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蘭)과 도둑

2011. 3. 9. 13:49나의 난 단상집

 우리 님들은 난을 키우면서 난도둑 걱정을 하신 적이 없으세요?
이건 비단 난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애지중지하면서 소유하고 있는 귀한 물건은 항상 도둑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차라리 무소유라면 이런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만, 뭔가를 가진 자의 걱정거리가 바로 남에게 도난을 당하는 것이리라 여겨집니다.
 특히 매우 희귀하고 값비싼 난을 지닌 소장자는 매일 같이 난도둑 걱정에 밤을 새는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귀한 난들을 송두리째 도난당하고 실의에 빠진 사람을 주변에서 많이 봐왔기로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번엔 난도둑과 관련된 글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우리 님들, 잘 감상해보세요.



                                                    

                                                            - 고란초의 그림집에 있는 한란입니다.-




 

                  난(蘭)과 도둑



  옛날 같으면 꽃을 훔치는 사람의 본성은 훔치는 행위 자체를 제외한다면 순수하다고 여겼다.

 한 송이의 꽃향기가 못내 그리운 나머지 화원에서 꽃 화분 하나를 훔쳐와 향내를 맡고 꽃이 진 후에 다시 화원에 되돌려준다면 그것도 큰 죄를 짓는 것일까? 난향이 가득한 난분 하나를 자기의 다정한 친구 집에서 몰래 가져와 흠뻑 향기에 취한 후 꽃이 시들어 그 친구에게 다시 반납한 경우라면 어떻게 될까? 이러한 순수한 마음에서의 꽃 도둑질도 도둑으로 몰려야 되는지 알 수가 없다.

 무릇 난을 기르는 것은 난향을 즐기고, 변화무쌍한 잎무늬에 정신을 팔려 각박한 세상사를 모두 잊어버리며 자신의 정서 순화에 도움을 얻기 위함인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심혈을 기우리며 자기의 친자식처럼 아끼고 잘 기르고 있던 난을 잃어버렸을 때의 참담한 심정이란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르리라.

 허탈 상태에 빠지고, 세상만사가 다 귀찮아지며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이 적개심으로 부글부글 끓게 되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자는 진정 모를 것이다. 난을 잃어버린 사람은 제발 죽이지만 말고 고이 가져다주었으면 하는 바램 밖에는 없게 된다.

 내 친구 하나도 난도둑을 생각지 않고 애써 모은 모든 난들을 자연환경에서 기른답시고 나무숲이 무성한 그의 집 정원에다 간이 난대를 만들어 모조리 내놓았다. 한동안 난들은 집안에서 기르는 것보단 훨씬 세력 좋게 자랐고, 화아분화도 잘 되어 나에게도 이렇게 난을 기르라고 조언까지 해줄 정도였다. 그러나 사람을 너무 믿은 게 그의 잘못이었던가? 어느 날 갑자기 정원에 있던 귀하고 비싼 난들이 한 순간에 사라져버렸다. 그런데 더 기가 찬 것은 난분은 그대로 두고 좋은 난만 모조리 뽑아가 버렸다는 것이었다. 그 후로 그 친구는 얼마나 충격이 컸는지 난 이야기만 나오면 화를 벌컥 내거나, 신경질을 부리는 것이었고 결국 애란생활을 접어야만 했다.

 요즈음에 와서 난이란 돈과 같다고들 한다. 난을 기르는 것도 하나의 부업이며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그건 난값이 점차 비싸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어느 물건이고 간에 희귀하며 모든 사람이 갖길 원한다면 값은 올라가기 마련이다. 이건 돌과 보석의 차이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난을 너도 나도 기르고 싶어하게 되고,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니 난값은 점점 비싸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것이어서 더욱 희귀하고 값비싼 것에 현혹되어 거금을 투자하게 되고, 난이 바로 그 대상에 속하게 되어 누군가는 전 재산을 털어 난을 기르고 있다고 하며, 그 난이 1년 동안 생산해내는 것이 은행 이자의 서너 배 정도 된다며 입이 좌우로 쫙 찢어지고 있으니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그래서 난도둑은 근래에 들어 더 많이 발생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난을 도둑질하여 자기가 기르는 것이 아니고 남에게 팔기위한 것이 다반사이다. 즉, 돈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남이 애지중지 기르고 있는 난을 훔쳐가는 것이다.

 난을 잃어버린 사람의 심정은 손톱만큼도 생각지 않고 자기 치부 수단으로 난도둑이 횡행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사회생활도 많이 각박해졌고 인간의 순수한 마음이 여지없이 파괴되어가고 있는 지금, 난이란 것이 소유하는 사람의 마음을 이리저리 변화시키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난이, 그 중에서도 좋다고 하는 난들이 흔하게 산야에 깔려 아무나 쉽사리 얻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난도둑은 절대로 생겨나지 않을 텐데…

 난도둑을 걱정한 나머지 난실 설계도 작성 시 여러 가지의 방범 방법이 동원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걸 자세히 들여다보면 도대체가 난들이 제대로 성장할 수 없을 정도이다. 한 여름에도 문을 잠가야 하고 창문마다 방범용 창살을 달아 감옥처럼 만들어야 한다. 비상벨을 설치해야 하고 세콤이나 경찰에 연락되는 자동 방범 장치가 있어야 한다.

 이건 난을 기르는 것인지 모시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그래도 난도둑은 어김없이 침투해 들어온다. 가장 가까운 친구라 할지라도 경우에 따라 순간적인 욕망 때문에 난도둑으로 돌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도 난실을 내가 직접 설계하여 지었다. 난도둑이 걱정된 나머지 외부인이 들어올 수 없는 2층 옥상에다 지었는데, 실내 계단을 통해서만 난실로 들어갈 수 있도록 했고, 실외 계단은 2층까지만 만들고 옥상으로는 올라갈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그것도 부족하여 창문마다 창살을 만들고, 옥상 밖으로 나가는 출입문은 항상 닫고 문고리까지 걸어두었다. 또한 2층 외부계단을 올라가는 입구에는 견공들이 앉아 지키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까지 난도둑은 침투해들어오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들어올 수도 있으리라. 제발 난도둑 걱정 않고 마음 편하게 난에 맞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면서 기를 수는 없을까?

 올해는 옥상 난실 외부로 간이 난대를 2개나 만들었고, 그곳에서 난을 기를 예정인데 난도둑 걱정이 앞선다.

 남의 것에 욕심부리지 않고 나의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스스로를 위안할 수 있는 세상이 될 수만 있다면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해놓고 기르고 싶지만 그럴 수 있으려나 궁금하다. 난을 기르는 사람으로서 좀 더 순수해져야 할 텐데, 요즘은 난 기르는 사람이라는 자가 남의 것에 욕심을 너무 낸 나머지 난을 훔치는 일도 간간이 일어난다. 신문이나 방송을 들어보면 난을 아는 자의 소행이 상당히 많았기에 하는 말이다.

 신문을 보니 싯가 기천 만 원짜리 중압호를 난을 하는 가까운 친구가 훔쳤다가 들통이 나 쇠고랑을 찼다는데 정말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난이 뭐기에 그토록 욕심들을 내는지, 이거 원, 난=돈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의 행위임에 틀림없다.

 나도 난에 다소 욕심을 부리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순수하게 애란생활을 즐기기 위해 난을 기르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간 한 촉도 돈을 받고 남에게 팔아본 일도 없었고, 과소유욕에 치우쳐 난에 거금을 투자해본 적도 없었다.

 내가 기르던 난이 제아무리 아깝고 애지중지한 것이라 할지라도 나의 정성이 부족해 죽는다면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다. 결코 속상해하거나 뱃속이 뒤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난을 도둑맞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
 우리 님들, 잘 감상하셨나요?
저도 항상 난을 기르면서 마음 편하게 난이 원하는대로 해주면서 기르고 싶지만 바로 난도둑 때문에 잘 안 됩니다. 집 밖에다 내놓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리져버리니까요.
애란인의 심정을 조금만이라도 이해한다면 남의 애장란을 몰래 훔쳐가서는 절대로 안 될 것입니다. 애란인이 난을 마음놓고 기를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럼, 우리 님들 도둑 없는 세상이 왔으면 좋을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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