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과 꿈

2011. 3. 9. 13:53나의 난 단상집

 우리 님들, 사람은 항상 꿈을 꾸면서 살아간다고 하더군요. 실제 잠을 자면서 나타나는 꿈도 있고, 뭔가를 바라는 꿈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희망을 나타내는 말로 이런 꿈이 없다면 인생은 무미건조해질 것이며 삶의 의미를 느끼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난을 좋아하는 고란초가 좋은 난을 캐고 싶어 안달하다가 난꿈을 많이 꾸어봤는데, 이런 꿈에 관한 생각을 한번 올려드리겠습니다.
  우리 님들 즐겁게 감상해보세요.
 

                                          

                              - 만일 꿈에 나타나는 이런 도사분이 명품의 난을 점지해주신다면..
                           꾸벅..황공무지로소이다.-



                                                         난과 꿈


 


 산채가기 전날은 마치 어린 아이들의 소풍가는 날과 비슷한 상태가 되기도 하는데, 온갖 기대감과 설레이는 마음으로 잠 못 이루는 경우가 많다. 잠들기 전부터 어느 산 어느 골짜기에 있음직한 명품의 환영이 머릿속을 온통 어지럽히고, 명품의 난밭 속에 묻혀있는 듯한 환상 속에 빠지기도 한다. 어쩌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게 되면 꿈속에서까지 간혹 난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평소 캐고 싶어 안달하던 난의 명품들이 무더기로 눈에 띄니 정말 행복한 순간을 꿈속에서나마 마음껏 누려볼 수도 있다.

 어떨 때는 난의 도사나 산신령님을 꿈속에서 뵙게 되고, 그 분들의 가르침을 받아 산속을 헤매다 결국 원하는 난을 꿈속에서나마 마음껏 캐보게 되는데, 그 꿈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 때문에 늦잠을 자게 되는 원인인 듯싶다. 꾼 꿈이 개꿈이든 진꿈이든 간에 해몽에 따라 걸작이 될 수도 있고 졸작이 될 수도 있다.

 그날의 산채 결과에 따라 꾼 꿈이 가짜였는지 진짜였는지 사람마다 다른 판단을 할 수밖에 없는데, 꿈에 얽힌 명품란의 산채 결과는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고 허망하게 끝나기도 한다. 산채 비결이라 하는 경험에 의한 명품의 채란 방법이 있긴 하지만 경우에 따라 말짱 헛것일 수도 있고, 기막히게 맞을 수도 있는데 그 날의 행운은 그 날 느끼는 기분 여하에 달려있는 것만 같다.

 바이오리듬(Biorhythm)이라 불리는 생체의 심리적 변화란 불안, 초조, 우울한 상태에선 느끼는 기분이 하향곡선을 나타내는 바 잘 될 일도 잘 안 되는 것은 확실한 것 같고, 마음이 기쁘고, 밝고, 행복에 겨운 상태에선 상향곡선을 그리게 되니 평소에 잘 안 보이는 것도 잘 보이게 되어 이 때는 명품 발견에 가장 적합한 때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막상 부딪히게 되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기분 좋은 꿈을 꾸고 나면 뒤끝이 끝내 아쉽고 허전함이 뒤따르니, 꿈속에서 명품을 만났다고 해서 그 날 명품을 만난다고 보장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떤 이는 꿈이란 것은 사전에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을 미리 예견해주는 것이므로 맞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꿈에 어느 산 어느 골짜기에서 중투를 캤는데 산채를 가서 그대로 해봤더니 그 곳에 뭔가가 있더라고 하기도 하고, 허연 수염에 장삼을 걸친 산신령님이 꿈에 나타나 어느 곳에 가보라고 하기에 그 곳에 찾아갔더니 기가 막히는 명품의 난이 있더라고 하니, 그 말을 액면 그대로 곧이듣지는 못할 일이지만 실제로 일어난 경우도 때때로 보아왔다. 그렇다면 꿈을 잘 꾸면 그 날 산채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주어 명품 발견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야긴데 이게 사실무근일까, 아닐까는 한 번쯤 심사숙고 해봐야겠다.

 나도 그걸 믿은 적이 있어 좋은 난 꿈이나 좀 꾸고 산채를 갔으면 하고 은근히 바랬는데, 엉뚱한 개꿈만 계속 꾸어대고 있는 것 같으니 될 일도 잘 안 되고 있나보다. 그런데 어느 날은 진짜 괜찮은 난 꿈을 꾼 적이 있었다. 그토록 캐고 싶어 안달하던 중투가 산골짜기에 쫙 깔려있어 어찌나 황홀했던지 쳐다만 봐도 숨이 막히고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는데, 그걸 원대로 캐어 배낭이 터져라고 집어넣은 후에 날아갈 듯 집에 돌아온 꿈이었다. 그 꿈을 고이 간직한 채 대망의 꿈이 현실로 나타나주길 고대하며 잔뜩 기대감을 가지고 산채를 떠났는데, 갈 때까지 아무에게도 꿈 이야기를 하지 않고 일체 함구한 체 산을 올랐지만 온종일 누비어도 명품은커녕 시덥지 않은 난 한 촉도 거의 구경 못하고 입맛마저 소태맛이 되어 쓸쓸하게 귀가해야만 했었다.

 그에 반하여 개꿈만 잔뜩 꾸다가 별다른 기대감도 없이 산채 가는 날엔 그래도 무언가 한 건이라도 걸려드니 나에겐 꿈 이야기는 명품의 난과 전혀 무관하지 않나 싶다. 어쨌든 꿈에서라도 원대로 캐보고 싶은 난을 캐봤으면 하는 게 소원인 바, 그 꿈이 이뤄졌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만족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자위해 본다. 또한 세상을 살다보면 무엇인가 될 성싶은 날이 있고, 꿈이 현실로 꼭 나타날 것만 같은 기대감이 충만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산채를 떠난다면 결과는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산채가기 전 날 어디 가면 무엇이 걸려들 것인가 하는 예측과 예감, 그 정도가 지나쳐 온갖 설렘 속에 잠을 설쳐대는 경우가 많은데, 누가 보면 꼭 어린애 같아진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이건 마음만이라도 그만큼 젊어진다는 얘긴데 젊어져서 안 좋을 게 그 무언가? 마음이 늙어지는 것보단 백 번 더 낮지, 안 그래요? 백발노인도 마음만 젊어진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진데 하물며 우리 같은 사람은 그 여력을 써먹을 데가 없어서 탈이지, 대상만 있어준다면야 끝내준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꿈과 비슷한 환상이나 환영도 마찬가지인데, 나타나는 어떤 대상의 특징과 난의 종류와 연관시켜 그 걸 캘 것만 같은 착각 속에 빠지기도 하며 실제로 캐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환상 속에 보이는 예쁜 여자의 몸통 중에서 그 무엇과 난의 색깔, 또는 그 날의 기상 조건에 따라 장대비, 백설 등과 난의 종류 등이 대비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백조나 학과 같은 환영 속에 나타나는 새의 종류에 따라 만나는 난도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얼마나 명품을 캐보고 싶었으면 그 난과 색깔, 모양이 비슷하게 연상되는 다른 환영이 나타날까? 이 모든 것이 난을 캐는 사람만이 느끼고 맛볼 수 있는 고유의 즐거움이니 정말 산채꾼은 행복한 사람인가 보다. 그렇지만 일단 산 속에 들어가면 실제로 명품을 알현할 기회는 거의 극소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무언가 하고 싶은데 잘 안 될 때 하고 싶다는 푸념이 잔뜩 섞인 노래가 나오게 되어 있는데, 중투타령이니 봉란타령이니 뭐니 하는 게 바로 그것이다. 난가게에 가보면 하고많은 그 명품의 난들이 왜 하필 내 눈에만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제발 좀 눈에 띄게 해달라고 산신령님께 빌고 또 빌며 산신제까지 지내고, 그것도 모자라 결국 노래까지 흥얼거리게 되는 것이다.

 ‘중투나 호 찾습니다. 복륜이나 산반도 찾습니다. 그도저도 못 찾으면 제발 민춘란이 아닌 것만 좀 보고 싶습니다.’

 ‘캐고 싶어라, 갖고만 싶어라. 제발 공탕만 면하고 싶어라.’

 ‘캐고 보면 알거야, 이내 마음을. 중투여! 내 너를 얼마나 사모하는지…’등등.

 별스런 노래에 별스런 소리들 같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소리 안 해본 산채꾼이 있으면 어디 한번 나와 보라고 그래요. 나도 역시 맨 날 불러대는 게 중투타령이지만 정말 캐기 힘든 것이 명품의 난인 듯싶다.

 꿈과 현실은 엄연히 구별되는 것이지만 명품을 캤을 때의 그 상황과 그 당시에 꾼 꿈은 그 난과 함께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도 있다.

 꿈이여! 비록 개꿈이라 할지라도 난과 함께 영원하라. 나는 꿈을 먹는 난을 기르는 애란인이 되고만 싶다. 이건 진정한 나의 본심이지만 아무도 안 믿어줘도 좋다. 오직 나만 믿으면 된다.

 ‘지가 뭐나 되는 것처럼 큰 소리 치고 자빠졌네. 아니꼬와서 정말.’

 이런 욕을 얻어먹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난을 사랑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련다. 아울러 난꿈을 꼭 실현시켜 명품의 난들을 한번 더 만나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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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님들 잘 감상하셨나요?
 님들께서도 항상 꿈을 지니면서 사시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그 꿈이 꼭 이뤄지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