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우기 힘든 춘란꽃

2011. 3. 9. 13:46나의 난 단상집

 우리 님들, 혹시 한국춘란을 배양하면서 춘란꽃을 피게 해보신 적이 있으세요?
있으시다구요? 그렇다면 쉽사리 잘 피던가요? 춘란의 향기는 어떻던가요?
사실 고란초가 많은 난들을 기르면서 느꼈던 것은
이 중에서 춘란꽃이 가장 피우기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 님들 왜 그런지 좀 더 자세히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아래 글에 나오는 난꽃은 춘란꽃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 고란초의 그림집에 있는 '한란'입니다.
                                이런 난은 향기도 좋고 꽃 피우기가  덜 힘든 편입니다.-



 

                                         피우기 힘든 춘란꽃



 한 송이의 난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어느 시인이 노래했던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기다리는 것보다 더 힘들고 견디기 어려운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만 한다.

 그런데 다른 꽃들은 그냥 가만히 내버려둬도 제 색깔이나 제 모양을 뽐내며 잘도 피워대는데, 어찌하여 난꽃은 이다지도 피우기도 어렵고, 제 색깔내기도 어려운건지 나도 모르겠다. 자생지 춘란을 살펴보면 사람의 손이 가지 않아도 제 모양, 제 빛깔로 잘도 피는 것 같은데, 이것을 캐다가 집에서 배양해보면 전혀 다른 빛깔을 가진 꽃으로 변하거나, 아예 꽃도 못 피우고 꽃봉오리가 뚝뚝 떨어져버리니 더욱 실망만을 안겨줄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산채꾼들은 산에서 잔뜩 기대하면서, 혹은 환희의 절정을 느끼며, 산채의 묘미를 마음껏 만끽해가면서 떨려오는 가슴을 진정시켜가며 변이된 춘란들을 캐게 되는데, 이들을 집에서 배양해보면 실제로 핀 난꽃들은 기대치 이하인 경우가 많다. 특히 춘란 색화의 경우 샛노란 황화나 검붉은 자화, 오렌지 빛의 주금화 등등 자생 여건이 좋은 곳엔 간혹 접할 수 있는 것이지만, 산채 경험이 없다보면 황화는 많이 속아서 캐게 되고, 자화도 꽃이 피면서 서서히 녹색이 진해져 민춘란처럼 변해버리니 여간 속이 상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요즈음엔 완전히 꽃이 질 때까지 샛노란 황화가 아니면 아예 캐지 않기로 작정했고, 자화도 설판까지 검붉게 변한 것이 아니면 손대지 않기로 작정하고 말았다.

 금년에는 2월말 경부터 난꽃들이 서로 경쟁이나 한 듯이 피어대고 있는데, 색화라고 캐온 것 중 몇 종류는 그런대로 발색이 이뤄지는 것 같으나 대부분이 민춘란처럼 피어 요놈의 난들이 진짜 색화인지 아닌지 감별이 곤란할 정도다. 그중엔 작년보다 발색이 더 나아진 것이 있는가하면 작년보다 훨씬 못한 것도 많으니 어떻게 해야만 최상의 발색이 이뤄질 것인지 연구를 좀 해봐야겠다. 결국 색화의 발색이 문제가 되는데, 자생 여건처럼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절대로 인위적인 발색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난꽃이 아닌가하고 여겨진다.

 난꽃도 핀 채로 너무 오래 두면 새촉이 나오는데 지장을 준다고 한다. 대개는 1∼2주정도 감상하다 따버리는 것이 좋다고들 하는데, 1년간을 기다려 모처럼만에 핀 멋진 꽃을 따버리기가 너무도 아까와 한 나절만, 아니 하루만 더 있다가 따야지 하고 있다가 2주 이상을 넘기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내 경우엔 꽃이 시들어 힘없이 축 늘어질 때 가서야 따는 경우가 많아 올해 새촉이 나오는데 분명히 지장을 줄 것만 같다.

 빨리 꽃을 따버리고 건장한 새촉을 받아 점점 좋은 대주의 난으로 뒤바뀌면 그땐 더 좋은 꽃을 피우게 할 수 있으리라 여겨지지만, 말이 쉽지 실제는 그렇게 쉽사리 이뤄지지가 않는다. 그처럼 어렵사리 피운 꽃을 한 순간 감상하고 따버려야만 하는 한 애란인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아쉬움을 남기기도 하고, 너무도 꽃에 애착을 느낀 나머지 따버리는 용단을 내리기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난을 판매하는 사람들에겐 꽃이 피면 가능한 한 빨리 제거해버리는 것이 새촉이 잘 나오게 되어 수입상 좋으니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나와 같은 취미가의 입장에선 그리 쉽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엽예품인 경우는 좀 다르다. 잎 무늬 감상이 주가 되므로 꽃을 확인하면 곧장 제거하는 것이 좋다고 볼 수도 있지만 화예품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또한 난꽃에는 사람의 후각을 즐겁게 해주는 향기가 있다. 한란이나 양란, 중국란 계통이 향을 많이 발산하는데, 산에서 채취한 한국 춘란에는 거의 미미한 향이 있어 질 좋은 향기를 맛볼 수가 없다. 나는 난향 때문에 골탕을 먹은 적이 한번 있었다.

 어느 날, 내 아내가 자기 친구 집에 일보러 갔다가 보세란으로 생각되는 난에서 내품는 향기에 흠뻑 취하여 집으로 돌아오더니 웬일인가 싶게 향기 나는 난을 거실과 안방 쪽에 좀 놔두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러잖아도 난실도 비좁은데 잘 되었다 싶어 난실에 있는 중국란 중에 꽃이 피어있는 춘란 서너 분을 거실에다 당장 가져다 놓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건가? 금방 기분이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웬 걸, 난꽃에다 코를 대고 콧구멍을 벌름벌름거리며 향기를 맡더니 전혀 향기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요놈의 마누라 코가 개코여야 하는 데, 축농증에 걸린 코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럴 리가 없으니 며칠간만 더 나둬 보자고 했더니 마누라도 마지못해 승낙하는 것 같았다.

 그 후 며칠간이 아니고 꽃이 질 때까지 나둬봤지만 결국 난향 냄새를 맡았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니 요놈의 난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감별이 안 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나로서는 다소 거금을 투자하여 장만한 중국란들이었는데 속이 무척이나 상했다. 결국 찍소리도 못하고 난꽃을 따버린 체 다시 난실로 가지고 올라가야만 했다.

 난도 향기를 발산하는 시기가 있다고 들었는데 이 시기를 잘 못 맞춘 것일까? 아니면 잘 못 배양을 한 것일까? 도대체 어찌된 건지 알 수 없는 것이 너무도 많으니, 어찌하여 난과 더불어 살다가 이토록 머리 골치가 아픈 일을 많이 겪는지 정말이지 미칠 노릇이다.

 그리고 또한 난은 죽도록 고생을 시켜놔야 화아 분화도 잘 되고 꽃도 잘 핀다고 한다. 8월 중순경, 한창 뜨거울 때 물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1주 이상이나 말이다. 삼복더위에 화아 분화를 시킨답시고 물을 끊어놨더니 요놈의 난들이 시들시들하여 꽃이 문제가 아니라 죽을 것만 같아 우선 난부터 살리고 보자며 측은한 마음에 원대로 시원한 물로 흠뻑 샤워를 시켜댔다. 그랬더니 이건 또 뭔가? 어떤 것은 너무 물을 자주 준 나머지 새촉부터 서서히 쏙쏙 빠져버리는 연부병에 걸린 것도 있었다.

 난은 물주기 3년이라더니 20여 년을 길렀는데도 아직까지 물주기 타임을 정확히 못 맞추고 있어, 어떤 것은 과습이 되고 어떤 것은 너무나도 건조해지니 신경 쓰일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렇게 해서 어렵사리 꽃대가 맺힌 것들이 9월 초나 중순쯤이면 화장토를 뚫고 나오게 된다. 이때는 꽃망울인지 새촉인지 감별이 힘들지만 꽃봉오리로 생각되는 것들에게는 차광을 시킨답시고 수태니 화통이니 하는 것을 부지런히 덮어 씌워야 한다. 그래야만 발색이 잘 된다고 하니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간혹 덮어씌운 화통 속에서 꽃대가 푹 썩어있는 것도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놔둘 수밖에 없다.

 꽃 피우기가 이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겨울철엔 월동준비를 해야만 하는데 영하로 떨어지면 얼어 죽을 것이고, 너무 가온시키면 꽃망울이 물크러져 피지도 못하니 그냥 무가온 난실에 놔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계속해서 가온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생지의 난들은 폭삭 얼어도 잘만 살아나는 것 같은데 우리 집 난은 잘도 죽는다.

 몇 년 전 겨울, 색화라고 산채 해 온 난들 일부를 난실 밖에 내놓고서 자연환경과 비슷하게 만들어 본답시고 간이 난실을 하나 만들어 그 속에다 놔뒀다. 전혀 가온을 시키지 않은 채 말이다. 그런데 1월 중순 경까지는 꽃대가 그대로 있는 것 같더니 1월 말경이 되자 꽃봉오리가 점차 거무스름하게 변하면서 힘이 없어 보였다. 포의를 벗겨보니 폭삭 얼어 자화모양 새카맣게 썩어 짓문드러져 있는 게 아닌가?

 그것으로 끝났으면 그래도 뭐 하겠는데 봄이 되자 밖에 내놓은 난들의 새촉, 구촉 할 것 없이 모조리 말라비틀어지고 뿌리는 모두 구멍이 뻥뻥 뚫려 연부병에다 근부병까지 겹쳐 결국에는 전멸하고 말았다. 얼마나 속이 부글부글 끓었는지 모른다. 발색도 좋지만 애쓰게 캐온 아까운 난들만 모조리 황천으로 보내 버렸으니 너무나도 허망할 뿐이었다.

 그런 후론 겨울철에는 절대로 난실 외부에 난을 두는 어리석음을 범하진 않고 있다. 차고 어둡게 꽃대 관리를 해야만 발색이 잘 된다고 하나 잘 못하면 난을 골로 보내버리는 일이 많으니 나도 어떡해야 최선의 길인지를 잘 모르겠다.

 이처럼 꽃 피우기 힘들고 향기 내기 힘든 것이 바로 난이니, 난을 기른다는 것은 아무나 할 짓이 아님에 틀림없다. 또한 하루가 멀다 하고 자주 난실로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고 난분 하나하나를 자세히 점검해야 하니 이건 차라리 할 일없는 한량들이나 할 짓인 것 같다. 바쁘고도 빠듯한 일상생활에 쫓기고 있는 내가 한가하게 난을 벗 삼아 세월 가는 줄도 모른 체 즐기겠다고 벼르고 있으니 모두가 실소를 머금을 일이지만, 그래도 나는 악착같이 난을 기르고 있다. 온갖 정성과 기술과 지식을 다 동원해서 난을 기른답시고 하고 있건만 아직도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가 나올 때가 너무도 많은 것 같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바로 나의 난실 속에서. 이제 난꽃과 난향이 나의 난실을 흠뻑 수를 놓으리라. 생각만 해도 흐뭇하고 기분 좋아질 그 날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난실을 오르내리며 난만을 돌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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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님들, 이제 좀 이해가 되시죠?
 그렇지만  난에 조금만 더 신경을 쓴다면 저보다 더 쉽게 꽃을 피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 우리 님들, 오늘 하루도 즐겁게 보내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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