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대통령 이야기... 오이에 대해

2011. 11. 12. 19:45화석·청천리님 방

 

이승만 대통령 이야기... 오이에 대해!

2010.08.21 07:02 | 님들의 휴게실 | 화석

http://kr.blog.yahoo.com/goran5006/2274 

 

20대 청년 이승만... 어느 기자의 이야기!


   1년 만에 정동길을 걸었다. 지금은 공원이 된 옛 배재학당 터와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을
   끼고 난 좁은 길을 따라 서소문로까지 뻗은 좁은 길이다. 1년여 전만 하더라도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를 흥얼거리며 분위기에 취해 걷던 그 길에서 그간 듣지 못했던 소리를 들었다.

   새로운 장면도 봤다. 20대 청년 이승만이다. 그는 외교사절과 대한제국의 고위 관료들이
   참석한 배재학당 졸업식에서 학생 대표로 영어연설을 하고 있었다.
  ‘한국의 독립(independence of Korea)’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한성감옥으로 끌려가는 ‘대한제국의 대역죄인’ 이승만도 봤다. 

                

   기자는 지난 1년 동안 연수차 하와이 호놀룰루에 체류했다.  
   그곳에선 죽음을 눈앞에 둔 90세 노인 이승만을 만났다.
   해발 300m의 산기슭에 서 있는 노인 요양원 마우나라니의 202호 병실.
   창밖으로 푸른 와이키키 해변과 다이아몬드 헤드가 내려다보였다.

   숨막힐 것 같은 바깥 절경은 거꾸로 어두침침하고 썰렁한 병실 안의 분위기를 한층 더
   가라앉혔다. 그는 반신불수의 몸으로 침대에 누워 이역만리 고국을 그리워했다.
   부인 프란체스카는 병실 식사에 물려 버린 이승만을 위해 ‘날마다 김치찌개 김칫국…’
   이란 자작 노래를 불러 위로했다.

      



   이 땅에서 ‘독재자’에서 ‘국부(國父)’까지 극한의 평가를 받고 있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분명한 건 그의 20대는 피 끓는 애국청년, 부패한 왕정에 반대하는 반체제주의자,
   혁명가였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교육기관인 배재학당을 다녔던 그는 내심
   민주공화정을 지지했지만 겉으론 입헌군주제로 개혁을 주장했다.

   일본과 러시아ㆍ미국 등 세계 열강이 조선의 이권을 노리고 밀려오던 당시 열강으로부터
   의 자주 독립을 외쳤다.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은 청년 이승만에겐 무능하고 쇠잔한 군주에
   불과했다. 

    


 


   정상에 오른 사람에게 초심(初心)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일까.
   말년의 대통령 이승만은 ‘인의 장막’에 갇혀 독재자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자신이 아니면 어지러운 대한민국을 이끌 사람이 없다고 믿었다.
   그는 여전히 스스로 애국자였다. 그가 이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 가까이 지났다.

   혁명가에서 독립운동가, 초대 대통령으로 거침없이 세상을 달렸던 이승만이지만
   세상은 초심을 잃어버린 지도자를 독재자로 부르고 태평양 한가운데 외딴섬으로 내쫓아
   버렸다.

 

     


   그는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슬픈 망명객으로 생을 마쳐야 했다.

   오는 29일은 경술국치, 일본제국에 조국을 빼앗긴 지 100년이 된 날이다.
   그때 이승만은 미국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딴 뒤 조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조국은 없었다. 

   식민통치하에서 서울YMCA의 한국인 학감으로 활동하며 기독교 청년운동에 몰두하던
   그를 일제는 요주의 인물로 감시했다. 혁명가 이승만이 본격적인 독립운동가로 변신해
   미국으로 떠난 이유다.

                                        < 하와이 망명시절 이승만 >

            


   경술국치 100년. 이제는 정동길에서 만난 20대의 혁명가, 30대의 독립운동가,
   40대의 임시정부 대통령, 70대의 건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도 기억할 때가 됐다.


 


오이 이야기...

 


   어느 겨울, 친구가 나한테 “요즘 오이 값이 너무 비싸. 어떻게 오이 하나 1000원이 넘니?”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했다가 본전도 못 건졌다. 내가 바로 “도대체 왜 지금 오이를
   먹어야 돼? 내가 생각하기엔 너무 싸!”라고 맞받아쳤기 때문이다.

   얘기하고 보니 나도 좀 미안했다. 오이생채나 해파리냉채 같은 것이 먹고 싶었겠지.
   도시 사람치고, 사시사철 파는 오이와 애호박 같은 것들을 제철 가려 가며 먹는 사람이
   몇이나 되랴. 

     

 

 

 

 



   7월이 되어야 오이는 제철이다. 즉 4월 중순에 노지에 오이 모종을 심으면, 7월 초가
   되어야 첫 수확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4, 5월 내내 먹었던 오이소박이는 모두
   비닐하우스에서 키워낸 것들이다.

   어설픈 시골 체험으로 이야기하자면, 오이는 키우기가 약간 까다로운 작물이다.
   물을 매우 많이 먹는 식물이라 좀 가물면 시들시들하기 십상이고, 시들면 병도 쉽게 걸린다.
   또 깨끗한 것은 무지하게 밝히는 식물이라, 비올 때 흙탕물이 이파리로 튀어 뒤범벅이
   되면 그 이파리가 누렇게 말라버리기 일쑤다. 가장 골치 아픈 것은 진딧물이다.

   상추 같은 것에는 전혀 끼지 않는 진딧물이 오이에만 다닥다닥 달라붙어 진액을 빨아먹고,
   새 순은 누렇게 말라버린다. 이러니 오이 키우면서 농약을 치고 싶지 않겠는가.
   봄에 심어 여름에 따먹는 제철 오이도 이런 상황인데, 겨울에 오이를 키우면 어떨지 충분히
   상상이 된다. 
                                                              < 오이...강화도님 >



   햇볕도 충분하지 않은 비닐하우스에서 석유나 연탄으로 난방을 해 가면서 키우면, 병과
   벌레가 기승을 부릴 것이고 당연히 농약도 훨씬 많이 써야 할 것이다.
비를 맞지 않고 햇볕
   도 제대로 받지 않으니 그 농약이 빗물에 씻겨 내려가지 않고 햇볕에 분해되는 양도 적을
   것이다.

   겨울에 오이 비닐하우스에 들어가 본 사람 말로는, 비닐하우스 안에 살포한 농약이 마치
   안개처럼 자욱했단다. 그 말을 듣고는 겨울 오이를 먹을 생각이 딱 떨어졌다.
   이렇게 힘들게 키운 겨울 오이가 1000원이면 사실 싼 것이다. 유기농으로 키웠다면 정말
   장하다고 이야기하고 귀한 음식 먹듯 먹어야 마땅하다.

   소매에서 1000원이면 산지에서는 200~300원이었을 터인데, 나보고 그 값에 키우라고
   하면 난 안 하고 만다. 올해는 채소 값이 모두 비싸 오이도 그리 싼 것이 아니다.
   아직도 1000원에 서너 개 수준이고, 유기농 오이는 700~800원 정도다.
   접으로 사면 매우 싸다. 오이지와 오이소박이 등을 해 먹을 수 있는 계절인 것이다. 


   개성 출신 친정집에서 맑은 음식 취향으로 커왔던 나는, 어릴 적 여름 내내 오이지 덕분에
   살았다.
짜게 절여 노랗게 익은 오이지를 동글동글하게 썰어 맹물에 띄워 우려 먹는데,
   지난해 겨울에 담근 짠지와 함께 대표적인 여름 음식이다.

   그러나 남편처럼 남부지방 사람들은 이런 음식에 익숙하지 않다.
   그 맹맹한 음식을 무슨 맛으로 먹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결혼 후에는 오이지를 별로 하지 않았다. 

   어쩌다가 한번 하게 되면, 그때마다 인터넷을 뒤져 소금과 물의 비율을 확인해야 하곤
   한다. 대신 남편과 내가 다 좋아하는 오이소박이 물김치로 절충점을 찾았다.

   오이에 소를 박아 담그는 김치인데, 맑은 국물에 소박이가 둥둥 떠 있을 정도로 물이
  
많은 시원한 김치다. 맹물에 띄운 것은 맛이 없다면서도, 국물 전체가 시원하게 발효된

   그 물김치는 아주 맛있다며 잘 먹는다. 


   이 물김치는 안암동의 개성집에서 먹어보고 따라 해 본 음식이었는데, 대강 엇비슷한 맛
   으로 성공한 경우이다. 오이소박이를 담그듯, 오이를 두세 토막을 내고 사면에 칼집을
   내어 절여 둔다. 소에, 부추와 마늘 다진 것을 넣는 것까지는 보통 소박이와 똑같은데,
   단 고춧가루를 전혀 넣지 않는다.

   간은 까나리액젓처럼 비린내가 거의 없는 맑은 액젓과 소금을 섞어 쓴다. 액젓 대신 조선
   간장을 넣어도 괜찮다. 버무린 소를 오이에 낸 칼집 사이를 비집고 집어넣는다.
   이 음식의 키포인트는, 어떻게 하면 오이를 무르지 않게 하느냐다. 오이김치는 익으면서
   속이 말캉하게 물러버리는데, 싱거울수록 쉽게 무른다.

   고춧가루를 넣는 오이소박이야 간이 짭짤하니 그다지 쉽게 무르지 않지만, 물을 많이 넣어
   싱겁고 시원하게 담그는 물김치는 오이가 물러져 망치기 십상인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
   은, 애초에 담글 때는 물을 거의 넣지 않고 짜게 담그는 것이다. 

                                                                                          <고락산성님>

     

 

 

 

 



   즉, 국물 전체에 넣을 소금과 액젓을 다 넣되, 물은 붓지 않고 짠 상태로 익히는 것이다.
   마치 오이지가 익듯 짜게 절여진 오이는 무르지 않고 그대로 노랗게 익는다.
   이때 오이가 뜨지 않도록 돌멩이나 접시로 눌러 놓아야 고루 잘 절여지고 잘 익는다.

   소박이 오이가 노랗게 익으면, 그때 물을 부어 간을 맞춘다. 그리고 냉장고에 넣어 며칠
   동안 숙성시킨다. 이렇게 하면 오이는 거의 무르지 않는다. 잘 익은 슴슴한 국물에 소박이
   오이가 둥둥 떠 있어, 마치 동치미 국물 먹듯 시원한 맛으로 먹을 수 있다.


   절여 두고 소 박고, 이런 절차가 귀찮다면, 가장 쉬운 것은 깍두기 방식이다.
   오이를 먹기 좋을 만한 크기로 썰어, 그대로 액젓과 소금, 고춧가루, 부추 썬 것, 마늘 등을
   넣어 버무린다. 발효된 후의 감칠맛을 위해 약간의 설탕을 넣는 것이 좋은데, 무 깍두기에
   비해서는 아주 조금만 넣어야 한다. 

   

 

 

 

 


   버무려 놓은 이 오이김치는 하루가 지나면 다 절여져 국물이 많아지고 익기 시작한다.
   오이 건더기가 국물에 뜨지 않도록 접시로 눌러 놓아야 하고, 익기 시작하면 뒤적여서
   아래와 위의 위치를 바꿔 주는 게 좋다. 그래야 고루 잘 익는다.

   적당히 익으면 냉장고에 넣어 두고 먹는다. 아무래도 이런 김치는 오래 두면 무르고 맛이
   없어지므로, 한 번에 많이 하지 말고 조금씩 자주 해 먹는 것이 현명하다.

   註)이영미...대중예술평론가.
       요리 에세이 『팔방미인 이영미의 참하고 소박한 우리 밥상 이야기』와 『광화문 연가』
      『한국인의 자화상, 드라마』 등을 펴냈다.

 


웃으면서 보내마... 박상규
- 조약돌, 둘이서, 웃으면서 보내마, 친구야 친구... 네 곡이 기억 납니다. 오늘은...

 

 

박상규 -  웃으면서 보내마 






휘몰아치는바람속을 머리카락 날리며
떠나야하는 너를 지금 웃으면서 보내마

기약두고 떠나지만 눈시울이 뜨겁구나
아~ 긴긴날을 그대만을 생각하면서
다시만날 그날을 위해 보내는 이 슬픔도
그리움도 참고 지내리....

휘몰아치는 바람속을 머리카락 날리며
떠나야하는 너를 지금 웃으면서 보내마

기약두고 떠나지만 눈시울이 뜨겁구나
아~ 긴긴날을 그대만을 생각하면서
다시만날 그날을 위해 보내는 이 슬픔도
그리움도 참고 지내리

휘몰아치는 바람속을 머리카락 날리며
떠나야하는 너를 지금 웃으면서 보내마.....




인천이 고향인 국민가수 박상규(66)가 고향에 돌아왔다. '조약돌'이란 히트곡으로 이름을 날린 그는 지난 3월 연수구 옥련동에 '덕박사'란 식당을 열고 고향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머잖아 거주지도 인천으로 옮기고 '둥글둥글한' 조약돌처럼 살아갈 생각이다.

"나이 먹으면 고향이 그리워지는 법입니다. 타지에 사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람은 늘
고향에 대한 꿈을 꾸게 마련이거든요." 중구 신흥동이 고향인 박씨는 "신흥동에서 가까운, 지금은 송도 쪽인 낙섬에 대한 추억이 많다"며 "앞으로 고향과 인천시민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태어날 때만 해도 고향은 온통 갯벌이었지만 지금은 너무도 달라져서 정신이 얼얼할 정도이다. "상전벽해라는 말이 딱 맞습니다. 고향에 있을 때는 송도에서 아르바이트로 인명구조 활동도 했었는데…." 

동무들과 어울려 수시로 미역을 감고 망둥어를 잡던 자리에 개념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유비쿼터스가 구축되고 있으니 그로서는 입이 딱 벌어질만 하다. 창영초, 남인천중, 인천고를 나온 그는 국어교사가 되기 위해 연세대 국문과에 들어갔다. 그러나 졸업한 뒤 65년 'KBS 전속가수'로 데뷔한다.

 

 
  - 계속 -

폭염이 계속 됩니다. 9월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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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석 2010.08.21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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