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호의 인생 이야기 제1편

2011. 3. 11. 14:56화가의 인생이야기

 우리 님들 화가들의 인생 이야기 이번에는 빈센트 반 고호의 인생 이야기입니다. 이 글은 너무 길어서 4편 정도로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빈센트 반 고호도 매우 불행한 화가였고, 많은 불후의 명작들을 남겼으나 비극의 종말을 맞게 됩니다. 많은 분들이 이 화가의 일생을 알고 계시겠지만 그래도 명작과 함께 인생 이야기를 즐겁게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빈센트 반 고호의 인생 이야기




                                            제1편





      

                                - 빈센트 반 고호의 작품인 '루오노강의 별'입니다. -


 빈센트 반 고호는 1853년 네덜란드의 브라반트에서 태어났다. 열여섯 살에 학교 교육을 끝마치고 곧장 상업계로 들어갔다. 유럽 굴지의 미술상인 구필의 조수가 됐는데 이 사람은 헤이그와 브러셀을 비롯해서 런던, 파리, 베를린, 뉴욕에도 화랑을 거느리고 있었다.

 빈센트는 유명한 그림의 복사화를 포장하고 이따금 원화를 부유한 고객에게 파는 일을 맡았다. 그러나 세일즈맨으로는 완전히 낙제였다. 워낙 부끄럼을 잘 타는 천성인데다 통 장사 소질이 없었다. 옷매무새도 깔끔하지 않았고, 태도도 농사꾼처럼 세련되지 못했다. 사교성도 없었다. 너무 정직하고 솔직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어느 날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는데 주인과 싸움을 벌이고 자기는 장사가 싫다, 그림을 놓고 흥정을 하는 것은 죄악이다, 예술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것은 합법적인 사기 행위다 등등 괴상한 소리를 함부로 떠들어댔던 것이다. 주인은 그에게 한 달 치 봉급을 선불하고 다시는 얼굴도 내밀지 말라고 쫓아내고 말았다.

 빈센트는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의 작은 기숙학교에서 불어 선생으로 취직했다. 그는 비교적 교육을 잘 받은 셈이었고 아이들도 좋아했다. 양친은 아들에게 어울리는 취직자리인 듯해서 마음이 놓였다. 빈센트 자신도 월급이 변변찮아 그렇지 대체로 만족한 듯했다.

 이 기숙학교의 학생들은 대부분 런던의 빈민가 출신이었다. 부모들은 자기네가 수업료를 감당할 수 있을지 없을 지 깊이 생각도 않고 무책임하게 학교에 던져놓고는 그만이었다. 학기가 끝날 때마다 이 학교의 교장인 목사는 빈센트에게 수업료를 받아오라고 내보냈다.

 젊은이는 질척대는 골목길을 지나 찌그러진 문을 두들기며 악취를 풍기는 전셋집들을 찾아다녔다. 당초에 가난하고 배고픈 부모들에게 돈을 요구할 결심으로 나섰지만 그들의 눈에 담긴 슬픔과 입가에 패인 생활고의 주름살을 보면 아무 말도 못 꺼내고 발길을 돌리곤 했다.

 그래서 빈손으로 목사에게 돌아오면 이 고매한 인격자는 노발대발이었다. 도대체 제가 뭔데 바보 같은 감상주의로 일을 그르치냐는 것이었다. 목사는 빈센트에게 나가라고 야단쳤다. 그러니 이번에도 그만두는 도리밖에 없었다.

 빈센트는 양친에게 돌아왔다. 양친의 실망과 낙담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맏아들이란 게 어찌 이 모양일까? 도무지 무슨 직업에고 오래 붙어있질 못하니 그들은 상심해서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래도 빈센트에게는 세 번째 기회가 왔다. 서점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오후에 일이 끝나면 도르데흐트 미술관으로 가서 마음껏 걸작 명화들을 감상했다. 그림과 책에 둘러싸인 생활, 빈센트는 마침내 적성에 알맞은 생활을 찾은 듯했다.

 서점 주인이 보기에도 이 고독하고 내성적인 청년이 약간만 밀어주면 이 방면에 성공할 듯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책방에 드나드는 성직자 고객에게 부탁해서 빈센트를 대학에 진학시키라는 권유 편지를 양친에게 쓰도록 했다. 양친은 또다시 희망에 부풀어 올랐다.

 빈센트는 암스테르담으로 가서 친척 아저씨 댁에 기숙하면서 입학시험 준비를 했다. 유태교 랍비 밑에서 라틴어와 그리스어 공부를 했는데 어찌나 맹렬히 했던지 신경쇠약에 걸려서 시험도 못 치게 되었다. 신경쇠약을 치료하는 동안 그는 심심풀이로 여러 교회를 돌아다니며 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멍하니 몽상을 하면서 지냈다. 일요일에는 유태교의 시너고그를 포함해서 각종 종파의 교회를 무려 육칠 군데씩 누볐다.

 한번은 엄청난 영적 감동의 충동으로 성금 그릇 앞에 오자 은시계를 던져 넣었다. 장갑을 벗어 넣은 적도 있었다. 그는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별안간에 자기가 그리스도 같은 존재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벨기에 탄광 지방에 사는 광부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읽고 그 광부들의 영혼을 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자기 가족도 생활에 쪼들려 아들로부터의 경제적 도움을 고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는 벨기에의 고통 받는 이들을 구하러 달려갔다. 지극히 신앙심이 강한 그의 아버지는 실망을 삼키고 아들을 축복해주었다. 어머니는 한 트렁크 가득히 손으로 짠 털옷과 사랑의 말씀을 보냈다.

 빈센트는 광부들과 기도하는 생활을 통해 그들의 눈에 약간의 광명을 가져올 수 있었다. 이발사의 집에 살면서 강렬한 손짓을 해가며 소박한 복음 말씀을 전했다. 신학 교육을 받은 적이 전혀 없었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탄광 맨 밑바닥에서 일어나는 사고로 부상당한 남녀 노동자들의 상처에 약을 발라 주었고, 장티푸스가 유행할 때는 병든 동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있을 마음에 탄광의 빈 헛간에서 지냈다. 이 전염병과 싸우느라고 제 돈과 옷과 양식을 다 바쳤다. 마을의 빵집 주인 내외가 이렇게 건강을 돌보지 않다가는 빈센트 자신이 과로로 죽게 생겼다고 그의 부모에게 편지를 냈다.

 “이 청년은 우리가 본 누구와도 다릅니다.” 그러면서 너무 늦기 전에 빈센트를 데려가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아버지는 벨기에행 첫차를 잡아타고 가서 아들에게 돌아가자고 애원했다. 빈센트는 처음엔 거절했으나 빵집 주인이 그가 하던 일을 계속해나가겠노라고 엄숙히 약속했으므로 마지못해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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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님들 즐겁게 감상하셨나요?
위 글은 빈센트 반 고호가 화가가 되기 이전의 생활상을 소개한 것입니다.
이 글은 '위대한 화가들'을 많이 참조하였습니다.
  우리 님들 오늘도 행복한 하루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