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프로스트의 '길'
겨울의 문턱에 서서...
오늘 조인스 정진홍님의 '꼬막과 인생'이란 글을 보며 다시한번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생각해 봅니다. 고교때 죽어라 외운... 그 이후로 살면서 거의 습관적으로 '길'을 생각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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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정열을 바친 삼성에서의 생활을 벗어나 다시한번 뒤집으려고 결심한 그날이... 벌써 7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살며 항상 어느 길을 선택할까? 항상 갈랫길 속에서 선택의 연속이 삶이였음을 재삼 깨닫게 되는 오늘입니다. 후회없이 항상 최선과 정성을 다하며... 후회없는 선택을 이순간도 합니다.
점심 메뉴 하나도 밥 먹을까? 분식할까? 밥이라면 육식? 아니면 해물? ㅎㅎㅎ 그렇게 결정하고 나면 가지 않은 길에 대해 다시금 돌아 보았던...
그렇게 선택한 현재(present)가 미래(오늘)의 선물(present)로 나타나기도 하지요. 종종 메뉴를 잘못 선택하여 배탈 나기도 하지만 그바람에 선택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되어 정작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주심을...
이제 또다른 변곡점에 서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며 옷깃을 여밉니다. 제가 힘을 낼 때 힘차게 부르는 변훈님의 '떠나가는 배'를 들으며...
이봉식 드림 < 강화산길... 강화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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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
Robert Lee Frost (1874 ~ 1963)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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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막과 인생, 뒤집어야 산다 !
#바야흐로 본격적인 꼬막 철이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남도의 밥상에는 어김없이 꼬막이 오른다. 전남 보성군 벌교 앞 바다를 여자만(汝自灣)이라 부르는데 고흥 반도와 여수반도가 좌우로 감싸고 있는 이 만의 갯벌은 모래나 황토가 거의 섞이지 않아 예부터 꼬막 서식에 최적지로 꼽힌다.
우리나라 꼬막의 93%는 전남, 그중에서도 여자만에 접한 벌교가 주 생산지다. 그냥 삶기만 해도 그 특유의 짭짜름한 맛과 쫄깃한 육질을 내는 꼬막. 특히 차지고 차진 벌교 갯벌에서 캐낸 꼬막은 유독 ‘간간하고, 졸깃졸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한’ 깊은 맛이 나기로 유명하다.
#“벌교에서 물 인심 다음으로 후한 것이 꼬막 인심이었고, 벌교 오일장을 넘나드는 보따리장꾼들은 장터거리 차일 밑에서 한 됫박 막걸리에 꼬막 한 사발 까는 것을 큰 낙으로 즐겼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엔 심심치 않게 꼬막 얘기가 등장한다.
박노해의 신작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에도 ‘꼬막’이란 시가 실려 있다.
#“벌교 중학교 동창생 광석이가/ 꼬막 한 말을 부쳐왔다// …친구야 고맙다/ 나는 겨울이면 니가 젤 좋아부러/ 감사전화를 했더니/ 찬바람 부는 갯벌 바닷가에서/ 광석이 목소리가 긴 뻘 그림자다//우리 벌교 꼬막도 예전같지 않다야/ 수확량이 솔찬히 줄어부렀어야/ 아니아니 갯벌이 오염돼서만이 아니고/ 긍께 그 머시냐 태풍 때문이 아니것냐/ 요 몇 년 동안 우리 여자만에 말이시/ 태풍이 안오셨다는거 아니 여//
큰 태풍이 읍써서 바다와 갯벌이/ 한 번 시원히 뒤집히지 않응께 말이여/ 꼬막들이 영 시원찮다야// 근디 자넨 좀 어쩌께 지냉가/ 자네가 감옥 안가고 몸 성한께 좋긴 하네만/ 이 놈의 시대가 말이여, 너무 오래 태풍이 읍써어/ 정권 왔다니 갔다니 깔짝대는거 말고 말여/ 썩은 것들 한번 깨끗이 갈어엎는 태풍이 읍써어// 어이 친구, 자네 죽었능가 살았능가”
#꼬막 특유의 쫄깃한 육질의 비밀은 썩은 것들을 갈아엎는 태풍 덕이 8할이다. 뒤집고 엎어야 맛이 나고 소출도 많아지는 것이 꼬막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 꼬막뿐이랴. 인생사도 마찬가지다. 평탄하게 고이면 썩는다. 때로 깨끗하게 한 판 뒤집어야 한다. 그래야 삶이 쪼잔해지지 않고 쫀득해지고 널브러지지 않고 팽팽해 진다. 사회혁명이니 국가혁명이니 하는 거창한 혁명의 시대는 지나갔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 안의 작은 혁명은 지금도 진행 중이며 진행 중이어야 한다. 스스로를 뒤집지 못하면 결국 스스로 썩는다. 꼬막의 쫄깃한 육질과 삶의 쫄깃한 긴장은 모두가 건강함의 다른 표현이다. 육질이든 삶이든 쫄깃해지려면 안주하지 말고 스스로를 뒤집어야 한다. 내 안에 스스로 태풍을 일으켜야 한다.
#우리는 태풍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태풍이 없으면 바다가 썩는다. 바다가 썩으면 그 바다에 기대 사는 사람들은 결국 죽고 만다. 분명 태풍은 두렵고 무서운 것이다. 그것은 우리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태풍이 없으면 삶의 기반이 되는 바다가 바닥부터 썩는 것을 어찌할 수 없게 된다.
결국 태풍은 피하곤 싶지만 또 없어선 안 될 바다의 정화제다. 사람의 힘만으로 바다를 깨끗이 할 수 있을까? 없다! 하지만 태풍은 일순간에 바다를 한번 뒤집어 바다의 건강함을 회복하게 만든다.
#대란대치(大亂大治)란 말이 있다. 크게 어지럽혀야 크게 다스릴 수 있다는 말이다. 흔히 마오쩌둥이 한 말로 알고 있지만 실은 청나라 옹정제의 지배전략이었다. 하지만 정치에서만 대란대치가 필요한 게 아니다.
우리 삶에서도 대란대치가 필요하다. 가만 놔두면 안 된다. 녹슬고 곰팡이 핀다! 흔들어 깨우고 크게 뒤집어 일으켜야 한다. 그래야 삶의 생생한 돌기들이 일어나 진짜 자기 삶이 펼쳐진다.
꼬막도 뒤집어야 산다는데 산 우리가 뒤집지 않는다면 말이 되겠능겨?
정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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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생활 즐기는 남자들이 건강한 이유가 따로 있었네"
엠마누엘 잔니니 이탈리아 의학연구소 박사팀이 피렌체대학교 남성 4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배우자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건강한 성생활을 즐기는 남성이 그렇지 않은 남성보다 심혈관계 질환에 걸릴 확률이 더 낮았고 더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남성화작용을 강화시켜주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 때문인 것으로 보인 다.
▲ 영화 ‘참을 수 없는’스틸컷
잔니니 박사는 “건강한 성생활이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를 촉진하는데, 이것은 우울증을 예방 함과 동시에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을 줄여주고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만든다”며 “테스토스테 론이 분비되면서 몸속에 과다 축적되었던 당을 연소시키며 그로 인해 심장이 더 건강해진 다”고 말했다.
또한 당뇨병을 앓고 있으면서 건강한 성생활을 즐기는 남성의 경우에도 전립선질환의 위험 이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부정한 성생활을 즐기는 남성의 경우에는 그들의 스트레 스 수치가 매우 올라가 있었으며 이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이 더 높아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잔니니 박사는 “부정한 성생활뿐만 아니라 성생활 자체를 즐기지 않는 남성은 극도의 우울함을 보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연구결과는 이탈리아 성의학 학술대회(Italian Society of Sexual Medicine)에 게재됐 으며 8일 영국 온라인 일간신문 텔레그래프가 8일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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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가는 배 / 바리톤 오현명 변훈 곡
저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바다로 떠나는 배 내 영원히 잊지못할 님 실은 저배는 야속하리 날 바닷가에 홀로 남겨두고 기어이 가고마느냐
터져나오라 애슬픔 물경위로 오 한 된 바다 아담한 꿈이 푸른물에 애 끊이 사라져 나홀로 외로운 등대와 더불어 수심뜬 바다를 지키련다
▼황금빛 바다... 강화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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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변훈' 하면 먼저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한국전쟁기였던 1952년 피난지 제주도에서 작곡한 '떠나가는 배'(양중해 작시)가 그것이다. '저 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 바다로 떠나는 배/ 내 영원히 잊지 못할/ 님 실은 저 배는 야속하리/ 날 바닷가에 홀 남겨두고/ 기어이 가고야 마느냐'라는.
청춘남녀의 이별을 센티멘털한 정조로 그린 이 노래는, 실은 실향민(함경도 함흥 출신)이었던 작곡가의 주관적 감정이 투영된 작품이다.
그럴 뿐만 아니라, 변훈은 민족의 분단과 겨레의 현실을 노래한 가곡을 적잖이 남겼다. '…이 강물은 끝없이 흐르고 흐르는데/ 우리 겨레 어이하여 갈라졌는가/ 맺힌 한아 이제는 흘러가라/ 강물따라 하나로 흘러가라'라는 '한강'(정공채 작시)을 비롯, '임진강', '갈매기야 우는구나', '오랜 기도' 등이 그러하다.
또한 "고아원을 떠날 때 너와 나와 손잡고 / 굳세게 살자고 굳세게 살자고 눈물로 맹세했지 / 어이하여 너는 동두천의 밤 꽃이 되어…"라는 노랫말의 '순이야' (박효석 작시)도 빼놓을 수 없다. 분단 현실의 압제에 굴종하는 소녀의 아픔을 오롯 이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변훈은 홍난파·현제명으로 대변되는 전형적인 한국가곡의 음악어법을 극복 한 작곡가이기도 하다. 즉 그는 사랑·고향·자연을 주제로 한 노랫말, 주요 3화음에 기초한 서양식 화성체계, 장절(章節) 형식에 의한 선율의 서정성과 같은, 이른바 '정다운 가곡'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부산 태종대 자갈마당... 강화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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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1952년 부산에서 초연된 대표작 '명태'(양명문 작시)가 그렇다. "… 짝짝 찢어지는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 명-태, 헛 명태 라고/ 헛,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와 같이 익살스런 자유시를 노랫말로 선택 한 점, 부가화음으로 3화음의 정형성을 탈피하려 한 점,
2박자에 셋잇단음표를 즐겨 씀으로써 리듬변화를 꾀한 점, 일관작곡(一貫作曲) 형식에 파를란테(parlante·말하듯이 노래하는 기법)와 포르타멘토(portamento· 한 음에서 다른 음으로 옮겨 갈 때 미끄러지듯이 연주하는 기법)를 활용함으로써 음악의 사실성을 획득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변훈은 김순남 이래 최고의 음악적 리얼리스트로 평가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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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우리 선수들이 또 선전분투하고 있습니다. 마음껏 격려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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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건강 유의 하시고 좋은나날 되셔요. 고란초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