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 3. 14:39ㆍ나의 문학작품
우리 님들 영어 원서를 좀 더 손쉽게 읽는 방법을 아시나요?
어느 소설가가 몇 권의 영어 원서를 쉽사리 읽을 수 있었는데, 영어를 잘 아는 아가씨의 보는 눈 때문이었습니다. 과연 어떤 눈 때문이었을까요?
그걸 알아보기 위해 문학 작품 속으로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님들 즐겁게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아가씨의 눈
- 아가씨의 빛나는 눈입니다.
(고란초의 컴퓨터 마우스 그림집에서) -
대학 영문과를 갓 졸업하고서 문학을 하겠다는 일편단심으로 어느 잡지사에 취직했다는 묘령의 아가씨가 있었다. 원고를 뒤적거리다가 우연히 주소를 알고 보니 바로 앞집이라면서 정색을 하고 몇 번인가 찾아와서는 요즘 읽기에 알맞은 책을 좀 보여 달라고 성화였다.
천성이 게으름뱅이인데다가 나이가 들수록 책읽기와는 멀어지는 터에 하물며 원서라고는 읽을 생각도 못하는 소설가 형수였다. 난데없는 아가씨의 성화에 졸린 눈을 반쯤 감고서 언제 사둔 지도 모르고 작자나 내용도 모르는 영어 원서 한 권을 되는대로 집어서 내주고 말았다.
그런 후 한 달도 채 못 되어 그 아가씨는 너무나도 좋은 글들이 많아 꾸중을 들을 각오를 단단히 하고, 마음대로 색연필로 언더라인을 치면서 읽었으니 만일 새 책으로 바꿔달라면 사주겠노라 상냥한 미소까지 띄며 가져왔는데, 다소 불쾌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받아두고서 그날 밤 심심풀이로 한 장 두 장 뒤적거려보기 시작했다.
몇 장을 넘기니 유난히 두텁게 붉은 색 언더라인이 처져있기에 그 대목을 영어 콘사이스를 꺼내놓고 일일이 해석하면서 읽어보았다.
‘만약에 이 세상에 남자란 게 없었던들 여자들은 처녀수태 하는 방법을 기어이 연구해내고야 말았을 것이다.’
대략 이런 내용인데 이 처녀는 이 대목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책의 중간쯤 제쳐보니 처음으로 온 페이지가 그대로 하얗게 남아 있었다.
‘남녀동등이니 심지어는 여남동권이니 제아무리 떠들어도 여자가 남자보다 우월할 수 없다는 확실한 논증이 나에게 있다. 여자인 이상 한 달이면 평균 나흘씩 반드시 있는 … 그들이 건강할수록 이 숫자는 한층 정확한 것이다. 월경 때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불가피한 침체와 정지가 있는 것이다. 여자의 일생을 통해서 월경이 있는 기간을 삼십년으로 친다면 도합 1440날, 햇수로 따져도 자그마치 4년은 남자에게 뒤떨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인류의 창세기부터 계산한다면 수천 년도 넘을 것이 아닌가? ……’
생각건대 이런 대목은 책장을 쥐어뜯어 버리고만 싶은 처녀의 심사였을 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형수는 재미가 나서 자꾸만 다음 장을 더듬었다.
‘나는 플라톤이 향연에서 주장한 남녀 일체설을 부인하는 자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와 반대로 남자와 여자는 원래부터 따로따로 모였는데, 그들이 마치 개나 고양이처럼 때와 곳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말썽을 일으켰기에 조물주가 보다 못해 남자와 여자의 눈알만을 되는대로 바꿔 붙여버렸던 것이다. 내 주장이 거짓이 아닌 증거로는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곁눈질을 해가며 제각기 제 육신을 찾느라 별 꼴이 다 많으며, 심지어는 애써 찾은 남녀에게 곁눈질하는 경우 칼부림까지 하게 되는 일이 얼마나 많으냐 이 말이다.’
이토록 구수한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색연필 흔적이 없다는 것은 읽지 않고 그대로 넘겨버리지 않았나 싶게 이상한 감이 들었다. 그런가 하면,
‘연애의 기원을 캐볼라치면 정충이 자궁이란 거센 장벽을 뚫고 헤엄쳐 들어가 오직 난자를 찾아 꼬리를 흔들며 올라간다는 사실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연애에 있어서 남자가 보다 더 능동적이라는 원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 페이지에는 붉은 언더라인이 짙게 처져 있는 것을 보면 이 아가씨가 상당히 공감한 듯싶지만 이런 이야기야말로 원작자나 이 처녀가 현대과학을 모르는 데서 출발한 아주 잘못된 판단이었다. 왜냐하면 정충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남자에게서 배출되는 것이나, 미안하지만 그 정충 자체가 벌써 남성과 여성 두 갈래로 나눠져 있다는 한 가지 사실만 안다면 그따위 군말은 웃음꺼리밖에 되지 않는 것이었다.
형수는 오히려 우둔한 편은 여자라고 보고 싶었다. 여자가 지니고 있는 난자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어디까지나 중성이면서 어째서 자리를 잡고 정충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고 혼자서 코웃음을 쳤다.
그렇다면 이 아가씨가 감동하여 언더라인을 그어놓은 대목은 형수에게는 아무런 흥미도 느낄 수 없는 구절이란 것을 깨닫게 되자 무릎을 탁 치며 한없이 흥겨워지는 것이었다.
며칠이 지난 날, 기다리고 있던 차에 나타난 이 아가씨에게 이번엔 책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노상 읽고 싶었던 영문 원서 한 권을 선뜻 내주며,
“사람에 따라 보고 느낀 바가 가지가지겠지만 정말 책 보는 눈이 좋으며 센스가 독특하더구먼요.”
형수의 이 말에 책을 받아 들고 싱글벙글, 아름답게 반짝이는 처녀의 눈도 본체만체 형수는 두 눈을 질끈 감고서 말을 이었다.
“이 책도 색연필로 언더라인을 마음대로 그어가면서 읽으십시오.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
이렇게 해서 형수는 절반의 노력도 들이지 않고 손쉽게 읽은 영문 원서가 너덧 권도 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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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님들 즐겁게 감상하셨나요?
이제 손쉽게 영어 원서를 읽는 방법을 아시겠죠? 이건 어디까지나 문학 작품이므로 말이 안 되는 소리가 제법 있었습니다. 그래도 실제 가능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ㅎㅎ
우리 님들 모두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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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서로가 속성을 잘 알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고 神 이겟지요?"고란초님."ㅎㅎ
- 고락산성 2009.10.30 19:11
- ㅎㅎㅎ 조수를 둔 편이군요.ㅎㅎ
잘 읽고 갑니다.
오늘은 종일 농장에서 양파모종을 심었습니다.
처음 해 본 농사일이라 량을 판단을 못하여
시장엘 두번이나 왕복하였으나 그래도 부족하여 내일 심기로 하였습니다.ㅎㅎ
편안한 금요일밤 되시고 즐거운 주말, 휴일 맞으시기 바랍니다. -
- 다영맘 2009.10.30 21:57
- 벌써 주말이네요^^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휴일 잘 보내시길요. 글 잘 읽었답니다
-
- 화석 2010.01.22 03:40
- 고란초님... 바쁜 시간에도 짬을 내어 이렇게 글 쓰심에...
참으로 존경하고픈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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