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없는 하루 제2편

2011. 3. 1. 10:50나의 문학작품

 우리 님들 재수 없는 하루 제2편입니다. 낮에는 낚시하러 가서 웬 여자에게 당하고, 밤에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건 사실 당할 뻔했던 일이었지요.
 우리 님들 직접 한번 감상해보세요.



 

                재수 없는 하루




                                            제2편



 그 날 저녁, 식사를 마치자 말자 낮에 기분도 상하고 하여 바람이나 좀 쐴까 하고 집밖으로 긴 의자를 들고서 나갔다. 길가에다 의자를 놔두고 그 곳에 앉아 시원스레 불어오는 밤바람을 맞으며 머리를 식히고 있는데,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는 일을 또다시 목격하고 말았다. 이거야 물론 내가 너무 세상물정을 몰라서 그렇지 현대 여성(?)이라면 이런 일은 식은 죽 먹기 식으로 일어날 테지만, 좌우지간 내 마음을 묘하게 만든 사건이 바로 눈앞에서 벌어진 것이다. 
                             

 웬 택시 한 대가 매스꺼운 매연가스를 풍기면서 하필이면 내가 앉아 있던 길가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그러더니 택시 안에서 웬 예쁘장한 처녀(?)가 쑥 나오더니 운전사에게 소리쳤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지금 가진 돈이 없어서 … 한 20분만 기다려줘요. 바로 저기가 제집이거든요.”

 그녀는 제법 상냥스러운 어투로 미안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애원에 찬 눈초리를 보내면서 수줍은 듯이 말하는 것이었다.

 “아니, 이거 봐요! 날 언제 봤다고 … 날 뭐, 등신 취급하는 거요, 뭐요? 돈 없으면 좋게 걸어 갈 것이지, 왜 하필이면 재수 없게 내 차를 타고 앉았어? 왜 탔느냐고?”

 정이 뚝 떨어질 것 같은 목소리로 고함을 꽥지르는 그 운전사는 이맛살에 내 천자를 그려대며 그녀에게 한 방 놓았다.

 “아따! 점잖은 분께서 왜 그래요? 내 얼굴을 봐서라도 따악 20분만 기다려 주세요, 네?”

 “허! 참, 기가 막혀서 … 똥 싼 주제에 매화 타령하고 앉아 있네. 좋은 말 할 때 돈 내놔.”

 옆에서 내가 보기에도 정말 입장 난처한 광경이 벌어진 것이다. 그들은 한참 동안이나 돈을 내라, 좀 기다려 달라 옥신각신 다투는 것 같더니 결국 운전사가 양보를 하는 것 같았다.

 “진작 그러시지. 절 믿으세요. 믿는 자에겐 복이 있다고 하잖아요?”

 “어쭈, 지가 뭐나 되는 것 같네. 좋아! 그럼 딱 한번만 믿어보겠수다. 그러니 번개 같이 다녀오더라고.”

 운전사도 말다툼 해봐야 뾰쪽한 수가 나올 것 같지 않다고 여겼는지 체념한 채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런 직후 그녀는 곧장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30분이 경과해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운전사는 내가 앉은 긴 의자의 한쪽 끝에 걸터앉아 생담배만 연거푸 피워대고 있었다. 그러더니만 혼잣말처럼 한 소리 내뱉는 것이었다.

 “요런 더러운 년! 내 그럴 줄 알았다고. 내가 너 같은 계집을 믿은 게 잘못이지. 아이고! 속았구나, 속았어!”

 운전사는 성질이 날카로워 질대로 날카로워졌고, 잔뜩 부화가 치밀어 올랐는지 씩씩거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더니만, 기분 잡친 표정을 지으며 길가에다 침을 탁 뱉고는 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택시 속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지 그래요?”

 나는 그 운전사가 다소 딱해 보여 이렇게 권유했다. 그 말에 그 운전사는 택시 문을 확 열어젖히며 나에게 분풀이하듯 내뱉는 것이었다.

 “아니, 당신이 뭔데 남의 일에 촉새처럼 끼어들어 밤 놔라 대추 놔라 하는 거요? 아이고! 속 터져. 염병할 계집애, 벼락이나 맞아 콱 죽어버려라.”

 이 운전사의 태도로 보아하니 공연히 입 한번 잘못 놀렸다간 나도 혹 하나 붙일 것만 같았다. 그로부터 한 10분쯤 지났을까? 그녀가 숨을 헐떡거리며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운전사도 그 때까지 안 가고 앉아 있더니만 의아스러운 눈초리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머! 정말 미안해요. 오래 기다리셨죠? 돈을 찾느라고 그만 … ”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체 말을 잇지 못하더니 핸드백에서 돈을 꺼내 택시 운전사에게 건네주었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잡아 죽일 듯 기세가 등등하던 운전사는 갑자기 코가 납작해진 듯 미안스러운 표정까지 지으며 돈을 챙기더니 거스름돈을 건네주려고 했다.

 “그냥 놔두세요. 그건 팁으로 치세요.”

 그녀는 제법 상냥스럽게 입가에 미소까지 띠워대며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운전사는 완전히 기가 팍 죽어 버렸고, 한사코 받기를 거절하는 그녀의 손에 거스름돈을 꼭 쥐어주었다.

 “정말 사람 잘못 본 것 같소. 당신을 의심하다니 아이 엠 쏘리요. 난 항상 요놈의 주둥이가 방정이라니깐.”

 그 운전사는 몇 마디 말을 남긴 체 택시를 몰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나도 옆에서 죽 지켜보니 제법 흐뭇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고, 그래도 이런 여자는 오늘 낮에 만났던 형편없는 여자엔 비할 바가 못 된다고 여기고 있었다.

 ‘여자가 최소한 이 정도는 되어야지. 아가씨, 나도 당신을 의심해서 미안하오.’

 난 그녀를 지긋이 쳐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리고 앉아 있었다. 그녀는 멀어져가는 택시를 멀뚱멀뚱 바라보다간 다시금 돌아섰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 순간 언제 바람처럼, 아니 물 찬 제비처럼 내 곁에 나타났는지 어떤 놈팡이 아니면 바람둥이처럼 생긴 사내 녀석이 내가 앉아 있던 의자 뒤쪽에서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난 지금까지 그 사내를 한 번도 못 본 것 같았는데, 그 녀석도 어둠속에서 지금까지의 일들을 빠짐없이 목격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의 그녀에 대한 느낌이 여지없이 와전되어 버리는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그는 ‘이젠 내 차례다’ 하고 생각했는지 쏜살같이 뛰어나가더니 그녀를 불러 세웠다.

 “이봐요! 아가씨, 잠깐만 … ”

 그러자 그녀는 당황한 듯 그 자리에 우뚝 서고 말았다.

 “저 … 아가씨, 마침 목도 칼칼해 죽겠는데 그 돈으로 어디 가서 아이스크림이나 좀 사 먹읍시다.”

 그녀를 언제 봤다고 안면 깨나 있는 것처럼 다정스럽게 말을 건네자, 그녀도 역시 고단수로 나오는 것이었다.

 “가만있어봐, 어디서 많이 뵌 분 같아요. 거기가 카바레였던가, 고고클럽이었던가?”
                             

 

 “그래, 맞아! 나도 어쩐지 초면 같지 않더라니 … 내가 거기 최 제비라고. 아니, 그건 그렇고, 뱃속이 출출해서 못 견디겠어. 사줄 거야? 안 사줄 거야?”

 “안 되는데 …  이 돈은 …  실은 나도 꾼 것인데 …”

 “아따! 그거 참, 몇 푼 든다고 그래요? 차라리 내가 사드릴까, 그럼?”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노라니 내 속이 뒤집히는 것만 같았고, 그들이 부러울 뿐이었다.

 “아 … 알았어요. 거기 좋으실 대로 해요.”

 그녀는 빙긋이 웃어 보이더니 그 녀석을 따라나섰다. 결국 두 연놈이 순식간에 짝이 맞아 시시덕거리며, 서로가 어깨를 마주대고 대로를 활보하면서 내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난 그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저 놈들이 정말로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러 가는지, 아니면 더 중대한 사건을 저지르기 위해 엉뚱한 곳으로 가는 건지 나도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좌우지간에 현대 여성이랍시고 이렇게 간단히 마음이 변한 데서야 어디 처녀라고 다 믿을 수가 있겠나?

 그들이 떠난 후 집 앞에 사는 가게 아저씨가 나에게 다가오더니만 한마디 귀띔해 주었는데, 저 여자가 바로 유명한 총각 사냥꾼이니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나 원 참! 별 꼴을 다 보겠군, 그래. 내가 눈이 삐어 이놈의 여자를 잘 못 봤지. 저 여자에게 말 한 마디 잘 못 걸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 휴우! 오늘은 이래저래 재수 없는 일들만 일어나는 하루네, 정말. 더 큰일 나기 전에 집에 들어가 발 닦고 잠이나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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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님들 잘 감상하셨나요?
이 글은 오래 전에 있었던 것이라서 시의에 걸맞지는 않습니다.
제가 의대 본과 1학년 때 일이었으니 말입니다. 이 글에 나오는 여자는 그후로도 몇 번 봤지만 동네의 건달들과 어울려다니는 여자가 확실했습니다.
  우리 님들 오늘은 저처럼 재수 없는 날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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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석연료절감 2009.02.03  05:23
 
오래된 일 참 기억 잘 하십니다. 하기사 워낙 뇌리에 깊이 남아 있어서 그렇게 보입니다.
본과 1학년때라 하시니 저도 기억이... 친한친구중 의사가 본과 1학년때 제가 그친구한테
바둑 25점 놓고 배웠는데 여름되니 맞수가 되어 이 친구 열받아... 매일 저하고 바둑뜨다
1년 구운 적이 있어... 잠시 생각납니다.
 고란초 2009.02.03  23:53
 
화석님, 방문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오래 전에 일기에다 써두었던 글들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이것을 참고하여 글을 쓴 것입니다.
화석님도 바둑 잘 두시나봅니다. 상대방 열받게 만들 정도니...
전 아마 2단입니다. 이 상훈 프로기사와 공식 대국으로 2단을 인정 받았지요.
제가 4점 깐 바둑을 이겼거든요.ㅎㅎ 요즘은 시간이 없어 잘 안 둡니다만...
화석님, 편안한 밤 맞이하세요.
 
 화석 2009.02.06  08:46
 
대단하십니다.
전 그렇게 잘 두지 못하고 학교때 좀 센 4급까지 갔다가 지금은 안두어
약한 5급입니다. ㅎㅎㅎ