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 9. 13:55ㆍ나의 난 단상집
우리 님들, 산야에 있는 난에는 명품의 난도 있지만, 널려있는 민춘란을 인위적으로 명품처럼 조작한 가짜란도 있습니다. 이건 사람의 과욕에 의해 빚어지는 웃지못할 일입니다만...
이 글이 난을 기르시는 분께 다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우리 님들도 관심있으신 분께선 읽어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명품의 난과 가짜란
(제1화)
명품의 난을 찾아서
- 한국춘란 명품인 중투호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좋고 나쁜 것으로 구별될 수 있다. 동물이던 식물이던 간에 우수종이 있고 별 볼 일 없는 것이 있기 마련인데, 달리는 말도 우수종은 명마라 하고 개도 명견이 있듯 식물에도 명품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도 명성을 얻어 명인이 되면 우러러보이기도 하고 귀티 있게 보인다. 하물며 하찮은 식물이었던 난이 어느 날 갑자기 명란이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난의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도 명품이 될 만한 난들을 수집하여 이름까지 붙여가며 춘란명감이란 걸 만들고 있다. 그만큼 난을 귀하게 여기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명품의 난일까? 이것은 사람의 눈에 의한 구별로써 가늠할 수밖에 없는데, 우선 흔하지 않아야 하고 몇 가지 독특한 특성을 지녀야만 된다. 그래야만 수없이 많은 같은 종류의 난 중 좀 더 특출한 모양을 나타내어 돋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명품의 난, 구하기 힘들고 모두가 갖고만 싶은 난. 이것은 난을 알고 기르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난을 풀로만 여기는 난에 대해 일자무식인 문외한들에게는 한 조각의 빵이 명품의 난보다는 더 가치가 있을 테니까 말이다.
사람은 무엇인가에 집착하면 깊숙이 빠져 헤어나질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난을 수집하고 배양하는 애란인에겐 조금이라도 더 좋은 명품을 얻기 위해 온 심혈을 다할 것이고, 결국 손쉬운 방법인 산채에 적극 매달리게 되는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행운이 따르는 자에겐 명품의 난을 알현할 기회가 주어진다. 또한 부지런히 노력하는 자에게도 명품이 발견될 기회가 올 수도 있다.
어쩌다 만난 명품의 난을 세상천지를 얻은 듯 기쁨을 만끽하며, 곱게 캐내어 집안의 가장 좋은 위치에 모셔 두고 끔찍이 사랑을 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돌아서면 조금이라도 더 나은 명품의 난을 찾고 또다시 찾아 온 산야를 헤매게 된다.
난중에서 가장 으뜸이고 명품에 속하는 중투. 그것을 캐고 싶어 안달하지만 막상 그것을 어렵사리 만났다 해도 더 좋은 중투의 난을 캐고 싶고, 또 그보다 더 좋은 명품인 중투를 캐 보고 싶은 게 애란인의 끝없는 욕심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어느 누구는 원대로 중투나 캐 보는 게 평생소원이라고 했듯이, 꿈에서까지 중투밭을 만나는 꿈을 꾸도록 기원하며 매일같이 중투 노래를 불러 대고 있다. 그런다고 해서 중투를 만나는 것도 아니지만 자기 위안의 한 표현 방법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사실 나도 중투를 캐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는데, 막상 한 촉 캐고 보니 이왕이면 좀 더 좋은 중압 중투를 캐 보고 싶은 게 소원이라고 한 단계 건너뛰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무엇인가 감상하려면 각각 다른 감상 기준이 있고, 감상의 질이 있게 된다. 조금이라도 양질의 것을 추구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다. 음악 감상도 과거엔 카세트 레코드로 듣다가 더 좋은 음향기기가 나오게 되고, 컴퓨터 디스켓 등 더 간편하고 양질의 것이 개발되고 나오니 점차 그것을 원하게 되었다. 요즘은 소위 컴퓨터 시대로 이야기되는 바 시대의 변천에 따라 사람의 기호도가 바뀌는 것이다.
난도 처음엔 산반 한 촉만 캐도 가슴이 울렁거렸지만 차츰 복륜을 원하게 되고, 호반을 찾게 되고, 결국은 중압 중투호를 찾게되며, 색화도 이왕이면 여러색꽃(복색화)를 찾게 되는 것이다. 같은 중투라도 더 좋은 것이 없을까하여 단엽중투니 복색화에 중투니 하며 다예품을 더 원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 것이 이 산야에 널려있는 것은 아닐 진데, 분명히 있을 거라 여기고 부지런히 찾아 헤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난들은 쉽사리 눈에 띄지를 않는다.
이 난들을 찾아 헤매다 제 풀에 지쳐 떨어지게 되고, 결국은 한없는 욕심을 부려봐야 그것이 과욕이란 걸 알게 된다. 명품을 향한 욕구는 한없는 것이지만 과욕에 불과할 뿐 그야말로 천우의 신조로 명품을 알현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 기회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만큼 크게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산채를 부지런히 다닌다고 모두 다 명품을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 눈에 띄는 산반 한 촉이라도 감지덕지 하며 나에겐 과분한 행운이라고 여겨야만 한다.
명품의 난을 찾았다고 해서 그 사람도 유명해지는 것은 아니니까 오직 행운이 따르는 자로만 여겨질 뿐이다. 중투를 캐어 자랑하는 사람을 한편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지만 나에게도 기회는 주어질 것이라 자위하며 산채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다.
눈보라치는 남녘땅 어느 산모롱이에서 죽어 화석이 된다 해도 산채를 안 가고는 못 베길 만큼 열성적인 사람도 있다. 그만한 열성을 가지고 부지런히 산채에 임하다보면 기회가 균등히 주어질 것이므로 남도 캐는 명품을 왜 나라고 못 캘 리가 있겠는가? 이 나라 이 땅에 그 난 한 종자만 있을 리는 없고, 그와 비슷한 난은 또 다른 어느 곳에 분명히 있을 거니까 말이다.
명품을 찾아 헤매는 산채, 정말 나에게는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말이다. 매일같이 전문 직업 산채꾼이 되어 원대로 난이나 캐보고 싶지만, 나의 주위 환경은 나를 그렇도록 내버려두지를 않는다. 아내도 싫어하고, 아이들도 싫어하고, 직장에서까지 싫어하니 결국 내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두지를 않는 것이다.
혼자 사는 홀아비가 되어 마땅한 직업이 없다면 생계유지 수단으로 이 방법이 좋을 것이지만 나는 결혼한 몸이고, 애들도 양육해야 하고, 병원에서 환자를 돌봐야 하고, 나의 얼굴을 보길 원하는 환자들이 줄을 이을 것만 같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또한 집안에서 쓸 생활비도 매달 벌어 와야 하니 싫어도 직장에 꼭 붙어있어야만 알량한 월급쟁이라도 될 수 있지 않겠는가? 결국 나의 주위환경이 날 이토록 구속하고 있으니, 마음 편하게 나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고 지낼 뿐이다.
이러니 어찌 하겠는가? 산채는 가고 싶고 주위에선 날 그대로 놔두질 않고, 정말 미칠 지경이지만 어느 한 쪽을 포기할 수는 없어 결국 양다리를 걸쳐야만 한다. 그런데 휴일만이라도 원대로 산채를 갈 수 있다면 가능할 것이지만 아내와 애들이 또 그냥 놔두질 않는다. 산채가기가 소원이지만 내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 것이다. 이러니 명품의 난을 찾는다는 것은 더욱 요원한 것이 아닐까? 그래도 그간 부지런히 산채를 다닌 보람이 있어 명품처럼 생긴 난을 만나보긴 했지만, 아직도 내가 찾는 명품의 범주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으니 얼마만큼 더 좋은 난을 찾아야만 산채를 중단하게 될지 나도 모를 일이다. 명품의 난을 향한 나의 욕구는 끝이 없는 것이어서, 아직도 산채를 못가면 골병이 든 듯하니 산채병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음에 틀림없다.
어느 휴일 빈 배낭을 메고 산을 향해 떠나는 나의 마음속엔 나도 모를 삶의 활력이 그 속에 들어있고, 온갖 기대감과 설레임으로 충만되어 있는 그 자체가 바로 나의 삶의 확인이 되는 것이다. 희망이 없는 자는 죽은 자와 같듯 삶의 희망 자체는 가슴속에 온갖 기대감과 설레임으로 충만되어야 한다.
집을 떠나 산채를 가는 날이면 으레 한 번쯤 느껴보는 것이 바로 이것이니, 이게 바로 나의 삶의 일부로 삶의 자체가 아니고 무엇이랴. 취미도 내 삶의 일부인데 나의 취미인 난의 수집과 배양이 바로 나의 삶이고 바로 내가 난인 것만 같은 착각 속에 빠지게 된다.
난이여! 그대가 있음에 내가 사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다. 산속에서 너희들을 만날 때면 무언의 대화 속에 나의 삶에 활력을 주었고, 나의 삶의 일부가 되었으니 어찌 내가 너희들을 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
명품의 난이여! 그대와 만나는 그 시간 내가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온갖 열광과 환희가 내 가슴속에 용솟음쳐오르니, 이 어찌 삶의 활력이 아니랄 수 있겠는가?
난이여! 난실 가득히 너희들을 모셔두고 산채 가지 못하는 날이면 그저 너희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의 빈터를 매꿔주고 있으니, 너희가 나에게 진정 필요한 존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젠 너희들과 함께 푸르게 살다가 곱게 늙어 죽고 싶을 뿐이다. 누가 들으면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고 하겠지만 내 어찌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말이 나오리.
난의 문외한들이여, 난에게서 삶의 활력을 찾아보라. 진정한 삶의 활력이 분명히 그 속에 있을 것이다. 수없는 공탕 속에서 명품의 난과 대면하는 그 순간의 얼굴 표정이 결국 삶의 표정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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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님들 잘 감상하셨나요?
다음엔 가짜란에 대해서 언급해보겠습니다.
우리 님들, 모두 행복한 나날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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