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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일만 열심히 할 것이 아니라 우선 전략과 방향을 제대로 잡은 다음에 움직 여야 하지 않나요?
"원대한 전략도 결국 세세한 디테일에서 시작됩니다. 혁신적인 기업으로 유명한, 중국 최대의 전자회사 하이얼그룹의 장루이민(張瑞敏) 회장도 '혁신은 기업의 모든 디테일한 부분에서 나온다'고 강조합니다. 저는 '닭 잡을 때도 소 잡는 칼을 쓰라' 고 합니다.
그만큼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죠. 사람들의 태도와 정신을 바꾸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처음에는 불편해도 스스로에게 강제하고 단계적으로 반복 훈련을 하면 습관이 됩니다. 습관은 한 번 들이기는 어렵지만 나중에는 자연스럽고 편안해지죠. 개인뿐 아니라 조직이나 기관도 이런 식으로 변해야 합니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15402642509E56EB1C)
―디테일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디테일이란 어떤 일의 중심이나 기초가 되는 부분을 말합니다. 단순한 잔일과는 다르죠. 여기 책상 위에 있는 연필꽂이를 예로 들면 색깔, 모양, 재료 등이 다 디테일에 속합니다. 물건을 만들 때 반드시 신경을 써야 하는 핵심 부분인 것이죠. 하지만 이 제품을 어떤 종이로 싸서 무슨 박스에 넣느냐는 것은 간단한 잔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핵심 제품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주 귀중한 물건을 포장할 때는 포장재료도 디테일이 될 수 있지요. 예전에 한 방송사 기자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2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기자가 마이크를 켜놓지 않은 사실을 발견했어요. 가장 기본적인 디테일을 소홀히 한 것이죠."
디테일을 중시하자는 그의 어쩌면 평범한 목소리에 중국인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만큼 중국인들 스스로 전통적으로 디테일에 약하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인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민담 중에 '차부둬(差不多·원래 차이가 크지 않다는 뜻인데 대충(그럭저럭) 되다는 의미로 흔히 쓰임) 선생'이라는 얘기가 있다.
차부둬 선생이 병이 나서 왕(汪)씨 성을 가진 의사를 찾아가야 하는데, 이름이 비슷한 수의사 왕(王) 선생을 찾아갔다가 제대로 치료를 못 받고 죽었다는 우스갯소리다. 그는 죽으면서도 자기가 뭘 잘못 했는지 인정하지 않고 "대충 비슷하잖아(차부둬)"라고 우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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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대충, 적당히'는 망하는 지름길
그러나 왕중추(汪中求) 소장은 "대장부는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식의 중국인의 전통적인 사고 방식을 신랄히 비판했다. 1%만 어긋나도 전체 일을 망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이얼그룹의 장루이민 회장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일본인 직원에게 하루에 책상을 6번씩 닦으라면 그대로 하는데, 중국인 직원은 처음 이틀간은 6번 닦고 다음 날부터는 5번, 4번으로 차츰 횟수가 줄어든다고요. 중국산 제품이 해외에서 비싼 값에 팔리지 못하는 것은 다 이런 디테일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가 가장 싫어하는 말도 '대충'과 '적당히'였다고 그는 전했다. 저우 전 총리는 국빈(國賓) 만찬이 있을 때 자신은 먼저 국수로 간단히 배를 채운 뒤 손님을 맞았다고 한다. 실제 연회에 나가서는 먹는 시늉만 하면서 손님이 식사를 잘 하는지 정성껏 챙기기 위해서였다.
- 독일과 일본을 디테일에 강한 나라로 꼽는데, 그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다른 나라의 문화적 배경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중국이 디테일에 약한 이유는 잘 압니다. 중국은 큰 것만 중시하고 작은 건 가볍게 여기는 문화가 오래도록 전해져 왔습니다. 역사상 많은 철학자·사상가·문학가·예술가가 있었지만, 위대한 과학자나 수학자는 별로 없어요. 옛날 문헌을 뒤져봐도 숫자는 거의 등장하지 않아요.
중국의 옛 의학서적을 보면 약재(藥材)를 얼마나 섞을지 정확한 숫자가 없습니다. 맥박도 '1분당 몇 번'이 아니라 '거미줄처럼 약하다'는 식으로 비유합니다. 이렇게 하면 정확한 기술 전수가 안 됩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감(感)으로 익혀야 하는데, 실수할 경우도 많죠."
- 중국도 현대에 들어와서는 달라지지 않았나요?
"중국은 지난 100년간 두 차례의 큰 문화혁명을 겪었습니다. 1919년 5·4 운동 때는 학생들이 중국의 고유 문화를 전면 부정하고 '공자를 버리자(批孔)'고 외쳤습니다. 사실 모든 문화는 장단점이 있는 건데, 무엇이 틀리고 맞는지 기준이 없고 무조건 비판만 횡행했어요.
1966년 문화대혁명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죠. 타격이 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디테일을 살필 여유가 없었죠."
- 그래도 중국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하지 않았습니까?
"중국은 약 30년 전 개혁개방 정책을 시작한 뒤 경제가 급속히 성장했어요. 그런 시기에는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않아도 매년 10% 이상 성장이 가능했죠.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이제는 그런 고도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워요. 디테일이 성패를 가르는 시대입니다.
강한 것, 큰 것만 강조하면 시장과 고객이 요구하는 기준에 다다를 수가 없어요."
- 일본 기업은 어떤 면에서 디테일이 강한가요?
"몇 년 전 상하이에서 신설한 내부순환도로에 안전 문제로 1t 이상 화물차가 못 다니게 했습니다. 그 도로가 개통된 지 한 달 만에 일본 업체가 0.9t짜리 화물차를 내놓고 팔기 시작했습니다. 철저한 사전조사와 적시에 제품을 내놓는 기술력이 결합된 것이죠.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는 마쓰시타전기 창업주 마쓰시타 고노스케 회장은 생전에 늘 '어떤 사소한 부분도 놓치지 말라'고 얘기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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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만난 호흡기 바이러스... 면역력 키우는 ‘햇빛 샤워’가 환절기엔 보약
최근 감기에 걸려 기침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호흡기 바이러스가 활개치는 계절이 온 것이다. 지금까지 존재와 특성이 규명된 바이러스는 약 5000만 개다.
우리가 아직까지 알지 못하는 수는 그보다 100배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내 몸을 지키는 기술 보니 헨리 지음). 요즘처럼 일교차가 10도 가까이 벌어지면 신체 밸런스가 흐트러져 ‘면역력’이 깨지고 바이러스에게 공격당하기 쉽다.
초겨울에 유행하는 호흡기 바이러스와 이를 막을 수 있는 면역력 높이는 방법을 알아보자.
바이러스는 예방이 최선의방책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호흡기질환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바이러스는 여덟 가지다. 이 중 아데노바이러스·엔테로바이러스·라이노바이러스·RS(호흡기 세포융합)바이러스·코로나바이러스·인플루엔자(독감) 등 여섯 종류가 요즘 극성을 떨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의 ‘호흡기바이러스 주별 발생 양상’(질병관리백서)에 따르면 아데노바이러스는 11월부터 1, 2월까지 활동성을 이어가며 목감기 등 급성호흡기질환을 일으킨다. 바이러스성 호흡기 질환의 주 원인인 라이노바이러스는 10~11월, 3~4월에 활동력이 강해 감기나 천식에 영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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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S바이러스는 감기보다 심한 기침, 호흡 곤란을 보이는 모세기관지염을 일으킨다. 엔테로바이러스는 수족구병이나 뇌염·장염을 일으키고, 11월부터 1월 사이에 많이 나타나는 코로나바이러스는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으로 유명세를 탔다.
인플루엔자바이러스는 A·B·C형이 있는데 A형은 지난해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N1H1(일명 신종 플루)이 속한다. 호흡기 바이러스는 아니지만 소아에게 설사 등 장질환을 일으키는 로타바이러스·노로바이러스도 겨울에 기승을 부린다.
질병관리본부 전염병관리과 이한성 책임연구원은 “바이러스는 인플루엔자·로타바이러스 등 일부를 제외하곤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다. 예방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바이러스와 세균은 다르다. 큰 차이는 생존 방식에 있다. 바이러스는 사람처럼 기생할 수 있는 숙주가 있어야 활동한다.
천연두와 에이즈의 원인인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가 많이 알려졌다. 세균은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자생하는 능력이 있다. 식중독을 일으키는 포도상구균·결핵·콜레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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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신경 균형 깨지면 면역력 약화
바이러스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숙주를 찾아 세력을 키우기 위해 언제든 우리 몸에 들러붙고 파고든다. 하지만 우리 몸도 바이러스의 공격에 방어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이게 바로 ‘면역(免役)’이다. 똑같은 바이러스 환경에 노출돼도 감기에 걸리고 안 걸리고는 면역이 좌우한다.
생활 속 면역 강화법 의 저자 아보 도루(일본 니가타대 대학원 의치학종합연구과)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선천적으로 허약한 사람도 있고 약이 잘 듣지 않는 체질도 있는데 가장 중요한 원인은 면역력”이라며 “면역력은 많은 병을 이기고 낫게 해주는 명의 중 명의, 즉 ‘수퍼 의사’”라고 소개했다.
우리 몸에서 면역 기능을 수행하는 첫 번째 주자는 ‘백혈구’다. 혈액 속의 혈구세포 중 하나인 백혈구는 외부에서 침입한 바이러스를 잡아먹는 바이러스의 ‘천적’이다. 혈액 1㎣에는 4000~8000개의 백혈구가 있다. 백혈구는 대식세포·T림프구·B림프구·NK(자연살해)세포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침입자가 발견되면 출동한다.
혈관처럼 온몸에 뻗어 있는 림프절도 면역기관의 하나다. 림프절에서는 백혈구의 일종인 림프구가 만들어진다. 건강한 사람은 림프구가 백혈구의 약 40%를 차지한다. 림프구도 몸 안에 바이러스 등 침입자에 맞서 싸우는데 한번 싸운 바이러스는 기억해 두 번째 침입 시 즉각 반응한다.
이것이 ‘항체’가 형성된 것이다.몸속을 순찰 돌며 건강 파수꾼 역할을 하는 면역세포들은 ‘자율신경’이 제어한다. 자율신경은 60조 개나 되는 신체 모든 세포의 기능을 조절한다. 자율신경에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있다.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김미영 교수는 “과도한 스트레스, 과음, 흡연, 불규칙한 생 활 등으로 자율신경의 균형이 무너지면 면역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과격한 근육운동, 백혈구 감소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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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면역력을 높일 수 있을까. 답은 오히려 간단하다. 자율신경의 균형을 이뤄 면역세포들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면 된다. 자율신경은 규칙적인 식생활 습관과 적당한 운동으로 다스려야 한다.삼성서울병원 이상일 교수는 “운동을 하면 면역세포들의 흐름이 활발해져 신속하게 병원균을 찾아 제거한다”고 말했다.
김미영 교수는 “하루 1, 2회 햇볕을 쬐면서 10~20분 정도 걷기만 해도 스트레스를 풀고 면역력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햇볕 샤워’ 는 면역력에 도움을 주는 비타민D 합성을 돕는다. 면역에 좋은 운동 강도는 하루 30분 빨리 걷기, 자전거 타기 등 중간 정도다.
마라톤 등 너무 긴 거리를 달리거나 무리한 근육운동은 오히려 안 좋다. 경희의료원 가정의학과 원장원 교수는 “규칙적인 운동을 하던 사람이 면역기능을 높이겠다고 너무 과격한 운동을 하는 것은 역효과”라며 “과격한 운동은 혈액의 백혈구 수를 감소시키고 코르티솔과 같은 스트레스호르몬을 증가시킨다”고 말했다.
많이 먹는다고 면역력이 좋아질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원 교수는 “지방 함량이 많은 음식을 먹으면 면역기능이 감소하기 때문에 지방 섭취를 조절해야 한다”며 “원숭이에게 식사량을 줄이면 T림프구가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비타민 B·C 등이 포함된 야채와 과일 섭취를 늘리면 면역력에 도움이 된다. 미네랄 중 아연은 면역기능 활성에 필수 영양소다. 원 교수는 “아연이 부족하면 림프구와 기타 면역세포들의 기능이 감소한다”며 “조개류, 육류, 콩이나 견과류, 굴에 풍부하다”고 말했다.
요즘처럼 일교차가 10도에 가까우면 신체 리듬이 깨지고 피로가 증가한다. 7~8시간 정도의 충분한 수면을 규칙적으로 취하는 게 바람직하다. 충분한 수면은 면역력을 강화하는 멜라토닌 호르몬의 분비도 촉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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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착지근 쫄깃쫄깃…입에 착착 감기는 가을의 맛
한 달 전쯤인가 가끔 즐겨 찾던 충무로 낙지 전문 음식점에 들어서서 잘 계셨느냐고 안부를 물으니, 주인 아주머니가 대뜸 걸진 욕부터 해댔다. 올가을을 강타한 ‘중금속 낙지’ 파동 탓이었다.
오래간만에 얼굴 아는 단골을 만나니 화끈하게 욕을 하고 싶어진 게다. 한 번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지, 자리를 잡고 앉는데 또 한 번, 음식을 내오면서 다시 한 번, 계속 업그레이드된 욕이 이어졌다.
한창 낙지를 팔아야 할 가을에 날벼락을 맞은 셈이었으니, 낙지 전문점 주인이 왜 억울하지 않겠는가.
계절이 바뀌는 가을의 대표적인 해산물이 한두 가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낙지를 빼놓으면 섭섭하다. 주꾸미는 봄이 제철이어서 봄에 먹어야 밥알같이 하얀 주꾸미 알까지 제대로 먹어볼 수 있으며, 오징어는 여름부터 가을까지가 제철이어서 오징어축제들은 모두 여름에 몰려 있다. 그리고 가을에 들어서면 드디어 낙지가 달고 맛있어지는 제철을 맞는 것이다.
낙지는 두족류(頭足類) 중에서 맛이 가장 달고 차지고 잡냄새도 없다. 그래서 젓갈로도 가장 맛있는 것이 낙지다. 다소 질기게 느껴지는 오징어젓, 꼴뚜기젓과는 비교할 수 없게, 낙지젓은 오돌오돌 씹히는 식감이 그야말로 환상이다.
잡냄새가 없어서 김장할 때 넣어도 신선하면서 맛있다. 대용으로 쓸 수 있는 것이 오징어인데 오징어는 냄새가 강하다. 그러니 김장철이 되면, 금값이 되어 있는 생태를 한두 마리 사고 난 후, 낙지와 오징어를 놓고 주머니 속 잔액을 계산하느라 머릿속이 번잡하다.
워낙 맛있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는 식성이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 보기에 끔찍해 보이는 산낙지를 먹을 수 있었던 것도, 그 탁월한 맛 때문이었다. ‘서울 촌년’이었던 나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산낙지회 같은 것은 구경도 해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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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한 개성 입맛의 우리집 밥상에는 회가 거의 올라와 본 적이 없고, 학교 앞 리어카에서 파는 멍게와 해삼 역시 내가 사먹을 음식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나고회를 처음 먹어본 것도 대학에 들어간 이후였고, 생선초밥을 먹어본 것은 결혼 이후였다. 그러니 산낙지란, 그저 소문으로만 들은 ‘몬도가네 음식’ 정도로 생각했을 뿐이다.
이러던 내가 처음으로 산낙지를 먹어본 것은 남편과 연애를 하면서다. 이제 막 제대로 연애를 해볼 것인가 말 것인가를 가늠하던 때였는데, 이 남자가 어느 바닷가에서 산낙지를 먹자고 했다. 모양이 끔찍한 것은 어찌 말로 다하랴. 사실 그 음식을 먹는 모습이란 산 벌레를 먹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데 꿈틀거리는 그것을 소금 섞은 참기름에 찍어 입에 넣었더니, 의외로 맛이 있었다. 그러고는 이후로는 산낙지 먹는 자리에서는 표정관리가 안 될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도대체 이 남자는 무슨 생각으로 스물세 살 어린애에게 산낙지를 먹자고 했을까. 혹시 이렇게 왕성하게 맛있는 것을 함께 먹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려고 했던 것일까,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산낙지를 회로 먹든, 갈비와 섞어 끓인 갈낙탕을 해먹든, 최고로 치는 것은 전남의 세발낙지다. 가느다란 발과 작은 사이즈의 연한 낙지는 어떻게 먹어도 맛이 있다. 하지만 값이 비싸서 누가 사줄 때나 먹어보는 것이지 내 손으로 함부로 사먹기가 힘들다. 결국 주부가 된 후 즐겨 사게 되는 식재료는 세발낙지가 아닌 보통 낙지, 그것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닌 ‘기절낙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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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기절낙지란 말은 산낙지 먹기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낙지를 다듬으면서 반쯤 죽여서 내놓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방금 전에 죽은 싱싱한 낙지라는 의미로 쓴다. 해산물 맛의 관건은 신선도이니, 신선한 낙지를 찾는 손님을 위해 이런 말을 쓴 것이다.
아예 중국산 낙지를 사면 더 싸지 않으냐고? 그거야 두말하면 잔소리다. 냉동된 중국산 낙지 값은 국산과 비교하면 정말 싸다. 하지만 맛이 전혀 다르다. 낙지의 매력은 달착지근한 육질 맛인데, 중국산은 국산에 비하자면 거의 맹탕이라 할 만하다.
이것은 주머니가 비었으나 정말 간절하게 낙지볶음이 먹고 싶을 때에, 뻘겋게 범벅이 된 고춧가루 양념 맛으로 먹으려고 작정을 했을 경우에나 사는 것이다.제철 맞은 가을 낙지로 양념 맛이 강한 낙지볶음을 하기에는 좀 미안하다. 그것보다는 맑은 연포탕이 제격이다.
낙지는 그 자체가 워낙 맛있는 재료이므로, 낙지만 오래 끓이면 국물도 맛있다. 하지만 그렇게 끓여버리면 낙지 건더기가 질겨지고 맛이 없어진다. 이것이 늘 해산물탕의 딜레마다. 선택은 두 가지. 낙지 국물을 먼저 내고 거기에 새로운 낙지를 넣어 살짝 익혀 먹거나, 아니면 국물을 다른 재료로 내거나 하는 것이다.
값비싼 세발낙지를 국물용으로 쓰는 통 큰 사람은 거의 없으므로, 일반적인 방법은 바지락이나 모시조개, 다시마, 무 등을 미리 끓여 국물을 내는 방법을 쓴다. 멸치 비린내가 거의 나지 않는 죽방멸치가 있다면 그것을 조금 섞어 넣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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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어떤 재료라도 너무 많이 들어가면 그 맛이 강해져서 맑고 시원한 낙지 맛이 묻혀버릴 우려가 있으니, 국물 재료는 그야말로 감칠맛을 위한 베이스라는 태도로만 써야 한다. 준비해 둔 국물이 팔팔 끓으면 마늘 등으로 양념을 하고, 여기에 깨끗이 씻어놓은 낙지를 넣는다. 낙지는 빨판에 개펄의 흙이 있을 수 있으므로 세심하게 준비해야 한다.
배추 썬 것, 미나리, 쑥갓 등 여러 야채를 함께 넣어 아예 전골처럼 끓이는 방법도 있으나, 나는 오로지 낙지만 넣은 깨끗한 연포탕을 더 좋아한다. 낙지를 넣을 때에 대파를 조금 넣는 것으로 족하다. 간은 소금으로 하는 사람도 많은데, 내 취향은 역시 조선 간장이다.
맑고 시원한 국물 맛은 정말 품격이 있다. 뜨거운 국물에 들어가자마자 익어버린 낙지를 건져 양념간장에 찍어 먹으면 그 쫄깃한 맛은 또 어떤가. 주꾸미의 탱탱함이나 오징어의 말랑함과는 전혀 다른,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낙지만의 질감이 매력적이다. 훌훌 마시듯 국물을 떠먹으면, 어느 해장국보다도 속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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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노래' 다시 올리며 그 사연을 소개합니다.
안식처를 찾아 40,000km의 힘든 여정을 날아가는 기러기떼에 관한 내용입니다.
‘기러기 리더십’ 클릭! (2분 6초)
V자 대형 선두에서 힘차게 날개 짓을 하는 리더의 살신성인하는 모습과 이탈한 동료를 끝까지 챙기는 동료애에 저의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비록 실제 처한 상황과는 많이 다른것이 인생 이겠지만.....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서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한낮이 기울며는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기러기... 강화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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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수업이 정상적인 교육으로 이루어지던 예전에 중학교 이상을 다녔다면 한번쯤은 불러보았을 우리의 가곡 이별의 노래입니다 이 가곡은 박목월님의 시에 작곡가 김성태님이 곡을 붙인 것으로 이곡이 만들어진 과정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집니다
김성태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대구로 피난을 내려갔었습니다 여기서 시인 박목월을 만났지요 한사람은 당시 우리나라의 문학의 대부였고 한사람은 음악가의 대표자로서 피난지에서 만남은 서로의 친분을 쌓아가기에 충분하였고 그래서 둘은 잘 어울려서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였답니다
당시 서울음대 교수로 제직하고있던 김성태는 부산으로 이사간 서울음대를 따라 부산으로 내려갔고 부산에서 공군정훈군악 대장과 해군정훈군악대 지휘를 맡으면서 대구에서 맺었던 박목월과의 우정이 조금은 멀어진듯 하였습니다.
그러나 피난 생활이 길어지고 객지생활에 고달파진 김성태는 불연듯 막걸리를 함께 기울이던 박목월이 그리워 대구로 내려와 박목월을 잠시 만납니다. 이때 박목월은 한편의 시를 김성태에게 건네주는데 바로 이별의 노래 이었지요 이 시를 받아쥔 김성태는 너무도 심정을 울려주는 시제에 감격을 하고 그날 밤으로 누추한 여인숙 방에서 작곡을 하여 세상에 내놓은게 요즈음 우리가 애창할수 있는 이별의 노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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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 여기서 시의 화자와 작곡가는 너무도 멀리 떨어진 고향과 사람들 그리고 조국의 앞날을 연상하게 됩지요 서러워 울어대는 그리고 구만리쯤 멀어보이는 현실 그래서 나도가고 너도가야하는 안타까운 오늘을 토로 합니다.
이렇게 해서 이별의 노래는 만들어졌고 오늘날 우리에게 애창되고 있습니다. 한때는 김성태가 친일 음악 전위부대라 일컫는 경성후생 실내악단에서 활동을 하였던 사실에 친일의 논쟁의 중심에 서있기도 하지만 이별의 노래에서만은 진정한 조국의 앞날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작곡하였으리라 짐작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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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가지 많은 일들로 오랜만에 찾아 뵙는 점 용서바랍니다. 앞으로도 빈번하게 일어날 겁니다만 양해 바랍니다.
막바지 가을... 월요일부터 차갑게 시작합니다. 호흡기 질환에 '햇빛샤워'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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