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 12. 08:18ㆍ은사님의 글
정년 노인의 건강 소고
모처럼만에 정년이랍시고 멀리 헤어져 사는 식솔들이 모여든 오붓한 자리에서 딸 놈과 제 작은 고모가 아빠, 오빠 하며 입을 열었다.
“더두 말구 백 살까지만 사셔요.”
“그렁께 35년만 더 살고 죽으란 말인가 베! 난 말이여 낼 죽는 한이 있어도 그런 시한부 인생으로 살고 싶지는 않은디 …”
“금 뭐람 돼요?”
“기냥 건강하세요, 해부러.”
사뭇 어리둥절 서로를 물끄러미 쳐다만 보는 그녀들이었다. 이러한 맹랑한 군소리를 스스럼없이 뇌까리는 주제는 세상에 나뿐일레라 중얼대면서도 까놓고 보면 천만 년도 더 살고지고 하는 어리석고 부질없는 속셈이 아니겠는가 싶어 지레 쑥스러워지기까지 하였다.
오가다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면서 건강해서 좋겠다며 두둔해주는 인사말일적마다 고맙습니다하고 받아넘기면서도 정녕코 내가 건강했던 때가 언제였을까 싶게 까마득하게 잊고 지나온 향수처럼 금시로 안절부절못해지는 것이다.
너는 저 싸리문 밖에 서있는 거렁뱅이가 눈에 뜨이지도 않기에 툇마루 밥상머리에 천연덕스레 앉아 밥이 잘도 목구멍을 넘어가나보구나 하시며 나무라기만 했던 선친으로부터 엄격한 다스림과 놋밥그릇 바닥에 한술 이팝만 남아있어도 어디가 아프냐며 근심스레 이마를 만져주었던 어머님의 각별한 보살핌으로 내 건강은 가꾸어졌고 다져졌었다.
훗날 의사 공부를 하게 되면서는 꼬치꼬치 말라빠진 꼬마들을 볼 적마다 그들을 부여안고 먹이고 또 먹여 살찌우게 하며 지나오는 동안, 어느새 제발 좀 굶어버릇하세요 악다구니를 써야 할 만큼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비곗살이 피둥피둥 꼴사나운 어른들이 자꾸만 늘어났다.
공맹의 중용지도는 인간의 건강에 대해서도 미리 짐작하였던 양 싶었고, 근자에 생겨난 옵티말 헬스라는 서양 말 또한 이 철리에 따른 것뿐이다 싶었다.
아무튼 시재 내가 먹고, 싸고, 내갈기고, 놀고, 자고, 하고, 등등 모름지기 제대로 일뿐더러 직업인 의사 노릇을 비롯하여 이에 버금가는 낚시질, 음악듣기, 근자에 와서는 갑자기 돋아나는 난초 가꾸기 병 등으로 보아 서양말로 바이탈하고 비거러스한 삶의 나날이라는데 굳이 토를 달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건강이란 어찌 이런 뜻으로만 그칠 것인가는 구태여 WHO의 지혜를 빌릴 것까지도 없겠다.
이를테면, 젖먹이를 등에 업은 앞 못 보는 엄마가 입에 풀칠코자 거리 한 모서리에 스피커를 대놓고 울부짖으며 한 푼 동전을 애타게 구걸하고 서있는 바로 그 옆에서, 장성한 겨레의 젊음들끼리 누구의 사주기에 아옹다옹 치고 박고 돌팔매질인가 하면, 또 맑고 총명한 멀쩡한 눈을 못 보게 하기 위한 마구잡이로 쏴대는 최루탄 총부리가 숱한 지폐를 불사르고 있는 것인가 말이다.
가뭄에 시달려 수없이 어린이들이 굶주려 죽어가고 있는 에티오피아의 불난리, 또 수만의 생명을 순식간에 앗아간 방글라데시의 물난리, 이러한 천재지변이 그들만의 재앙이기에 한사코 데탕트, 스타워즈 따위의 뚱딴지인가 말이다.
마냥 인간들만이 믿는 신이라면서 발에다 신는 신처럼 다양한 신들인지 어쩜 이렇듯 내 신 네 신 하는 저마다의 신들이 얽히고설킨 아비규환이련가.
뿐이랴, 4천년이 훨씬 넘는다는 우리네 단군 할아버지는 가짜이고, 2천년도 채 못 되는 먼데서 데려온 신만이 진짜라고 우겨대는 답답함.
누가 만들어낸 세상이기에, 누구를 위한 정치이기에 내 나라 내 땅 내 길을 막아놓고, 내 어머니 내 형 조카들의 생사조차 모르면서 찍 소리 못하고서 참고 견뎌 온 다시는 없을 내 40년이 어찌 건강할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또 그리고 …
이렇듯 시행착오만 되풀이되는 정치, 갈피를 잃은 믿음, 이성을 잃은 젊음, 지성을 빼앗긴 지식인들의 도가니에서 어찌 내 건강만이 홀로 온전할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두서없이 따지다 보니 나의 건강론은 갈팡질팡, 절대 비관론의 제물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기에 어떻게 해서든 불건강만은 면하려, 아니 덜 불건강하게 살려고만 안간힘 쓰고 몸부림쳤던 내 생애였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친들 아무렴 건강코자 하는 의지마저 저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허파와 위를 통한 산소와 영양소들의 찌꺼기가 오줌과 똥과 그리고 숨결에 의해 말끔히 배설되고, 눈에 거슬리거나 귀에 아니꼬운 삼라만상의 찌꺼기나마 행여 골수에 사무칠세라 한사코 입 밖으로 퉤퉤 뱉어내면서 사는 것이다.
이렇듯 건강이란 나름대로의 처지에서 천의 뜻을 지녔기에 건강관리란 그대로 인간 관리를 말함이고, 스스로의 건강은 스스로가 지키기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는 내 신조이다.
끝으로 나의 건강 헌장을 여기에 엄숙히 선포하는 바이다.
“건강이란 생각하고, 행동하고, 사랑하며 오래도록 사는 것이다. 우주가 평화롭고 모든 생물이 함께 건강할 때 인류는 비로소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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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님들 즐겁게 감상하셨나요?
이 글은 저의 은사님의 산문집에 있는 글이므로 감히 후기를 쓰기가 어렵습니다.
우리 님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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