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년본분(WHO 노인의 해를 맞으며)

2011. 2. 28. 20:17나의 단상집

 우리 님들 이제 우리 나라도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습니다. 남녀 공히 평균수명이 75세를 넘어서고 있으니까요. 요즘은 출산률도 저하되고 오히려 노인층 인구가 급증하여 이러다간 노인국가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노인의 해를 제정하였지요. 그만큼 노인을 위하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 듯합니다. 65세 이상의 노인을 복년(福年)이라 칭해보고, 복년에
해야할 복년분본(福年粉本)에 대해서 언급해보고자 합니다.
 이 글은 은사님의 글을 약간 참조하였습니다.
 

  우리 님들 즐겁게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WHO 노인(老人)의 해를 맞으며



                     복년분본(福年粉本)



 느릿느릿 20분 거리를 출퇴근하노라면 희한한 정경에 맞닥뜨리곤 한다. 꽁꽁 얼어붙은 길을 허술한 차림의 노파가 신문지를 움켜쥐고 흰 머리를 흩뜨린 체, “늙으면 죽어야제. 늙으면 죽어야제 …” 울먹이며 동동걸음이었다.

 온통 젖은 치맛자락에서는 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바깥이 사뭇 추워 밤새 곱송그리다 아뿔싸 앞뒤를 한꺼번에 저려버렸음이리라. 측간도 안 딸린 단칸 셋방살이 아들 - 분명 딸은 아닌 - 집에 간신히 몸을 의지한 노파로 생각되었고, 께끄름한 그녀의 말소리가 종일 구슬펐다.

 또 한 번은 골목길 옆집 대문 앞에 주름뿐인 영감이 빗자루를 들고 서서 “썩을 놈들 자그마치 처마시제, 노무 집 문간에다 또 꾸역꾸역 기어놨네.” 욕지거리며 연신 침을 뱉는 것이었다. 보아하니 왈칵 구역질이 치미는 한 덩이 토물(吐物)찌꺼기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지난밤 누군가 포장마차를 뒤져 헤매며 마시고 먹고, 머리가 돈 나머지의 실수였으리라.

 나는 그냥 고개를 돌려 총총히 걸었다. 그러나 ‘소주 한 잔쯤 단숨에 들이켠 다음 칵! 소리를 내품는 결곡한 젊음의 맛 한번 못보고 살아버린 꽤죄죄한 늙은이군.’ 홀로 깨죽거리며 ……

 이제 정년퇴직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곶감 빼먹는 맛이 나기는커녕, 남의 신세로 사는 시뜻한 느낌이어서 냉큼 그 날이 왔으면 싶어지는 것이다. 철없게 이승을 버리려 드는 심적 갈등일지도 모른다고 지레 소름이 끼치다가도,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또 그것도 하는 어른을 그다지 부러워했던 어렸을 적의 원시감정일지도 모른다며 짐짓 얼버무려 보기도 하였다. 아마도 빼낸 젊음들과 더는 나눌 것이 없어진 얼빠지기가 된데다 흐늘흐늘 해진 몸뚱이마저 가눌 바 없는 자화상 탓이리라.

 어떻게든 65세까지만 목숨을 부지해낸 사람이면 버스나 목욕탕 값을 무조건 반감해준단다. 이대로 몇 년이 지나 내 그 나이 될 녘이면 비행기도 공짜로 태워주는 인심 좋은 세상이 될 듯싶은 기세여서 정녕 희망에 부푼다. 그렇다 친들 당장 온 값을 치러야 하는 장정들도 버스를 타려면 엎치락뒤치락 진땀을 빼야하는 시방 형편이 아닌가? 굳이 앞둘 것까지도 없이 반값만 들고 흐느적거리며 다가서는 약골들을 제발 차문 밖으로 밀어내지나 말아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할 따름이다.

 도대체 얼마나 불효자식 투성이어서 이렇듯 오나가나 효도만 찾는 염불들인가? 남들이 빗듣고 모조리 제 구실 못한 어버이들만 사는 곳으로 알까 두렵다. 효(孝)란 성현의 길을 닦기에 바빠 후세들이 깃들 보금자리마저 잊은 뉘우침에 응어리진 공자 맹자의 콤플렉스이리라.

 살을 저미고 이를 갈며 도토리 하나로 서로의 시장을 맞추어낸 외곬, 이런 우리 사이를 뉘라서 감히 빗디디게 할 수 있겠는가? 손에 손을 맞잡고 오순도순 정답게 살고 있는 백성들이 어찌 나라를 저버리겠는가 말이다. 이러한 인간의 정서나 슬기는 본디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절로 우러나야 하는 법, 삿대질이나 윽박질 따위로 지어지는 마음씨는 절대 아닌 것이다.

 효(孝)하라는 말을 앙사부모(仰事父母)하라, 또 어른께 올바르게 대하라는 등으로 풀이가 된다면, 올바로 섬겨야 할 상대가 구태여 어버이 아니면 어른이라는 나이의 다과(多寡)만을 따진 수직(垂直) 관계의 윤리뿐이겠는가? 사람이 태어나면 엄마 품에서부터 시작하여 아빠, 형제, 자매, 벗, 이웃사람, 사부, 후배 또 검둥이, 흰둥이 등등 옆으로 한없이 넓게 퍼져 못내는 50억이 넘는 나 아닌 숱한 사람에 이르고 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사랑과 미움에 휘말리는 너와 나의 수평적 인간관계에서 소용돌이치는 희로애락의 가락과 장단에 노니는 춤, 그리고 경련이 이는 동안 인생은 무르녹는 것이 아니겠는가? 케케묵은 말로는 누구나 시처위(時處位)와 상관없는 평교(平交)를 맺는데 익숙해야겠고, 건방지게는 모름지기 열심히 공부하며 자기전개(自己展開)를 일삼을 줄 아는 철학자가 되어야겠다는 것이다. 한 술 더 떠 삼라만상 산천초목의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함께 있고, 의좋게 살고지고 하는 형이상학(形而上學)은 인간만이 꿰뚫은 예지(叡智)가 아니던가?

 이제 조만간에 너덧 사람 중 하나는 65세가 넘은 늙은이라고 한다. 효도를 해야 할 아들딸의 절대수가 모자라는 꼴이 된다. 그래도 방구석에 앉아 효나 하라며 뭉그적거리다간 굶어죽기 십상이다. 모두 오래 살기를 바라 너무 오래 살기 때문에 별도로 수청을 들 수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진작부터 남의 신세 지지 않고 제 힘으로 먹고 사는 늙은이 수를 미리 대충하여 노인복지 급여금의 예산을 짜고 있는 곳도 있다. 내가 백 살이 되어 행여라도 달나라 구경을 공짜로 시켜주겠다고 할까봐 미리 적금을 시작, 로켓 삯값만은 전액을 마련해보리라 마음먹고 있다.

 늙는다 함이 죄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으뜸가는 효녀의 애비임을 생각하니 나는 노상 으쓱해진다. 그러나 흔해 빠진 천더기 불효자식 하나만이라도 있기를 빌다 지친 여인네도 많다. 또 신형 아낙네들의 제4의 포인트! 농익고 덜퍽진 비부(秘部), 유연하게 몽우리 진 그곳을 신통하게 발보인 블루진에 곱살낀 눈을 빼앗기고 자동차에 치일 뻔한 낡아빠진 큐핏이 어찌 이 몸 하나 뿐이랴. ‘늙은 것이 죽지 못해 여그까지 왔소.’ 수줍은 듯 의료봉사단을 꼭두새벽에 찾는 무의촌마다의 굽은 할머니들의 한결같은 고즈넉한 하소연 …

 늙는다는 것은 생물이면 으레껏 부딪혀야 하는 삶의 현장이다. 눈부신 바이오테크놀러지의 시대라고 하지만 아직은 수(壽)한다는 뜻은 연장된 늙은 상태를 말할 따름이다. 제아무리 찌그러지고 퇴색타 못해 더디고 답답해진 주책바가지일망정 그래도 그 삶 자체는 진정 지고지상(至高至上)의 환희이며 희열인 것이다. 설령 내일이 없는 지금 이 순간만의 그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진실로 삶만이 인간의 원리(原理)인 것이다.

 이웃 일본에서는 노년을 숙년(熟年)이라 불리고 있다. 무르익은 나이라는 뜻이겠다. 왕가를 비롯한 대신, 그 밖의 수많은 장(長)들 자리에 지긋한 고희(古稀)가 수두룩한 곳이어서, 숱한 졸속과 떠세들의 행패와 시행착오에 시달린 여기 풍토로는 정녕 부럽기 짝이 없다.

 주제넘은 짓인지 모르겠으나 누구든 환갑이 지나고 65세를 넘긴 분에게는 복년(福年) 또는 복인(福人)이라 부를 것을 감히 제창하는 바이다. 속된 말로 이 풍진 세상에서 그만한 세월이면 다른 데의 백년에 견줄 만한 시간의 양(量)이니까 말이다. 아울러 그만큼 온 누리에서 비길 바 없이 융숭한 복을 탄분들로 믿어지기 때문이다.

 더부살이 심정으로 남은 기간을 잘 견디어 나도 요행 복년에 이르게 되면 이내 멋있는 헌장(憲章)을 하나 제정코자 궁리 중이다.

 이를테면,

 복인(福人)은 받을 것은 없고, 줄 것만을 갖고 있어야 한다.

 복남(福男)은 자주 토하고 부지런히 내뱉는 사람을 욕하지 말아야 한다.

 복녀(福女)는 되기가 바쁘게 대소변을 미리 보고 잠자리에 들어야 하며, 복녀는 죽은 부모만 섬겨야 한다.
 등등의 역설, 핀잔, 비유조로 얼마든지 엮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하고 기필코 삽입해야 할 골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스스럼없이 헤고 신명나게 즐기는 젊음을 상없이 시새우고, 훼방치는 뭇따래기들과 맞붙어 해묵은 복년일수록 앞장 서 맨주먹으로 이를 악물고 싸우다, 문약의 탓에 먼저 꺾여 스러지는 그날까지 스스로 닦고 가꾸는 미약한 존재임을 여기 엄숙히 선언하노라. … ’

 어떻게 살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보다 심각해야 할 복년이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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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님들 즐겁게 감상하셨나요?
 글이 약간 이해하시기 힘드셨죠? 그래도 복년의 노인이 해야할 바를 잘 아셨을 것만 같습니다. 요즘은 자녀들에 의존하지 않는 노인들도 많이 늘어났더군요. 자식들의 효도를 바라는 것보다는 복년이 되면 스스로 자립할 수 있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자식이 없는 노인들은 당연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을 것 같구요.
  우리 님들 모두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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