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 11. 14:59ㆍ화가의 인생이야기
우리 님들 화가들의 인생 이야기 중 빈센트 반 고호의 일생 제3편입니다. 이제 화가의 길로 들어선 고호, 그리고 첫사랑 실패 후에 만삭 임신한 창녀 시엔과의 만남. 그러나 결혼 생활도 순탄치만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 님들 고호의 인생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시기 바랍니다.
빈센트 반 고호의 인생 이야기
제3편
지치지도 않고 사랑을 찾아 헤매던 반 고호는 애인에게 버림받은 여인을 알게 되었다. 금방 해산달이 가까워 온 여자였다. 빈센트는 아우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남들처럼 모델료를 후하게 줄 형편은 못 되지만 그래도 방세는 내줄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내 빵을 나눠줌으로써 굶주림과 추위도 막아줄 수 있었으니 고마운 일이다. … 얼굴이 약간 얽었다. 그러니 미인이라고 할 수 없지. … 오히려 그게 나한텐 더 잘 된 셈이지만.” 이어서 그 여인에게는 남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별난 데가 있다고 순진하게 늘어놓는다.
“우선 말투가 그렇고, 게다가 성질도 고약하다. 그렇지만 테오, 나는 이 여자와 결혼할 작정이다. 우리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사이다. 내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라도 가정생활의 희로애락을 직접 겪어보고 싶다. … 호주머니에 한 푼도 없는 상태에서 사랑하는 이의 병상을 지킬 때, 사랑이 무엇인지 가장 절절히 느낄 수 있는 법이다. 이건 봄바람에 들떠 공연히 한번 해보는 게 아니다.”
아우가 매달 보내오는 돈으로 빈센트는 그 여인을 임신기간 동안 두루 보살펴주고 나중엔 라이든의 산과병원에 입원까지 시켰다. 그의 나이도 이제 서른이 넘었고 인생에 대해 제법 많이 배웠기 때문에 여자를 열정적으로 사랑하진 않았다.
그는 그 여인에게서 열정보다 강한 무엇을 느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말로 표현한 적은 없으나 예민한 유대 감각이 있었다. 빈센트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혼자서 인생을 헤쳐 나가려고 악전고투하는 사회의 이단자였다. 이 가련하고 어리석고 불평할 줄 모르는 여인이야말로 자기에게 잘 어울리는 짝인 것 같았다.
“나는 이 여자와 결혼할 생각이다. 아무도 그녀를 돌보지 않았고 원하지도 않았다. 완전히 버림받은 외로운 몸이다. 나는 그녀를 데려다 내게 있는 모든 사랑과 애정과 보살핌을 주었다.”
빈센트는 테오에게 그래도 형제간의 우애에 금이 가지 않을 지 걱정을 했다. 상식을 벗어난 상황이어서 테오가 싫어하지 않을까? 테오는 그런 결혼이 집안사람들에게 크나큰 충격을 줄 것이고 경제적으로 불가능하며 도덕적으로도 너무나 불행한 재난이 될 거라고 회답했다.
빈센트는 도덕적인 문제는 여자가 낳을 애기가 “그녀의 모든 죄를 씻어줄 것이다. 어머니는 숭고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테오는 이에 대한 답장 대신 150프랑을 보내왔다. 빈센트는 아기를 씻기고 산모를 보살폈다. 아이는 자라나면서 화가의 무릎에 기어올라 호기심 가득한 커다란 눈동자로 그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반 고호는 행복한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사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아내는 가난한 생활에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춥고 배고파 떨며 악다구니를 쓰고 싸웠다. 마침내 아내는 보따리를 챙겨서 아이를 데리고 예전의 사창가로 돌아갔다.
빈센트는 자기가 구원하려던 여인으로부터 성병만 옮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한동안 그는 자리에 누워서 고통으로 신음했다. 그의 화실 어딘가에 한 여인의 소박한 스케치가 있었다.
- 고호가 그의 아내인 창녀 시엔을 그린 소묘 중의 하나입니다. -
나체의 야윈 중년 여인이 말없이 쭈그리고 앉아 얼굴을 손에 파묻고 있는 모습이다. 더러운 머리칼 몇 가닥이 앙상한 등어리를 흘러내리고 다리엔 정맥이 솟아나 있다. 아내의 초상인 이 그림 밑에는 단 한 마디 “슬픔”이란 말이 쓰여 있다.
“그렇다, 위대한 인물들의 생애는 비극으로 끝난다.”고 빈센트는 테오에게 썼다.
“살아있을 동안 온갖 고초를 다 겪어야 하고 작품이 사회의 인정을 받게 될 즈음엔 이미 죽어버린 지 오랜 것이 보통이다.”
빈센트는 아직 화가로서 형성기의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회화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밑그림의 디자인이 아니라 색체에 있다고 점차 확신하게 되었다. 색체는 절대로 디자인의 시녀가 아니라 디자인 그 자체여야 한다. 또 이 색체란 것은 정적이어선 안 되고 항상 박진감 있고 동적이어야 한다.
한번은 그리고 싶은 풍경을 보았으나 늘 하는 습관대로 실컷 발라댈 물감을 장만할 돈이 없었으므로 부엌에서 쓰는 염료와 커피 주전자의 찌꺼기를 섞어서 썼다. 덕분에 자연스런 색조 그대로 풍경화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그림은 그렸지만 어디다 처치할 길이 없었다. “가끔 모래 언덕에 앉아 스케치를 하려면 먹은 게 변변찮아 속이 쓰린다.”라고 테오에게 썼다. 아우는 군소리 한 마디 없이 돈을 부쳐 주었다.
어느 때는 잔뜩 자조적인 기분으로 자기가 살고 있는 예술가 구역에는 화실의 세금을 낼 능력이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세금원이 두 번이나 우리 집에 왔었지만 부엌 의자 네 개와 식탁 하나가 전 재산인 걸 보고나선 날 그냥 내버려두었다.”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 어떤 것에는 “의복으로 말하면 닥치는 대로 입는다. 아버지랑 네가 물려준 옷을 입는 데, 우리는 크기가 다르니까 제대로 안 맞기 일쑤이다.”라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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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님들 즐겁게 감상하셨나요?
가난에 찌들대로 찌든 고호의 일상 생활, 순탄치만은 않은 그의 결혼 생활 등이 화가의 삶을 점점 비참하게 만들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이 글은 '위대한 화가들'을 다소 참고하였습니다.
우리 님들, 다음 편을 기대하시고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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