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소녀(少女) 제1편

2011. 3. 7. 20:17나의 문학작품

 우리 님들, 고란초의 아주 오래 전의 글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이건 지금부터 43년전 제가 고등학교 시절에 써두었던 것인데, 저의 작품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발견하였기로 시덥지 않은 글이지만 님들의 양해를 구하고서 올려보겠습니다.
  우리 님들, 약간 유치하지만 일단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글을 읽으시면서 제가 '님들의 좋은 글' 방에 올려드렸던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 음악을 한번 같이 들어보시면 좀 더 이 글을 쉽게 이해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죽음과 소녀(少女)


                                                          (제1편)

                   



 밤, 조용한 밤. 정막하고 평온한 밤이다.

 침실에 누워 천정만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던 나는 불현듯 일어나 침대 맡에 있는 전축의 스위치를 켠다. 그리고는 선반 위에 죽 펼쳐진 레코드 판 중에서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 에 시선을 준다.

 그 레코드판을 올려놓고 사운드박스를 조용히 그 위로 얹어 놓는다. 다시금 침대에 누워 아늑히 흘러나오는 현악 4중주곡에 귀를 기우리면서 살며시 눈을 감는다. 음악이 흐르면서 나만의 사색이 시작된다.

 이런 생각과 저런 생각들이 교차되는 가운데 어느덧 내 머리 속에 전개되는 것은 잔바람에 맑은 물결이 찰랑거리는 호숫가였다. 그리고 희게 반짝이는 모래밭에 외롭고 쓸쓸하게 앉아있는 소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둠이 서린 슬픔에 찬 표정으로 뻘건 노을이 물드는 서쪽 하늘만을 힘없이 바라보고 있는 가련한 소녀의 모습이 점점 시야로 확대되어 들어온다.

 그리고 나의 고막을 울리는 울부짖음 소리, 그것은 소녀의 애처로운 절규였다. 그 뉘를 원망하는 듯한 애수에 찬 하소연인가? 아마도 나에게 그 무언가를 호소하는 듯한 슬픈 외침인지도 모른다.

 1악장이 차츰 고조를 이루어 협화음이 들려오는 가운데 나의 생각은 계속된다. 점차 부르르 떠는 듯한 소녀의 손이 바로 내 손 앞에 와서 멈추는 것이었다. 어느덧 내 손에 닿는 것은 온기 잃은 소녀의 가냘픈 손가락. 소녀의 손바닥이 살며시 내 손을 덮는다. 그리고는 모진 삶의 구가를 위한 마지막 안간힘이 잡은 손을 타고 차츰 차츰 나에게 전도되어 온다.

 그리고 또한 나의 심장을 꿰뚫는 듯한 소녀의 외마디 몸부림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싶더니, 기력 잃은 소녀의 몸뚱이가 허공을 가르며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또다시 쓰러진다.

 어느덧 현악 4중주는 제 2악장으로 옮겨가고 있다. 나는 쓰러진 소녀를 한없이 애처롭게 바라본다, 그리고는 고개를 늘어뜨리며 힘없이 내 앞에 쓰러진 그 소녀를 두 손으로 잡아 일으킨다.

 소녀의 얼굴이 점차 확대되며 붉은 저녁노을에 반사되어 반짝 빛나는 순간 나는  나의 눈을 의심하면서 놀라움의 비명을 지른다.

 아! 이게 누구인가? 너는, 너는 바로 지난 언젠가 나와 같이 음악 감상실에 같이 앉아 ‘죽음과 소녀’를 감상하던 그 소녀가 아니던가? 나의 희미한 기억 속에서 우연히 떠오르는 것은 수년전 음악 감상을 하기 위해 나와 같이 회관에 간 적이 있었던 소녀의 모습이었다. 나의 권유에 못 이겨 소녀는 나를 따라 나섰고, 서로는 비좁은 자리에 어깨를 맞대고 나란히 앉아 감미롭게 흘러나오는 그 곡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한참 후 소녀의 옆얼굴을 살며시 훔쳐보던 나는 그만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다. 소녀의 눈가에 맺혀 아침 이슬처럼 빛나던 눈물이 볼을 타고 소리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소녀의 이름은 ‘수미’였었다. 그녀는 무척이나 음악을 좋아했고, 음악 감상  뿐만 아니라 피아노 연주도 썩 잘한 편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적한 시간이면 소녀의 집을 찾아갔고, 내 맘을 사로잡는 듯한 소녀가 치는 피아노 소리에 도취되어 시간 가는 줄도 모른 채 앉아서 듣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그녀는 날 오빠라고 부르며 따르기 시작했다. 그 소녀가 치는 피아노 연주는 너무도 훌륭한 것이었으나, 그녀는 아직은 너무도 미숙하여 남을 위한 연주가 되려면 아직도 멀었노라고 몇 번씩이나 말하곤 했다. 그녀는 연주가 끝나면 곧장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으니까.

 “오빠, 피아노 연주가 형편없지요? 곡들도 별로 마음에 안 들지요?”

 난 그녀의 입을 가로막아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적어도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선 너무도 좋은 곡들만 연주했기 때문이다.

 “수미야, 곡이 맘에 안 들다니 … ? 전혀 그렇지 않은데. 수미는 내 맘에 맞는 곡들만 골라 연주해 주니깐 피아노 소리만 들어도 내 맘이 차분히 가라앉고 기분도 좋아져. 그럼 말이야, ‘베토벤’ 의 『월광곡』을 연주해볼 수 있겠어?”

 소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금 피아노 건반 위에 두 손을 살며시 얹는다. 그리고는 열 개의 손가락이 춤을 추듯 건반 위를 오르내린다. 그 소녀는 가끔씩 나의 음악 감상 하는 모습을 곁눈질로 쳐다보곤 했다.

 나를 바라보는 소녀의 동그란 눈망울은 반짝거리고 있었지만 굳게 다문 그녀의 입가엔 미소를 잃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만족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혼신의 힘을 다해 피아노 연주에만 열중하고 있었지만, 난 그녀의 잃어버린 미소를 다시금 되찾도록 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들을 생각해야만 했다.

 나는 이 문제를 놓고 몇 날 며칠 밤을 골똘히 생각하였다. 그런 연후에 나는 이 소녀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새로운 악기인 바이올린을 배우게 된 것이다. 그리고는 소녀를 찾아가 쉬운 곡부터 피아노 반주에 맞춰 연주를 해보기 시작하였다. 수개월이 지난 후 차츰차츰 어려운 곡들도 서로가 연습하여 서로를 위해 열심히 합주하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그 소녀의 입가에 차츰 생기가 돋아나고 사라진 미소 또한 되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녀는 가끔 나에게 농담도 걸기도 하였고, 활짝 웃는 모습도 보여줬으니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소녀는 나의 악기에 관심을 가진 듯 불쑥 이렇게 간청했다.

 “오빠, 저도 바이올린 좀 가르쳐 주세요, 네?”

 “그래? 하지만 안 돼. 수미는 피아노만 열심히 치면 돼. 앞으로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도록 지금보다 더욱 열심히 연습해야만 해. 이 악기는 켜기가 너무도 어려울 거야.”

 “오빠, 알겠어요. 그렇지만 저도 한 번만 켜보고 싶어요.”

 나는 기꺼이 소녀의 조그만 어깨 위에 바이올린을 살며시 얹어 주었다. 그리고 활대도 손에 꼭 쥐어주었다. 그녀는 몇 번인가 켜보는 듯하더니 이내 단념한다.

 ‘그래, 네겐 안 어울리는 악기야. 역시 안 배우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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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님들 잘 감상하셨나요?
이 글은 제가 고등학교 때 쓴 것이므로 다소 어색하더라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조속한 시일 내에 계속해서 제2편을 올려드리겠습니다.
 우리 님들 오늘도 편안한 하루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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