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 11. 15:05ㆍ화가의 인생이야기
우리 님들 빈센트 반 고호의 인생 이야기도 이제 마지막 편에 이르렀습니다. 37세의 짧은 생애 동안 가난과 정신병과 싸우면서도 1만 6천점에 이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단 1점만 팔렸을 뿐 화가로써는 정말 불행했던 인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우리 님들 이제 고호의 마지막 인생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시기 바랍니다.
빈센트 반 고호의 인생 이야기
제7편
-고호가 말년에 그린 '아이리스'입니다. -
오월에 그는 쌩 레미의 병원에 입원했다. 그림을 그릴 방도 얻었다. 그는 여러 명의 정신병자들이 둘러서서 지켜보는 가운데 화려한 색체로 캔버스를 뒤덮었다. 그들은 물감을 대는 것을 도와주기도 했다. 빈센트는 그들 동료 환자들에게 깊은 애정을 느꼈다.
“가끔 줄기차게 악을 쓰거나 횡설수설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친하게 지내고 발작이 시작되면 서로 도와주곤 한다.”
자기 자신은 가슴 속에 아무런 희망도 욕망도 남아 있지 않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림으로 말할 것 같으면 회화에 무슨 아름다움이나 쓰임새가 있는 건지 참으로 의심스럽기만 하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몸이 아프든 머리가 돌았든 간에 자연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게 바로 화가란 거다.”
이 사람들은 그림을 계속해야만 한다. 어떤 신령한 힘이 그렇게 채찍질을 하므로, “굉장히 노랗고 굉장히 환한 옥수수 밭을 그리고 있다. 아마 내 캔버스 중에 제일 밝은 것일 게다. 내 머리엔 지금 측백나무의 생각으로 꽉 차 있다.”
이 편지를 쓴 지 며칠 후 또 발작이 일어났다. 발작에서 깨어났을 때 이번엔 좋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테오의 젊은 아내가 아들을 낳았다는 것이었다. 그 밖에도 테오는 젊은 문사 오리에르가 ‘메르퀴르 드 프랑스’지에 기고한 기사를 보내왔는데, 이 글에서 오리에르는 빈센트의 아를르 시대 작품을 열렬하게 격찬했다.
빈센트를 가리켜 새로운 시대를 밝히는 ‘횃불’이라 칭하며 그의 풍부한 색감을 유창한 문체로 찬양했다. 그 기사를 읽는 빈센트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오리에르에게 편지를 써서 칭찬의 말씀은 무척 감사하지만 그런 칭찬은 다른 사람이 받아야 한다고 했다. 자기의 색체는 전부 아를르 화파의 시조인 몬티 셀로의 가르침 덕분이라는 것이었다.
이어서 그는 오리에르에게 구필의 화랑에 가서 몬티 셀로가 그린 꽃을 보라고 권했다.
“그러면 당연히 칭찬받을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반 고호는 쌩 레미에서 휴가를 얻어 아를르로 갔다. 거기서 그림을 그리는 동안 또다시 발작이 일어났다. 들에서 광란하는 모습으로 발견되었던 것이다. 목이 어찌나 부었던지 나흘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할 지경이었다.
- 고호의 마지막 순간을 예고하는 듯한 '담배를 문 해골' 그림입니다.-
이 끔직스런 발작! “정말 지긋지긋하다”고 테오에게 한탄했다. 그러나 그는 화가의 길을 계속 가야만 했다. 병이 낫기 위해서라도 그림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의사들 명령대로 몇 주일이고 빈둥빈둥 지낸다는 것도 못 견딜 일이었다.
의사의 얘기로는 나을 희망이 별로 없었다. 앞으로 발작이 계속 일어날 터이므로 병중엔 아무 일도 못 하게 했다. 빈센트는 셰익스피어와 볼테르의 작품을 통독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역시 그림을 그려야 했다.
“양배추와 샐러드만 그리는 한이 있어도 난 좌우간 그림을 그려야겠다. 그림을 통해서만 제 정신을 온전히 찾을 수 있을 테니까.”
발작이 일어나면 어떤 때는 며칠이고 계속 의식을 잃은 적도 많았다. 그러다 정신이 들면 의사들은 그를 쇠창살 안에 가두고 몇 시간이고 꼼짝도 못 하게 했다. 의사들의 관심은 오로지 환자를 먹여서 살찌우는 것뿐이었다. 그는 뭐라도 소일을 할 수 있도록 일거리를 달라고 애원했다. 대장장이나 목수 일을 배우는 게 어떻겠느냐고도 했다.
-고호가 그린 '의사 가쉐의 초상'입니다.-
결국 의사는 그가 다시 붓을 잡을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는 정신병동에 대한 습작을 그렸다. 그것으로 그의 일생은 완전한 윤회를 이루었다. 스물다섯에는 굶주린 벨기에 광부들을 그리더니, 이제 서른일곱에는 쌩 레미의 가련한 미치광이들이라니!
- 고호의 말년의 명작 '별이 빛나는 밤에'입니다.-
1890년 3월 그는 쌩 레미를 나왔다. 그 후 잠깐 동안은 행복해 보였다. 테오 아들의 대부도 되었다. 테오 내외는 자주 그를 찾아보았다. 그는 조카인 어린 빈센트를 데리고 멀리 산책을 다니며 젖 짜는 암소가 한가로이 꼬리를 튕기는 모습이라든지 수탉이 꼬꼬댁거리는 모습을 조카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 인생의 종말을 예고하는 듯한 고호의 마지막 유작인
'까마귀 떼 나는 보리밭'입니다. -
그러던 어느 청명한 날 엄청난 평정이 그의 마음에 내려왔다. 그것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느낌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의 마음을 휘어잡았던 광란의 힘도, 정신의 산란함도 사라져 버렸다. 마치 힘겨운 임무에서 마침내 풀려난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너무나 마음이 평온해서 그림조차 내키지 않는다. … ”라고 테오에게 말했다.
그리고 갑자기 1890년 7월 19일 그는 제 몸에 방아쇠를 당겼다. 그것이 빈센트 반 고호의 부단한 추구의 종말이었다.
- 고호와 그의 아우 테오의 무덤이 나란히 있습니다.
아우 테오도 고호가 죽은 후 6개월 후에 갑자기 사망했다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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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님들 즐겁게 감상하셨나요?
이제 고호의 인생 이야기를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우리 님들 긴 글 읽으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이 글은 '위대한 화가들'을 다소 참조하였고, 세계 명화집을 많이 참고하였습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으로 소개해드리지 못해 죄송하게 생각하며, 다음엔 좀 더 알찬 내용을 선보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님들 오늘도 보람찬 하루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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