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오염 이야기 제2화: 러브 커낼 사건

2011. 3. 5. 11:00나의 의학소고

 우리 님들, 환경오염 이야기 제2화는  환경오염과 관련된 질환의 실화를 중심으로 언급해보겠습니다. 이런 글이 환경오염을 다시 한번 더 뒤돌아보고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나라 경우도 지난번 태안반도에 기름 유출 사고로 많은 분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고생하고 있으며, 환경오염의 정도도 아직까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이제 소개할 미국의 러브 커낼 사건은 화학약품 폐기물 매립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당하는 유명한 사건입니다.
  우리 님들 과연 어떤 사건인지 한번쯤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환경오염 이야기

                                               
                                                       (
제2화)
 

           러브 커낼 사건(Love Canal episodes)


 러브 커낼 사건은 매립된 유독성 화학 폐기물에 의한 건강피해 사례의 대표적인 에피소드입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1892년 퇴역 대령인 러브(William T. Love)가 나이아가라 강 상류에 길이 약 10km에 이르는 운하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에리 호와 온타리오 호를 연결하는 나이아가라강은 이들 호수의 수면 차이가 85m인 까닭에 그 큰 낙차로 세계적인 장관을 연출하는 나이아가라 폭포라는 명소가 있을 뿐 아니라 막대한 수력발전을 얻을 수 있는 에너지 자원도 함께 가지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러브는 여기에 운하를 건설한다면 거대 규모의 수력 발전소를 건설할 수 있다는 계획을 세웁니다. 19세기 말 당시는 직류 송전 방식으로 장거리 송전이 거의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전기 수요가 많은 공장은 필연적으로 발전소 부근에 건설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발전소 건설은 공단 조성에 매우 유리한 조건이 될 것이고, 싼 전기 값으로 공장이 몰리게 되면 온타리오 호수 연안에 그야말로 모범적인 도시를 세울 수 있다는 계산도 섰습니다. 그의 이러한 매력적인 프로젝트는 당시로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얻기에 충분했고, 그는 수자원과 토지를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배려되었습니다.

 나이아가라 강에서 북쪽으로 폭 18m, 깊이 3m로 1km 정도의 운하 건설 공사가 진행되고 있을 때, 경제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파국 양상으로 치닫게 됩니다. 이른바 대공황의 여파로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하자 러브 회사는 문을 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이 무렵에는 루이스 테시아(Louis Tesia)에 의해 교류 방식의 장거리 송전기술이 실용화됨으로써 공장이 반드시 발전소 부근에 세워져야 된다는 당위성도 상실되었습니다. 이리하여 1910년 경 이 사업은 종말을 맞게 되고 러브 웅덩이는 나이아가라 시의 동쪽에 파여진 체 수년 동안 기억의 밖으로 밀려나 있게 됩니다.

 그러는 동안 1881년부터 시작된 나이아가라 수력 발전의 급격한 팽창과 전기 가격의 하락으로 특히 전기화학 공정에 기초한 화학산업체들이 모여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곳은 염소, 수산화나트륨, 알루미늄, 철 함유 합금이 대량 생산되는 공장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산업발전이 인근 지역의 경제 성장에 기여한바 컸음은 두 말할 나위도 없고, 그 중의 하나로서 1905년 나이아가라 폭포 부근에서 엘론 후커(Elon Hooker)에 의해 설립된 후커 케미칼 회사는 종업원 75명으로 시작하여 염소 및 가성소다를 제조하기 시작합니다.

 후커 케미칼은 1978년 당시 18,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리는 다국적 기업인 Occidental petroleum Co의 방계회사로서 나이아가라 폭포 부근에 본사를 두고 뉴욕 주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업체로 성장하게 됩니다. 한편 방기된 채로 있던 러브 커낼은 1942년 이를 소유하고 있던 나이아가라 전력 및 개발회사가 후커 케미칼에게 폐기물 매립을 허가 하였습니다. 이후 1947년에 이 땅은 후커 케미칼에게 매각되어 염료, 향료, 용제 등의 생산과정에서 발생된 소다, 알카리, 지방산, 염소화 탄화수소 등과 같은 폐기물들이 플라스틱 또는 철제 드럼에 넣어져서 1942년부터 1952년까지 6 ∼ 7.5m의 두께로 약 21,000톤의 산업 폐기물이 매립되었습니다.

 1953년에 러브 커낼은 거의 채워져서 흙과 진흙으로 덮여지고 풀이 나기 시작하여 거대한 초지로 변하였고, 후커 케미칼은 나이아가라 폴스(Niagara Falls)시 교육위원회에 약 16에이커에 달하는 이 부지를 단돈 1달러에 매각하였습니다.

 그후 이 터에는 초등학교와 주택이 들어서게 됩니다. 그러면서 50년대에는 폐기물 매립지를 덮은 운동장에서 놀던 아이들 가운데 눈과 기도의 자극증세를 호소하고, 심지어는 땅위로 스며 나온 화학물질에 화상을 입었다는 얘기들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50년대에는 무심히 흘러갔고, 70년대부터 이런 저런 사고가 감출 수 없는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70년대에는 건물 지하실에서 이상한 물질이 스며 나오고 하수구는 검은 액체에 부식되어 있었습니다. 시민들은 피부병과 두통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태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지경으로 번진 것은 1976년의 홍수로 러브 커낼의 폐기물이 온통 물에 포화될 정도로 노출되고, 1977 ∼ 78년의 겨울 무렵 이 지역은 슬러지로 만신창이가 됩니다. 그리고 이들 유독물질로 인한 피부질환(chloracne 등)과 기형아 출산, 유산율 증가 등이 두드러지게 됩니다. 이 무렵 이 문제에 손을 댄 시 당국은 유독물질에 의한 지하수의 극심한 오염을 확인했으나, 별다른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습니다. 이 가운데 학부형인 깁스(Loris Gibbs)는 자기 아들의 만성 천식과 신장 간 질환의 원인이 학교 터 밑의 유독 물질이라는 확신을 갖고, 학교 당국에 전학을 청원했으나 거절당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깁스는 가정 방문 끝에 대부분의 애들이 갖가지 질환에 시달리는 것을 확인하고 학교의 폐쇄를 청원하기에 이릅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뉴욕주 보건당국은 이 지역의 역학 조사에 나서게 됩니다. 그 결과 이 지역의 유산율이 다른 곳에 비해 4배가 높고, 1973 ∼ 78년 사이에 출생한 16명 가운데 9명이 정신박약, 심장 신장 질환의 선천성 기형아 등등의 보고가 나오게 됩니다. 미국의 환경청은 1978년 2월 러브 커낼 지역의 가장 인접한 주택의 지하실에서 26가지의 유기 화합물을 검출했습니다. 그리고 8월에 정밀 조사를 실시한 결과 82종의 화학 오염물질을 검출하고 그 중 11가지가 사람의 발암물질로 추정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로써 카터 대통령은 이 지역의 남부를 재난지역으로 선포, 239가구를 이주 조치합니다. 1980년 5월까지는 이주 대상으로 710가구가 추가됩니다.

 러브 커낼 사건이 정치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1981년까지 투입된 예산만도 8천만 달러에 달했습니다. 1979년 이래로 폐기물 매립지역 인근 첫째, 둘째 줄의 집들은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금단구역이 되었고, 학교는 물론 폐쇄되었습니다. 이곳에는 유독물질의 증발과 침출을 막고 빗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 플라스틱 덮개가 씌워졌고, 0.5m 가량의 흙에 입힌 잔디가 심어졌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얼씬하지 못하도록 2.5m 높이의 울타리가 둘러쳐졌습니다. 이건 다름 아닌 유령도시의 탄생이었습니다.

 주민들은 수십억에 이르는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으나, 책임의 대상을 규정하는 일이 쉬울 턱이 없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이 환경 사건은 들끓는 여론을 불러일으키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사건은 슈퍼펀드 법안을 제정, 시행토록 하는 일대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이 특별기금법의 제정은 환경정책에서 중요한 전환을 의미했습니다. 이 전의 환경 배상법 체계 하에서는 피해 지역 발생의 경우 피해자와 가해자의 소송 관계를 통해 줄다리기 끝에 배상액이 결정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슈퍼펀드법은 손해배상법의 관행을 초월, 환경청의 특별조성 기금으로 피해지역에 대해 신속히 배상 처리하고 사후 가해자를 가려 이미 배상된 비용의 최대 3배까지 요구할 수 있도록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상으로 러브 커낼 사건의 간단한 소개를 마칩니다.

 이 글의 참고 자료로는 김 명자씨가 쓰신 환경리포트에 나오는 '러브 커낼 사건'과 사이언스지에 발표된  Adeline G. Levine이 쓴 'Love Canal'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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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님들 잘 감상하셨나요?
이제 환경오염의 중요성에 대해서 약간은 이해가 되시죠?
그럼 다음엔 환경오염의 평가와 대책 등에 대해 언급하겠습니다.
  우리 님들, 오늘 하루도 즐겁게 지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