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 28. 14:53ㆍ나의 문학작품
우리 님들, 난을 아내에게 바쳐보신 적이 있으세요?
저 세상으로 떠나는 아내에게 난꽃을 아내 이름으로 명명하여 바치는 한 애란인의 사연을
문학작품 형태로 한번 써보았습니다.
정말 난과 아내를 사랑하는 애란인을 만나게 되실 겁니다. 우리 님들, 즐겁게 감상하세요.
내 사랑 수미(秀美)야!
“여보, 오늘은 산에 안 갈 거예요?”
“글쎄, 나도 가고 싶긴 하지만 당신이 아프니까 …”
“이젠 별로 아프지 않거든요. 내 걱정은 마시고 그냥 다녀오세요. 환자 옆에 있어 봐야 마음만 괴롭잖아요. 그러니 산에 가셔서 바람도 쐬고 친구들이랑 술이라도 한 잔 하고 오세요. 저 금방 죽을 사람 아네요.”
아무 말도 못하고 서 있는 K에게 그의 아내는 애써 웃는 얼굴을 보이며 정성스럽게 도시락을 챙겨 배낭에 넣어 주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훈계하듯 한 마디 더 거들었다.
“마음을 비우세요. 산에 쉬러 간다고 생각하구요.”
주말이면 어김없이 함께 산행을 다니곤 하던 K의 아내는 채란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가를 잘 알고 있기에 충고 아닌 충고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는 그녀가 정말 대견스럽게만 보였고, 한편으로 K는 아내에게 미안스러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오늘 좋은 난꽃을 캐면 당신 이름을 붙여서 ‘수미(秀美)’라고 이름 지어 줄게.”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요. 제발 몸조심하세요.”
K는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산으로 향했다. 하지만 무척이나 수척해진 아내의 모습이 안쓰러워 몇 번씩이나 뒤돌아보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힘없이 옮겨 놓고 있었다.
결혼 후로 난이다 수석이다 낚시다 하며 늘 K와 함께 하던 그의 아내였기에, 주말이면 아내의 병을 시중하느라 집에만 앉아 있는 남편을 보기가 더더욱 안쓰러웠나보다.
지난 어느 한여름 밤, 덥고 짜증스럽다면서 시원한 밤낚시를 가자며 졸라대던 그녀와 단골 낚시터로 달려가 시원스레 불어오는 밤바람을 맞으며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다보면서 고기를 잡곤 했던 그의 부부. 그러나 누구의 시샘이 이리도 가혹했더란 말인가? 그의 아내가 그만 불치의 병을 얻고 말았다.
《수미(秀美)와의 만남》
대부분의 채란이 그렇듯 K는 오전 내내 공탕을 하고 일행들과 어울려 점심을 먹으며 ‘오늘도 수미는 찾지 못하겠구나.’하며 씁쓸하게 웃고 있었다.
“K형님, 식후일란(食後一蘭)을 꼭 하십시오. 오늘 같은 날이 어디 하루 이틀이던가요?”
그런데 일행 중 한 사람이 K를 보더니만 밥알까지 튕겨대며 한 마디 하는 것이었다.
“허긴 그려, 자네도 명품 한 촉 하게나.”
K도 덩달아 그에게 격려를 하고 배낭을 뒤져 커피를 한 잔 마셨다. 그리곤 푸른 하늘을 무심히 바라보며 소나무 뿌리등걸을 베개 삼아 그 자리에 누워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그 순간의 담배 맛이란…
뽀얀 담배 연기 속에 예뻤던 아내의 얼굴이 어렴풋하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K는 긴 한숨을 토해내듯 길게 담배연기를 내품으며 세상사 모두 잊어버리고 그곳에 누워 깊이 잠들어 버릴 수만 있다면 하고 망상에 젖어 있었다.
“형님, 여기서 잠들면 감기 들기 십상이요. 그만 일어나요. 식후니 이제 일란 하러 갑시다. 저는 저쪽 능선을 타고 갈 테니까 슬슬 따라오세요.”
그러더니 일행들은 금새 사라져 버렸다. 그 자리에 혼자 남겨진 K는 서서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 아내에게 들으라는 듯 혼자서 중얼거렸다.
‘수미, 네 병이 나을 수만 있다면 하늘의 별인들 못 따주겠니?’
진하게 풍겨 오는 소나무 뿌리의 향기를 떨쳐 버리기가 아쉬워 그곳에서 한동안 미적거리다간 정처 없는 발걸음을 서서히 옮겼다.
얼마쯤 헤맸을까? 이리저리 어수선하게 널려진 소나무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몇 그루의 난 앞에 앉아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조심스럽게 포의를 벗겨 보다가, 한 순간 ‘으악!’하고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K도 모르게 벅차오르는 가슴을 억지로 진정시키면서 다시 보고 또다시 보고하기를 몇 차례 했던가? 분명한 홍화였다.
춘란 홍화가 갖는 특유의 미완성 색깔을 어느 화가가 이를 표현할 수 있으며, 어느 시인이 이걸 노래할 수 있단 말인가? 조심스럽게 일행들에게 보여주었던 순간 ‘애구머니나’하며 털썩 주저앉던 모습들이 아직도 K의 눈에 선해 그는 혼자서 씨익 웃곤 했던 것이다.
《아내의 영전에 난꽃을 바치며》
그냥 꺾어버리기가 너무 아까워 채란 했던 첫해 그 꽃을 그대로 피웠을 때였다.
“정말 예쁘네요. 이게 정말 내 이름 꽃인가요? 정말 곱네요. 정말로 아름다운 꽃이에요.”
환한 웃음을 머금은 체 손뼉을 치며 좋아하던 K의 아내였었다.
두해 째가 된 어느 봄날 K는 병이 악화된 아내가 입원하는 바람에 전혀 관리를 못하다가 저 혼자서 어렵사리 핀 꽃을 꺾어서 다시 아내에게 보여주었다.
“당신이 다 나으면 이 꽃도 제 색깔을 되찾을 거야. 색이 좀 바래긴 했지만 여전히 예쁘지?”
애써 웃음 지으며 묻는 K에게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돌리던 그의 아내였었다.
이제 3년째, 그의 아내가 남겨 놓은 빈자리에서 ‘수미’는 세력도 건실해져 가고 점점 더 색깔도 진하게 들어가고 있었다. 공식 명명도 아니지만 K에겐 더없이 소중했던 그의 아내 향기를 지닌 그 꽃이 말이다.
K는 이제 더욱 많은 촉을 늘려 난을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 그 난을 나누어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아내의 아름다운 이름 대신 각자 아내들의 이름을 붙여달라고 말해주면서 말이다.
그렇게 K가 못 다한 사랑을 그들이 나눌 수 있기를, K가 다 받지 못한 사랑을 난을 아끼는 많은 여인들이 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래, 그런 사랑을 그의 아내 수미는 원하고 있으리라.
이제 K의 곁에서 그 아내는 영원히 떠나갔지만 그 향기 그 여운은 그 난과 더불어 영원히 남을 것이리라. 다시 한 번 난꽃을 아내의 영전에 바치며…
- 진실로 당신만을 사랑했던 K로부터 -
.................................
우리 님들 즐겁게 감상하셨나요?
진실로 난과 아내를 사랑하는 애란인이죠?
이 난도 많은 다른 아내들의 사랑을 받을 것만 같습니다. 우리 님들, 오늘도 보람찬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이 글을 읽으신 야후 벗님들과의 대화)
수미씬 이세상을 떠났어도 사랑이 지극한 그의 남편이 있기에
하늘 나라에서 행복한 미소를 지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잘 읽고 갑니다.
활기찬 일주일 되세요.
- 고란초 2009.01.05 20:18
- 산성님, 방문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건 저의 이야긴 아닙니다. 그냥 다른 분의 사연을 한번 써본 것이거든요.
이런 정도의 마음으로 난을 기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
그런대로 읽을만 하셨죠?
산성님, 새로운 주일의 시작입니다. 항상 즐겁고 보람차게 사시길 빕니다. - 화석연료절감 2009.01.06 06:21
- 그렇게 난에 큰 애착은 없이 무심결에 세상을 살아온 것 같은데 이제 서서히 난에 대한 애착이 들려고 합니다. 고란초님 덕분에... 특히 이 글 아내를 위하여 난에 이름을 지어준 애절한 이야기 새벽부터 가슴에 심금을 울립니다. 아내를 위한 '蘭' 가슴에 담습니다.
- 고란초 2009.01.06 22:10
- 화석님, 방문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난을 기르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래도 한 번쯤 길러보면 얻는 것은 많지요. 저도 20 여년 이상 기르면서 많은 것을 배웠으니까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좋아서 기르고 가꾸는 것에는 애착을 느낍니다.
이 글도 난과 아내를 모두 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만.. 제대로 표현이 잘되었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약간 심금을 울릴만 하죠?
그럼, 화석님, 즐겁고 행복한 나날 되시길 빕니다. -
- 화석연료절감 2009.01.07 08:54
- 고맙습니다. 실제 蘭을 받아보고 줘 보긴 해도 키우진 못했는데... 지난번 고란초님 초기에 저자료에서 蘭을 스크랩하실 때부터 관심이 늘어 점차 선호가가 되어 갑니다.
-
- 고란초 2009.01.07 18:09
- 화석님, 난이 사람을 기른다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제가 쓴 글 중에 '진정한 난인'이라는 문학작품이 하나 있는데, 그걸 보시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난을 길러서 손해보실 것은 없지요. 죽이지만 않으시면 말입니다.ㅎㅎ
화석님, 제 취미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나의 문학작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처녀의 코 제2편 (0) | 2011.03.01 |
---|---|
노처녀의 코 제1편 (0) | 2011.03.01 |
죽은 친구의 우인대표 (0) | 2011.02.28 |
질 때는 깨끗이 지자 (0) | 2011.02.28 |
아줌마 난 어떡하면 좋아? (0) | 2011.0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