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채소고(山菜小考)

2011. 3. 9. 13:52나의 난 단상집

 우리 님들, 한국춘란 산채에 대한 저의 생각을 한번 피력해보겠습니다.
채란의 기본적인 마음 가짐이나 산에서 지켜야할 사항, 채란에 대한 개인적인 바램
등을 두서없이 써본 것인데, 산채꾼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만 같습니다.
 우리 님들 즐겁게 감상해보세요.


 

              산채소고(山菜小考)



 
 자생란, 이것은 한때 온 산에 널리듯 깔려있던 한낱 풀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모든 식물이 그렇듯이 어떤 개체가 모든 형질을 그대로 지닌 체 천 년 만 년 변하지 않고 이어져 내려오는 것은 아니고, 그 중엔 급변하는 자연 환경에 의해 변화되거나 식물자체의 개체 발생 및 성장 단계에 뭔가 적응키 위한 변이를 일으켜, 변이종이 그대로 굳어져 계속 유전 형질을 발휘함으로써 희소한 가치를 나타내게 되고, 그러한 개체를 발견하여 배양해보고자 관심을 가진 사람은 그걸 찾으러 산을 찾아가게 되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춘란 변이종, 이것은 발생 확률이 매우 낮아 이걸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고들 한다. 이것은 미미한 변이를 일으키는 것들이 많아 눈에 불을 켜다시피 해도 정말 눈에 잘 띄지 않고, 이것을 찾아 온 종일을 산 속에서 헤매어도 결국 허탕을 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난과의 만남은 정말로 우연적인 것이고, 행운이 따르지 않고서는 결코 발견할 수가 없다고 여겨진다.

 난이 몇 만분의 일정도로 변이를 일으킬만한 확률이라면 그 산에서 그 난을 캐내버렸을 경우엔 수십 만분의 일로 변이종이 발견될 확률은 낮아지는 것이다. 요즈음같이 시도 때도 없이 너도 나도 산속을 갈고 다니는 경우에는 변이종을 발견할 확률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까닭에 모처럼만에 산에 한번 가보고선 좋은 난을 못 캤다고 투덜거리는 사람을 보면, 그는 웬만큼 욕심이 많은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판단될 수밖에 없다. 하고 많은 날을 온통 깡그리 이산 저산 쏘다니는 경우에야 어쩌다 운 좋게 변이종이 걸리는 수도 있으니, 좋은 난을 캐야만 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그저 운동 삼아 산을 찾고 난과 친근해지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으리라.

 또한 변이종으로 고정된 것은 그만큼 희소한 가치를 가지고 있으므로 값도 천정부지로 비쌀 수밖에 없다. 공연히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너무 비싸다는 둥, 값을 깎자는 둥 하지만 그 사람더러 그런 난을 한번 캐보라고 하면 몇 년이 가도 한 촉도 캐지 못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렇게 비싸고, 희귀하고, 갖고만 싶고, 기르고만 싶은 난을 찾아 산속을 헤매는 것이 바로 산채란 것이다. 그러니 뭔가를 발견해냈을 때의 그 심정, 특히나 자기의 마음에 쏙 드는 난을 발견했을 때의 그 기분은 과히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붕 뜰 수밖에 없을 것이다. 뭔가를 이뤄냈다는 성취감에다 가슴에 와 닿는 흥분과 희열, 기쁨의 극치, 환희를 어찌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기분을 맛보기 위해서 기를 쓰고 산채에 매달리는 것이 아닌지 모르리라. 그렇지만 이것은 난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에 한하여 해당되는 것이지, 뭐가 풀이고 어떤 것이 난인지도 모르는 사람에겐 보석도 한낱 돌에 불과할 뿐이다.

 이러한 목적의식이 뚜렷한 산채라서 온 종일 이산 저산 돌아다니다보면, 사서 고생하는 것처럼 귀가할 때쯤이면 온 몸에 피로가 겹쳐 팔다리가 소금에 저린 파김치마냥 축 늘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명품을 발견한 사람과 공탕을 친 사람의 귀가 모습은 천지 차이이다. 또한 공탕과 피로도는 정비례를 하게 되고, 이에 따라 공탕한 자는 의기소침할 수밖에 없으며, 명품을 캔 자는 산삼을 캔 심마니마냥 장원이다, 뭐다 하여 기고만장하여 펄펄 날아다닐 정도가 된다. 똑같이 산속을 헤맨 것 같은데 왜 이런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는지 알 수가 없지만 실제로 경험해보면 알게 될 것이다.

 어디 그 뿐이랴? 명품을 캔 사람은 장원턱이니 장원주니 해서 돈을 물 쓰듯 하며 기분을 내게 되고, 많은 다른 산채꾼들의 부러운 시선을 집중적으로 받게 된다. 아무튼 산채는 명품을 캐내고 봐야 못난 사람도 잘나 보이는 것이고, 피로도도 아울러 격감되는 것이 틀림없다.

 춘란 변이종이란 것이 그리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 관계로 공탕을 밥 먹듯 수없이 하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이런 사람들은 다소 다른 말들을 내뱉고 있다. 그래도 산에서 얻는 게 많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명품을 캔답시고 기를 쓰고 이산 저산을 누비고 다니니, 공탕 후엔 자연히 극도의 피로와 허탈상태에 빠질 것은 뻔한 일이나, 그래도 운동이 된다는 둥, 건강에 최고라는 둥, 이게 바로 신선놀음이라는 등의 말들로 표현하고 있으니 이게 말이 되는지 어떤지 나도 잘 모를 일이다.

 사람의 욕심엔 한이 없는 까닭에 누군가가 어느 산에서 좋은 난을 캤다는 소문만 들리면 어느 순간에 너도 나도 그 산으로 모이게 되고, 온통 휘젖고 다니므로 결국 황폐화가 되어버리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일경구화가 진도군 고금면의 어느 산에서 나왔다고 하니, 그곳에 있는 난들은 민춘란들 뿐만 아니라 아직 싹도 트지 않은 생강근까지 모조리 파헤치는 수난을 당하게 되어, 결국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그 일대가 폐허로 변해버린 것을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다.

 명품을 누군가가 캐버린 후엔 그 자리에 그런 명품이 또 있는 것도 아니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감 때문에 결국 너도나도 그 장소를 가보게 된다. 하지만 백 날 가봐야 공탕을 할 것은 맡아놓은 당상인데도 말이다.

 요즈음은 일부 남채업자까지 동원하여 어느 산에서 뭐가 나왔다는 소식만 들려와도 돈을 주고 인부를 고용해 그 산에 있는 난이란 난은 깡그리 캐오게 하는 이도 있으니, 그 많은 난중 자신이 필요로 하는 난이 아닌 것은 어떻게 처리하고 있을까하는 것이 궁금스럽다. 다시 캐온 곳에 가서 심어줘야만 할 텐데, 모조리 아무 곳에다 처박아버리거나 쓰레기장으로 보내버리니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다.

 어디 그 뿐이랴? 산속 어느 골짜기에는 춘란의 무덤들이 간간이 발견된다. 그들이 원치 않은 난을 캐내어 다시 심어주기가 그렇게도 힘들고 어려운건지 모르지만, 모조리 골짜기에 내팽개쳐 무덤을 만들어 죽이는 것이다. 이게 어디 난을 기르는 사람이 할 짓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겠다.

 또한 산채를 다니다보면 아무 곳이나 캔 난들을 내동댕이쳐 뿌리를 하늘로 쳐들고 죽어가는 난들을 가끔 보게 된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고 필요로 하지 않는 난이라면 차라리 캐지나 말 것이지, 캐내서 아무데나 던져버리는 고약스러운 심보는 또 어디서 배운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런 사람도 애란인이라고 자처하고 있을까?

 요즈음엔 난을 아예 깡그리 말려 죽여 버리는 수종 갱신을 위한 벌목도 역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나무를 베고 있는 자의 눈에는 민둥산에서 죽어가는 춘란들은 전혀 보이지도 않나보다. 아니 그 보단 말짱한 소나무를 베도록 허가를 내주고 있는 관리들은 난이란 게 뭔지도 모르는 자들만 모여 있나 보다.

 아무튼 이 모두가 난을 사랑하는 자들이 해야 할 일인지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봐야만 할 것 같다.

 최근에는 산속에만 들어가면 붙잡아 벌금을 물리거나, 심지어는 구류를 살게 하게끔 하는 산림 감시원이라는 직책이 생겼다. 이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진정한 애란인들까지 모조리 붙잡아대고 있으니 이건 또 무슨 이해 못 할 일이란 말인가?

 춘란 산채 자체가 자연 훼손임엔 틀림없고, 자연의 오염 및 산불 유발 등 산림에 위해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으나, 춘란 변이종 한두 촉을 캐서 잘 배양시켜 원예화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애란인까지 무더기로 적발하는 것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만 할 것 같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산속에 있는 것을 못 캐게 막는다고 해서 춘란 변이종이 증가 일로에 있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자연환경에 적응을 못해 자연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더 좋은 환경을 인위적으로라도 만들어 배양에 역점을 두어야만 한다고 본다.

 산채의 어려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나 거기서 얻는 묘미는 이 어려움을 능가하는 것이니 산채 예찬이 될 것은 뻔한 사실이지만, 인위적이나 물리적인 압력으로 그마저 못하게 된다면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아가야 할 지 모르겠다. 아무 곳이나 어느 산이나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지 갈 수 있어야 되겠고, 그 곳에 있는 춘란 변이종의 선별 채취는 법적으로 당연히 허용되어야만 할 것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야만 난을 사랑하는 사람이 다소의 희망이라도 품고 산을 오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또한 어느 것이든 전문직을 갖기 위해선 그에 따른 자격이 따르는 것이 일반적인 상례이다. 난 또한 기르기 힘든 식물이고 가꾸기 어려운 것이란 걸 누구나 잘 알고 있는데, 어찌하면 잘 배양을 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선결 과제이다. 따라서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자동차 운전면허 시험이나 전문, 특수직 자격시험 같은 시험이 필요할 것으로 여겨진다. 즉 어느 정도 지식과 기술을 겸비한 자만이 난을 취급하고 기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난에 관한 원예사 자격증이 없이는 난을 채취할 수 없게끔 한다면 그만큼 난을 하찮은 물건으로 취급하진 않을 것이고, 난 또한 덜 수모를 당할 거니까 이런 걸 한번 시도해보면 어떨까하고 제안하는 바이다.

 무자격자이고 인격 수련이 덜 된 자는 산에서 채란을 못하게 한다면 나도 거기 걸려 산에는 얼씬도 못하게 될 수도 있고, 운 좋게 자격을 따면 이 통에 산에서 명품을 하나쯤 캐올 수도 있겠는데 말씀이야. 이거 나 혼자 너무 쓸데없는 욕심을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산채 시엔 여러 각도에서 선별적으로 허용해야만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니 이렇게 될 지 어떨 지는 앞으로 두고 봐야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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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님들 잘 감상하셨나요?
춘란 산채도 쉽지만은 않은 것 같죠?
이건 단순한 저의 바램이며 생각이므로 님들의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 님들, 오늘도 좋은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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