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 11. 15:01ㆍ화가의 인생이야기
우리 님들 화가들의 인생 이야기 중 빈센트 반 고호의 일생 4번째 이야기입니다. 첫사랑과 결혼에 연달아 실패한 고호가 남쪽 지방인 아를르로 가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만 술과 담배에 찌든 생활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때 고갱을 다시 만나 같이 생활하게 됩니다만... 그래도 이때가 고호에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님들 이제 그의 인생 이야기를 즐겁게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빈센트 반 고호의 인생 이야기
제4편
-고호가 그린 '감자를 먹는 사람들'이라는 명화입니다. -
이 무렵 빈센트는 ‘감자를 먹는 사람들’을 그렸다. 이것은 농부의 초가에서 가족이 둘러 앉아 감자를 먹고 있는 모습이다. 어둡고 렘브란트적인 분위기가 넘치는 작품이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빈센트는 이 작품과는 상이한 효과를 추구하고 있었다.
그는 바닷가 모래언덕에 앉아 한낮의 이글대는 태양 아래에서 스케치를 했다.
“불타오르는 태양을 그리고, 지평선 끝이 무한한 세계로 사라지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은 시도조차도 아찔한 노릇이다.”
그의 편지 중에는 또 연애 사건이 언급되어 있다. 이번 상대는 ‘당초엔 대단한 가치를 지닌 모범적 존재였으나, 지금은 마치 고치려다가 더 망가뜨린 크레모나 바이올린 같은 신세가 된 여인’이었다. 이번 연애도 언제나처럼 불행으로 끝났다. 여자가 음독자살을 기도했던 것이다. 가족 측에서 쉬쉬하여 스캔들은 피할 수 있었지만 좌우간 그는 서른이 넘어서도 여전히 문제아였던 모양이다.
빈센트는 어느 것을 더 좋아한다고 할 것도 없이 열정적으로 그림 그리고 굶주리고 사랑했다. 옷을 입은 여자는 딱 질색이라고 투정을 하기도 했다. 그 무렵엔 여인의 나체 습작에 몰두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모델을 마음대로 구하기가 어려웠다.
한편 그의 예술은 서서히 성숙해갔다. 마침내 자기의 목표가 무엇인지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르네상스의 대가들은 몽땅 저리 가라! 학술적으로는 정확하지만 예술적으로는 생명이 없는 해부학도 집어치워라. 우리에겐 살아있는 해부학이 필요하다. 무미건조하고 을씨년스러운 화실 안의 색체도 집어치워라. 도대체 화가란 것들이 거의 전부 건강한 색체가 뭔지도 모른다. 생명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농부의 아낙을 그린다면 농부의 아낙처럼 보이게 그려야 한다. 창부는 창부처럼 그려야 한다. 나는 요사이 렘브란트와 할스의 생각으로 꽉 차 있다. 그리고 탐스런 네덜란드 처녀들의 생각으로도! 아, 이 처녀들의 사랑스런 모습이란! 그들을 차지하고 싶은 욕심보다도 그리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하다. 하긴 둘 다 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빈센트는 그들을 그리고 차지하는 데 여념이 없어 그 밖의 것은 아무 것도 돌보지 않았다. 뱃속의 사정도 아랑곳없이 몇 주일이고 따뜻한 식사 한 끼도 안 하고 지날 적이 많았다. 이빨도 소홀히 해서 차례차례 부러져버렸으므로 음식을 먹을 때마다 어찌나 지독하게 아프던지 씹지도 못하고 꿀꺽 삼켜야 했다. 의사들은 그에게 일손을 늦추지 않으면 신경쇠약에 걸릴 거라고 경고했다.
빈센트는 아우 테오가 미술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해서 구필의 화랑을 집어치우고 같이 파리에다 화실을 차리자고 졸랐다. 그러나 테오는 그런 허황된 생각에 따라나서기엔 너무나 실제적인 사람이었다.
빈센트는 혼자 파리로 가서 프랑스 인상파 화풍을 공부했고, 또 화가 고갱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곧 남부 아를르 지방의 훈풍이 방황하는 그의 영혼을 유혹했다. 아를르는 분방한 색체가 소용돌이치는 지방이었다.
북쪽 나라에서 태어나 살벌하고 냉랭한 풍경 속에서 농사꾼들의 찌푸린 얼굴만 보고 자라난 이 화가의 눈앞에 아를르 지방 사람들의 윤기 나는 피부와 한없이 펼쳐진 찬란한 꽃밭이 나타났을 때의 놀라움이란 아라비안나이트에나 나옴직한 마술의 도시에 들어선들 그보다 더 했을까!
빈센트는 언제나 빛깔이 밝고 단색적인 일본의 풍경화 프린트를 좋아했는데, 아를르는 마치 꿈에 그리던 일본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었다. 분홍빛 꽃과 반짝이는 분수와 장밋빛 복숭아나무의 고장. 여인네들은 또 어찌 그리 예쁘리! 이 황홀한 남국의 미녀들은 아브쎙뜨를 마셨고, 북부의 여자들이 따라갈 수도 없이 정열적으로 사랑했다.
- 고호가 그린 '도개교'입니다. -
태양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신비의 나라. 이곳이야말로 빈센트가 그리기에 적합한 고장이었다. 그는 꽃이 만발한 정원을 찾아다니며 열흘 동안에 열 곳의 그림을 그렸다. 짙푸른 하늘과 오렌지 빛 강둑을 배경으로 한 도개교와 이 다리를 건너는 수레의 그림도 그렸다. 붓끝에서 불이 날 지경이었다.
- 고호의 명작인 '해바라기' 연작 중의 하나입니다. -
나무의 그림도 그렸는데 “이것은 수많은 나무들을 낳게 할 가능성”이 있는 나무들이었다. 방금 빛 속에 녹아 들어가 버릴 듯한 해바라기의 그림도 그렸다. 이 소중한 태양의 빛을 몇 오라기라도 포착할 수 있다면! 더 밝게, 더 밝게, 그의 캔버스는 강렬한 빛깔로 메워져 나중엔 신경이 쩡쩡 울리고 온몸의 피가 머리로 솟구쳐 올랐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열렬하고 이국적인 비전을 그리기에 적합한 흥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그는 끊임없이 알코올을 들이켰다. 쉴 새 없이 담배를 피우고 조급한 마음에 끼니도 거르면서 매일 같이 하루 열네 시간, 열일곱 시간씩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 그의 내부 어딘가 악마가 숨어서 그에게 채찍질하는 것 같았다.
-고호가 많이 그렸던 실제 싸이프러스 나무입니다.-
- '삼나무(싸이프러스 나무)와 두 여인'이라는 제목의 소묘와 그림입니다.-
이 무렵 그는 언제나 햇볕이 가장 따가울 때 그림을 그렸다. 그 때가 온 들판의 색체가 가장 강렬하고 환상적이었기 때문이다. 한낮의 열기가 곧장 뇌에 쑤시고 들어서 그는 무지무지하게 어지러워졌다. 매일 밤낮 동안에 받은 작열하는 태양이 그의 이성을 조금씩 부식시켜 갔다. 그는 화실의 벽을 온통 해바라기 그림과 ‘시인의 정원’이란 연작으로 뒤덮었다.
파리에서 고갱이 찾아와 그의 화실을 같이 썼다. 빈센트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가끔 테오가 자기를 부양하느라 치를 희생을 생각하면 마음 한 구석에 언뜻 구름이 끼곤 했지만 테오는 정말 동생이 아니라 천사였다. 형의 육신과 영혼을 한데 엮어놓기 위해 매달 150프랑씩 꼬박 보내왔다.
어쩌다 몹시 참회하는 마음으로 테오에게 “너를 그렇게 죽도록 고생을 시키느니 그림을 집어치우는 게 훨씬 났겠단 내 심정을 모르겠니?”하고 편지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아서라, 그림을 그만 두다니! 물론 농담이었겠지. 사실 그는 허세를 부려본 것뿐이었다. 테오도 워낙 마음씨가 착했기 때문에 형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빈센트는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고 밤에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의치를 사서 끼고 사창가도 규칙적으로 찾아갔다. 그의 가슴 속에는 화가의 꿈이 담겨 있었다. 언젠가 이 세상 사람들 앞에 전무후무한 생생한 색체를 지닌 ‘미래의 화가’로 나타나리라. 이 꿈은 굶주림과 가난과 누더기 옷을 모두 보상해 주었다. 동생 테오에게 순진하게도 “집주인에게 침구를 사기 당했으므로” 매트리스를 사게 돈을 조금 더 보내달라고 청하는 편지도 있다.
또 어떤 편지에는 테오가 고갱의 그림을 50프랑에 팔아주어서 무척 기쁘고 감사해한다고 전하고 있다. 어느 때는 자기가 구제불능으로 건망증이 심해진다는 편지도 썼다.
“나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폭풍의 아우성 소리가 너무 요란해지면 신경을 딴 데 돌리려고 한 잔 마신다. … 집중력이 보다 강해지고 필치도 확실해진다. 그걸 보아도 내 그림은 앞으로 더욱 발전해나갈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사실 나에겐 그 길밖에 남은 게 없으니까.”
돌이킬 수 없이 허물어지고 고독한 서른다섯 살의 사나이, 이것이 방황하던 그의 삶의 종말일까? 그 오랜 동안 찾아 헤매던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을까? 어느 날 문득 직업을 팽개치고 마음이 가난한 광부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달려가던 전도사는 어디에 갔을까?
“식사나 커피를 청할 때 외에는 며칠이고 말 한 마디 않고 지날 때도 많다.”
한때 창녀를 집안에까지 데려다 그 버려진 영혼을 구원하려고 노력하던 그 깊은 믿음은 어디 갔을까?
“강렬한 태양과 커다란 캔버스와 씨름하느라고 정신이 몽롱하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추수기는 언제 오려나? 가난과 고통으로 증류된 그 오랜 인고의 세월 끝에 응결된 그의 예술의 정수는 어디에 있는가?
“내가 보여줄 것이라고는 삶의 고통으로 으깨진 정신과 망가진 인간의 잔해뿐 … 테오야, 겨우 이것 때문에 너에게 만 오천 프랑이나 쓰게 했구나.”
테오는 형의 과음을 나무랐다. 이 당시 빈센트는 술에 취하지 않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세상은 어떠했는가? 불행히 세상은 너무나도 맑은 정신이었다.
“이것도 예술이라고 하나요?”하고 멋쟁이 여성은 질겁을 했고, 점잖은 비평가 제씨는 모두들 소리 맞추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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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동영상을 올려드립니다. "고호와 고갱'이라는 작품인데, 파리로 그림을 그리러 가서 고호가 고갱을 만나는 과정입니다. 감자 먹는 사람들과 도개교를 그리는 고호의 모습이 인상적이군요. 우리 님들 즐겁게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이 동영상은 다음의 하늘정원님 블로그에서 빌려온 것입니다.
* 동영상은 빌려온 것이어서 삭제하였습니다.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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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님들 즐겁게 감상하셨나요?
마치 술과 그림에 미쳐가는 화가를 보는 것만 같습니다.
이 글은 '위대한 화가들'을 다소 참조하였습니다.
우리 님들 다음 편을 기대하시고 오늘도 보람찬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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