고 맛도
   그리 좋지 않은 대신 향기 하나는 기가 막혀서, 소주에 담가 우려놓기에 적당한
   것들이다. 

   

   생선조림이나 갈비찜에도 매실청 대신 매실 열매를 몇 개 넣는 것으로 충분하고,
   샐러드 소스에도 매실 열매를 재활용할 수 있다. 어차피 과일이나 요구르트를 믹서에
   갈아 만들 때, 매실 열매를 씨를 빼고 넣어 갈면 시고 향긋한 매실 향이 요구르트
   소스를 상큼하게 해준다.


   이영미님의 글에서...

애주가가 있는 집마다 큰 유리병에 매실주가 그득그득 담겨 있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틈엔가 매실청을 만드는 유행으로 바뀌었다.
   콜라나 사이다 같은 청량음료를 마시지 않고 매실청을 물에 타 먹는 시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탄산음료나 ‘탱’ 가루 같은 분말로 출발했던 여름 청량음료가, 1990년대 초 식혜나
   대추, 늙은 호박 같은 한국식 천연재료 음료로 바뀌더니, 얼마 가지 않아 아예 집
   에서 매실청을 만들어 여름 음료를 만들어 먹는 방식으로 변한 것이다. 

                                                               
      < 매실원의 매화 (梅實園)...꽃송이님 >
    

 

 

 

 



   여름 음료란 으레 서양식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탈피하여 우리 입맛에 맞는
   한국의 재료, 여기에 건강을 생각한 음료를 선택하기까지 무려 40, 50년이나
   걸린 셈이다. 그 긴 세월 동안 굳건히 살아남은 우리의 입맛이 참으로 대견하다.


  
매실청 만들기는 매우 간단하다. 매실은 굵으면서도 푸른 것이 좋다.
   너무 잔 것은 지나치게 덜 자란 것일 수 있고, 노래진 것은 신선도가 떨어졌거나
   나무에서 너무 익어 청을 담그기가 좋지 않다. 매실은 꼭지를 떼면서 깨끗이 씻어
   한두 시간 동안 체에 받쳐놓아 물기를 말린다.

   그 매실을 큰 병에 담고 그냥 그 위에 설탕을 붓는다. 사람들은 흑설탕이 가장 정제
   되지 않은 설탕이므로 흑설탕을 쓰면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흑설탕의 포장지
   뒷면을 자세히 보라. 백설탕과 황설탕에는 없는 ‘캐러멜’이 들어있다고 쓰여 있다.

  
흑설탕이 검은 원당 덩어리를 그냥 부순 게 아니라, 정제해 만든 백설탕이나 황설탕에,
   설탕을 태워 만든 검고 끈적한 캐러멜을 넣어 색과 향을 더한 것일 뿐이다.

   도대체 설탕을 얼마나 어떻게 넣느냐고? 전문가 레시피로는 매실과 동일한 무게로
   혹은 120% 무게의 설탕을 넣는다. 하지만 나는 이것보다 좀 적게 넣는다. 너무 단
   것이 싫어서이다. 단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중에 설탕을 더 넣어주면 된다. 

                                                                 < 직접 심은 매실로 담근... 
 고락산성님 >
    

 

 

 

 



   처음부터 매실과 설탕을 뒤섞어 넣은 후 며칠에 한 번씩 뒤섞어 주면서 밑에 가라앉은
   설탕을 녹여주는 방법도 있고, 나처럼 그냥 매실을 먼저 병에 담고 그 위에 설탕을
   부어놓아도 그리 괜찮다.
어차피 설탕이 그 틈새로 스며들어 내려간다.

   아주 큰 병이라면 매실 위에 설탕을 넣는 것을 두세 켜로 해놓으면 된다.
   유리병에 매실과 설탕을 함께 섞어놓은 형국은, 거의 하얀 설탕만 보일 정도로
   설탕이 많이 들어간다.

   5, 6일이 지나 설탕이 녹고 매실이 절어 뜨기 시작하면, 가끔 바닥까지 뒤섞어서
   설탕을 녹여주는 게 좋다. 하지만 매실청은 야채효소처럼 칼질을 하지 않고 통째로
   담그기 때문에, 엔간히 해도 별로 상하지 않고 그래서 설탕의 양도 좀 줄일 수 있다.


  
매실 액이 우러나오는 초기에는 매실 열매가 동동 뜨다가 점차 가라앉는데,
   이때쯤 액체가 된 청만 따로 따라놓아 보관하는 것이 보통이고, 끓여놓으면 더
   이상의 발효를 막아 오래 보관이 가능하다.

   매실 열매를 건지지 않고 계속 넣어두면 어떻게 될까. 더 진행되면 씨까지 절여져
   약간 씁쓸한 맛이 더 우러나오는데, 취향에 따라 그것도 괜찮다.

  
매실청은 물에 희석해서 음료로 먹고 생선조림처럼 설탕이 필요한 경우에 대신 쓰면
   된다. 그런데 정말 아까운 것은 청을 빼고 남은 그 매실 건더기이다. 그래도 설탕이
   배어있는 매실 열매이니 버리기는 아깝다. 열심히 잔머리를 굴려서 재활용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 매화...  
 꽃송이님 >
    

 

 

 

 



   가장 쉽게 이용하는 방법은 홍차다. 흔히 홍차에 레몬을 넣는데, 집에서 생 레몬까지
   갖추고 살기란 쉽지 않다. 홍차를 우리면서 이 매실 한두 개를 넣어 함께 우리면,
   홍차 향과 잘 어울린다.

   가방에 가지고 다니는 물병에도 이 열매를 대여섯 개 정도 넣어 하루 종일 우려
   먹어도, 길거리에서 인공향료와 인공색소에 뒤범벅된 청량음료를 사 마시는 것,
   혹은 그냥 미적지근한 맹물을 먹는 것보다 훨씬 낫다.



그리워... 채동선!


      < 채동선곡의 고향, 망향, 그리워... 세곡에 얽힌 사연! 오늘은 '그리워'입니다.> 

           
  <채동선곡/이은상시/소프라노 채리숙>

    그리워 그리워 찾아와도
    그리운 옛 임은 아니 뵈네
    들국화 애처롭고  
    갈꽃만 바람에 날리고
    마음은 어디고 붙일 곳 없어
    먼 하늘만 바라본다네

    눈물도 웃음도 흘러간 세월
    부질없이 헤아리지 말자
    그대 가슴엔 내가
    내 가슴에는 그대 있어
    그것만 지니고 가자꾸나

    그리워 그리워 찾아와서 
    진종일 언덕길을
    헤매다 가네


           채동선 선생 친필  가곡 고향 악보 (이은상 시 '그리워'가 위에 써 있다.)

   


   

       작곡가, 채동선 선생(2)   

   채동선은 귀국하자마자 연희전문에서 음악이론과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1929년의 귀국
   독주회를 필두로 1939년까지 모두 네 차례의 바이올린 독주회를 개최하였다.

   홍난파는 11월 29일자 동아일보에 기고한 '채동선의 제금독주회를 앞두고'라는 제목의
   장문의 글을 통해서 채동선을 '겸허하고 심중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적막한 반도악단에
   혜성과 같이 나타난 천재음악가'로 천명한다. 독주회가 끝난 후, 한 외국인도 30일자 조선
   일보에 '조선에 온 이후로 처음 만나는 제금가로서, 풍부한 음악적 지식, 정확한 소리,
   인격의 고결함을 예술적으로 표상한 채동선이 조선의 최고예술가가 되리라'는 극찬의
   평을 하였다.

   채동선은 솔리스트로서의 활동 외에 실내악 활동에도 힘을 써, 1930년에는 채동선 실내
   악단을 만들었고 최호영 (제2바이올린), 이혜구 (비올라) 그리고 일본인 첼리스트와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현악사중주단을 결성하여 활발한 음악활동을 하였다.

   중략

   그러나 일제의 발악이 극한에 이르던 일제 말기에 온갖 제재가 가해지자, 채동선은 모든
   대외적 활동을 중단하고 은둔생활에 들어간다. 고향의 땅을 처분하여 서울 근교인 수유리
   에 2만평의 땅을 사서 고등소채와 관상묘목 등을 기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절에 작성
   하여 남겨놓은 농작물 재배에 관한 상세한 기록은 지금 보아도 원예의 훌륭한 지침서로도
   손색이 없으며, 관상수와 화초에 대한 그의 생각은 식용작물 재배에 국한되었던 당시로서
   는 획기적인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미망인이었던 이소란 여사는 '일본뿐만 아니라 독일 유학까지 한 양반이 새벽마다 밀짚
   모자에 고무신을 신고 [명륜동 자택에서부터] 10여리 길을 걸어 수유리까지 갔다가는
   해질 무렵에야 온통 흙투성이가 되어 돌아오는 모습을 보면 측은하기도 하였지만, 때로는
   화가 치밀 때가 있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채동선은 '한국 사람은 농촌을 알아야한다'고 하면서 '머지 않아 해방이 될 것이라며' 염려
   하는 부인을 달랬다. 그리고 일제의 압제가 극도에 달해 한복을 입지 못하게 했을 때에도
   언제나 한복을 입는 것을 고집하였고, 성북동 집의 문패에도 성북동 183의 17이라는, 즉
   숫자 사이에 우리말 '의'를 집어넣어 굽힐 줄 모르는 민족의식을 지켜나간 일은 채동선과
   연관되어 자주 언급되는 에피소드이다. 
    
 
  1945년 드디어 해방을 맞이하자, 채동선은 그 동안 참고 살아왔던 정열이 일시에 폭발
   하듯 한국 악단의 재건을 위해 온 힘을 기울이게 된다. 해방 후 당시 음악계는 좌·우의
   음악세력으로 양분되어 심각한 대립의 양상을 보였는데, 채동선은 이들의 중간에 서서
   민족주의적인 음악가들의 단합을 역설하면서, 1945년에 {고려음악협회}를 조직하였고,
   1947년에 협회장을 역임하게 된다.

   해방 이후 작곡된 작품으로는 조국광복의 기쁨에서 작곡한 교성곡 <조국><독립축전곡>
   칸타타 <한강> 등과 <선열추모가>, <한글날> <3·1절>, <개천철>, <무궁화의 노래>
   등이 있다. 그 이전에 작곡된 곡들이 주로 서정적이면서 토속성 강한 경향을 보였다면,
   해방 이후에 작곡된 곡들은 해방된 국민을 계몽하고 조국 건설을 기리는 곡들이 주류를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민요편곡 및 전통음악 발굴에도 심혈을 기울여 <서울 아리랑>을 비롯하여 <진도아리랑>
   <도라지타령>, <흥타령> 등 많은 우리 민요를 합창곡으로 편곡하고 <별유천지> 등을
   채보하기도 하였다.

   1953년 2월 2일, 6·25의 종전을 알리는 포성이 한창일 무렵, 채동선은 부산 피난 생활의
   고생으로 병을 얻어 부산으로 피난한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했으나 영양실조에 복막염이
   겹쳐 5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 다영맘 다영맘
    메실 저희 집에서 해마다 담그지요. 속 불편할 때는 상비약으로 쓰기도 하지요.
    • 고락산성 고락산성
      전 금년에 매실주를 댓병으로 16병을 담구었습니다.
      작년보도 적게 담은 것이지만......
      오늘도 농장에서 감자수확하고 왔습니다.
      모두 2박스정도 되지만..ㅎㅎㅎㅎ
      일찍 주무시고 새벽에 응원합시다.ㅎㅎㅎ
      단잠 주무세요.
      • 화석 화석
        • 화석
        • 2010년 6월 22일 오전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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