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 참견 안하고 제 맡은 일을 열심히 하게 만든... - 내가 못하면 주위에 피해를 준다는 더불어 하는 의식... - 틀린 사람은 분명히 잡아내는 지도자의 능력 - 나름대로 목표가 뚜렷하여 공감대를 이루는 리더십
- 맨 밑에 기러기가 4만킬로미터를 날아가는 리더십도 함께 소개합니다. - 이별의 노래와 함께...
요즈음 사람 몇만 모인 곳에 가면 박칼린(43·사진)이 화제다. 불과 석 달 전까지만 해도 박칼린은 일반 인에게 낯선 이름이었다.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 뮤지컬로 꼽히는 ‘명성황후’의 음악감독이었 다고 얘기하면 “나도 그 뮤지컬은 봤는데…” 하는 정도였다.
일반 대중이 그에게 관심을 갖기 시 작한 건 7월 초다. 그는 이때부터 지난주 방송이 마무리된 KBS-2TV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 합창단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오디션을 거 쳐 합창단원을 뽑았다.
지원자는 가수, 뮤지컬 배우, 개그 맨, 일반인이 뒤섞여 있었다. 박씨 는 지원자 노래를 들어가며 그때 그때 솔직한 반응을 보였다. 웃거나 무표정이거나 하다가 칭찬이라도 하면 그것은 곧바로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됐다.
이렇게 뽑은 33명의 합창단원을 하나로 묶어 나가는 모습은 ‘카리스마’ 그 자체였다.
단원들과 얘기할 때는 빨아들일 듯한 눈길을 보낸다.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따라하 라”고 외칠 때는 이종격투기 선수도, 개그맨도, 가수도 고분고분해진다. 박칼린은 생판 몰랐던 33명의 오합지졸을 제대로 된 병사로 훈련시켜나간다.
프로그램의 당초 취지는 이경규·김국진·김태원·이윤석·김성민·윤형빈 등 기존 출연진 의 합창 도전기였지만 박칼린과 단원 속에서 그들은 왜소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고된 훈련을 마무리하는 거제합창대회는 단원과 시청자에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을 선사했다. 영화 ‘미션’의 삽입곡에 가사를 붙인 ‘넬라 판타지아’와 ‘만화영화 주제가 메들리’를 부른 뒤 그들은 서로 안고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적지 않은 시청자가 그들과 함께 울고 웃 었다. 26일 방영한 합창대회의 시청률은 31.4%에 달했다.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에 열광한 것은 합창단원이 고생해 가며 소 리를 만들가는 재미와 박칼린이 품어내는 매력 때문이다.
특히 박칼린의 인기는 프로그램이 끝난 뒤 200여 곳에서 인터뷰를 요청했을 정도 로 폭발적이다. 그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시원스러운 외모도 있지만 그가 보 여준 강력한 리더의 자질에 있다.
그 첫 번째는 신뢰다. 합창대회에서 무대 에 오르면서 단원들은 긴장을 떨치지 못 한다. 표정이 굳는 건 기본, 손을 떠는 사람도 여럿 있다. 어디선가 “선생님이 빨리 나와야지…”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가 앞에 서면 비로소 단원들의 떨리던 손과 굳은 마음이 풀렸다. 보기만 해도 믿음 이 생기는 지휘자를 따르지 않은 단원은 없을 것이다.
그는 단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힘을 보여줬다. 박칼린은 대회가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에 만족할 만한 수준의 합창 소리가 나오자 이런 말을 한다. “비로소 하나가 됐다. 이게 우리 목표다. 그 목표를 이룬 거다. 하나가 됐기 때문에 거제도에 안 나가도 된다.”
방송 자체가 정한 합창대회 참여라는 목적이 있지만 박칼린은 스스로 비전을 정하고 실천해 나간 것이다.그는 수시로 단원들에게 ‘사랑합니다’를 외치는 따뜻함을 갖고 있다. 합창대회가 끝난 뒤 이종격투기 선수 서두원은 펑펑 눈물을 쏟았다.
“노래하는 것이 꿈이었다.
평생 한번도 못해보고 죽을 수 있었는데 꿈을 이뤘다”며 다시 눈물을 흘렸다. 박칼린은 서씨에게 “왜 우느냐”면서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라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서씨가 꿈을 이룬 것을 자기 일처럼 기뻐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Sarah Brightman - Nella Fantasia 메들리... 미래소년 코난 外
강한 에너지의 원천은 남들이 흉내내기 어려운 전문적인 음악적 자질에 있다. 33명이 동시에 노래를 하면 누가 무엇을 잘못하는지를 꼬집어낸다. 그들 가운데 누가 무엇을 잘못하는지 꼭 집어내 호통을 친다. 만화 주제가를 메들리 로 묶는 솜씨도 단원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단원 가운데는 성악 전공자나 현재 가수로 활동 중인 사람이 적지 않다. 그들을 장악하고 이끌 수 있었던 것은 박칼린이 그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 이다.
신뢰와 비전, 함께 울고 웃어주는 따뜻함을 갖춘 리더. 전문적인 실력을 갖추고 믿고 따르면 반드시 비전을 실현시키는 지도자. 우리가 바라는 지도자의 모습인 동시에, 박칼린에게 우리가 열광하는 이유다.
제주 출신으로 27세에 창업, 매출 1800억원... 고비마다 등산의 힘!
1993년 강태선 동진레저 및 블랙야크 회장은 히말라야로 향했다. 엄홍길 대장과 함께다. 당시 등산용품 시장은 고사 직전이었다. 1992년 정부가 산에서의 취사와 야영을 전면 금지 했기 때문이다. 등산용품 업체 열 곳 중 일곱 곳이 문을 닫았다.
강 회장도 망하기 직전까지 갔다. 급한 불을 끄고 사업 규모를 줄였다. 변화가 필요했다. 사업의 고비마다 산을 찾던 강 회장은 히말라야에 답을 묻기로 했다.
그는 엄홍길 대장과 티베트 산속을 걸었다. 그때 등반 장비를 지고 가는 동물이 눈에 확 들어왔다. 검은색 야크였다. 엄 대장이 말했다.“브랜드 이름으로 블랙야크도 좋겠는데요.” 강 회장은 “순간 필이 통했다”고 했다.
강 회장은 등산 장비에서 등산 의류로 사업의 중심을 옮겨야겠다는 생각은 막연히 갖고 있었다. 장고 끝에 한국으로 돌아온 강태선 회장은 곧바로 미국으로 날아갔다. 해외는 이미 아웃도어 의류가 성장하고 있었다. 그는 고어텍스 등 고급 소재를 공급하는 회사를 방문해 계약을 맺었다.
→이전에 고아텍스... 이야기 올린 적이 있습니다. '열린 창을 찾아서...'
강 회장은 신제품을 내놓고 조심스럽게 시장을 타진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패션과 기능을 강조한 블랙야크 등산복은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 빅5로 성장한 블랙야크는 그렇게 시작됐다.
산을 사랑한 27세 청년의 창업
강 회장은 늘 “산에 오르듯 경영을 한다”고 말한다. 아웃도어 회사라서만이 아니다. 그의 경험에서 나온 철학이다.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다 산 정상에 오르듯, 그의 사업도 그랬다.
1973년, 27세의 제주도 청년 강태선은 종로 5가에 ‘동진산악’이라는 등산전문점을 열었다. 3평짜리 매장에 10평짜리 공장이었다. 등산 인구는 적고 등산용품이랄 것도 없던 시절이 었다. 청년은 믿음이 있었다. ‘경제가 발전하면 등산용품 시장은 분명히 클 것이다.’
이후 사명을 동진레저로 바꿨다. ‘자이언트’ ‘프로 자이언트’라는 브랜드로 배낭, 텐트, 침낭 등을 팔았다. 전문 산악인들은 열광했다. 특히 1977년 고상돈 대원이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 스트를 오른 후 등산 붐이 일었다. 강 회장은 “물건이 없어 못 팔 지경이었다”고 회고했다. 붐은 오래가지 않았다.
2년 후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 터지고 계엄령이 선포됐다. 산은 다시 텅 비었다. 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큰 기회가 왔다. 1981년 야간 통행금지 해제다. 야간에도 산행을 할 수 있게 되자 그는 ‘무박산행’ 상품을 개발했다. 토요일 오후에 출발해 야간산행을 한 후 일요일에 돌아오는 상품이었다. 텐트와 코펠 등이 불티나게 팔렸다.
1980년대 3저 시대도 등산 시장에 불을 붙였다. 초호황 속에 건강에 관심을 갖게 된 중년들 이 대거 등산 인구로 유입됐다. 대기업도 시장에 뛰어들었다. 선경 ‘레포츠’, 삼성 ‘엑셀’, LG ‘반도스포츠’, 대우 ‘하이파이브’ 등이다. 시장은 금세 포화가 됐다.
브랜드 파워에 밀리던 동진레저는 제품력으로 대기업에 맞섰다. 그러다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을 거치면서 시장이 스포츠용품 쪽으로 옮겨가면서 등산용품 시장에 진출했던 대기업 대부분이 철수했다. 동진레저는 관련 시장을 주도했다.
그러다 최악의 위기를 맞는다. 1992년 전국 산의 취사 및 야영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이번에는 급경사 내리막길. 이때 강 회장은 과감히 등산용품 시장에서 등산 의류로 사업 방향을 바꾼다. 블랙야크 브랜드를 앞세우고다. ‘산에 패션시대가 온다’는 블랙야크 광고는 신선했다.
산에 검은색 등산복을 입은 등산객이 몰렸다. 검은색은 한동안 등산문화의 트렌드가 됐다. 정상이 손끝에 닿을 듯했다. 하지만 경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호황은 오래 못 가고 외환위기가 터졌다. 다시 깊은 골로 내려갔다.
문제는 중국이었다. 외환위기 전 강 회장은 모두가 무모하다고 말린 중국 투자를 결정했다. 1993년 다롄(大連) 공단에 20만 달러를 투자해 제품공장을 세웠다. 하지만 2년 만에 철수 했다. 1996년 톈진(天津)에 공장을 다시 세웠다.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에는 베이징에 블랙야크 1호점을 열었다.
강 회장은 “지금이야 수업료라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정신 나간 사람 소리도 들었다”고 말했다. 회사는 총체적 위기에 빠졌다. 강 회장은 고심 끝에 궤도에 오른 한국 사업은 전면적인 재정비를 통해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고 중국 투자는 강행하기로 결정 했다.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었다. 블랙야크는 현재 중국 아웃도어 시장 점유율 3위다. 중국 토종업체를 제외하면 해외 브랜드 중 1위다. 강 회장은 “그동안 중국에 많은 투자를 했다”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아파트 10채는 갖다 바쳤다”고 말했다.”진출 초반에는 강남 아파트 5채 값, 후반기는 강북아파트 5채”라는 것이다.
강태선 1949년 제주 출생 탐라대, 동국대 경영대학원(수료)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MBA 대한산악연맹 부회장, 서울시 산악연맹 회장 현재 동진레저 대표이사 회장
20일 만에 침낭 3만 개 제작
현재 블랙야크는 중국 내 백화점 63곳에 입점했다. 대리점은 100곳 정도다. 강 회장은 전 세계 아웃도어 브랜드가 들어와 치열한 경쟁이 시작된 중국 사업에 대해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정확히 밝힐 수 없지만 블랙야크는 중국인이, 특히 지역별로 아웃도어를 어떻게 생각 하는지 파악하는 데 많은 수업료를 지급했다”며 “중국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그의 자서전 ?정상은 내 가슴에? 이런 말을 남겼다. “산을 오르다 길을 잘못 들어 한번 계곡으로 깊이 내려가면 다시 올라오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좀 멀더라도 능선을 돌아가면 포기하지 않고 등반을 계속할 수 있다. 나는 사업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그의 사업에 대한 집념과 수완을 잘 볼 수 있는 일화가 있다. 1993년 취사와 야영금지 조치 가 내려졌을 때다. 당시 현대자동차는 새 모델 ‘쏘나타’ 출고 기념으로 전 직원에게 침낭을 선물하기 위해 공개입찰을 했다. 일감이 없던 강 회장은 울산으로 내려갔다. 1993년 8월 14일이었다. 그는 “전국에 봉제하는 회사는 다 와 있더라”고 회상했다.
“공개입찰은 8월 14일인데 납기일이 9월 6일이에요. 20일 안에 침낭 3만2000개를 납품하라는 겁니다. 당시 어떤 업체도 감당할 수 없었어요. 경쟁업체가 모두 응찰 을 포기하고 돌아갔죠. 하지만 제가 단독 입찰해 낙찰을 받았어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지만 도전해보자는 생각이 듭디다.”
강 회장은 낙찰 받은 조건으로 선금 50%를 요구했다. 원부자재를 한 번에 사들여 여러 공장을 동원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입찰일 다음날은 일요일, 이틀이 지난 1억6000만원 이 입금됐다. 1년에 침낭 1만 개를 만들어 팔던 동진레저는 자체 공장만으로는 납기일을 맞출 수 없었다.
전국을 돌며 봉제를 할 수 있는 다른 회사 공장을 섭외해 20일 전쟁에 돌입했고 기어이 3만2000개의 침낭을 공급했다. 강 회장은 “마지막 이틀은 전 직원이 전혀 잠을 안 잤다”며 “납기를 맞추고 맥주파티를 하는데 맥주를 마시다 그 자리에 푹푹 쓰러져 잠이 들더라”고 말했다. 회상에 잠긴 강 회장의 눈가가 젖었다.
산을 오르다 길을 잘못 들어 한번 계곡으로 깊이 내려가면 다시 올라오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좀 멀더라도 능선을 돌아가면 포기하지 않고 등반을 계속할 수 있다. 나는 사업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대한산악연맹 부회장과 서울시 산악연맹 회장을 지내고 몽블랑(4807m), 초오유(8201m), 안나푸르나(8091m), 칸첸중가(8586m), 에베레스트(8848m)를 등정한 강태선 회장은 인터 뷰 내내 산과 경영을 연결했다. 국내 아웃도어 시장에서 블랙야크는 산으로 치면 7~8부 능선 어디쯤이다.
블랙야크 종로점, 강태선 회장은 37년전 이 장소에 등산용품업체 '동진산악'을 차렸다.
“세계 아웃도어 빅5 될 것”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1800억원, 유통 매장은 180개에 달한다. 블랙야크는 매출 규모에 서 노스페이스, 코오롱, K2의 뒤를 잇는다. 특히 지난해 매출이 40% 가까이 급증했다. 강 회장은 “4~5년 전부터 고객 타깃을 전문산악인에서 일반 대중으로 옮기고 일반 대리점 을 대폭 늘리면서 지난해부터 매출에 탄력이 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올해 백화점 매장을 총 50곳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8월 중순 롯데 백화점 명동 본점을 연 블랙야크는 하반기에 6개의 백화점 매장을 추가할 계획이다. 회사 측은 “단순한 매장 수 증가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 인지도와 선호가 높아 졌다는 것을 뜻한다”고 밝혔다.
강 회장은 “올해도 약 40% 매출 성장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올 초 블랙야크를 독립법인으로 분리했다. 대표 브랜드인 블랙야크의 해외영업을 강화하고 후속 브랜드인 ‘마운티아’와 ‘카리모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강 회장은 “동 진레저라는 이름으로 글로벌로 가기는 부담이 있다고 판단해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블랙야크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강 회장의 의지가 담긴 결정이다.
“우리나라 섬유, 패션산업이 발달했다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가 있나요? 우리는 전 세계 곳곳에 블랙야크 고객을 만들 겁니다. 아웃도어 브랜드가 1000개 이상 있는데 2015년 내에 빅10안에 드는 게 목표입니다. 궁극적으로 글로벌 빅5로 서겠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비전이자 넘어야 할 산입니다.”
인터뷰 말미, 민감한 질문을 던졌다. 여성 산악이 최초로 14좌 완등에 성공했지만, 최근 ‘카 첸중가’ 정상 등정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오은선씨 얘기다. 블랙야크는 2008년부터 오은선 씨를 후원해 왔다. 오씨는 블랙야크의 등기이사다.
강 회장은 등정 논란과 관련, “산은 오직 산과 본인만 알 수 있는 것”이라며 “오은선 대장에 대한 신뢰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기 위해 철저한 조사를 하고 있다”며 “인터뷰를 통해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서리 내릴 즈음 담는 콩잎장아찌
- 문디들이 무지 좋아하는 반찬... 저에겐 밥도둑이 따로 없습니다. - 지난번엔 어머니께서 주신 콩잎으로 콩잎 물김치를 담아 추석에 차례 지내러 온 친척들에게 뿅 가게 만든... 지금까지 먹습니다. 이제는 장아찌를...
슬슬 장아찌 생각을 해야 할 계절이다. 여름에 야들야들한 깻잎이나 오이 같은 것들로 담가 놓은 장아찌들이, 시간 이 흘러 가을이 되면서 제대 로 맛이 들었다.
맨밥도 입에 당기는 천고마비 의 계절에 딱 좋은 반찬이다. 또 이제 한 해 여름의 야채 농사를 정리하면서 버리기 아까운 것들을 장에 박아 겨울과 내년 봄까지의 밑반찬 을 준비하는 계절도 가을 이다.
고춧대를 수거하면서 나온 탱탱한 풋고추, 날씨가 서늘 해져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꼬부라진 오이 같은 것들은 간장이나 된장 항아리에 박힐 일만 남았다.
여름에 담근 콩잎장아찌도 이때쯤이면 충분히 익어 맛이 들었다. 요즘 들어 콩잎이 몸에 좋다느니 하는 소리가 나오지만, 예전에야 콩잎은 남부지방이나 제주도 같은 일부 지역에서나 먹는 식재료였다. 하지만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콩잎·뽕 잎·민들레 등 범상치 않은 것들이 모두 밥상에 오르내리는 시대가 되었다.
이천 시골에 살 적에 흰콩을 조금 심은 적이 있었다. 소꿉놀이처럼 한두 고랑 흰콩 을 심어 메주를 쑬 리는 없으니, 그저 초가을 풋콩을 껍질째 삶아 먹을 때 농약 걱 정하지 않고 먹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그런데 그 여름에 놀러 왔던 제주도 출신 후배 하나가 그걸 보더니 반색을 했다. 점심상에 놓인 쌈장을 보더니 갑자기 바구니를 들고 밭에서 콩잎을 뜯어오는 것이 아닌가. 제주도에서는 야들야들한 콩잎을 이렇게 쌈 야채로 먹는단다.
정말 오래간만에 신선한 콩잎 쌈을 먹게 되었다고 싱글벙글이다. 나도 맛을 보기는 했지만 그저 그랬다. 조금 풋내가 나는 이파리였을 뿐 상추나 깻잎 혹은 들판에 지천으로 깔린 왕고들빼기 이파리처럼 맛있지는 않았다.
남부지방에서는 싱싱한 콩잎을 된장에 박아 장아찌를 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 었기에, 그 친구가 돌아간 다음 야들야들한 콩잎을 땄다. 유리병에 된장을 조금 떠 온 후에, 거기에 깨끗이 손질한 콩잎을 박았다.
사실 나는 시중에서 팔리는 ‘된장 박은 장아찌’란 것에 불만이 있다. 이런 장아찌는 말 그대로 된장에 야채를 박아 숙성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시중에서 파는 콩잎·깻잎 ·풋고추·오이 등의 ‘된장 박은 장아찌’는 정작 된장에 박는 방식으로 만들지 않는다.
일단 소금물에 야채를 넣어 절여 약간 숙성시킨 후 된장과 다시마 우린 물, 약간의 설탕 등을 넣어 만든 소스를 켜켜이 발라 다시 숙성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소금물에 일차로 절여 만들면 부패하지는 않겠지만 된장이 아니라 소금으로 간을 하는 것이 기 때문에 맛이 별로 없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된장 소스를 만들 때 다시마 우린 물이나 설탕 같은 것들로 맛을 내는 것이다. 달착지근한 얕은맛이 나는 것은 물론이다.
옛날 엄마가 해주던 방식은 야채의 물기를 제거하고 그냥 된장 항아리에 박아 된장 에 절여지고 숙성되어 야채가 거의 된장 맛으로 바뀔 때까지 놓아두는 것이다. 시간도 오래 걸릴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렇게 박은 된장은 모두 버려야 하니, 그것이 참 아까운 노릇이다.
된장을 적게 쓰면 바로 상해버리니 된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즉 이렇게 진짜 ‘된장에 박은 장아찌’는 집에서 담근 된장과 간장이 흔하던 시절에 해먹던 반찬이었 던 셈이다. 다행히 나는 집에서 된장을 담가 비교적 된장이 넉넉했고, 그래서 이런 장아찌를 해 먹을 수 있었다.
초가을쯤 되면 유리병 안에 된장과 함께 박혀 있던 콩잎은 누렇게 익어 있다. 유리병을 뒤적거려 콩잎을 한 끼 먹을 만큼씩만 밥상에 꺼내 놓는다. 설탕이나 다시마 맛 같은 것은 전혀 나지 않는, 오로지 된장 그 자체만으로 짭짤 하게 절여진 장아찌는 콩잎 특유의 향취와 어우러져 있다.
깻잎보다 덜 독하고 순한 맛이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희한한 콩잎장아찌가 있다. 그것은 결혼 직후 시댁에서 먹어본 음식이었는데 어떻게 이런 음식이 있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희한한 반찬이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낙엽이 된 콩잎으로 담근 장아찌인데 부산, 울산, 포항 같은 남쪽 바닷가 사람들이 즐기는 음식이란다.
하도 희한한 음식이어서 어디에서 사먹을 데도 없다. 그래서 이천에서 콩을 심은 해에는 남편을 위해 몇 번 해 보았다. 늦가을 서리가 내릴 즈음에 콩은 이파리가 노랗게 변한다. 그런데 검은콩·밤콩 등은 이때 이파리가 갈색이 되는데, 오로지 흰콩만 이파리가 고운 진노란 빛깔을 낸다.
예쁘게 잘 단풍이 든 콩잎만 골라 따서 소금물에 5일에서 7일 정도 삭힌다. 낙엽이나 다름없는 뻣뻣한 콩잎을 소금물에 담가 놓으면, 며칠 후부터는 소금물이 꺼멓게 변색한다. 이게 썩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그 시커먼 소금물에서 콩잎을 건져 맹물에 깨끗이 헹군다. 건져낸 이파리는 그래도 노란 색깔이 남아 있고 맹물에 헹구어도 그 뻣뻣한 이파리는 흐물거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삭히기 전보다는 약간 부드러워져 있다. 손바닥으로 꼭꼭 눌러 물기를 짜 놓는다.
양념은 멸치젓으로 한다. 생멸치젓 국물에 마늘, 고춧가루, 깨소금 등을 넣어 양념 을 한 후, 그것을 콩잎 켜켜이 발라 재어 놓는다. 멸치젓 맛이 충분히 밴 며칠 후에 먹는 것이다.
이 콩잎장아찌는 희한한 낙엽 냄새에 소금물에 여러 날 삭힌 맛, 여기에 멸치젓 냄새까지 어우러져 있다. 우리 집에 놀러 왔다가 이것을 맛본 울산 출신 후배는, 이 콩잎은 ‘콩콤한’ 맛에 먹는 거라며 밥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콩콤한 콩잎’이라! 이 기막힌 말 맛에 박장대소했다. ▼콩꽃... 강화도님
나 같은 서울 입맛의 사람이 먹기에는 거칠거칠하고 뻣뻣한 질감이 다소 부담스럽 지만, 그 짭짤한 멸치젓 맛이 밴 ‘콩콤한’ 콩잎장아찌는 꽤 중독성이 있다. 지금도 가끔 생각나지만, 서울에서는 구할 곳이 없다.
화석님, 방문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많은 소식을 주셨군요. 콩잎을 깻잎처럼 장아찌를 만들 수가 있군요. 콩을 따고나면 모두 버려서 태우거나 썩히는데... 요즘도 하루에 몇십 군데의 병원을 돌며 약을 타는 분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약들을 그렇게나 많이 타가는지 모르겠어요. 특히 진찰료를 한푼도 안 내는 의료보호 환자들이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정말 시정되어야 할 일이지요. 화석님, 항상 건강하시고 환절기이니 감기 조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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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님, 방문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많은 소식을 주셨군요. 콩잎을 깻잎처럼 장아찌를 만들 수가 있군요. 콩을 따고나면 모두 버려서 태우거나 썩히는데... 요즘도 하루에 몇십 군데의 병원을 돌며 약을 타는 분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약들을 그렇게나 많이 타가는지 모르겠어요. 특히 진찰료를 한푼도 안 내는 의료보호 환자들이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정말 시정되어야 할 일이지요. 화석님, 항상 건강하시고 환절기이니 감기 조심하시길...
오늘도 많은 소식을 주셨군요.
콩잎을 깻잎처럼 장아찌를 만들 수가 있군요.
콩을 따고나면 모두 버려서 태우거나 썩히는데...
요즘도 하루에 몇십 군데의 병원을 돌며 약을 타는 분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약들을 그렇게나 많이 타가는지 모르겠어요.
특히 진찰료를 한푼도 안 내는 의료보호 환자들이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정말 시정되어야 할 일이지요.
화석님, 항상 건강하시고 환절기이니 감기 조심하시길...
'지평리 전투' 영웅, 이제 그의 딸이 한국에…佛 몽클라르 장군 딸
'성산일출봉' 등 제주 9곳,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인증
李대통령, 벨기에 군사박물관 '한국전 전시회' ASEM참석차
유럽, 알카에다 동시다발 테러 경계령...파리시내 소총 든 군인
한국계 여의사 우범지역 봉사에 美도 감동...캘리포니아 조앤 정
1등 하던 건 중국에 밀렸고, 1등 할 건 일본이 선점했다
북 후계구도에서 형인 김정남·김정철 탈락한 이유..개혁/개방
1년간 당뇨병약 8267일치 타간 A씨...내다 판다.
두산, 롯데에 11-4 대승…승부 원점
`노름하다 쓰러져도 산재' 산재보험 사기 급증
'보라빛 윤기에 오동통한 너' 항암효과까지...가을 가지
10년만에 천금같은 전세금 돌려받은 부부...법률구조공단 활용
황산벌전투 재현 보려 수천명의 관람객 몰려
부산 37층 ‘속수무책 화재’… 서울 초고층 주상복합들 마찬가지
1987년 KAL기 폭파 北, 3년전 얼떨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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