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 7. 20:18ㆍ나의 문학작품
우리 님들, 저의 고등학교 시절 작품인 죽음과 소녀 제2편입니다.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곡인 '죽음과 소녀'를 들으며 떠오르는 소녀가 죽음을 맞게 되는 과정을 그려보았는데, 그 당시에 제가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죽음과 소녀'에 나오는 소녀처럼 수미라는 한 소녀의 임종을 지켜본 적이 있었기로 음악과 환상이 겹치는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울님들, 다소 우울한 글이지만 즐겁게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죽음과 소녀(少女)
(제2편) 나는 소녀를 두 팔로 안아 보드라운 잔디밭에 눞혔다. 나만을 한없이 바라보던 소녀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오빠! 제 모습이 너무나 초라해 보이죠? 전 왜 이렇게 허약할까요? 남들처럼 살도 좀 쪄봤으면 … ” 살가죽이 온통 뼈에 달라붙은 듯 소녀의 몸은 너무나도 허약하였고, 바람만 약간 불어도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그녀는 희고 보드랍고 고운 손을 가졌다. 우수에 젖은 듯한 까맣고 커다란 눈동자도 지니고 있었다. 깨물고 싶도록 귀엽고 예쁜 손가락을 부끄러운 듯 그녀의 품속에 감추며 나지막이 소녀는 말했다. “오빠, 전 오래 살고 싶어요. 오빠 곁에서 언제까지나 … ” “그럼! 오래 오래, 아주 오래 살아야지. 앞으로 커서 시집도 가야하고 수미를 닮은 예쁜 아기도 낳고 … 정말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야.” 나는 그 소녀의 장래 문제까지 스스럼없이 말해줬으나, 그 말을 듣는 소녀의 표정이 갑자기 심각스러워졌다. “그럴 수 있을까요? 오빠! 정말로 저도 그럴 수 있어요?” 4개의 현악기가 저음 속에 묻혀 고요한 음률을 흘려보내고 있다. 갑자기 나의 가슴 속이 답답해져 온다. 그러나 소녀에 대한 환상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다. 어느덧 나의 환상의 세계는 수년을 훌쩍 뛰어넘어 이제는 병석에 누워있는 극도로 초췌하고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 소녀를 생각하고 있다. 그 소녀와 나와는 그간 보람 있는 나날을 보냈지만 이제 소녀는 혼자 몸을 가누지도 못한 체 수척해질 대로 수척해진 것 같았고, 매일 매일 죽음과 싸우는 가련한 환자가 되고 만 것이다. 소녀가 입원된 병실을 지키고 있던 나는 우연히 만난 주치의 선생님으로부터 너무나도 충격적인 말을 듣고 말았다. “지금 저 환자는 재생불량성 빈혈에 걸려 있어요. 나로선 최선을 다해 보겠지만 아무래도 오래 살 수는 없을 것 같군요. 그리고 중증 폐렴이 합병되어 있으니 … ” ‘아! 하나님도 무심하시군요. 어찌해 가련한 이 소녀를 앗아가려 하시나이까?’ 나는 나도 모르게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이 입가로 새어나왔다. 그 소녀는 오래전부터 각혈을 했던 것이다. 이젠 병마를 이겨낼 힘마저 쇄진한 체 곪아 썩어가는 폐장이 소녀에게 쓰라린 아픔과 한없는 눈물만을 안겨주고 있을 따름이었다. 나는 소녀가 누워있는 병실의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간다. 순간 그곳에 내비치는 처참한 모습이 나로 하여금 고개를 돌리도록 만들었다. 심한 각혈로 침상엔 선혈이 낭자하게 깔려있었고, 검붉은 핏덩이를 입 안 가득 물고 임종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검은 눈동자는 흐려져 빛을 잃어버린 체 껌뻑거릴 뿐이었다. 마지막 제 4악장이 차츰차츰 고조를 이뤄가고 있다. 온갖 슬픔만을 내 가슴 속 깊이 안겨주면서 말이다. 정말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너의 모습을 그려봐야 하다니. 나는 정신없이 소녀에게 달려가 가냘픈 손을 움켜잡는다. 핏덩이가 엉킨 차가운 손이 나의 전신을 짜릿하게 꿰뚫고 지나가는 듯하며, 내 마음을 슬픔 속으로 빠뜨리고 있다. 소녀가 감은 두 눈을 살며시 치켜뜨면서 나에게 마지막 말을 남긴다. “오빠! 전 행복했어요. 지금도 행복해요. 오빠가 항상 제 곁에 있어 주니까요. 오빠 절 위해 마지막으로 바이올린 곡을 한번 켜주시겠어요? 그런데 참! 피아노 반주가 없네요.” “그래, 그렇게 해주고말고. 너를 위한 것이라면 뭐든지 다 들어줄게.” “오빠, 고마워요. 난 … 난 이제 죽는다 해도 원이 없을 것 같아요.” 소녀가 힘없이 눈을 내려 감는다. 날 붙잡은 손마저 기력을 잃고 힘없이 침상에 떨어진다. 소녀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다. “안돼! 안돼. 지금은 절대로 눈을 감아선 안 돼. 넌 절대로 죽지 않을 거야. 정신 차려! 수미! 정신 좀 차려 보란 말이야.” “오빠, 저 … 전, 저도 홀로 떠나긴 싫어요. 하지만 오빠가 … , 오빠가 제 곁에 있어주니까 괜찮아요. 오빠 … 어서 한 곡만 … ” “그래, 내 기꺼이 널 위해 바이올린 곡을 켜 줄게. 네가 좋아할는지는 모르지만 말이야. 수미! 이 곡이 끝날 때까진 절대로 눈을 감아선 안 돼, 알겠지?” 나는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를 연주하기 시작했었고, 나의 악기 연주를 듣고 있던 소녀는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를 머금으며 눈을 둥글게 떴다. 지금은 마지막 제4악장이 끝나가는 슬픈 시간이다. 나의 눈은 소녀의 모습만을 주시한 체 연주에 열중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소녀의 손이 침대 아래로 힘없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소녀의 가슴은 움직일 줄 모르고 심장의 고동 소리마저 멎은 듯하다. 나는 바이올린을 켜다 말고 힘없이 소녀의 가슴에 바이올린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초점이 흐려져 가는 소녀의 두 눈을 살며시 감겨주는 나의 손에 닿는 것은 이슬방울처럼 차가운 눈물이었다. 난 이제는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소녀를 바라보며, 싸늘하게 변해가는 소녀의 손을 나의 가슴에 조용히 얹고서 슬픔에 찬 눈물만을 소리 없이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죽음 앞에서도 웃음 짓는 소녀. 내가 일깨워준 바로 그 미소였다. 오늘 같은 밤이면 내 귓가에 아련히 들려오는 『죽음과 소녀』가 환상처럼 내 가슴 속으로 파고 들어와 나 자신 어쩔 수 없는 우수에 젖는다.
어느덧 나의 귀엔 제 3악장이 들려온다. 이 소녀가 지금 내 귀를 울리고 있는 『죽음과 소녀』의 주인공 같이 여겨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영원히 내 곁을 떠나가버릴 것만 같은 그 소녀의 환상이 다시금 나의 머릿속을 선회하고 있다.
.................................
우리 님들 잘 감상하셨나요?
다소 우울한 글에다, 아주 오래 전 고등학생 시절의 글을 올려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럼 우리 님들, 오늘도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나의 문학작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의대생의 고뇌 (0) | 2011.03.07 |
---|---|
죽음과 소녀(少女) 제1편 (0) | 2011.03.07 |
인물화와 모델에 대한 소고 (0) | 2011.03.07 |
인간의 경우는? (0) | 2011.03.03 |
아가씨의 눈 (0) | 2011.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