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 9. 13:48ㆍ나의 난 단상집
우리 님들, 난을 기르시면서 난에 해를 주는 여러가지 적들 때문에 고역을 치르는 일은 없었나요?
고란초는 20여년 동안 1000분 정도의 난을 기르다 여러 해충들에게 피해를 당한 적이 많았고,
주위에 많은 애란인들이 이로 인해 가장 아끼던 난을 잃고서 낙담하거나,
심지어는 애란생활을 포기까지 하고 있더군요.
그럼 어떤 것들이 난의 적인지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님들, 잘 감상해보세요.
시덥지 않은 저의 글이지만 우리 님들이 난을 기르시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난의 적
산 속에 무리지어 자생하던 난중 선택받은 난만을 집으로 모셔와 자연과 비슷한 환경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놓고 물도 주고 비료 주며 키워대니, 제법 잘 자라며 꽃도 피고 번식도 잘되어 난 기르는 게 별 것 아니라고 여기게 되는 수가 많다. 난 몇 분 기르는 것은 그런대로 손쉬운지 모르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 둘씩 모이게 되고 계속해서 불어나는 까닭에 어느덧 수십 분이 되고, 그동안 점차 난에 깊숙이 빠지게 되어 수년 사이에 수백분으로 늘어나게 된다면 이 경우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지가 죽으려면 죽고 살려면 살지’하는 식으로 무관심할 수도 없고, 그런다고 난의 노예가 되어 모든 일을 다 팽개치고 오직 난만 붙들고 늘어질 수도 없는 일이다. 난 몇 분 가지고 있을 때와 수백 또는 수천 분을 가지고 있을 때는 전혀 다른 상황이 되니, 난에게 해가 되는 모든 적에 대해 경계를 소홀하게 할 수가 없다.
난을 해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내 생각엔 그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배양하는 사람의 자세와 관심 및 난이 처한 환경과 병충해라고 본다.
난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것 같지만 이건 말과 같이 쉽지가 않다. 이런 관심사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고 항구적인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난에 대한 문안 인사가 필요한 것은 두 말할 것도 없고, 난이 무엇을 원하는 지도 알아야 하고, 무엇을 우리에게 주는 지도 알아야 한다. 비단 이건 난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뭔가를 기르고 가꾸는 경우는 모두 해당된다.
나는 한때 물고기 기르기에 관심을 가져 어항만 해도 4자, 3자, 2자 짜리 등 대여섯 개 정도에다 여러 가지 종류의 열대어, 금붕어, 담수어 등을 길러본 적이 있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판이하게 다르다. 난에 관심을 돌리면서부터 그동안 수많은 물고기와 각종 어항들이 하나 둘씩 없어지더니, 결국 하나 남은 넉자짜리 어항에 마지막 남은 한 마리의 금붕어가 병이 들면서 죽어가는 처참한 상태로 빠지고 있음을 내 눈으로 목격하게 되었다. 한 때는 나도 열대어, 금붕어라면 자신 있게 기를 수 있다는 자만심과 확신에 차서 최대의 관심을 가진 결과 수천 마리의 물고기로 증식시키는데 성공했지만, 그간 무관심이 가져온 마지막 상황은 어떠했던가? 이건 차마 내 입으로 말하기도 부끄럽다.
이렇듯 무관심과 자만심은 나에게 파멸의 결과를 초래한다는 산 교훈을 가져다주었고, 난에게 만큼은 이런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되리라 다시 한 번 다짐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난을 잘 기른다 함은 배양하는 사람의 관심도 문제지만 배양하는 환경과도 많은 연관이 있다. 집에다 한두 분 정도 그저 관상용으로 집안 아무 곳이나 놔두면 될 것 같지만, 그러한 난들은 조만간 최후의 순간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맞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들 있다.
난 언제가 사적인 일로 모 회사의 중역인 친구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의 집안에 들어서자 잘 정돈된 가구며 호화 장식품들이 휘황찬란하게 내 눈에 비쳤지만, 그보단 그런대로 구색을 갖춘 난 몇 분이 집안 분위기를 더욱 살려주는 듯, 안방이며 거실에 잘 손질되어 놓여있어 난을 기르는 사람으로서 자연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 곳에 심어놓은 난도 옥화, 소심, 중투 등 제법 명품 대열에 든 중국란과 한국춘란들이었는데, 난분도 청자분과 고급 관상분에다 심어 돋보이게 해두었다. 그런데 그 난을 보는 나의 마음은 너무도 불쌍하고 안쓰러움이 지나쳐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길이 없었다.
그 좋은 난들을 값비싼 난분에다 심어 관리하려면 기왕이면 난에 맞는 충분한 환경을 고려하여, 간이용 난실이라도 지어 잘 배양할 수만 있다면 더욱 돋보이게 할 수도 있으련만, 그 난들은 우선 눈요기할 목적으로 놔둔 거라서 난과는 전혀 맞지 않은 환경에 적응을 못하고 누렇게 병이 들어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친구는 전혀 난을 기를지 몰랐고, 그저 집안을 꾸미는 데만 신경 써서 구색만 갖췄을 뿐이지 그 난들이 죽어가고 있는지, 어떤지는 전혀 관심 밖이었던 것이다.
정말로 아까운 난들이 주인을 잘못 만나 죽어가고 있으니 나의 심정이 어떠했겠는가는 과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차라리 그 꼴을 보지 않았다면 몰라도 차라리 그 난을 가져와 한 촉이라도 살려내고 싶은 심정뿐이었지만, 남의 집을 방문하여 이것저것 참견하기가 싫어서 함구하고 말았는데, 지금쯤 죽어 문드러져 있을 그 난과 빈 난분만 앙상하게 널려있을 그의 집안을 생각하면 정말 이래선 안 되리라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또한 사람도 과잉보호하면 잘못 되는 경우가 있듯, 난 또한 과잉보호로 저 세상으로 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모든 일에 과잉은 금물이라 했듯, 난을 기름에 있어서도 과잉보호는 운명을 재촉하는 길이 되고 만다. 겨울이면 얼어 죽을까 걱정하여 안방에다 모셔두고, 여름이면 타죽을까 걱정되어 에어콘을 틀어주는 사람이 많다. 어디 그뿐이랴. 잘 커라고 비료다, 영양제다 하면서 수시로 뿌려주고, 그것도 모자라 사람도 값비싸 맞기 힘든 단백질 수액제까지 서슴없이 뿌려대니, 원대로 받아먹고 건강하게 잘 클 것 같지만 천만에 말씀, 결과는 크게 실수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난을 기를 때는 환경을 적절하게 꾸며주는 것이 필요한데, 난에 적합한 난실을 만들어 가꾸는 것이 꼭 필요하리라 여겨진다. 또한 무관심도 지나친 관심도 역시 난에게는 해가 되니 적당한 관심을 가지면서 말이다.
그 다음으로 난에게 문제가 되는 것이 여러 가지 해충과 병이다.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관심을 가지고 길러도 본인도 모르게 침투해 들어오는 것이 바로 이것인데, 애란인들의 가슴에 뼈아픈 상처를 남기고 죽은 자식 무엇 만지듯 한탄과 후회를 안겨주는 이런 것들이 왜 없어지지 않는지 모르겠다. 하고많은 공탕과 허탕 속에서 정말 힘겹게 피땀 흘려 캐온 명품의 난이 어느 날 갑자기 밀어닥친 병으로 전멸해버리거나, 깨끗하고도 화려하게 잘 나온 무늬종이 온통 꺼멓게 변화되면서 죽어가니 한 마디로 말해 골치 아픈 것이 바로 이것이다.
뜨거운 여름철엔 연부병이나 근부병이 복병처럼 갑자기 예고도 없이 찾아와 힘들게 내민 새촉부터 쏙쏙 빠져버리질 않나, 잘 나오던 무늬종에 갑자기 얼룩덜룩한 이상한 무늬가 드는 듯싶더니 까맣게 말라죽는 흑점병, 난 바이러스병 등 한 번 침투해들어온 후엔 막을 길이 없는 이런 것들은 사전 예방이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병충해 방지를 위한 농약도 뿌려야 하고, 고온다습하지 않도록 관수도 잘 조절해주어야 되며 쾌적하게 환풍도 시켜야 하고, 여름철의 뜨거운 태양 빛도 차단시켜줘야만 한다.
내 직장 동료인 한 친구는 거금을 투자하여 완벽에 가까운 전자동 시설을 갖춘 난실을 지어, 늘 나에게 자랑하며 난을 잘 기르고 있었다. 그가 가진 난 또한 고액을 투자하여 수백 종의 명품난들을 구입하여 기르고 있었기에, 누가 보면 상당한 애란인에 속한다고 평가해줄만한 상태였다. 어디 그것뿐인가? 이 지역의 난우회에까지 가입하여 소장란을 출품하는 둥, 자기도 어엿한 회원이라고 자랑하는 둥 다소 자기 과시에 열을 올렸는데, 수년이 지난 지금 그는 어떤 상태인가?
나는 간혹 그의 집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나도 언제쯤 저렇게 한 번 길러볼까 하고 그를 늘 부럽게만 여겼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귀하고도 수많던 난들은 모조리 행방불명이 되고, 빈 난분들만 처량하고도 썰렁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난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라 어떨떨할 수밖에 없었고,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어 그 이유를 물었다. 그는 한 순간의 부주의로 모든 난들을 잃었다고 했다. 도둑이 휩쓸어 간 것도 아니고, 남에게 다시 판 것도 아니었다. 그가 그토록 자랑하던 전자동시스템이 한 순간의 정전으로 가동되지 않았는데, 그로 인해 난들이 치명상을 입고 전멸한 것이었다.
그는 한때 난에 미칠 정도로 빠져 나와 산채를 간 것만 해도 수십 차례는 되었다. 그런데 그 좋아하던 산행을 어느 순간 중단하고 난데없는 골프에 빠졌다. 지금은 골프광 소리를 듣게 되었지만, 그는 난을 전멸시킨 그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말해 주었다.
“이 놈의 난실을 너무 믿은 것이 잘못이었어. 그 날은 3박 4일로 휴가 내어 마누라랑 일행 몇이서 제주도로 골프 치러 갔는데, 여름철이었지만 집을 오랫동안 비울 것 같아 물도 흠뻑 주고 도둑이 들까하여 아파트 베란다 문을 다 닫아놨었어. 난실이 전자동이라 선풍기와 환풍기가 자동으로 작동되고, 에어콘까지 가동되니 문을 닫아놔도 지금까지 한 번도 문제가 없었기에 안심하고 놀러갔는데 말이야, 아! 글쎄, 거기 갔다 와서 보니 난들이 시들시들하더라고. 갑자기 내가 없는 사이에 정전이 되었던 모양이야. 내 그럴 줄 알았더라면 베란다 문이라도 다 열어놓고 갔을 텐데, 누가 이런 일이 갑자기 일어나리라 상상이나 했겠냐구. 하필이면 여름도 제일 더운 시기에 휴가를 냈으니 그동안 시스템작동이 안 되었다면 푹 삶아버렸겠지. 너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난 이제부터 난을 안 기르기로 했어. 그동안 애쓰게 공력 들인 것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으니, 기분 상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정까지 사정없이 떨어져버렸다고. 그래서 이젠 난우회도 탈퇴해버렸구만. 회원들 보기도 민망하고, 그러니 이젠 골프나 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어.”
이건 비단 그에게만 해당 된 것은 아니다. 이런 일을 당하고 난을 그만 둔 사람이 어디 하나 둘이던가. 내 옆집에 사는 C씨도 몇 년 전 겨울에 한창 추울 때 가온을 하지 않고, 자연 상태에서 기르겠다고 하면서 난실 유리창이 깨진 줄도 모르고 놔뒀다가 모조리 폭삭 얼어붙어, 그 이듬해 여름에 죽어 넘어간 난이 부지기수였다고 했다. 그가 아끼고 애써 구입한 난이며, 피땀 흘려 산채해서 모은 난들이 관리 소홀로 전멸해버린 지금, 그 역시 난과 담을 쌓고 사는 처지가 되어버린 상태다.
이런 환경에서는 연부병이나 근부병이 쉽사리 발생하므로 그에 대한 예방을 철저히 해야 함에도, 한 순간 소홀히 하여 난을 전멸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또한 난 바이러스도 무시할 수 없다. 나도 이것 때문에 지금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 어느 해 서울에 있는 모 난원에서 일본란과 중국란을 상당한 돈을 들여 산 적이 있었다. 그 당시는 난 바이러스병을 잘 모르는 상태라서 다른 곳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구입을 했기에 기분이 좋았었는데, 나중에야 속은 것을 알고 분통을 터트렸던 일이 생긴 것이다. 그 난원을 너무나 믿은 것도 잘못이고, 그걸 속이고 나에게 판 난가게 주인도 질이 나쁘지만, 문제는 그 때 구입했던 난 전체가 바이러스병에 걸려 있었던지 구입한지 3년도 못 되어 모조리 죽고 말았고, 다른 난에게까지 피해를 주고 있다는데 있다. 지금은 대부분 격리시켜 죽게 나뒀지만, 간혹 산채 시에 바이러스병에 걸린 것 같은 난들을 모르고 캐온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난에 과욕을 부려 그러지 않았나 싶다. 병들거나 바이러스에 걸린 난들은 아예 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난에게 해꼬지하는 게 어디 병뿐이랴. 해충 또한 머리 골치 아프게도 많다. 이런 해충들의 피해는 소수의 난만 기르고 있을 때는 쉽사리 제거할 수도 있지만, 수백 수천 분의 난을 기를 때는 모조리 분을 엎어 제거할 수도 없고, 아무리 환경을 깨끗이 해도 외부로부터 침범해 들어오기에 애를 먹이는 수가 많다. 난에 해를 끼치는 해충들의 실태를 한번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그 놈의 달팽이들, 집을 가진 놈이나 민달팽이 모두가 마찬가지인데, 잡아 죽이고 또 죽여도 어디서 그렇게 기어 나오는지 알 수가 없다. 난실이 외부와 차단된 아파트 경우는 조금 덜 하겠지만, 나같이 정원이 나무로 울창한 곳에 난실이 있다 보니 외부로부터 기어들어 오는 것을 막기가 어렵다. 달팽이들은 번식력도 대단하고 식욕도 왕성하여 한번 피해를 받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어진다. 밝은 낮엔 난분 속이나 난실 바닥에 숨어 있다가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밤손님처럼 살그머니 기어 나와 어린 새촉이나 꽃망울을 갉아먹는다. 난꽃을 한 송이 피우기 위해 장시간을 기다리며 화아분화다, 저온 처리다, 차광이다 하며 공력을 엄청나게 들였는데, 막상 꽃이 피려고 하면 요놈들은 인정사정없이 하룻밤 사이에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다. 민춘란들만 골라 먹어준다면 그래도 효자 소리를 듣겠지만, 얄밉게도 아끼고 공들인 것만 골라 작살내는 데는 선수다. 막상 이런 일을 당하고 나면 얼마나 분통이 터지는지 모조리 잡아다 똥물에 튀겨 죽여도 울분이 풀리지 않을 정도다. 전시회에 출품할 난을 갉아먹어 정말 신경질이 나고 난감했던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이 민달팽이에게 너무나 많이 당해 봄철 달팽이가 활동할 시기에 거의 한 달가량 밤마다 한두 시간씩 전 난실을 돌면서, 눈에 보이는 족족 모조리 잡아 죽였더니 그래도 지금은 거의 전멸한 상태이다. 하지만 사시사철 활동하는 달팽이를 완전히 퇴치하려면 매일같이 야간에 난실을 점검하면서 잡아 죽이는 방법밖에 없다. 어느 누구는 달팽이 죽이는 약을 뿌리면 된다지만 난 별로 도움이 안 되었다.
그 외에도 응애, 진드기, 쐐기, 메뚜기, 지렁이, 깍지벌레, 진딧물 등 많은 해충들이 있는데, 생쥐란 놈도 유명한 난의 적이다. 이번엔 쥐의 경우를 살펴보자.
산에 가보면 난이 있는 곳에는 여기저기 쥐구멍들이 숭숭 뚫려있는데, 난뿌리 밑에다 구멍을 뚫어놓고 뿌리나 벌브를 갉아 먹는지, 어떤 난은 잎만 땅 위로 나와 있는 것도 있다. 쥐와 엇비슷한 토끼나 노루 같은 것도 난잎을 뜯어 먹기는 마찬가지인데, 그래도 이들은 벌브까지 먹어치우지는 않아 새촉이 새로 나오는 데는 지장이 없는 수도 많은데, 쥐란 놈은 난잎은 안 먹고 뿌리나 벌브를 작살내니 온통 말라 죽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난실 속에 침입한 생쥐는 아예 난분 속에다 아담한 집까지 꾸미고 들어앉아, 배가 고프면 벌브를 먹어치우니 이놈의 쥐를 어떻게 전멸시킬까 전전긍긍이다.
어떤 이는 자생지에서까지 쥐에게 당했다고 하는데, 명품의 난을 모처럼만에 만나 껌뻑 죽는 시늉을 하고서 떨리는 손으로 그 난을 캐보니 난잎만 뽑혀 나오고 벌브와 뿌리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쥐란 놈이 땅밑으로 구멍을 뚫고 지나다니면서, 하필이면 명품의 난뿌리와 벌브를 먹어치웠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나도 쥐에게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한 적이 있다. 봄이 되어 난꽃들이 앞을 다투며 피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산에서 나에게 엄청난 흥분과 열광을 안겨 주었던 난이 모처럼만에 꽃을 달아 어떻게 필지 무척이나 기대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하나 달린 꽃대가 피기도 전에 온대간대 없이 사라져버렸다. 아무리 찾아봐도 그 난꽃을 찾을 길이 없었는데, 그 다음날은 멋지게 피어 나를 온통 사로잡던 호화소심 난꽃이 꽃봉오리만 없어지고, 꽃 없는 꽃대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이었다. 민달팽이 소행으로 생각하고 며칠 밤을 새우다시피 하면서 그 난분만 바라보며, 달팽이를 잡아 죽이려고 했는데 달팽이는 거기에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다른 꽃을 따먹고 있는 생쥐를 발견해내고 말았다. 난 화가 극도로 치밀어 올라 생쥐를 잡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으나, 어찌나 빠르고 잘도 숨는지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쥐약을 바른 쌀을 꽃이 핀 난분마다 놓아두었더니 며칠 후 쥐약이 없어진 것을 확인했고, 거의 1주 정도 되어 죽어있는 생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후로는 난꽃이 없어지는 경우는 볼 수가 없었는데, 간혹 달팽이가 갉아버린 난꽃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었다.
좌우지간 난실에는 쥐를 출입금지 시켜야 하고, 생쥐건 집쥐나 시궁쥐건 모두 난꽃을 좋아하는 것은 확실하니, 보이는 대로 잡아 죽여야만 하는데 어디서 그렇게 들어오는지 알 수가 없다.
이처럼 난에게는 많은 적이 있으니 난을 기른다는 것은 정말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어쩌랴, 난은 기르고만 싶은데. 아무리 고역이 되더라도 끝까지 감수하며, 난이 내게 주는 이점은 너무나도 큰 것이기에 끝까지 참으며 길러보려고 한다.
난의 적은 항상 가장 가까운 곳에 도사리고 있으니, 적을 알고 대비책을 강구하여 하나씩 물리치면서 난을 잘 기른다는 말을 듣고만 싶을 뿐이다.
.........................................
우리 님들, 잘 읽어보셨나요?
제가 쓴 것은 난의 적들 중 극히 일부만 언급하였습니다.
다음 기회에 좀 더 자세히 구체적으로 써서 올려볼 생각입니다만....
그럼 우리 님들, 저처럼 실수하지 마시고 항상 난의 적들에게 대비를 철저히 하시면서
난을 잘 기르도록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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